< PreviousMagazine of the Korea Concrete Institute 18 국제학술대회 참가기 | INTERNATIONAL CONFERENCE REVIEW ACI 콘크리트 컨벤션은 콘크리트를 발전시키기 위해 전 세계의 연구자와 엔지니어들이 참석하여 최신 연구 결과를 보고하고 연구 트렌드를 공유하는 세계적 규모의 컨벤션이다. ACI 컨벤션은 매년 봄, 가을에 걸쳐 개최되고 있으며, 기존 논문 발표 위주의 학술 대회와 달 리 학술 논문 발표와 전문위원회 회의, 기술 세션 등의 다양한 세션으로 구성되어 진행되고 있다<그림 1>. 이번 2021 ACI 가을 컨벤션은 2021년 10월 17일부터 10월 21일까지 5일간 개최되었 다. 지난 1년과 달리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하이브리드 형식으로 개최될 예정이었으 나 COVID-19 확진자가 증가함에 따라 온라인 형식으로 전환되어 많은 아쉬움을 남겼다. 컨벤션은 300여 개의 위원회 회의와 55개 이상의 기술 세션으로 구성되어 진행되었다. 또 한, 전문위원회 회의와 기술 세션 외에도 ACI International Forum, Concrete Auction Sponsored by Women in ACI(WACI), Student Networking Reception, 등의 특 별 이벤트가 진행되었다<그림 2>. 17일 유튜브 채널을 통한 개막 세션 영상이 업로드되면 서 컨벤션의 공식 시작을 알렸다. 개막 세션은 현 ACI 회장인 Cary Kopczynski의 환영사 로 시작되었다<그림 3>. 다음으로 기조연설자인 Tomas M.Koulopoulos가 이번 컨벤션 2021 ACI 가상 콘크리트 컨벤션 참가기 The 2021 ACI Virtual Concrete Convention 정유진 Yu-Jin Jung 한양대학교 ERICA 스마트시티공학과 석박사통합과정 그림 1. 2021 ACI 컨벤션 온라인 홈페이지 제 34권 1호 2022. 01 19 2021 ACI 가상 콘크리트 컨벤션 참가기 The 2021 ACI Virtual Concrete Convention 의 주제인 “Revealing the Invisible: How Artificial Intelligence is About to Change Everything.”에 대 해 논의하였다. 위원회별 회의도 연속적으로 열려 활발하 게 토의되었다. 대부분의 회의는 공개적으로 개최되었으 며, 온라인으로 진행되어 보다 쉽게 회의에 참여할 수 있 었다<그림 4>. 본 컨벤션에서 필자가 참석한 여러 가지 세션 중 중요한 세션들을 언급해 보면 다음과 같다. • ACI 301-20 콘크리트 건설 사양: 설계 및 시공에서 ACI 301과 사양 간의 관계를 이해하는 데 중점을 두고 프로젝트 사양에서 ACI 301을 참조할 때 어떻게 사용 해야 하는지 보여주었다. • 콘크리트 포장에 대한 지속 가능성 고려 사항: 긴 수 명의 포장에 필요한 중요한 요소와 콘크리트 포장의 지속 가능성의 관계에 대해 알아보았으며, 현재 발생 하고 있는 문제들에 관해 탐구하였다. • 초고성능 콘크리트(UHPC) 토의: 건설 산업에서 가 장 영향력 있는 UHPC에 대해 정의하고 UHPC의 다 양한 토픽들에 관해 설명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 세션 은 3부로 구성되었으며, 재료 공급업체와 계약업체, 연구자들의 발표를 통해 UHPC에 대한 지식이 공유 되었다. • 섬유 강화 폴리머(FRP) 보강재의 연구 개발 및 응용: ACI 440 위원회가 주도하여 설계 표준 및 지침 작성 을 하였다. 콘크리트 산업에서 FRP 보강재의 연구 트 렌드와 개발 및 응용에 대해 제시되었다. 필자는 이번 ACI 컨벤션에서 “구조물 건전성 모니터링 을 위한 탄소나노튜브를 이용한 E-Skin의 성능 평가”에 대한 주제로 ACI 123 Student Poster 세션에 참가했다 <그림 5>. 대학원생이 된 후 처음으로 참가한 해외학회라 미흡한 점이 많다는 것을 느꼈다. 이번 컨벤션을 통해 느 낀 귀중한 경험을 앞으로 연구하고자 하는 것들에 대한 방 향을 뚜렷이 할 수 있었으며, 사회에 도움이 되는 연구 성 과 도출에 대한 의지가 생겼다. 2021 ACI 콘크리트 가을 컨벤션을 통해 세계적으로 다 양한 연구자 및 엔지니어들이 콘크리트의 발전을 위해 어 떤 노력을 하고 있고 다양한 주제들로 연구를 하고 있는지 그림 2. Concrete Auction Sponsored by Women in ACI(WACI) 그림 3. ACI 회장 Cary Kopczynski의 환영사 그림 4. Opening Session and Keynote PresentationMagazine of the Korea Concrete Institute 20 국제학술대회 참가기 | INTERNATIONAL CONFERENCE REVIEW 파악할 수 있었다. 비록 온라인으로 개최된 만큼 현장감이 적어 아쉬웠지만, 이번 컨벤션을 통해 해외 연구 교류의 새로운 발전 가능성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최근 건설산업에는 4차 산업혁명에 기반한 스마트 기술 발전, 타 산업과의 융 · 복합화, 글로벌화 등 새로운 트렌드 가 나타나고 있다. 이런 트렌드에 발 빠르게 대응하고 끊 임없이 연구하며 그 결과를 산업에 접목해야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2021 ACI 가을 컨벤션은 다양한 연구자들의 연 구 성과를 공유하고 토론할 수 있는 기회였다. 다음 2022 ACI 봄 컨벤션은 2022년 3월 27일부터 31일까지 미국 플 로리다주 올랜도에서 온 · 오프라인을 병행하는 하이브리 드 방식으로 개최될 예정이며, 국내의 많은 연구자분들을 온라인 및 현장에서 볼 수 있기를 희망한다<그림 6>. 그림 6. 2022 ACI Concrete Convention 그림 5. ACI 123 Student Poster Session 정유진 학생은 한양대학교 ERICA캠퍼스에서 석·박 사통합과정에 재학 중이다. 주 관심 연구 분야는 탄소나노 튜브를 활용한 다기능성 건설재료 개발이다. yujin0421@hanyang.ac.kr 담당 편집위원 : 장승환(한양대학교) sj2527@hanyang.ac.kr제 34권 1호 2022. 01 21 Technic al Committ ee’ s Activity 한천구 Cheongoo Han 청주대학교 건축공학과 석좌교수 1. 위원회 개요 골재품질관리위원회는 2021년 새롭게 신설된 전문연구위원회이다. 골재는 천연자원을 활 용하고 정부의 수급관리를 받는다는 측면에서 공공재의 성격을 띠고 있는 대표적인 건설자재 이며, 콘크리트 체적의 70 % 이상으로 골재의 품질이 콘크리트 품질에 많은 영향을 주고 있는 건설 기초소재이다. 그러나 우리 학회에는 그동안 골재품질관리 전문위원회가 구성되어 있지 않아서 골재 품질관리 및 연구 관련 실적이 미흡한 상황이었다. 따라서, 2021년 골재품질관리 위원회를 신설하여 골재의 물리, 화학적 성질 분석과 콘크리트용 골재의 전반적인 기술적, 공 학적 특성 분석 연구 및 이에 따른 지침, 관련 법률의 제도적 불합리한 사항을 개선 발전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표 1. 골재품질관리위원회 위원 명단 구분성명소속구분성명소속 위원장한천구청주대학교 위원 류득현유진기업(주) 간사이재삼(재)한국골재산업연구원박민용산표산업(주) 위원 강 훈한국고로슬래그미분말협회심재홍(재)한국골재산업연구원 강창운케이엠비(주)여휘구한국레미콘공업협동조합연합회 고경택한국건설기술연구원오덕기하나레미콘 공민호현대엔지니어링(주)윤용호(주)태양레미콘 김 종청주대학교이건철한국교통대학교 김건기한국임업진흥원이대식아주산업(주) 김경민서울기술연구원이도헌공주대학교 김광기롯데건설(주)이진영한국지질자원연구원 김동협대성레미콘(주)이한승한양대학교 김우재포스코건설(주)정상화한국건설생활환경시험연구원 김장수한국레미콘공업협회조성현한일시멘트(주) 김진만공주대학교 교수홍창기한국석회석가공협동조합 백현수삼표산업(주)황인성아세아시멘트(주) 전문위원회 소개 KCI 216 골재품질관리위원회전문위원회 소개 | TECHNICAL COMMITTEE’S ACTIVITY Magazine of the Korea Concrete Institute 22 2. 주요 활동 내용 골재품질관리위원회는 학계를 비롯한 골재 생산업체, 혼화제, 레미콘, 시멘트사, 건설사, 관련 협회, 연구기관 및 부처 등 다양하고 경험이 풍부한 전문가들로 구성하여 골재의 품질 특성에 따른 콘크리트 물성과 연계한 연구 분야를 재정립시키고, 국내·외 연구 동향 및 지침/가이 드라인 등을 수집·분석하여 연구를 활성화함으로써 콘 크리트 산업 발전에 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위원회는 2021년도 신설되어 정기회의 4회와 가을 학술대회 특별 세션을 개최했다. 특별세션에서는 박홍근 학회장과 한국 골재협회 박도문 회장이 특별히 참석하여 축사를 해주셨 고, “최신 콘크리트용 골재의 문제점과 대책”에 대한 주 제로 5가지 항목을 발표하였다. ① 한국의 골재산업 현황 및 골재협회 소개(문정선), ② 건설산업 발전을 위한 골재 품질 방향 제언(박민용), ③ 콘크리트용 골재의 수급 현황과 대책(강기웅), ④ 골재품 질 관련 법·규정의 문제점 및 대책(이도헌), ⑤ 콘크리트 탄소 중립을 위한 골재산업의 발전 방향(김진만), 주제발 표 후에는 한국산림골재협의회장(조담진), 한국산림토 석협회장(백경진), 한국골재공제조합 본부장(채수학), 한국골재협회 본부장(문정선) 및 한국골재산업연구원장 (심재홍)이 참석하여 업계의 어려움과 관련 법령의 문제 및 제도개선의 필요성에 대하여 의견 개진이 있었고, 기타 사항에도 산·학·연 모두가 참여하여 열띤 토론으로 골재 의 발전 방향에 대한 새로운 이정표를 만들었다. 3. 향후 활동 계획 골재품질관리위원회는 2022년부터 골재 실무매뉴얼 을 집필할 예정이다. 골재 실무매뉴얼은 ① 개요(골재의 정의, 역할, 분류), ② 우리나라 골재의 변천 및 수급 동 향, ③ 골재의 성질과 품질규정, ④ 각종 골재의 특성 및 활용, ⑤ 골재의 구입, 저장, 관리, ⑥ 골재생산 프로세스 ⑦ 골재의 효율적인 활용, ⑧ 부록으로 구성할 예정이다. 또한, 2022년도에도 지속적으로 정기회의를 통하여 골 재의 문제점과 제도개선 방향 및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품질향상과 발전 방향에 대한 논의와 학회 학술대회에서 위원회 특별세션을 개최하고 골재의 제도에 대한 문제점 과 개선 방안에 대하여 토론하여 산·학·연 모두가 관심 을 가질 수 있는 위원회로 활동하고자 한다. 그림 1. 위원회 정기회의 및 2021 한국콘크리트학회 가을 학술대회 골재품질관리위원회 특별세션 한천구 석좌교수 는 충남대학교 건축공학과에서 박사학위 를 취득하고 일본 북해도 대학에서 Post Doc.을 마쳤다. 포항 제철 토건부 공사 감독으로 근무하였으며, 인천전문대 및 인천 대학교에서 전임강사로 재직하였다. 1981년에 청주대학교 건 축공학 교수로 재직하여 2018년 9월 정년을 맞이하였고, 현재 는 동 대학 건축공학과 석좌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재직 중 여 러 학회에서 이사, 감사, 부회장, 회장 등을 역임하였다. 현재 국내 골재 부족에 관한 대안과 골재 품질향상을 위한 연구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cghan@cju.ac.kr 담당 편집위원 : 신현오(충남대학교) hyunoh.shin@cnu.ac.kr제 34권 1호 2022. 01 23 Gangneung 강릉 강릉은 영동지방의 최대 도시다. 서쪽은 대관령이 있는 태백산맥이 가로막고 있고, 동쪽에는 동해 바다가 펼쳐져며, 그 해안선 의 길이는 73 km에 달한다. 강릉은 서울과 같은 위도상에 있으면서도 태백산맥의 푄 현상 덕분에 연중 비교적 온화한 해양성 기 후를 가지고 있다. 연안은 수심이 깊어 오 호츠크 한류와 쿠로시오 난류가 수월하게 교차하며, 따라서 어족이 풍부하다. 역사 적으로는 기원전 3세기부터 약 600년 동 안 한반도 동해안 일대를 지배했던 동예의 땅이었으며, 당시에는 지금의 강릉 지방을 “하슬라”라고 불렀다. 삼국시대에는 고구 려의 땅이었던 것을 639년(선덕여왕 8년) 에는 신라가 강릉을 점령하면서, 하슬라는 “소경”이라 칭하여졌었고, 이때부터는 신 라는 이곳에 사신을 두었다. 658년 무열왕 은 “이곳은 말갈과 인접해 있다”라는 이유 로 소경을 폐지하고, “아슬라주”를 만들어 도독을 파견하기 시작했다. 757년 경덕왕 은 아슬라주를 “명주”로 개칭하였다. 역사 가 바뀐 고려 시대에도 이곳은 계속하여 명 주라고 불렸다. 995년(성종 14년)에는 지 금의 함경도와 영동일대를 포함하는 “삭방 도”의 행정중심지 역할을 맡았었고, 1263 년(원종 4년) 행정 개편 시에는 “강원도” 라는 새로운 이름이 부여되었다. 고려 말기 인 공양왕 때에는 함경도를 강원도에서 분 리하였다. 조선 시대에 접어들면서 1423 년(세종 5년) 강릉부와 춘천부로 나뉘어 졌으며, 행정 중심이 춘천으로 옮겨지면 서 강릉은 상대적으로 쇠퇴하기 시작했다. 1906년 일제강점기의 행정개편으로 강릉 군, 정선군, 평창군, 인제군 등으로 분할되 었으며, 1931년에는 강릉군은 강릉읍으로 승격되었다. 1955년에는 강릉읍, 성덕면, 경포면 등을 통합하고, 이를 명주군으로 개 칭하였고, 1995년 행정개편 시에는 강릉 읍과 명주군 일원을 통틀어 관할하는 강릉 시가 탄생하였다. 현재 강릉은 1읍, 7면, 13동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인구는 약 21 만 명이다. 강릉은 2018년 평창 동계올림 픽을 앞두고, 빙상종목 전 경기의 개최지로 선정되었었고, 그로 인해 경강선 KTX 개 통, 영동고속도로의 재정비 등으로 인해 교 통인프라와 숙박시설이 크게 개선되었다. 월화정 2017년 12월 15일 서울과 강릉을 이어 주는 고속열차인 KTX 경강선이 개통되었 다. 경강선 공사 당시, 진부역에서 강릉역 구간 공사를 맡은 삼성건설 측에서는 태백 산맥을 꿰뚫는 장대 터널 공사 현장을 학계 의 토목인들에게 현장을 견학할 수 있는 기 회를 부여했었다. 이 터널은 태백산맥 구간 을 일정한 내리막 구배로 통과하는데, 직선 으로 놓아지며, 총거리는 22 km에 달하는 국내에서는 가장 긴 철도터널이다. 뿐만 아 니라 터널의 막장은 공기 단축의 목적으로 진부측 및 강릉측 양측에 두고 있었으며, 필 자가 현장을 방문했던 날은 양측에서 달려 오던 막장이 서로 맞붙어서 장대터널이 관 강릉 심종성 Jongsung Shim 한양대학교건설환경공학과 명예교수 GANGNEUNG청파기행 NO.44 | CHUNGPA’S TRAVEL ESSAY #44 Magazine of the Korea Concrete Institute 24 통되기 직전이었다. “교수님, 머지않아 터 널이 맞붙게 됩니다. 삼성이 대단하죠?” 지 프차를 앞세워 현장을 안내해주시던 현장 소장님께서도 이 공사를 자랑스러워하며, 만족하는 눈빛이었다. 터널 구간을 나오면 철길은 커다란 타원을 그리면서 고가구조 물을 이용하여 강릉 시내로 들어선다. 강경 선의 종착역인 강릉역은 지하로 계획되어 있으므로, 기존 동해선 철길을 철거하고 그 밑으로 새로운 지하구조물을 공사하였다. 철거되는 기존 철길은 추후 시민들의 공원 으로 사용되었다. 강경선이 개통된 후, 서울 에서 강릉까지 소요되는 시간은 청량리역 에서는 불과 한 시간 반이다. 필자가 무술년 새해가 밝아오면서 시승했던 고속열차는 서울을 출발한 후, 경기도 양평, 강원도 만 종을 지나, 올림픽이 개최되었던 평창을 거 친 후, 강릉역에 도착했다. 월화거리란 동해선 철도부지를 개조하 여 조성한, 강릉역에서 시작하여 강남동까 지 이어지는 총 길이 2.6km의 시민공원을 일컫는 말이다. 경포대, 오죽헌, 선교장, 안 목 커피거리 등 기존 관광지는 모두 강릉시 외곽에 자리 잡고 있는데 비해, 이번에 탄생 한 월화거리는 강릉 시내를 관통하고 있어 서 시민들의 생활뿐 아니라 관광객들의 관 광 문화의 패러다임을 바꿀 것으로 기대한 다고 한다. 필자는 강릉에 갈 때마다 월화 거리에 새롭게 탄생한 ‘두에시스’라는 이탈 리안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즐기고 있다. 또 한 대관령 골짜기에서 흘러내려 강릉 시내 를 관통하는 남대천을 횡단하였던 기존 철 교는 나무 데크를 활용하여 ‘월화교’라고 부 르는 보도육교로 탈바꿈됐다. 월화교를 건 너면 ‘월화정’이라고 불리는 작은 정자를 만 난다. 월화정(月花亭)은 정면 3칸 측면 2칸 의 구조이며, 나무 마루에, 기와로 된 팔작 지붕을 얹고 있다. 이 정자는 강릉 김씨 대 종회가 중심이 되어 지어졌다. 이유인즉, 강 릉 김씨의 시조이신 명주군왕이었던 김주 원 공은 ‘월화정 설화’의 주인공의 아들이었 기 때문이었다. 월화정 설화는 다음과 같다. 신라 진흥왕 시절 경주에서 명주군(오늘의 강릉시)으로 부임한 무월랑은 이 지방 토호 의 딸인 박연화를 우연히 만나 사랑에 빠졌 다. 그러나 조정의 명으로 무월랑은 다시 경 주로 돌아갔고, 홀로 남은 연화는 부모님의 성화로 다른 이와 혼례를 치루게 되자, 무월 랑과 자주 만났던 현재의 월화정 정자가 있 는 연못으로 가서 잉어에게 이러한 사연이 담긴 편지를 무월랑에게 보내달라고 부탁 했다고 한다. 한편 무월랑은 어머니의 병환 치료차 시장에서 잉어 한 마리를 구입하여 집으로 가져갔는데, 배를 가르니 연화의 편 지가 들어있었다. 무월랑은 매우 놀라서 급 히 명주로 찾아와 “이는 하늘이 맺어준 인 연입니다”라고 양측 부모님들을 설득하여, 연화와 부부의 연을 맺었다는 얘기다. 월화 정은 무월랑의 ‘월’과 박연화의 ‘화’를 따서 1930년에 지어진 정자였으나, 1940년 동 해선 철도공사 부지로 편입되면서 철거되 었었고, 이를 복원하려는 종인들의 끊임없 는 노력의 결과로 2003년에 재건립되었다 고 한다. 평창동계올림픽에 즈음하여 개통 된 KTX 강경선으로 인해, 월화거리가 새롭 게 태어남으로써, 강릉시는 월화정이 젊은 이들의 ‘사랑의 성지’ 역할을 하게 될 것으 로 기대하고 있다. 경포대 경포대는 조선 시대의 관동팔경 중 하나 다. 강릉 시내에서는 북동쪽 7 km 지점에 위 치하며, 작은 언덕 위의 누대는 정면 5칸, 측 면 5칸의 정사각형 나무 마루를 가지고 있는 구조이고 지붕은 팔작지붕의 형태다. 경포 대는 고려 충숙왕 13년인 1326년에 창건되 그림 1. 월화거리에 태어난 사랑의 성지, 월화정그림 2. 월화거리 두에시스에서 즐겼던 해산물 요리 그림 3. 경포대 내부에 걸린 제일강산 현판그림 4. 경포대에서 바라보는 경포호 전경제 34권 1호 2022. 01 25 Gangneung 었지만, 조선 시대에 들어서면서 개축을 여 러 번 거쳤다. 자연 석호인 경포호를 바로 앞 에 두고 있으며, 뒷산의 솔밭과 멀리 동해바 다의 파도까지 바라볼 수 있는 위치에 건립 되었다. 조선 시대에 <관동별곡>을 쓴 정철 은 경포대를 관동팔경 중 으뜸이라고 했으 며, 경포대에 달빛이 쏟아지는 달밤에는 하 늘, 바다, 호수, 그리고 술잔과 임의 눈동자 에서 동시에 다섯 개의 달을 볼 수 있다고 노 래했다. 현재의 경포대는 1508년에 원래 의 자리에서 옮겨 세워진 것으로 알려져 있 지만, 경포호와 더불어 600여 년의 역사성 을 가진 역사적, 문화적 가치는 여전히 높다 고 하겠다. 경포호는 원래 석호였는데 최근 에는 염호로 바뀌고 있다. 2004년 수질을 개선하기 위해 바닷물을 막고 있던 보를 해 체하면서 바닷물이 대거 유입하게 되었다고 한다. 따라서 현재는 홍합이 군락을 이루고 있고, 전복이 자라고 있으며, 파래와 홍조류 까지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다고 한다. 요즈 음에는 경포호를 일주할 수 있는 보도가 신 설되어, 시민들에는 경포대보다는 오히려 경포호를 한 바퀴 돌아보는 산책길이 더욱 인기가 있다. 약 한 시간이 소요된다. 강릉시 에서는 또한 경포바다 백사장에, 경포에서 강문에 이르는 보도용 나무 데크를 마련해 주었다. 경포의 라카이에 체류하면서 아침 마다 나무 데크를 밟으면서 강문교까지 이 동한 후, 태광식당에 들려 곰치국으로 아침 식사를 하는 재미는 필자에게는 커다란 기 쁨이 되었다. 새벽에 길을 나서면, 동해에서 솟아오르는 태양을 만날 수도 있다. 따라서 매년 설날이면 ‘경포해돋이축제’가 이곳에 서 열린다. 겨울 바다의 해돋이 시간은 약 7 시 반이다. 단오제 강릉에는 다양한 축제가 열린다. 매년 설 날에 행해지는 경포 해돋이축제, 정동진 해 돋이축제, 음력 단오에 열리는 강릉단오제, 9월에 열리는 경포바다 마라톤대회, 10월 에 개최되는 주문진 오징어축제 그리고 율 곡 이이선생제, 강릉커피축제 등이다. 그 중 가장 큰 축제는 강릉단오제다. 강릉단오 제는 대관령 산신에 대한 제사와 축제로 구 성되며, 1967년 국가무형문화재 제13호 로 지정되어 있다. 고려 시대의 승려 일연 이 쓴 <삼국유사>에 의하면, “삼한은 5월 에 귀신에게 제사를 지내고, 사람들이 모 여 음주·가무를 했다”는 기록이 있다고 하 니, 강릉단오제의 역사는 상당하다고 하겠 다. 조선 시대에는 단오놀이를 한때 중단 시켰었지만 그 후에는 국가 공휴일로 삼았 다고 한다. 예로부터 우리나라에서는 월과 일이 모두 홀수이면서 같은 숫자가 되는 날 은 생기가 넘치는 날이라고 믿었으며, 이날 을 즐겨왔다고 한다. 단오 ‘단’자는 첫 번째 를 뜻하는 글자이고, ‘오’자는 다섯을 뜻하 므로 단오는 초닷새를 뜻한다. 이 시기는 농사에서 파종을 마치는 때여서, 새로 지은 농사가 잘되기를 기원하는 날이기도 했다. 단오절의 풍속 및 행사로는 창포에 머리 감 기, 쑥과 익모초 뜯기, 부적 붙이기, 대추나 무 시집보내기, 단오 비녀 꽂기 등이 있으 며, 그네뛰기, 씨름하기, 활쏘기 등의 민속 놀이가 있다. 조선 시대의 화가 김홍도의 그림에서는 이러한 풍습과 놀이들이 잘 묘 사되고 있다. 단오가 되면, 더위가 시작되 어서 임금이 시종들에게 부채를 하사했었 다는 기록도 있다. 집단적인 행사로는 단오 제, 단오굿을 들 수 있다. 조선 시대에는 단 오제가 군, 현 단위로 행하여 졌는데, 그중 강릉단오제가 가장 널리 알려져 있었다. 오래전 필자가 방문했던 강릉단오제는 남대천 공용하천부지에서 오일장을 겸하 면서 음력 5월 5일에 즈음하여 닷새간 개 최되었다. 머리에 긴 끈을 달고 빙빙 돌리 며, 꽹과리 치고, 장구를 앞세운 사물놀이 패가 길을 막는다. 시민들과 관광객들도 함 께 어울려 덩실거리는 완연한 축제 분위기 다. 남대천 양측은 먹거리 가게들이 줄지어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감자떡, 메밀전, 순대, 오뎅, 홍합, 감자옹심이 뿐만 아니라, 전통 단오 음식인 수리취떡과 앵두화채 그 그림 7. 강릉단오제에서 즐겼던 탈놀이 그림 6. 강릉단오제에서 만난 사물놀이패 그림 5. 경포바다에서 맞는 동해의 해돋이축제청파기행 NO.44 | CHUNGPA’S TRAVEL ESSAY #44 Magazine of the Korea Concrete Institute 26 리고 제호탕까지 눈에 띈다. 제호탕이란 오 매육, 백단향, 초과 등을 곱게 갈아 꿀에 재 워 두었다가 냉수에 타서 마시는 청량음료 인데, 조선 시대에는 궁중에서만 마시던 것 을 단오절에는 더위를 이겨내기 위해 서민 들도 마셨다는 얘기가 있다. 필자가 돌아보 았던 강릉단오제에서는 커다란 천막에서 서커스 공연을 하고 있었고, 야외공연장에 서는 강릉여고 밴드반 학생들의 연주도 있 었다. 넓은 광장에서는 남정네들의 씨름대 회와 활쏘기대회가 있었으며, 아낙네들의 그네타기와 널뛰기 경합도 볼 만 했었다. 박이추 강릉을 커피 도시로 만들기 위한 강릉시 의 노력은 2009년부터 시작되었다. 강릉 에서 자생적으로 시작된 커피명가는 테라 로사와 보헤미안인데, 커피를 찾는 관광객 들이 늘어나고 있음을 인식한 강릉시는 커 피 축제를 고안해 냈었다. 고급 커피와 함 께 바다를 바라볼 수 있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는 ‘안목커피축제’는 이제는 지역축제가 아닌 전국축제로 알려져 있다. 2016년 통 계에 따르면 당시 강릉에서 운영중인 커피 점은 200여 곳이 넘는데, 이중 직접 로스팅 하는 곳이 30여 곳이나 된다고 한다. 강릉 시는 단순히 커피를 마시는 장소 뿐만 아니 라, 커피문화상품을 키워내려고 노력하고 있다. 현재 강릉에는 일곱 개의 커피 아카데 미가 개설되어 있으며, 강릉시가 중심이 되 어 건립한 커피 박물관 및 커피 도서관, 커 피 만들기 체험행사, 드리퍼 및 그라인더 판 매, 커피 관련 영화상영 등은 일반인들에게 커피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키는 역할을 하 고 있다. 필자 일행이 찾아간 보헤미안의 창업자 박이추는 한국의 1세대 커피 명인이다. 한 국커피협회에서는 한국 커피의 맥을 지켜 온 명인들에게 ‘1서 3박’이라는 애칭을 붙 였었다. 그들은 서정달, 박원준, 박상홍 그 리고 박이추다. 박이추는 그들 중 유일하게 생존하고 있는 분이다. 필자가 찾아간 박이 추의 카페에서는 목요일 날 만 커피콩을 볶 는다. “나는 몰래 손님을 훔쳐봅니다. 어떻 게 커피를 마시는지 설렘으로, 두려움으로 몇 번이나 눈길을 보냅니다.” 박이추의 말 이다. “그깟 음료에 뭐 그렇게까지 신경을 쓰냐고요?” 그는 손님의 눈치를 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입장이었다. 2011년 <디 지털 밸리> 잡지에 실린 인터뷰 기사 내용 이다. 박이추는 1950년 일본 규슈에서 태 어났다. 1979년 한국으로 귀국하여 목장 을 시작했으나, ‘평생을 즐기면서 할 수 있 는 일’로 커피를 선택했다고 한다. 그래서 다음 해인 1980년에는 동경 신주쿠에서 커 피학원을 다니기 시작했고, 1986년 재입 국한 후, 1989년에 서울 혜화동에 커피점 보헤미안을 개점했다. “커피 열풍에 힘입어 서 돈 좀 벌었죠. 한데 대학로는 커피와 어 울리지 않았습니다.” 당시에는 민주화 운동 이 한창이어서 하루에도 수차례씩 화염병 투척과 최루탄 연기에 곤혹을 치렀다고 한 다. 박이추는 커피와 어울리는 강릉을 찾아 왔다. 강릉에 터를 잡은 지 10여 년, 매출은 예전만 못했지만, 커피를 더욱더 사랑할 수 있게 되어 행복하다고 했다. 박이추는 그를 찾는 커피 손님들을 팬이라고 부른다. 그가 내놓은 커피는 전국의 커피 팬들이 강릉을 찾아오는 이유를 말하고 있었다. 그림 8. 박이추의 커피카페 보헤미안 전경그림 9. 보헤미안에서 즐겼던 박이추의 커피제 34권 1호 2022. 01 27 Gangneung 참소리관 강릉행 경강선 KTX 열차 내에서는 강릉 의 명소들을 선전하고 있다. 내게는 그중 ‘참 소리박물관’이 눈에 띄었다. 다음은 손성목 관장의 말이다. “근대 인류의 역사를 살펴보 면 빛과 소리마저도 자본화하고 있습니다. 옛날의 자본은 토지나 건물, 또는 금은보화 였습니다. 그러나 빛과 소리는 절대로 저장 할 수 없는 것으로 소유가 불가능했었습니 다. 그런데 미국의 토마스 에디슨은 빛과 소 리를 축적하고, 가공하고, 교환할 수 있는 시 장의 상품으로 만들어 냈습니다.” 손성목 관 장은 빛과 소리가 어떻게 상품화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참소리관’을 1980년에 강릉에 오 픈했다. 손성목은 소년 시절 선친으로부터 선물로 받은 콜롬비아 축음기가 인연이 되어 소리와 빛의 저장 장치들을 수집하기 시작했 다고 한다. 박물관에는 손성목 관장께서 지 난 50여 년 동안, 세계 60여 개국을 직접 방 문하면서, 어렵게 수집한 축음기, 뮤직박스, 라디오, 전구, 전화기, 다리미, 환등기, 영사 기, 심지어는 텔레비전까지 다양한 물건들이 전시되고 있었다. 참소리박물관은 안내자의 인솔을 받으며 설명을 듣는 형식으로 운영 되고 있었는데, 필자 일행의 안내를 맡았던 가이드는 중국인 대학생이었다. “안녕하세 요. 저는 중국인입니다. 다소 한국말이 서툴 러도 양해해 주세요.” 이렇게 시작된 박물관 투어는 약 한 시간 정도 계속된다. 첫 번째 방 문한 전시실은 ‘축음기관’ 이었다. 축음기는 1877년 에디슨에 의해 처음 발명되었다고 한다. 최초의 축음기는 나팔을 달고 있었는 데, 나팔의 종류는 금속, 나무, 종이 등 다양 했다. 가장 좋은 소리를 내는 것은 종이나팔 관인데, 가이드는 축음기를 통해 노래 한 곡 을 들려주기도 했다. 약 30여 명의 관람객에 게 전시품들을 설명하고 동선을 지휘하는 중 국인 가이드는 다소 서툰 한국말을 했지만, 카리스마가 돋보였다. 두 번째 전시관은 ‘에 디슨 박물관’이었다. 1879년 에디슨은 인류 에게 빛을 주는 전구를 발명했다. 에디슨이 발명한 최초의 전구는 무명실을 태워서 만든 탄소필라멘트가 전구 안에서 빛을 내고 있 었는데, 추후에는 수명을 연장하기 위해 전 구 안을 진공상태로 만드는 과정들이 상세하 게 소개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에디슨이 발 명한 전기다리미, 전화기, 커피포트, 토스터 기 등의 다양한 가전제품은 물론 발전기, 전 기자동차 등 그야말로 말로만 듣던 발명왕의 모든 발명품들이 한곳에 모여 있었다. 가이 드에 따르면, 이 박물관에는 에디슨의 발명 품 중 약 삼 분의 일에 해당되는 발명품들이 창고에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뮤직박스 전 시관에서는 에디슨의 축음기 이전에 유럽에 서 사용되었던 오르골들이 전시되고 있었다. 1796년 스위스에서 만들어진 뮤직박스로부 터 각국에서 경쟁적으로 만들어 낸 각종 뮤 직박스가 약 300점 전시되어 있다. 라디오 및 TV 전시관은 별도의 건물에서 만날 수 있 는데, 우리나라의 금성라디오 및 금성 텔레 비전도 전시되어 있어서 반가웠다. 1925년 영국에서 베어드가 최초로 발명한 텔레비전 도 전시되어 있었고, 1950년 미국에서 제작 된 텔레비전은 그 당시 가장 비쌌던 롤스로 이스 자동차와 같은 가격이어서, 별명이 ‘롤 스로이스 TV’라고 불렀다고 한다. 박물관 투 어코스는 작은 영화관에서 종료되었다. 영화 의 일부를 발췌한 세 편의 영화가 상영되는 데, 그중에는 메릴 스트립이 등장했던 영화 ‘맘마미아’가 압권이었다. 하슬라 동예 때부터 고구려 시대에 이르기까지 약 천 년 동안 불렸던 ‘하슬라’라는 이름을 그림 10. 하슬라 아트센터 미술관 전경 그림 12. 피노키오를 만났던 동심의 세계 그림 11. 피노키오가 타고간 작은 배Nex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