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revious청파기행 NO.44 | CHUNGPA’S TRAVEL ESSAY #44 Magazine of the Korea Concrete Institute 28 떠올리며, ‘하슬라 아트월드’를 찾아간 날에 는 가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가랑비로 인해 잔뜩 찌푸린 회색빛 하늘과 동해바다가 바 라보이는 작은 산 위에 위치한 하슬라에서 는 바다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진한 커피 향 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하슬라는 현대미술 관, 피노키오 박물관 그리고 조각공원으로 구성된다. 필자가 방문했던 날에는 가랑비 로 인해 3만여 평에 이르는 조각공원은 둘러 보지 못했다. 미술관은 카페가 있는 지상에 서 시작하여 좁은 통로를 통해 한 층씩 지하 로 내려가는 배치를 하고 있었는데, 제1관 인 지상층은 생활 소품들을 변형시킨 소탈 한 느낌의 작품들이 많아서, 어디까지가 실 생활이고, 어디서부터 작품인지 구분하기 난해하였다. 지하 1층에는 수학의 프락탈이 론을 컴퓨터와 접목해서 탄생되었다는 프락 탈(Fractal) 작품들이 대부분이었다. 지하 2층으로 연결되는 터널은 하슬라 측의 설명 에 따르면, 피노키오가 배를 타고 가다가 고 래의 배속으로 들어가는 장면을 연상하도록 꾸며졌다고 한다. 머리를 숙이고 벽을 통과 하면, 고래의 뱃속에서 바라보는 고래의 갈 비뼈를 연상케 하는 작은 터널이 나온다. 이 터널부터는 누구나 동심의 세계 속으로 빠 져들기 시작한다. 피노키오를 주제로 만들 어진 세계 각국의 예술가들이 창조한 다양 한 작품들은 정적인 것도 있지만, 그중 일부 작품들은 가는 실로 움직일 수 있도록 만들 어져 있었다. 마리오네트 전시관에서는 지 정한 곳에 발을 대고 있으면, 작품들이 스스 로 경쾌하게 스텝 댄스를 하는 오토마타들 이 있어서, 관람의 즐거움이 고조된다. 우리나라에도 줄 인형극과 그림자극의 요소들을 가지고 있는 ‘망석중놀이’가 있었 지만, 지금은 그 맥이 끊어져 있다. 망석중 놀이는 고려 시대에 글을 모르는 민중들에 게 부처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 스님들이 시작하였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나무인형 인 망석중과 십장생, 용, 잉어 등이 등장하 며, 인생의 무상함과 불교의 윤회사상을 주 로 표현했다고 한다. 인도네시아의 관광 상 품의 하나인 가양(Kayang) 쇼도 이와 유 사한 스토리를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망 석중놀이는 1920년대에 개성에서는 공연 되었다는 기록을 끝으로 단절되었었는데, 1998년 거창에서 우리문화연구회가 중심 이 되어 재현하였다고 한다. 서양의 인형극 이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일본이 우리나 라를 지배했던 시절이며, 망석중놀이가 사 라진 것도 이 시기일 것이라는 추측이 있 다. 용어 또한 당시 일본의 영향으로 ‘인형 극’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지만, 이제는 우 리말을 살려 ‘꼭두극’ 또는 ‘꼭두각시놀이’ 라고 부르자는 학자들의 주장도 있다. 서 양에서는 프랑스의 영향으로 마리오네트 (Marionnette)라고 불린다. 어촌집 강릉문화원에서는 2006년 심언광의 문 집 어촌집(漁村集)을 국역하여 출간하였다. 어촌집이 한글로 출간된 후, 많은 문학인들 의 호응을 얻어 그 후부터는 매년 ‘어촌 심언 광 학술세미나’를 개최하고 있다고 한다. 심 언광의 호는 어촌이며, 본관은 삼척이다. 삼 척 심씨 세계도에 의하면, 시조인 심동노를 기점으로 어촌은 8세에 해당한다. 동노는 고 려 시대 충혜왕 30년(1342년) 생진과에서 2등으로 합격한 후, 관직을 시작한 분이다. 그 후 충목왕 시절 춘추관을 거쳐, 공민왕 시 절에는 봉선대부, 지제고 등의 관직을 맡았 지만, 당시 정치가 잘못된 길로 가고 있는 것 을 싫어하여 스스로 삼척으로 물러나자, 공 민왕께서 이를 섭섭하게 여기시면서 어촌공 이 동쪽으로 갔다고 하여, “동노(東老)”라는 이름을 하사하셨고, 동시에 진주군(眞珠君) 에 봉하셨다고 한다. 진주란 당시의 삼척지 방 일대를 일컫는다. 동노는 추암 해변에 해 암정(海巖亭)을 짓고, 후학을 교육하면서, 여생을 마감하였다. 해암정과 촛대바위는 최근에는 삼척의 관광 명소 중 하나로 변신 하였다. 삼척심씨가 강릉에 입향한 것은 고 려말부터 조선 초기이다. 심동노의 손자 중, 원달은 강릉 최씨와 결혼하였고, 원연은 삼 척 김씨와 결혼하였는데, 그들은 처향인 강 릉에 정착하였다. 당시에는 신랑이 신부댁 에서 혼례를 치룬 후, 신부 집에서 사는 남귀 여가혼(男歸女家婚)이라는 습속이 있었다. 어촌 심언광은 조선 시대 성종 18년(1487 년) 강릉에서 태어났다. 그는 원연의 5세손 이며, 시조이신 동노의 8세손이다. 강릉은 예로부터 문장과 덕행이 뛰어난 인물들이 많이 나타났기에, “문향(文鄕)” 이라고도 불린다. 어촌은 4살 때 말을 하고, 글을 읽을 줄 알았는데, 말할 때는 다소 서 툴렀지만, 글을 읽을 때는 완벽했다고 한다. 어촌은 9살 때 부친이 세상을 떠나셨고, 이 그림 13. 삼척 추암해변에 자리잡고 있는 촛대바위 전경제 34권 1호 2022. 01 29 Gangneung 에 3년간 여묘살이를 한 후, 오대산 산사에 서 홀로 글공부를 했다고 한다. 부친이 돌아 가셔서, 가난했던 어촌은 단 한 권의 책이었 던 고문선(古文選) 만을 수백 번 읽은 후, 마 침내 문장을 이루었다고 전해진다. 조선 시 대의 선비가 학문을 익힐 때는 가학(家學) 과 사우(師友)가 중요한데, 어촌의 경우는 부친을 일찍 여의고 스승이 없이 향교에서 공부한 것으로 추정되어 특이한 경우가 되 었다. 어촌은 21세 때인 중종 2년(1507년) 진사시에 합격했다. 또한 27세 때인 중종 8 년(1513년)에는 과거시험 을과에 합격하 여, 중앙정부의 관료가 되었다. 그의 관력 은 어촌집에 상세하게 기술되어 있지만, 요 약하면, 30세부터 40세 전반에 걸쳐 예조, 병조, 이조정량을 거쳤고, 그후 홍문관, 사 헌부, 사간원 등 언론 삼사에서 근무하였다. 어촌은 홍문관 재임 시절 경연관을 겸하였 는데, 따라서 늘 국왕의 측근에서 시종할 기 회가 많았었다. 경연관이란 매일 아침 임금 에게 경서(經書)와 사서(史書)를 강시하 는 역할을 하는 분을 일컫는다. 이는 그의 학 문적 능력이 높이 평가된 것에서 기인한다. 40세 후반에는 예조, 병조, 이조, 공조참판 을 두루 거친 후, 종국에는 공조판서, 이조 판서, 그리고 의정부 우참찬 직책으로 올랐 다. 또한 외직으로는 강원도 관찰사, 평안도 경변사, 함경도 관찰사 등을 역임하였다. 그 러나 어촌은 공조판서 시절, 김안로를 인진 (引進)하였던 것이 화근이 되어, 중종 32년 (1537년) 관직이 삭탈되어, 강릉으로 낙향 하였다. 어촌은 그 후 중종 37년(1542년), 54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였다. 어촌이 세 상을 떠난 후, 그의 자손들이 미약하여 어촌 의 억울함을 한동안 해명하지 못하였으나, 어촌의 6세손인 심진이 어촌의 결백을 밝히 는 자료들을 숙종 임금께 세 번이나 상소하 였는데, 숙종은 이를 받아들여, 숙종 10년 (1684년) 어촌의 관직을 회복할 수 있었다. 이는 어촌 사망 후 약 142년 만에 이루어낸 매우 중요한 업적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이 유때문에 어촌의 문학적 업적들은 세상에 널리 알려지지 못했었다. 앞서 언급되었지만, 어촌의 문집은 “어촌 집”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공의 사후 350년 이 지나서야 강원도 관찰사로 부임하였던 심씨 가문의 사위에 의해 출간되었다. 그렇 다면, 어촌 심언광은 어떤 문학 작품들을 남 겼는가? 이점에 대해서, 어촌보다는 한 세 기 뒤에 태어난 교산 허균의 논평이 주목된 다. 두 사람은 모두 남다른 글재주를 가졌었 고, 젊은 나이에 출사하여, 당상관까지 지 낸 인물이다. 교산은 그의 저서 <학산초담> 에서 어촌의 문재(文才)를 극찬하였다. 그 는 강릉은 산수의 아름답기가 조선 제일이 라고 평하면서, 그 산천의 정기를 받은 인물 을 시대순으로 열거하였는데, 중종 때의 어 촌 심언광을 가장 뛰어난 인물로 평하고 있 다. 조선 시대 강릉 출신의 저명한 시인을 든 다면, 15세기 후반의 매월당 김시습, 16세 기 전반의 어촌 심언광, 16세기 후반의 율 곡 이이, 16세기 말의 난설헌 허초희와 그의 동생 교산 허균을 꼽을 수 있다. 매월당은 한 시 2,200수를 남겼고, 어촌은 한시 850수 를 남겼으며, 율곡의 한시는 515수가 전해 지고 있다. 여성 시인 난설헌의 한시는 213 수이고, 교산은 749수의 한시를 남겼다. 어 촌집에 담긴 어촌의 한시 850수에서는 평 탄치 않았던 그의 인생살이에서 마주했던 희로애락의 감정들이 표현되어 있고, 평안 도 및 함경도 변방을 순회하면서 느낀 감회 와 중앙관료로 재직 시 나라 곳곳을 유람하 면서 그 풍광을 노래한 작품들이 펼쳐진다. 또한 경세제민이라는 사대부적인 이상 실현 과 결부된 작품들에서는 우국애민의 정신이 녹아있다. 어촌집은 총 10권으로 구성된다. 권 1~3에서는 관직에 들어선 초기부터 말 년까지 각종 관직을 거치면서 남긴 작품들 로 구성되었다. 권 4는 “동관록”과 “서정고” 로 나뉘어 있는데, 동관록은 강원도 관찰사 시절의 작품들이며, 서정고는 평안도 경변 사 시절에 남긴 한시들이다. 권 5에는 “북정 고”가 담겨있는데, 이는 함경도 관찰사 시절 에 작성된 작품들이다. 권 10에는 “귀전록” 즉 1537년 파직 후 고향으로 돌아와 경포호 수가의 해운정(海雲亭)에서 소일하면서 남 긴 글들이다. 주문진 주문진은 1995년 행정개편 시 강릉시로 편입되었는데, 현재까지 강릉시에 속해있 는 유일한 읍이다. 따라서 매년 10월에 개최 되고 있는 ‘주문진 오징어축제’는 강릉시에 서 주최하고 있다. 필자는 매년 새해의 강릉 여행길에는 싱싱한 겨울 오징어회를 맛보기 위해 주문진항에도 잠시 들린다. 무술년 새 해에는 마침 주문진항에는 오징어잡이 배가 막 들어와서 전국으로 팔려나가는 오징어를 현장에서 냉장 처리하는 모습을 만날 수 있 었다. 주문진 어시장에서 주문한 오징어회 는 너무나 싱싱하여 입안에 달라붙는 것 같 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또한 어린 오징어 는 통째로 삶아 내왔는데, 그 맛은 지금도 잊 을 수 없다. 요즈음에는 젊은이들이 새로 개 통된 경강선을 이용하여 강릉역으로 오고, 곧바로 주문진에서 오징어를 즐긴 후, 당일 바로 귀경하는 사례가 많다는 주인장의 귀 띔이다.청파기행 NO.44 | CHUNGPA’S TRAVEL ESSAY #44 Magazine of the Korea Concrete Institute 30 에필로그 동국여지승람은 조선 시대 성종 때에 제 작된 우리나라 최초의 지리서(地理書)다. 이 책은 중종 25년 증보판이 나오면서, 모 두 55권으로 전해지고 있다. 동국여지승람 에는 우산도(독도)가 포함되어 있어서, 최 근에는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주장에 힘 을 실어주고 있다. 동국여지승람의 구성은 ‘팔도총도’라는 제목으로 그려진 조선 전도 를 시작으로, 경도, 한성부(현재의 서울), 개성부(현재의 개성), 경기도, 충청도, 경 상도, 전라도, 황해도, 강원도, 함경도, 평안 도 순으로 각도의 연혁, 관원, 성씨, 풍속, 인 물, 사적, 시인(詩人) 등을 소개하고 있다. 이 책은 대량보급을 위해서, 모두 목판으로 제작되었다. 강원도는 권 44에서 47까지 에 소개되고 있는데, 강릉대호부, 삼척대호 부, 양양대호부 순으로 나뉘어 등장한다. 강 릉대호부에 대한 소개에서는 “우리나라 산 수의 훌륭한 경치는 관동이 으뜸이고, 관동 에서는 강릉이 제일이다”라고 쓰여 있다. 앞서 잠시 언급된 어촌 심언광이 말년에 관 직이 삭탈된 후, 강릉에서 소일했던 해운정 (海雲亭)은 <동국여지승람>에서 언급하고 있는 강릉의 산수를 즐길 수 있는 위치에 자 리하고 있다. 서쪽은 태백산맥의 높은 산들 을 배경으로 하면서, 동쪽으로 경포호수가 내려다보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그러나 해 운정은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작은 정 자여서,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강릉에 서는 오죽헌 다음으로 오래된 목조 건물이 다. 해운정의 실내에는 조선의 유명한 시인 들의 한시가 40수 걸려있는데, 앞서 언급되 었던 조선 시대의 강릉을 대표하는 매월당, 어촌, 율곡, 난설원 및 교산의 시들이 방문 객의 관심을 끌고 있다. 어촌 심언광은 삼척 심씨 8세손이며, 필자는 삼척 심씨 23세손 이다. 그래서인지 지난해 가을에 강릉문화 원에서 구입한 어촌집을 애정을 가지고 탐 독하고 있다. 어촌집에서 발견한 “호사(湖 舍)”라는 한시 한 수를 소개하면서 이글을 맺는다. “작은 집 지음은 참으로 은자의 거 처이니, 한가로이 지내며 배고픔을 달랠 만 하네. 담장은 낮아 구름도 쉬이 넘나들고, 창은 고요하여 달이 먼저 엿보네. 대나무 심 어 황량한 빈터를 잇고, 여러 덩굴 끌어다 낮은 울타리 덮네. 한가롭게 지내도 할 일 많으니, 아침, 저녁 일과로 시를 읊조리네.” 이 시는 귀전록(歸田錄)에 담겨있으며, 경 포호숫가의 해운정에서 작성되었다. 그림 15. 주문진항에서 냉장보관을 위해 정리되고 있는 오징어 그림 16. 주문진항에서 즐겼던 통째로 삶은 어린 오징어 요리 그림 14. 오징어축제가 열리는 주문진항 전경 그림 17. 동국여지승람애 등장하는 조선전도 그림 18. 어촌공이 기거하던 해운정 정면 심종성 명예교수는 미시간주립대학교에서 석사 및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1987 년부터 한양대학교에 재직 하였다. 연구 분야는 FRP 의 토목구조물 적용, 순환 자원을 활 용한 콘크리트, 콘크리트 관련 국내표준 및 해외표준 심의 및 제정 등이다. 우리 학회 제 12대 회장을 역임한 바 있으며, 외국 학술단체에서 ACI Fellow, IIFC Fellow, IABSE Fellow, ISO TC71 SC5 의장 등으로 활동 중이다. jssim@hanyang.ac.kr제 34권 1호 2022. 01 31 YOUNG COLUMN 영 칼럼 | YOUNG COLUMN 대학원 졸업 후, 새로운 직장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영칼럼 원고 의뢰를 받 았다. 칼럼의 목적은 콘크리트 분야에 종사하는 젊은 신진연구자에 대한 소개였고 처 음에는 당혹스러워서 내가 써도 될까 라는 의문부터 들었다. 비록 7년 정도의 짧은 기 간이지만 대학원 생활 그리고 연구원 및 시멘트 회사에서 근무하며 겪었던 이야기들 을 통해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아 칼럼 작성을 하게 되었다. 대학원 생활의 시작 평범한 대학 시절, 3학년이 되면서 전공 수강과목들이 많아졌고 학교에서 공부하는 시간도 자연스럽게 늘게 되었다. 자리 경쟁이 치열한 도서관이 아닌 안정적인 학습 공간이 필요했고 우연히 학부 연구생에 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여러 연구실 중 특히 콘크리트연구실은 건설재료학, 철근콘크리트공학 같은 과목을 들어서인지 어렵지 않게 느껴졌고 곧바로 학부 연구생 신분으로 연구실에 들어가게 되었다. 교수님과 박사님들의 실험을 도우면서 느꼈던 것은 구조해석이나 시뮬 레이션을 돌리는 과목보다 내 손으로 직접 재료들을 계량하고 시편을 제작하면서 실험을 통한 결과를 실물로 확인할 수 있는 아날로그 감성이 내게 매력적으로 다가온다는 것이었다. 대학을 졸업할 쯤에 2년 정도는 전문성을 가지고 공부를 해보고 싶은 마음에 대학원 석사과정에 입학하게 되었고 콘 크리트 학문에 본격적으로 입문하게 되었다. 대학원에 입학하자마자 콘크리트 배합설계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 다. 그 시작은 콘크리트 기술경연대회였다. 콘크리트 기술경연대회는 말 그대로 배합설계를 통해 정해진 물성에 가 장 근접한 팀이 우승하는 대회였다. 가을 대회를 앞두고 여름방학을 이용해 학부생들과 팀을 만들어 함께 재료를 나 르고 계량하면서 모두 한마음으로 대회를 준비하였다. 특히 혼화제의 예민함은 대회를 준비할 때 가장 어려운 부분 이었다. 수십 번의 시행착오 끝에 대회 당일, 최종 배합표를 선정하여 대회에 참석하였고 결과적으로 특별상을 수상 할 수 있었다. 1등은 아니었지만, 다수의 사람들이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함께 땀 흘리며 이룬 성과였기에 성취감은 제법 크게 느껴졌다. 그렇게 대학원 생활에 적응이 끝나갈 무렵, 석사 2년 차가 되면서 졸업을 위한 학위논문을 준비해야 할 시기가 왔다. 처음에는 논문 주제를 정하는 것부터 막막했다. 교수님과 박사님들에게 조언을 구하면서 한 단계씩 순차적으로 실험 에 관한 계획과 방향을 정해갔다. 실험을 진행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예상했던 결과가 나오지 않을 때였다. 고 인성 섬유보강 시멘트 복합체라는 재료의 불규칙한 균열 특성 때문에 한 달 동안 실험한 데이터를 전혀 쓸 수 없을 때 박수현 Su-Hyeon Park (주)유니온 연구소 주임연구원 언제나 그 다음 장이언제나 그 다음 장이 펼쳐진다.펼쳐진다.Magazine of the Korea Concrete Institute 32 영 칼럼 | YOUNG COLUMN 도 있었다. 그럴 때일수록 변수를 더 세분화하여 다량의 시편을 만드는 등의 실험을 반복하였고 주말, 공휴일 할 것도 없이 오로지 실험 일정대로만 움직였다. 결과적으로 연성 실험을 포함하여 많은 데이터를 축적할 수 있었고 석사학위 를 보람차게 마칠 수 있었다. 졸업 후, 연구원에서의 첫 직장생활 석사 학위를 마치고 진로를 고민하던 중 한국건설생활환경시험연구원(이하 KCL)에서 근무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 근무 부서는 대학원 때 연구했던 건설재료 분야를 연구하는 부서였고 연구원이라는 기관에 대한 기대감을 갖고 있었 기에 망설임 없이 지원하게 되었다. KCL은 독보적인 시험 노하우와 다양한 연구 인프라를 갖추고 있었고 지반, 구조, 재료, 환경과 같은 다양한 분야의 박사님들과 함께 근무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학교에서 접하지 못했던 시험기기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 것에 집중했다. TG, BET, MIP, XRD, 미소 수 화열 등과 미세구조 특성을 확인하는 시험기기는 낯설기만 했다. 하지만 실험에 대한 실무를 수행하기 위해선 시험기 기의 작동 원리 및 관리 사항에 대한 숙지는 필수적이었고 장비 교육도 참석하면서 시험기기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갔 다. 그렇게 시험기기를 다룰 수 있게 되었고, 연구과제 수행에 필요한 성분 분석 업무를 지원할 수 있었다. 또한 ‘하수관로 기인 지반 침하 예방기술 및 현장 평가’라는 환경부 주관 연구과제 지원 업무를 수행하였다. 콘크리트 가 아닌 AAM(Alkali-Activated Material)이라는 생소한 재료를 다루면서 재료의 메커니즘을 이해하기 위해 관련 한 논문을 찾아 공부하고 다양한 역학적 실험과 내구성 실험을 수행하였다. 이 과제를 접하면서 가장 유익했던 점은 기존 제품의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한 적용기술을 개발하고 이를 시제품까지 도출하는 연구개발의 전 과정을 경험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연구개발로 기술을 획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실제 실용화 과정에서 그 기 술을 성공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궁극적인 연구개발의 목적이라는 것을 인식할 수 있었다. 사진 1. 콘크리트기술경연대회 참가(2017년)사진 2. 말레이시아(miri) DuraBI 국제학술발표대회(2018년)제 34권 1호 2022. 01 33 담당 편집위원 : 박병선(고려대학교) bspark0927@korea.ac.kr 시멘트 회사에서의 새로운 도전 지난해 말, 연구원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시멘트회사로 이직을 하게 되었다. 입사한 지 1년 정도 되어가는 지금 돌 이켜보면 대학원 생활과 연구원에서의 시간이 지금의 회사로 이직할 수 있었던 소중한 밑거름이 된 것 같다. 콘크리 트라는 재료를 처음 다루고 여러 역학적 실험과 내구성 실험을 할 수 있게 해준 대학원 생활과 쉽게 접할 수 없었던 시 험기기를 이용하여 다양한 연구 수행을 했던 연구원에서의 경험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언제나 그 다음 장이 펼쳐진다’라는 칼럼의 첫 문장처럼 지금까지 연구했던 콘크리트와는 다른 새로운 분야를 시작하며 내 인생 의 다음 장을 써 내려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학교에서 배웠던 시멘트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을 넘어 시멘트를 제조하 는 회사의 연구원으로서 갖추어야 할 시멘트 화학, 제조 공정에 대해 차근차근 익히고 있다. 콘크리트 분야 종사자로서, 앞으로 콘크리트 분야의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꾸준히 노력하는 연구자가 될 것을 다 시 한번 다짐해본다. 칼럼을 작성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신 관계자분들께 감사드리며 이만 칼럼을 마친다. 사진 3. 아시아콘크리트 엑스포 참가(2021년)사진 4. 백색노출 콘크리트 타설 현장 박수현 주임연구원은 충남대학교 토목공학과에서 흡수방지재의 고인성 섬유보강 시멘트복합체(ECC) 적용성에 관한 연구로 석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현재는 (주)유니온 연구소에서 백시멘트 품질 개선 및 백시멘트를 활용한 특수제품 개발 업무를 담당 하고 있다. shpark@unioncement.com문화 에세이 | CULTURE ESSAY Magazine of the Korea Concrete Institute 34 세계보건기구(WHO)는 2020년 1월 8일 코로나바이러스(Coronavirus)로 인한 국제적 공중보건 비상사태를 선포하 였고, 세계 곳곳은 국민의 이동을 제한하는 봉쇄령(Lock down)이라는 전대미문의 조치를 감행하였다. 교육기관도 예 외는 아니었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일부 나라는 학교를 폐쇄하면서 대면 수업을 온라인 기반 비대면 학습으로 전환하 였고, 벌써 2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그 속에서 나와 학생들은 변화한 교육 방식에 어떻게 대응하고, 적응해 왔는지 되짚 어 보았다. 2020년 2월 개강을 한 달 남짓 남겨두고, 나는 임용된 지 한 학기 만에 모든 교과목을 비대면 수업으로 전환해야 했 다. 이 과제는 나뿐만이 아니라 정년퇴직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선임 교수님과 강사에게도 주어졌다. 걱정이 앞섰다. 온라인 실시간 강의를 해 본 적도 없었고, 동영상 강의는 아주 드물게 그조차도 소수의 경험에 한정되었다. 대학본부도 시설이나 예산에서 무방비 상태였다. 마냥 주저앉아 손 놓고 있을 수 없었다. 개강 전까지 학과의 교수진이 협력하여 수업에 사용 가능한 온라인 회의 프로그램을 검토하고, 테스트 운영을 하며 사용자 매뉴얼을 만들었다. 그리고 선임 교 수, 강사, 학생을 대상으로 사용 교육을 하면서 개강을 준비했다. 온라인 강의가 부담되었던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새로운 교육 방식으로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기대감도 컸다. 그 첫 번째 시도는 이전과 같이 온라인 강의에서 학생들과 소통하는 방식을 찾고 싶었다. 다들 이미 경험해 보았겠지만, 온라인 강의 시작에 이름만 덩그러니 새겨져 있는 검은 화면과 꺼진 마이크는 서로를 서먹하 고 적막하게 했다. 처음에는 접속하는 순서대로 학생에게 인사를 건넸다. 가끔은 오전 수업에서 부스스한 얼굴의 학생 들은 부담스러워하기도 했고, 카메라를 켜지 않는 학생들도 많았다. 분위기 전환이 필요했다. 대면 수업에서는 고민조 차 하지 않던 일이었다. 어떻게 하지...? 고민 끝에 학생들의 온라인 접속 시간에 음악을 틀어 보기로 했다. ‘왜들 그리 다운돼 있어?’지코의 아무노래부터 BTS의 Dynamite, Butter 등 장르를 가리지 않았다. COVID-19, 723일째 사진 1. 코로나 19로 인한 비대면 수업 방식의 도입제 34권 1호 2022. 01 35 학과의 선임 교수님은 배경화면을 흐리게 처리하거나 회의 프로그램에서 무상 제공되는 어색한 금문교나 야자수 이 미지를 사용하는 대신 수업마다 직접 편집한 이미지를 배경화면 삼아 등장했다. 학생들은 접속 대기 시간에 노래를 따 라 부르기도 했고, 서로 대화를 주고받으며 수업 시작을 기다리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어두운 밤 속의 불빛처럼 하나둘 씩 자신의 카메라를 켰고, 나는 드디어 학생들과 자연스럽게 얼굴을 마주할 수 있었다. 학과 교수진과 호흡한 경험이 있는 재학생들은 이러한 상황에 빠르게 적응했지만, 20학번 신입생에게는 쉬운 일이 아닌 듯했다. 두 번째 시도는 그들을 위한 것이었다.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 문화를 경험할 기회조차 박탈 당한 신입생들은 코로나 학번이라 불리었다. 이들에게는 대학 문화를 전해주고 싶었다. 일명 ‘과잠’이라 불리는 학과 외투는 신입생에게 소속감을 부여하고, 대학 캠퍼스를 떠올리게 하는 매개체이다. 하지만 주인을 잃은 과잠은 예년과 달리 개강 이후에도 학과 사무실의 한편에 쌓여 있었다. 조교의 제안 으로 과잠의 주인을 찾아주기로 했다. 과잠을 보내는 김에 아직 찾아 가지 못한 학생 카드며, 실습수업에 필요한 제도판, 색연필, 마커 등 각 종 도구에서부터 컴퓨터가 없는 학생들에게는 노트북까지 함께 보냈 다. 택배가 배송된 이후 조경학개론 첫 번째 강의 때 놀라운 일이 벌어 졌다. 신입생들은 마치 약속이나 한 듯이 과잠을 입고 강의에 입장했 다. 그리고 학생들은 이렇게 말했다. ‘따뜻한 봄날이 가기 전에 캠퍼스 에서 입어보고 싶었다고... 온라인 강의지만, 이때가 아니면 입을 수 없 잖아요’라고... 사진 2. ‘조경계획’ 강의 화면(2020년 1학기) 사진 5. ‘전통정원설계’ 라이브 방송(2020년 2학기) 사진 3. 20학번 신입생 ‘조경학개론’ 강의 화면(2020년 1학기) 사진 4. 상호작용을 필요로 하는 설계 수업의 운영 특성 문화 에세이 | CULTURE ESSAY Magazine of the Korea Concrete Institute 36 온라인 강의에서 학생들과의 소통만큼 중요한 것이 질 좋은 교육의 제공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이 세 번째 시도 가 되었다. 특히 실습교과목은 더욱 그러한데 조경학과라면 아마 설계와 시공 수업이 대표적일 것이다. 설계는 제도판 에 트레이싱 용지를 붙여 놓고, 교수와 같이 수십 가지 대안을 그려가며 토론하는 전형적인 대면 수업이다. 이를 온라 인 방식으로 전환하는 일은 교수진을 더 깊은 고민에 빠지게 했다. 역시나 온라인 강의만으로는 내용 전달에 한계가 있 었다. 그래서 설계는 온라인 강의 이외에 피드백 시스템을 마련했다. 교수는 라이브 방송을 하면서 학생들의 도면에 직 접 드로잉을 하고 설명했다. 그리고 학생들은 실시간으로 댓글을 올리며 토론했다. 예측했던 것보다 피드백의 효과는 학생들의 결과물로 나타났다. 학생들은 온라인 강의가 장기화하면서 노트북 이외에 패드와 같은 전자제품을 사용하기 시작했고, 이는 설계 방식 의 변화를 가져왔다. 학생들에게는 제도판이나 패드 중 작업방식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였다. 처음 시도해 보는 방식 이라 나도 그 결과물에 확신이 없었다. 패드가 지닌 노트 기능은 필기뿐만 아니라 드로잉에서 활용도가 높았고, 펜 드로잉을 기 반으로 한 컬러링도 편리했다. 실제로 캐드, 포토샵, 일러스트레 이터 등 몇 개 프로그램을 거쳐야 하는 작업이 단순화되었다. 물 론 가끔은 필요한 애플리케이션을 구매해야 했지만, 소위 가성 비가 꽤 괜찮았다. 또한, 수업 시간에는 학생들이 온라인 게임에 흔히 사용하는 ‘타임 어택(Time Attack, 어떤 게임을 최단시간 으로 클리어하는 플레이)’을 적용하여 정해진 시간 내 설계를 완 성하게 함으로써 학생들의 과제 시간을 단축하는 효과를 얻기도 했다. 온라인 강의의 마지막 시도는 최근 전 분야에서 주목받고 있는 메타버스(Metaverse, 3차원 가상 세계로 가공과 추상을 의미하 는 Meta와 현실 세계를 의미하는 Universe의 합성어)의 활용이었 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세계 각국의 많은 나라가 위드 코로나를 선언했듯 어쩌면 우리는 COVID-19와 공존하는 삶을 살아갈지 도 모른다. 그래서 새로운 강의 방식에 끊임없이 적응해야 하는 일은 오늘날 그리고 앞으로의 교육 생태계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2020년 한 해 동안 실시간 또는 녹화 강의 에 익숙해질 때쯤 메타버스가 등장했다. 메타버스의 개념은 그렇 사진 6. ‘전통정원설계’온라인 강의 화면(2021년 2학기) 사진 7. 메타버스를 이용한 예비대학 프로그램 운영 (2021년 2학기)제 34권 1호 2022. 01 37 게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이전까지 대학교육에서 보편화 된 교육 방식은 아니었다. 다른 온라인 강의 방식과 마찬가지 로 원리와 운영방식을 이해하는 데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그래서 올해는 수업이 아닌 2022년 신입생들을 대상으로 한 예비대학을 메타버스로 시범 운영하였다. 가상공간의 첫 대면에서 학생회장을 제외한 교수와 재학생은 닉네임으로 입장하여 학과 사람과 신입생, 2개 그룹으로 구분하였다. 학생회장이 교수진, 교육과정, 동아리, 진출 분야 등 학과 관련 전반적인 내용을 소개하고, 눈치 게임, 달리기, 멘토-멘 티 정하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였다. 가상공간이 익숙하지 않은 나로서는 신입생들의 참여율이 저조하면 어 쩌나 노심초사했다. 하지만, 22학번은 또 다른 세대였다. 가상공간에서 별다른 대화 없이도 바로 옆 사람에게 제스쳐를 취하고,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모습은 오히려 나에게 새로운 세계였다. 메타버스를 강의에 활용하기 위해 아직 갈 길이 너무도 멀게 느껴졌다. 그렇지만, 나는 이전처럼 이에 적응하기 위해 방법들을 강구할 것이다. 많은 교육자는 대학의 캠퍼스 교육이 정상화되지 않으면, 학생들이 대거 휴학하거나 특히 1학년 신입생들은 대학을 떠날 것이라 예상했다. 이런 우려의 목소리와 달리 학생들은 온라인 교육 생태계에 적응하며 소속감과 연대감을 갖게 되었다. 그 결과는 중도 포기자 0의 수치로 드러났다. 각 대학의 교수들도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온라인 교육은 급변하 는 상황에서 유연하고 탄력적인 해결책이자 물리적 공간의 한계를 넘어 사람을 소통하게 하고, 지식과 경험을 공유하 기 위한 수단으로 가치가 있다. 이를 잘 활용한다면 앞으로의 나날들도 우리의 움직임에 의해 충분히 긍정적 방향으로 변화될 것이라 기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질 좋은 교육을 학생들에게 제공하기 위해 아직 풀어야 할 과제들이 남 아있음은 분명하다. 담당 편집위원 : 권양희(한국전통문화대학교) yanga1126@nuch.ac.kr 이재용 교수는 이탈리아 Politecnico di Milano에서 건축학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한국전통문화대학교 문화 재수리기술학과에서 조선시대 동궐(東闕)에 대한 연구로 공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현재 한국전통문화대학 교 전통조경학과 조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주된 연구분야는 조경문화재 수리복원이며,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 궁 능문화재분과 전문위원과 충청남도 문화재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leejaeyong82@nuch.ac.kr 학회지광고 게재 안내 콘크리트학회지는 격월간으로 발행되어 11,000여 회원을 비롯한 콘크리트 관련 업계, 학계, 유관 기관 및 단체 등에 배포되고 있습니다. 저렴한 가격과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귀사를 홍보할 수 있는 콘크리트학회지 광고에 많은 이용을 부탁드립니다. 1. 광고 게재면 게재면광고 협찬금게재면광고 협찬금 표 2120만원간지 1110만원 표 3120만원간지 2100만원 표 4150만원내지(본문 내)70만원 2. 할인 혜택 : 우리 학회의 특별회원사가 게재하는 광고 또는 연간 6회 이상 게재 시 상기 협찬금을 아래와 같이 할인하여 드립니다. 단, 일시불로 납부하여야 적용 가능합니다(가로안은 회원사 기준입니다). 1년 계약 : 10 % 할인(15 %) 2년 계약 : 20 % 할인(25 %)Nex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