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revious인문학 산책 48 자연,터널 그리고 지하공간 기 간 유럽 각지에 걸쳐 유행하였다. 가장 큰 특징은 기둥 위에 놓인 반원형의 아치다. 원형 지붕은 돔(dome)으로 올릴 수 있지만 건축물이 4각형일 경우 돔을 그대로 올릴 수가 없다. 그래서 반원 통이 서로 관통되었다고 생각할 때 나타나 는 형상으로 지붕을 만들었다. 로마네스크의 또 하나 특징은 돔의 무게를 안정시키기 위한 벽체의 형태다. 아치는 아래 로 향하던 무게를 옆과 아래로 나누어 지지토록 한 구조다. 이러한 분담이 다리에서는 측벽 교대로 자연스럽게 전달되 지만 건축물은 옆에서 막아줄만한 지지대가 없다. 이 때문에 로마네스크 양식의 건축물은 창문이 거의 없는 두꺼운 벽 체와 굵은 기둥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벽체는 지금의 벽돌집처럼 작은 석재나 벽돌 사이에 모르타르를 넣어 쌓았다. 벽체 표면을 화 려한 아치 조형물과 필라스터(Pilaster)5) 장식으로 가득 채운 것은 두툼한 벽체의 단조로움을 피하 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영국의 런던탑과 다리, 이 탈리아의 피사 대성당은 이러한 특징을 잘 보여 준다. 로마네스크 양식은 8세기 이후에 나타났지 만 다리의 구조는 로마시대에 놓여 진 테베레 강 의 다리에서 살펴볼 수 있다6). 테베레 강의 섬을 잇는 케스티우스 다리는 기원전 27년경 만들어 진 다리다. 처음 만들어질 당시는 2개의 반원형 의 아치를 세우고 그 사이는 조그만 석재를 시멘 트 몰탈로 쌓아 나갔다. 만들어진 이후 잦은 홍수 로 보수가 이루어졌지만 전체적인 형태는 2천여 년이 넘도록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7) 로마시대 테베레 강에는 모두 11 개의 다리가 있었다. 현재 남아 있는 다리는 다섯 개뿐이지만 로마네스크 양식을 살펴보는 데는 어려움이 없다. 중세시 대 만들어진 로마네스크 양식의 다리로는 네달란드와 벨기에 사이를 흐르는 뫼즈강의 마스트리흐트 다리와 이탈리아 베로나에 있는 아디제 다리를 들 수 있다. 5) 필라스터(Pilaster) 벽체에 붙인 얇은 모양의 기둥으로 주로 아치 하부 장식으로 이용된다. 6) 유럽에 산재해 있는 로마시대 석재 다리는 약 300 개에 이르며 하부 구조를 반원 형태의 아치로 만든 것이 특징이다. 7) 케스티우스 다리(Pons Cestius. BC 62~BC 27). 테베레 강 트라스테베레에 있는 석교로 처음에는 2개의 아치로 놓여 졌지 만 이후 몇 번의 보수를 거쳐 1892년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아치의 폭은 13.7m다. 로마네스크 풍의 아치 변화다리, 문명과 함께해 온 양식의 변화 Vol. 27, No. 1 49 중세의 고딕 양식 고딕이라는 말은 고트족의 문화라는 뜻이다. 유럽인이 쓰는 고트라는 표현은 중국이 자신 이외 모든 민족을 오랑캐 라고 부르던 것과 어감이 비슷하다. 고딕이라는 말도 이후 르네상스 화가들이 그 이전 시대를 멸시하기 위해 붙인 이름 이기 때문이다. 고딕 양식의 특징은 뾰족한 아치와 길고 화려한 창문이다. 중세사회 전체가 종교적인 아우라에 에둘려 있었기 때문에 도시의 모든 구축물은 신앙심과 깊이 관계되어 있었다. 이를테면 높은 첨탑과 뾰족한 아치, 긴 창문은 신을 향한 염원으로 볼 수 있다. 건축물 자체의 분위기는 무겁고 어두웠지만 신의 현현을 위한 창문만큼은 화려한 스테 인드 그라스로 만든 것도 같은 이유다. 고딕 양식의 대표적인 다리로는 프랑스 로트 강에 놓여진 발랑트레 교를 들 수 있다.8) 다리 위에는 높이 40미터에 이르는 탑 3개가 놓여 있는데 이는 방어 목적으로 지은 것이다. 교각을 중간에 배치하고 교각 사이에 4개의 아치를 놓 아 안정성이 뛰어나 보인다. 백년에 걸친 영국의 공격을 버텨내 백년전쟁의 상징물로 불리는 것도 우연은 아니다. 스페 인 톨레도의 타호 강에도 중세 시대 놓여 진 고딕 풍의 다리가 있다. 산마르틴 교9)라고 불리는 이 다리는 아치의 폭이 40미터에 이를 정도로 크며 다리 양쪽에는 방어용 탑이 높이 솟아 있다. 타호 강에는 산마르틴 교 외에도 알칸타라 교 라는 오래된 다리가 있다. 로마시대 트라야누스 치세10)에 만들어진 다리로 아치 형태로 보면 로마네스크 풍에 가깝지 만 다리 입구의 탑을 비롯 전체적인 형태에서는 이슬람 양식도 엿보인다. 타호강의 두 다리, 산마르틴 교와 알칸타라 교 8) 발랑트레 교(Pont Valentre). 백년전쟁(1337~1453)이 진행 중이던 1378년 완성되었으며 1878년 보수되어 현재에 이른다. 9) 산 마르틴 교(San Martin Bridge). 10세기 초에 지어진 다리로 홍수로 인해 몇 차례 손상 되었지만 현재까지 원형을 유지하 고 있다. 발랑트레 교처럼 양쪽 끝에 방어용 탑이 만들어져 있는데 이는 13세기 이후에 만들어진 것이다. 10) 처음 만들어진 것은 트라야누스 치세인 104년이다. 이후 몇 차례 파손되었다가 이슬람 지배 시 복원되었다. 로마네스크와 이슬람 양식이 복합되어 있다. 인문학 산책 50 자연,터널 그리고 지하공간 신에게서 벗어난 중세, 르네상스 로마네스크가 기술적인 측면에서 로마의 기법을 차용했다면 르네상스는 아예 그 이전의 그리스 ․ 로마 시대로 되돌 아가자는 문화운동이다. 물론 단순한 회귀가 아니라 그리스 ․ 로마의 문화를 토대로 한 인간 중심의 새로운 문화를 창조 한 것이다. 기독교 공인 이후 종교가 짓눌러 온 천여 년 동안 유럽은 신 중심적인 사고가 지배해 왔다. 르네상스 시대의 작가나 화가들은 이 기간을 모두 야만의 시대라고 부르며 암울한 분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애썼다. 베네치아의 리알토 다리는 르네상스 시대를 대표하는 다리다. 베네치아 운하에는 12세기경에 만들어진 다리가 있었지만 몇 번의 붕괴 사고를 겪은 뒤 나무다리만 놓여 있었다. 리알토 다리가 만들어진 것은 16세기말이다. 길이가 28미터에 이르는 아치 하나로 하부구조를 만들었는데 이 를 지지하기 위해서 다리 밑에는 수많은 나무말 뚝을 박았다. 무게를 지지하기에 유리하도록 거 의 반원 가까이 아치를 놓던 이전과는 달리 리알 토 다리는 곡선을 완만하게 하였다. 다리 밑으로 는 배가 통과할 수 있도록 중앙부를 솟아오르게 하였는데 완만한 곡선의 아치와 교면의 경사 그리고 다리밑 공간의 조 화가 적절하게 이루어져 통행의 편리와 안정성을 동시에 얻고 있다. 다리 위에는 아름다운 아치 포르티코11)로 지붕을 만들었다. 바로크, 여성적인 아름다움을 찾다 바로크 하면 먼저 헨델과 바흐를 떠올리게 된다. 반복과 규칙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변주되는 바로크 음악이 워낙 귀 에 익었기 때문일 것이다. 르네상스에서 한 발자국 더 나가 화려한 변화와 다양성을 추구했던 바로크 양식의 특징은 건 축물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합리성이나 규칙성은 따지지 마라,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마음 것 과시하라는 바로크 의 캐치 프래이드는 베르사이유 궁전에 집약되어 있다. 50년에 걸쳐 건축가 실내장식가 정원예술가를 총동원하여 지 은 호화스러운 궁전과 정원 장식물을 보면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모아놓은 듯하다. 파리의 퐁네프(Pont Neuf) 다리는 바로크 분위기가 잘 느껴지는 다리다. 가장 오랫동안 세느 강을 지켜온 유서깊은 다리지만 지금의 모습은 1607년에 다시 지어진 것이다. 흰 석재를 아치 형태로 쌓아 만들고 중앙에는 앙리 4세의 동상 을 세워 놓았다. 반원형의 아치는 물론 교각부와 난간도 세심한 조각이나 가스등 철물로 치장하였다. 르노아르의 그림 11) 포르티코(Portico). 주랑. 다리나 난간 위에 가벼운 지붕을 얹기 위해 만들어진 구조 베네치아 리알토 다리다리, 문명과 함께해 온 양식의 변화 Vol. 27, No. 1 51 에서 아름답게 차려 입은 파리지엥들이 흰 다리 위를 거니는 모습을 보면 바로크 양식이 왜 파리에서 시작되었는지 고 개가 끄덕여진다.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도시 자체가 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도시를 가로지르는 운하에는 400여 개의 다리가 놓여 있는데 하나같이 석재의 조형이 뛰어나고 아름다운 조각으로 채워져 있 다. 가장 아름다운 거리로 손꼽히는 네바 강변의 건축물 역시 다양한 석물과 조각으로 화려함을 뽐내고 있다. 르노아르의 작품과 퐁네프 다리 철의 시대, 남성적인 아름다움을 찾다. 돌은 안락한 집, 쇠는 전쟁을 위한 무기라는 이분법적인 사고는 우리의 유전자에 뿌리 깊이 박혀있는 듯하다. 구스 타프 에펠이 파리 중심에 철탑을 세웠을 때 많은 예술가의 저항을 받았던 것은 석기시대 이후 줄곧 우리의 고정관념을 형성해 온 돌과 쇠의 대립된 구도에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어쩌면 그들의 저항은 인간에게 너무 많은 쇠가 주어졌다는 것에 대한 불길한 예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공교롭게도 제2의 철기시대로 불리는 산업혁명 이후 세계는 끊임없이 광포 한 전쟁에 시달려야 했으니 말이다. 유사 이래 쇠가 무기의 재료였던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고 현대에 들어와서도 총포 군함 전차 등 강력한 무기들은 모두 쇠로 만들어진다. 하지만 20세기에 들어와서 철의 가장 큰 용도는 도시문명을 잉태하는 것이었다. 고층빌딩의 골조는 물론 기차와 자 동차를 만들고 다리와 철도를 놓는데 쇠는 가장 중심적인 재료가 되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부신 분야는 협곡이나 강 은 물론 웬만한 바다까지 가로지를 수 있게 된 다리 분야가 아닐까 싶다. 19세기부터 시작된 철의 혁명은 다리의 모습 을 그 이전과 이후로 확실히 나누어 놓았다. 1893년에 완성된 스페인의 비스카야 철교는 형식이나 구조에 있어 페러다 임을 바꾸는 다리였다. 160미터에 이르는 현수교도 놀랍지만 45미터 높이에 매달린 곤돌라로 사람과 짐을 운반하는 형식도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양식이다. 인문학 산책 52 자연,터널 그리고 지하공간 스페인 비스카야 철교 이후 돌을 이용해 쌓던 다리는 거의 모두 철근 콘크리트로 바뀌었고 어느 정도 다리가 길어지면 강선을 이용한 현수 교나 사장교로 놓게 되었다. 유럽과 아프리카를 가르던 지브롤터 해협도, 아시아와 유럽을 가르던 보스포로스 해협도 더 이상 장애물이 아니었다. 지금은 마음만 먹는다면 자동차를 타고 지중해를 한 바퀴 돌아올 수 있다. 물론 배로 갈아 탈 필요가 없다.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를 하나로 이어보려는 인류의 오랜 꿈이 이루어진 것이다. ‘모든 게 가능하다, 가 능하니까 한다’는 쉬르 리얼리즘의 전언이 20세기를 뒤덮은 것도 우연은 아니다.<제4편> 내셔널지오그래픽 <포토 아크> 사진전 Vol. 27, No. 1 53 <그림 1> 『내셔널지오그래픽 <포토 아크> 사진전』 입구, 2025년 (ⓒ필자 촬영) 지난 2024년 12월 5일 목요일부터 올해 2025년 4월 20일 일요일까지 전시 중인 《내셔널지오그래픽 <포토 아크> 사 진전》(National Geographic PHOTO ARK)을 소개한다. “멸종에서 희망으로, 사진으로 엮은 동물의 방주(方舟)”라는 타이틀을 달았다. 여타 전시관처럼 매주 월요일은 휴관이며, 오전 10시부터 저녁 7시까지 관람할 수 있다. 입장 마감 <제4편> 내셔널지오그래픽 <포토 아크> 사진전 문지영 <공학박사+조경학석사+예술학학사+외국어고>, 現 글쓰고 그림그리는 작가, 대한토목학회 출판도서위원회 위원장, 한국여성디자이너협회 이사문화예술 산책 54 자연,터널 그리고 지하공간 시간은 오후 6시이니 참고하시길. 입장료는 성인이 1만 5천원, 청소년은 1만 2천원, 36개월 미만의 아기는 무료입장이 다. 전시 장소는 잠실 석촌호수 길이 방향으로 맨 외곽 코너 부근에 있는 ‘소피텔 엠버서더 서울호텔 3층 MUSEUM 209’ 이며, 1층에서부터 3층까지 건물 내부로 이어진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하면 된다. 02-6953-8016으로 문의할 수 있다. 내셔널지오그래픽 <포토 아크(PHOTO ARK)> 프로젝트 ∙ 전 세계의 멸종 위기 동물과 서식지를 구하기 위한 프로젝트, <포토 아크> ∙ 조엘 사토리는 <포토 아크> 프로젝트의 설립자이다. ∙ <포토 아크(PHOTO ARK)>의 뜻은 <사진 방주(方舟)>로, 지구 자체를 커다란 방주(方舟)로 만들어 멸종 위기 동 물까지 모두 안전하게 승선(乘船)시킨다는 의미이다. 동물을 인간과 공동의 운명을 가진, 인간과 한배를 탄 ‘운명 공동체’로 보고 이들을 구하고자 애쓴다는 뜻이다. ∙ 내셔널지오그래픽 사진작가로 30여 년간 활동한 조엘 사토리는 인간의 손에 보호받고 있는 12,000여종의 생명 체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기 위해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촬영했다. ∙ <포토 아크> 프로젝트는 2021년에 12,000여종의 동물 사진을 기록하는 작업을 완성했다. 그리고 이어서 현재에 도 더 많은 생명체의 존재를 사진으로 남기는 중이다. <그림 2> 『내셔널지오그래픽 <포토 아크> 사진전』 전시 시작 지점에서, 2025년 (ⓒ필자 촬영) 전시장 내 사진은 내셔널지오그래픽 사진작가 조엘 사토리(Joel Sartore, 1962년~)의 작품이다. 동물 본연의 크기 와 무관하게 모든 동물이 매우 자세하게 접사(接寫) 촬영되었는데, 소형의 동물은 대형 크기로 크게 확대되어, 대형의 <제4편> 내셔널지오그래픽 <포토 아크> 사진전 Vol. 27, No. 1 55 동물은 본 크기보다는 축소되어 그러나 고해상도로 전시되었다. 엄지손톱 크기의 오징어와 3미터 크기의 초대형 코끼 리가 같은 크기의 화면(출력물)에 인화되었다는 뜻이다. 작은 동물의 놀라운 디테일을 살펴보는 재미도 있으니 꼭 놓치 지 마시라. <그림 3> 전시된 사진 중 ‘동물 촬영 현장’ 사진, 2025년 (ⓒ필자 촬영) 본 전시를 통해 관람자는 멸종 위기 동물의 종류를 알게 되고, 이들의 생생한 표정을 보고 느낄 수 있다. 필자는 동물을 지극히 사랑하는 두 아이(고등학생과 초등학생)와 함께 방문했다. 유치 원생이나 더 어린 자녀를 둔 부모님들이 아이와 함께 방문해도 좋겠다. 전시 규모가 비교적 아담하니 어린아이들에게는 안성맞 춤 규모이다. 필자가 방문한 날에는 유치원생들 7~8명 무리와 도슨트(Docent)1) 역할의 선생님 두 명이 병아리들(아이들)을 모 아놓고 현장 체험학습을 진행 중이었다. 연인(戀人)과 방문 후, 바로 인접한 석촌호수 한 바퀴 산책, 이어서 롯데몰 내 ․ 외부 혹 은 방이동 먹거리 탐방을 하루의 일과에 겸하면 알찬 데이트 시 간을 보낼 수 있다. 1시간이면 충분히 넉넉한 관람을 마칠 수 있 는 본 《내셔널지오그래픽 <포토 아크> 사진전》은 전시 규모로만 보면 아쉬울 수 있으나, 일부러라도 한 번 찾아가서 관람할 만한 의의(意義)는 충분히 있다고 본다. 한 마디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로 표현할 수 있는데, 필자는 깨달음 이전에 깊은 전율(戰 慄)을 느낄 수 있었다. 이들 멸종 위기 동물들의 눈을 자세히 그 리고 고요하게 응시하길 권한다. 사진 속 동물들이 동물이 아닌 1) 도슨트(Docent)는 박물관이나 미술관 등에서 관람객들에게 전시물을 설명하는 안내인을 말한다. <그림 4> 사진전 리플렛 뒷면, 2025년 (ⓒ필자 촬영)문화예술 산책 56 자연,터널 그리고 지하공간 사람으로 보이는 매직(magic)을 체험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는 더 이상 존재하지 못할 멸종(절멸; 絶滅) 직전의 동물 사진을 볼 때는 꼭 ‘영정(影幀) 사진’을 보는 기분이 들어서, 전율을 넘어 슬픔까지 전해지는 관람이기도 했다. 조엘 사토리(Joel Sartore)는 인간에게 돌봄을 받는 모든 동물 종을 사진으로 남기는 프로젝트인 <포토 아크> 프로 젝트의 창시자이자 수행자이다. 그는 사진작가이자 연설가, 교육자, 잡지(내셔널지오그래픽; National Geographic) 고 정 작가, 자연보호 운동가이기도 한데, 동물을 참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며 ‘사진’으로 그 사랑을 표현하는 사람으로 기 억하면 될 것이다. “나는 스스로를 동물 대사(大使), 말 못 하는 자들을 위한 대변인(代辯人)으로 생각한다.” - 조엘 사토리(Joel Sartore) - <그림 5> 『내셔널지오그래픽 <포토 아크> 사진전』 전시장 내부 1, 2025년 (ⓒ필자 촬영) 필자가 생태학자 혹은 동식물학자가 아닌 관계로, 멸종 위기 동물의 멸종이 전 지구에 미치는 영향을 정확히 기술하 기는 어려우나, (필자가) 조경학과 학생이었을 때 “생태계는 그 무엇 하나도 연결되지 않은 것이 없다.”라고 배운 바 있 다. 그리고 건강한 생태계의 기본 조건은 ‘종 다양성(생물 다양성; Biodiversity)’이라고 공부한 기억도 난다. 서로의 취 약점을 상호보완해 주는 요소가 다양하면 다양할수록 복원 및 치유가 빠르고, 하나의 생명체가 여타의 동식물 생육 및 발달, 자연치유에도 살아서 그리고 죽어서까지도 영향을 주기 때문으로 기억한다. 지구는 하나의 거대 생명체이다. 따 라서 그 안에 살아있는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까지 모두 상호작용을 하고 있으며, (지능을 가진 인간이 지구정복자인 양 거드름을 피우고 있지만,) 오래전부터의 지구 환경 역사로 볼 때, 인간은 단 하나의 유기체인 것은 맞다. <제4편> 내셔널지오그래픽 <포토 아크> 사진전 Vol. 27, No. 1 57 인간이 인지하는 지구 내 생명체는 빙산의 일각이라고도 한다. 이름이 지어지지 않은, 발견조차 안 된, 발견할 수도 없는 많은 유기 ․ 무기물이 전 지구를 운영하고 있다. 동물학자들이 말하길 현재까지 약 120만 종의 동물을 확인했는데, 이는 밝혀지지 않은 것에 비하면 새 발의 피라고 밝힌 바 있다. 이미 많은 종이 있으니, 동물의 어느 정도가 멸종해도 문제가 없지 않나?라는 단순한 질문을 던질 사람이 있을 가능성도 있겠지? 필자는 우선, 생태계는 그 어느 하나 없어 도 되는 건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인체로 보면 장기가 하나 없는 격? 물론 살아지는 면은 있으나 건강한 상태는 아 니다. 그리고 인체의 여기저기 기관이 사라진다면 건강한 신체와 마음은 기대하기 어렵다고 본다. 또 다른 이유를 들어 보면, 우리는 이 지구에 잠시 월세로 사는 중이므로 깨끗하게 쓰고 돌려줘야 다음 팀이 머무를 수 있다. 지구는 본래가 인간의 소유가 아니라는 말이다. 마지막으로 인간은 대자연을 망칠 권리가 없다. 지능을 가진 동물이라서, 이성을 갖고 우주까지 개척하는 존재라서 위대한 면은 있지만 그것이 곧 지구 생태계를 마음대로 파괴하고 사용해도 된다는 의미와 는 전혀 다르다. 과학자들이 보는 종 다양성은 실용적인 면으로 접근하기도 하더라. 불치병 개발을 위한 소스, 과학적 인 발명품을 여러 종의 행태 특징에서 착안하기도 하는 등 실용적인 면에서도 생물 다양성은 꼭 필요하다고도 말하니, 멸종이 가져올 단점은 이미 차고 넘치리라고 본다. “우리가 강한 의무감을 갖고 다른 생물들을 보존하지 않으면, 우리가 모든 것을 의존하고 있는 이 진화의 터전을 파괴해 우리 스스로를 위험에 빠뜨릴 것이다.” - 생태학자 에드워드 오스본 윌슨(Edward Osborne Wilson) - <그림 6> 『내셔널지오그래픽 <포토 아크> 사진전』 전시장 내부 2, 2025년 (ⓒ필자 촬영)Nex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