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revious청파기행 NO.84 | CHUNGPA’S TRAVEL ESSAY #84 Magazine of the Korea Concrete Institute 28 시작되자, 영국은 인도인들은 대영제국의 일원임을 강조하며, 또다시 참전을 요구했다. 대부분의 지방정부를 장악하고 있었 던 국민회의에서는 참전을 반대하면서, 내각 총사퇴를 선언하 였다. 이 기회에 무슬림 연맹에서는 만일 내각이 총사퇴한다 면, 그날이 무슬림 구원의 날이라고 선포하였다. 영국은 그런 상황에서도 인도인 250만 명을 전쟁에 동원하였다. 이때 영국 은 인도인들의 전쟁 비용은 인도의 지방정부가 먼저 집행하고, 전후에 이 돈을 갚는다는 조건을 제시하였었다. 1945년, 연합 군이 승전하였으나, 영국이 인도에 갚아야 할 전쟁 비용은 18 억 달러에 육박했다. 영국은 이 돈을 갚기에는 역부족이었다. 1946년, 영국은 인도의 독립절차를 논의하기 위해, 사절단을 파견하였으나, 국민회의와 무슬림 연맹간의 종교 문제는 해결 하지 못한 채, 1947년 6월, 인도와 파키스탄은 분리되어 각각 의 임시정부를 수립하기에 이르렀다. 1947년 8월 14일 밤, 국회의사당에서는 국민회의의 대표 인 네루가 이렇게 연설했다. “시계가 자정을 알리면, 세상은 잠 들어 있지만, 인도는 생명과 자유를 얻게 됩니다.” 연설이 종료 되면서, 8월 15일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다. 델리에 있는 무 굴제국의 왕궁에는 인도를 상징하는 삼색기가 올랐다. 어둠 속 에서 기다리던 수십만 명의 시민들은 “인도 만세”를 함께 외쳤 다. 그러나 간디는 이 현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당시 간디는 인 도가 통일된 하나의 국가로 태어나지 못함을 아쉬워하며, 이를 관철하기 위한 단식을 했다. 그의 욕심이 지나쳤는지 1948년 에 간디는 뉴델리에서 힌두교도 청년의 총탄에 쓰러졌다. 당시 그의 나이는 79세였다. 1951년, 인도는 1억 7천만의 유권자 들의 선거에 의해, “인도 공화국”을 탄생시켰다. 인도 공화국은 언어를 기반으로 28개 지방 자치주와 7개의 지방직할시를 두 며, 델리에는 연방직할시를 두는 형식으로 태어났다. 오늘날의 인도 오늘날, 인도 공화국의 국제정치는 파키스탄과의 관계를 중 심으로 이루어졌다. 두 나라 간의 갈등은 무력 대결로까지 이 어졌다. 두 나라는 1948년, 1965년, 1971년, 세 차례의 전쟁 을 치렀다. 인도는 이 전쟁에서, 동파키스탄을 지원하였고, 결 국 방글라데시가 탄생하였다. 또한 초대 총리, 네루는 자본주 의와 공산주의 대표주자인, 미국과 소련이 약소국을 대상으로 군사적, 경제적 도움을 주면서 영향력을 키우는 것을 두려워하 며, 그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제3세계를 만들고, 그 우두머 리 역할을 시작하였다. 제3세계는 1952년 12월에 개최되었던 아시아 및 아랍의 12개국 회의에서 비롯되었으며, 1954년 인 도공화국 대표 네루(Nehru)와 중화인민공화국 대표 저우언라 이의 평화 5원칙 선언과 1955년 4월의 반둥회의로 발전하여 현재에 이르게 되었다. 역사학자들은 이를 두고 “비동맹 주의” 라고 부른다. 오늘날 제3세계는 100여 개국에서 30억 가까운 인구를 가지고 있으며, 따라서 국제정치 무대에서 강력한 발언 권을 행사하고 있다. 유엔 회원국의 4분의 3을 차지하고 있는 사실만으로도 이 그룹이 국제정치 사회에서 수행하고 있는 커 다란 역할을 짐작할 수 있다. 인도는 1950년 한국전쟁에도 참 전하였으나, 의료지원단만을 파견함으로써, 비동맹주의의 원 칙을 실천하였다. 한편 1967년에는 간디의 딸, 인디라 간디가 그림 2. 국민회의 지도자, 마하트라 간디의 근영India 제35권 5호 2023. 09 29 총리로 당선되었으나, 그녀는 암살당했다. 이어서 1985년에 는 간디의 아들, 라지브 간디가 다시 총리로 당선되었지만, 그 도 1991년에 암살당했다. 인도는 여전히 힌두교도와 무슬림 간의 종교 문제로 인한 불화가 계속되고 있는 형편이다. 오늘 날 인도의 정치는 양원제를 택하고 있다. 인도의 독립과 건국 을 주도했던 국민회의는 좌파 성격이 강하고, 뒤늦게 탄생한 인도 인민당은 우파 성향이 강하다. 1980년대까지는 국민회 의가 간디와 네루의 후광을 받으면서, 다수당을 유지하였으나, 최근에는 인도 인민당의 세력에게 밀리고 있다. 최근 인도는 1990년 이후,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가 외환 위기를 겪고 있을 때에도 경제성장을 이어 나갔다. 이는 독립 이후의 개혁과 개방을 통하여 이룩해 놓은 경제 정치의 효과라 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1990년 이후에는 인도의 IT 산업이 미국과 연계되면서, 고도성장을 이루었다. 2005년의 인도 IT 산업 매출액은 무려 280억 달러에 이르고 있다. 현재 인도 남 부의 벵갈루루와 하이데라바드에는 IBM, MS 등의 국제적인 기업들이 입주하고 있어서, 인도 IT 산업의 메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그러한 원인은 약 2,000개에 이르는 인도의 공 과대학에서 인재들을 지속적으로 배출하고 있으며, 이 지역에 는 약 70만 명의 인도인들이 종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유 행했던 BRICs 또는 Chindia 등의 경제 용어는 이러한 인도의 잠재력을 염두에 두고 태어난 경제 용어라고 볼 수 있다. 일부 경제학자들은 2030년이 되면, 인도의 GNP는 미국을 뛰어넘 을 것이라는 전망을 하고 있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과거에는 인더스 문명을 탄생시킨 역사 속의 거물이었던 인도가 다시 자 신들의 위치를 되찾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시티투어 필자가 다녀온 인도의 도시의 수는 미미하다. 그것은 델리, 아그라, 뭄바이 그리고 푸네 정도다. 이 글에서는 수많은 인도 의 관광 명소 중, 방금 언급한 네 개 도시에 국한한 인문 정보 만을 언급하고자 한다. 델리(Delhi)는 오늘날 인도의 수도이며, 뉴델리와 올드델리 로 구성된다. 남측에 위치하고 있는 뉴델리는 영국 식민지 시 대에 탄생하였으며, 현재는 인도의 행정 기능이 자리하고 있 다. 올드델리는 북측에 위치하며, 델리 술탄 왕조와 무굴 제국 의 수도가 이곳에 있었다. 델리의 인구는 현재 약 2,000만 명 에 이른다. 델리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관광 명소는 아마도 레 드 포트(Red Fort)일 것 같다. 레드 포트는 델리 북측의 야무 나 강변에 위치한다. 무굴제국의 샤 자한 황제는 1639년부터 1648년까지 이 요새를 건설한 후, 수도를 아그라에서 델리로 이전하였다. 이 성채는 대부분이 붉은 사암으로 지어졌기 때문 에 “레드 포트”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이 성채는 영국 식민 시절에는 영국군의 병영지로 사용되었었고, 독립 후에는 인도 그림 4. 델리의 관광 일번지, 레드 포트 방문기념사진 그림 3. 인도 독립을 일구어낸 네루와 간디청파기행 NO.84 | CHUNGPA’S TRAVEL ESSAY #84 Magazine of the Korea Concrete Institute 30 군대가 주둔했었다. 성벽의 높이는 15 ~ 40 m 정도이며, 총 연장은 2.5 km 정도다. 이 성채에는 매년 수백만 명의 관광객 이 발길을 이어가고 있다. 레드 포트의 건축 양식은 페르시아, 유럽, 인도 양식을 모두 사용하여 완성하였고, 결과적으로는 샤 자한 시절의 건축 양식을 모두 포함하는 결과를 낳았다. 그 때문에 레드 포트는 당시의 인도의 건축을 대표할 만큼 중요한 건물이다. 1947년 인도의 초대 총리, 네루는 이 성에서 인도 의 독립을 세상에 알렸었다. 필자를 이 성채에 데려다 주었던 택시 기사는 우리들에게 레드 포트에서의 체류 시간을 약 3시 간 정도 할애해 주었었다. 델리에서의 또 다른 관광 명소로는 후마윤 묘지(Humayun’s Tomb)를 들 수 있다. 후마윤 묘지는 무굴 제국의 황제였던 후마윤의 미망인, 하미 다 바누 베굼의 요청에 따라, 1562년에 짓기 시작해 1570년 에 완성되었다. 이 건물은 남아시아에서는 첫 번째로 페르시아 식의 정원 형태를 가지고 있다. 1993년, 이 묘지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는데, 그 이유 중 하나는 인도 최초 의 정원식 무덤이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훗날 세워진 아그라의 타지마할은 후마윤 무덤의 양식을 많이 인용하였다. 델리에서 시간이 허락되면, 쿠트브 미나르(Qutb Minar)에도 들려볼 만 하다. 이 탑은 힌두교와 이슬람교의 양식이 혼합된 높이 73 m 의 5층 석탑이다. 석탑의 1층은 힌두양식, 2층과 3층은 이슬 람양식으로 만들어져 있다. 델리를 정복하였던 쿠트브 알 딘 아이바크가 델리 정복기념으로 탄생시켰다. 각층 사이에는 발 코니가 있고, 내부는 나선형의 379계단이 있다. 따라서 운동 삼아 오르는 재미가 있다. 부지 안에는 인도에서 가장 오래된 이슬람 사원인 쿠와툴 모스크가 있어서, 항상 무슬림 관광객이 많은 곳이다. 아그라(Agra)는 델리에서 야무나 고속도로를 이용하면, 자동차로 약 3시간 반이 소요되는 거리에 있다. 거리로는 230 km 정도다. 필자는 이 고속도로를 이용하였는데, 아그 라로 가는 길에서는 자동차가 없는 텅빈 고속도로를 목격했었 다. 아그라는 야무나강을 끼고 탄생한 고대 도시인데, 1526년 부터 1658년까지, 무굴제국의 수도였다. 당시 건설된 타지마 할(Taj Mahal) 및 아그라 성(Agra Fort)은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 필자는 이 두 개의 문화유산을 감상 하기 위해 길을 떠났는데, 아그라에 도착하면서 느꼈던 첫 인 상은 참담했었다. 우리 일행의 자동차는 소와 리어카와 인파에 둘러싸여, 약 30분을 한자리에 서서 기다려야 했으며, 주변 환 경은 창문을 열어 놓지 못할 정도로 악취를 뿜어내고 있었다. 그렇게 어렵게 도착했던 타지마할은 무굴왕조를 대표하는 건 축물이라고 평가된다. 무굴의 5대 왕인 샤 자한은 그의 사랑하 는 부인이었던 뭄타즈 마할이 세상을 떠나자, 그녀의 죽음을 기리기 위해 이 건축물을 세웠다. 그녀는 당시, 자한의 14번 째 아이를 출산하였다. 1623년부터 약 2만 명의 노동자가 동 원된 이 공사는 1653년에서야 완공되었다. 타지마할은 페르 시아, 터키, 인도의 건축 양식들이 적당하게 조합된 무덤이다. 198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될 때, “타지마할은 무슬림 예술의 보석이며, 모든 인류가 감탄할 만한 걸작이다” 그림 5. 올드델리의 후마윤 묘지 전경 그림 6. 무굴제국의 건축을 대표하고 있는 타지마할India 제35권 5호 2023. 09 31 라는 찬사를 받아냈었다고 한다. 그러나 최근, 영국 BBC 방송 에서는 야무나강의 장시간의 가뭄으로 인해, 타지마할의 첨탑 중 하나가 기울기 시작했다는 우려를 표하기도 했었다. 타지마 할은 총 17헥타르에 달하는 거대한 무덤군의 중심 부분이며, 무덤군에는 응접실, 박물관, 모스크 등이 딸려있다. 영묘 자체 의 건설은 거의 대부분 1643년에 완료되었으나, 추가적인 보 조 작업이 약 10년 동안 진행되어, 1653년에 현재 우리가 볼 수 있는 모습으로 만들어지게 되었다. 타지마할에서 가장 눈 에 띄는 건축 요소는 바로 중앙에 우뚝 서 있는 돔이다. 이 돔 은 35 m의 높이를 가지고 있으며, 7 m 높이의 원통형의 기초 위에 세워져 있기에 더욱 높아 보이는 효과를 내고 있다. 중간 이 볼록하고 위쪽으로 갈수록 유선형으로 휘어지는 독특한 형 태를 지니고 있기에, 이 돔은 “양 파 돔”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타 지마할의 외부 장식들은 사람의 형상을 그리는 것을 금하는 이슬 람 율법에 따라, 이슬람 글씨, 식 물들의 모습, 혹은 추상적인 형 태의 그림들로만 이루어져 있다. 이와 같은 타지마할을 건설하는 데에는 당시 가치로 3천 2백만 루피아, 현재의 가치로는 8억 3 천만 달러가 소요되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따라서 타지마할 을 건설하는 동안, 무굴제국의 재정은 휘청거릴 정도로 막대한 양의 돈이 투입되었으며, 과도한 세금과 과도한 수탈로 인해, 민심은 크게 악화되었다. 또한 샤 자한은 나이가 들어감에 따 라 점차 정무에 무관심해졌고, 결국은 샤 자한의 아들인 아우 랑제브가 반란을 일으켜, 형제들을 모두 제거한 후, 샤 자한을 폐위시키고 부친을 아그라 성에 감금해 버렸다. 이후 샤 자한 은 아그라 성의 창문으로만 멀리서 타지마할을 감상할 수 있는 신세가 되어버렸고, 그는 죽는 날까지 아그라 성에 갇혀 살았 다. 자한이 세상을 떠나자, 그의 유해는 타지마할 지하에 있는 뭄타즈 마할의 관 바로 옆에 나란하게 배치되었다고 한다. 당 일치기로 아그라를 방문했던 필자는 이러한 슬픈 소식을 간직 하며, 야무나 강변에 말없이 서 있는 아그라 성으로 발길을 재 촉해야 했었다. 아그라 성도 한때는 무굴 제국의 왕궁이었다. 아그라 성에서 샤 자한이 갇힌 채, 타지마할을 한없이 바라보 았던 바로 그 창문에서, 필자가 바라보았던 야무나 강 건너의 타지마할은 한폭의 아름다운 그림이었다. 그러나 샤 자한의 느 낌은 그렇지 못했을 것 같다. 뭄바이(Mumbai)는 인도 상업의 중심 역할을 하는 항구도 시다. 인도에서는 델리에 이은 두 번째로 큰 도시로서, 현재 인 구는 1,300만 명 정도다. 따라서 외국에서 비행기로 인도로 입국하는 경우에는 뭄바이 공항 또는 뉴델리 공항을 이용하고 있다. 필자는 인천공항에서 직항 노선을 이용하여, 뭄바이를 방문하였었는데, 공항에서 숙소가 있었던 시내 중심까지는 불 과 35 km에 불과하였지만, 교통체증으로 인하여, 상당한 시 그림 7. 아그라성의 창문에서 필자가 바라보았던 야무나강과 타지마할 그림 8. 인도의 관문과 주변 풍광청파기행 NO.84 | CHUNGPA’S TRAVEL ESSAY #84 Magazine of the Korea Concrete Institute 32 간을 길에서 허비했던 기억이 남아있다. 그뿐만 아니라, 택시 는 빈민촌을 지나야 했었는데, 창밖으로 보이는 거리의 풍경 은 지나치다 할 정도로 비참했었다. 택시 운전사의 말에 따르 면, 뭄바이의 특징 중 하나는 인도에서는 가장 부자가 많은 도 시임과 동시에, 가장 가난한 빈민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라고 했다. 당시 필자는 뭄바이 인근 도시인 푸네로 가는 길에 뭄바 이에서 이틀을 보냈었다. 공항에서 숙소로 데려다주었던 택시 기사는 비교적 알아듣기 수월한 영어를 구사하였기 때문에 다 음 날 아침에도 그 택시를 이용했다. 첫 방문지는 인도의 관문 (Gateway of India)을 택했었다. 인도의 관문은 1911년 영국 국왕인 조지 5세와 메리 여왕 내외가 인도를 방문한 기념으로 세워진 뭄바이의 상징적인 건조물이다. 뭄바이만의 아폴로 부 두에 우뚝 서있는 거대한 문은 높이가 26 m이며, 양옆에는 보 조문이 있다. 당시 영국에서 인도를 방문하는 귀빈들은 대부분 이 문을 통해서, 인도 땅으로 상륙했다고 한다. 인도문 바로 앞 에는 타지마할 호텔이 웅장한 모습으로 세계의 귀빈들을 기다 린다. 타지마할 호텔 건물은 1903년에 건립되었으며, 565개 의 객실이 있다. 타지마할 호텔은 뭄바이 제일의 5성급 호텔이 며, 인도를 방문하는 세계의 정치가 그리고 왕족과 귀족, 유명 인사들은 대부분 이 호텔에서 체류한다고 한다. 택시 기사는 다음날 필자의 목적지인 푸네로 출발하는 기차역인 차트라페 티 시바지 역으로 안내했다. 그는 이 역은 과거 영국 식민시대 에는 봄베이(Bombay, 뭄바이의 전 이름)의 상징 건물이라고 귀띔했다. 역사 건물은 영국인이 설계하였는데, 빅토리안 고딕 양식이라고 한다. 이 역사적인 건물도 2004년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2003년도 아시아 콘크리트 연맹의 공식회의가 삼일간 개최 되었던 푸네(Pune)는 데칸고원에 위치하고 있는 뭄바이 시민 들의 피서지라고 한다. 평균 고도가 600m 정도여서, 인간이 지내기에는 최적의 날씨를 일년 내내 제공하는 도시다. 우리나 라의 용평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었다. 이 도시는 최근에 현대 차, 벤츠, 타타의 자동차 공장이 들어서서, 경제적으로도 상당 한 위치를 고수하고 있다고 한다. 필자는 푸네에 체류하는 동 안 골프 라운딩을 하루 즐겼는데, 캐디는 붉은 모자를 쓰고 나 온 중년의 남자였다. 그는 내가 가지고 있었던 소형 디지털카 메라의 성능에 매료되어, 라운딩 도중에 캐디백을 팽개치고, 집으로 가서 그의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왔다. 그리고 그들 과 함께 사진을 찍어 달라는 요청을 했던 기억은 오랫동안 남 아있다. 당시 내 디지털카메라에 담긴 그들의 가족 사진은 불 행하게도 제대로 전달되지는 못했다. 푸네에서 뭄바이로 돌아 오는 열차는 약 4시간이 소요되었다. 에필로그 인도인들은 오래전부터 동남아시아 및 동아시아 국가들과 그림 9. 푸네에서 개최된 ACF 행사 기념사진 그림 10. 외국의 귀빈을 마중하던 뭄바이의 1948년 사진기록India 제35권 5호 2023. 09 33 교류했다. 마우리아 왕조의 아소카 왕은 불교를 전파하였고, 굽타 왕조에서는 힌두교를 전파했다. 캄보디아 지역에는 9세 기경부터 크메르 왕국이 존립하고 있었는데, 크메르는 대표 적인 힌두 왕국으로 이름을 날렸었다. 12세기에 건립된 앙코 르 와트는 대표적인 힌두 사원이다. 앙코르 와트는 폭 200 m 정도의 해자를 두르고, 그 안에는 3층 높이의 건물을 세운 후, 그 위에 5개의 탑을 세우는 형식으로 구성된다. 건물의 벽변에 는 <라마야나>와 <마하바라타>에서 등장하는 장면들이 새겨져 있다. 인도네시아에는 7세기 경에 세워진 불교 국가인 샤일렌 드 왕국이 존립하였고, 동 시대에 힌두 국가인 스위자리아 왕 국도 출현했었다. 이중 샤일랜드 왕국에서는 “보로부르도”라 고 불리우는 불교 사원을 축조하였는데, 이 사원의 높이는 9층 이며, 정사각형 평면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약 5 km에 달하 는 회랑을 가지고 있는데, 그곳에는 약 2,000개의 부조가 불 경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묘사하고 있다. 타일랜드 지역에서는 힌두교보다는 불교가 성했었다. 14세기에 성립한 수코타이 왕 국, 그 뒤를 이은 아유타야 왕국은 모두 불교 국가였다. 우리나 라와 인도의 교류도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가장 오래된 기 록은 <삼국유사>에 등장하는데, 가야국의 김수로 왕과 인도에 서 온 허왕옥이라는 여인과의 결혼 이야기다. 이 왕후는 김해 허씨의 시조가 되었다. 8세기에는 신라의 승려 혜초가 인도를 다녀온 후, <왕오천축국전>을 남겼다. 많은 인도인들이 우리나 라 땅에 동시에 발을 디딘 것은 한국전쟁 때다. 당시 인도 정 부는 6,000명 규모의 의료지원단을 파견했었다. 최근 한국은 BRICs, Chindia 등의 국제적인 경제 용어가 등장하면서, 인 도를 기회의 땅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양국 정부는 경제 뿐 아니라, 정치, 외교, 안보, 문화 등에서도 상호 협력을 약속 하고 있다. 필자는 이 글이 이러한 인도에 대한 인문 정보를 쉽 고, 간략하게 익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 다. 필자는 지금도 뉴델리 오베이호텔에 체류하면서 즐겼던 인 도 카레의 맛과 뭄바이 해변에서 느꼈던 감미로운 해풍의 맛을 오랫동안 간직하고 있다. 심종성 한양대학교 명예교수는 미시간주립대학교에서 석 사 및 박사를 취득하였으며, 1987년부터 한양대학교에 재직하 였다. 연구 분야는 FRP의 토목구조물 적용, 순환 자원을 활용 한 콘크리트, 콘크리트 관련 국내표준 및 해외표준 심의 및 제 정 등이다. 우리 학회 제 12대 회장을 역임한 바 있으며, 외국 학술단체에서 ACI Fellow, IIFC Fellow, IABSE Fellow, ISO TC71 SC5 의장 등으로 활동 중이다. jssim@hanyang.ac.kr 프리캐스트콘크리트 건축구조 설계 • 저 자 : 한국콘크리트학회 • 정가(비회원가) : 29,000원 • 발행일 : 2022.02.28 • 회원할인가 : 23,200원(20%) | 도서소개 | 프리캐스트콘크리트 공법은 1963년 대한주택공사(현 LH)에서 최초 시공 이후 1990년대 중반까지 아파트 건설에 많은 적용이 이루어졌으나 건축 구조물의 고층화로 인한 기준 및 공법 등의 제약으로 시기적 한계가 있었습니다. 이에 따라 우리 학회에서는 2006년 프리캐스트콘크리트 위원회를 발족하여 국내외의 프리캐스 트콘크리트에 대한 관련 기준 평가 및 연구를 수행하여 그 결과, 프리캐스트 콘크리트구조 설계기준(KDS 14 20 62)의 집필을 통해 건설산업에 다양한 적용이 가능하도록 발판 마련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습니다. 이와 같은 일환으로 우리 학회는 프리캐스트콘크리트 건축구조에 대한 최신 기준과 이론 소개와 더불어 실 무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설계 예제를 함께 수록한 “프리캐스트콘크리트 건축구조 설계 실무지침”을 마련하 게 되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프리캐스트콘크리트 공법의 기술력 및 품질향상에 일조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산업계의 목소리 | INDUSTRY INSIGHTS 층간소음 저감기술의 요람 현대건설 ‘H 사일런트 랩(H Silent Lab)’ The Cradle of Floor Noise Reduction Technology; Hyundai E&C 'H Silent Lab' Magazine of the Korea Concrete Institute 34 현대건설은 2022년 12월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에 위치한 마북 기술연구단지에 층간소음 전문 연구시설인 ‘H 사일런트 랩(H Silent LAB)’을 건립하고, 1등급 인정기술의 성능 검증과 자재의 상품성 개선을 위해 본격 가동을 시작하였다. H 사일런트 랩은 2015년 국내 처음으 로 층간소음 전담 조직을 구성하여 연구시설을 운영해 온 현대건설의 경험과 의지가 담긴 연 구시설로서 앞으로 현대건설의 모든 층간소음 개발 기술에 대한 실험과 검증이 H 사일런트 랩을 거쳐 현장에 적용되게 된다. 1. 건립 배경 모두가 공감하듯이 이제 층간소음 문제는 개인의 차원을 넘어 지역과 사회, 그리고 정치권 강덕신 Deokshin Kang 현대건설 기술연구원 건축주택연구팀 책임연구원 그림 1. H 사일런트 랩 전경제35권 5호 2023. 09 35 에서도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등 국가적인 핵심 안건으로 자리 잡 은 지 오래다. 특히, 아파트 준공 후 현장에서 층간소음 성능을 확 인하는 ‘사후확인제’가 지난해 8 월 도입되면서 대형 건설사들을 중심으로 층간소음 기술 개발에 사활을 걸고 있는 상황이다. 현 대건설은 이러한 시대적 요구에 앞서서 2000년대 초부터 층간 소음 저감을 위한 꾸준한 관심과 투자를 지속하여 왔다. 2021년 5월에는 그 첫 결실로 ‘H 사일런트 홈 시스템 I’을 개발해 국내 건설사 최초로 실험실이 아닌 현장에서 층간소음 저감기술을 인정받았다. 그리고 1년 뒤, 2022 년 8월에는 모든 층간소음 관련 업계가 꿈꾸던 1등급 인 정서를 국내 최초 획득하기에 이르렀으며, 층간소음 1등 급 주택 실현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현대건설 마북 연구단지는 H 사일런트 랩 건립으로 기 존의 층간소음 연구시설에 더하여, 소재 및 기초 연구부 터 기술 개발, 실증, 실제 적용까지 원스톱으로 가능한 복 합 층간소음 연구단지로 거듭나게 되었다. 2. ‘H 사일런트 랩’ 내부 구성 H 사일런트 랩은 지상 4층, 총 7세대 규모이며, 바닥 구조(콘크리트 슬래브, 온돌층, 완충재 시스템별 조합)에 따른 층간소음 성능뿐만 아니라 경량 벽체 차음 성능 및 냉 · 난방 시스템과 같은 기타 주거 환경 성능의 검증도 가 능하다. 총 7세대 중 3개 세대는 우리나라 대부분의 아파트 에 적용 중인 ‘벽식 구조’로, 신축 아파트부터 리모델링 까지 사업 유형에 따라 소음 차단성능을 평가하기 위해 각 층마다 슬래브 두께를 세분화하여 다양한 조건에서의 기술 개발과 실증을 진행하고 있다. 반대편 3개 세대는 OSC(Off-Site Construction, 공장생산-현장조립)공법 을 적용한 ‘PC 라멘조’로 구성해 평면 배치의 변경에 따라 소음이 전파되는 특성을 연구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 다. 또한, 건물 1층에는 전시룸과 브리핑룸을 설치하여, 현대건설의 층간소음 기술 개발의 역사와 현주소를 확인 할 수 있도록 하였다. 3. ‘H 사일런트 랩’의 활용 현황 층간소음 기술 개발은 대부분 바닥에 설치되는 자재의 개발 또는 바닥 레이어의 변경 등이 주를 이루고 있으나 실제 층간소음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생각보다 방대하 다. 골조의 배치, 천장 자재 및 구성, 내부 실내 마감, 건물 내 세대 위치 및 온 · 습도와 같은 실내 환경 등 건물의 수 많은 요소가 층간소음 전달에 관여한다. 따라서, 매번 현 그림 3. H 사일런트 랩 내부(좌: 1층 전시룸, 중: PC2층 오픈형 평면, 우: RC3층 1등급 바닥구조) 그림 2. H 사일런트 랩 층별 구성산업계의 목소리 | INDUSTRY INSIGHTS Magazine of the Korea Concrete Institute 36 장을 바꿔가며 연구를 한다면 이러 한 수많은 변수로 인해 정확한 연구 에 상당한 제약이 따른다. 하지만, H 사일런트 랩과 같은 실 제 아파트와 유사한 특성을 지닌 실 험실을 활용할 경우 사전에 골조 시 스템이나 주변 변수들에 대한 특성 을 미리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 실험 결과에 대한 변수를 획기적으로 줄 일 수 있다. 또한, 단일 변수에 대한 장기적인 실험도 가능하기 때문에 안정적인 연구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는 장점도 있다. 실제로 현장에서 진행했다면 준 비부터 결과 도출까지 장시간 걸렸을 테스트들을 작년 실증주택 건립 이후 각 실험실 세대에서 약 2 ~ 3개월 단 위로 설치와 해체를 계속 반복하며, 그 특성과 성능을 신 속하게 평가할 수 있게 되었다. 더불어 각 기술의 층간소 음 성능뿐 아니라 새로운 기술이 적용된 온돌층의 난방 성능이나 비교적 긴 시간이 소요되는 바닥의 내구성 평 가 등의 실험도 H 사일런트 랩에서 복합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사후확인제 도입에 따라 추진되고 있는 해석 시뮬레이 션 기법을 활용한 층간소음 예측 및 소음 저감형 평면에 대한 연구도 H 사일런트 랩의 동적 특성 분석과 해석 결 과의 비교 검증을 통해 본격화하고 있다. 한편, 최근에는 층간소음 전문 연구 인력을 H 사일런트 랩이 위치해 있는 마북 연구단지에 집중 배치하여 H 사일 런트 랩을 활용한 연구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다. 4. 맺음말 그동안 개발된 고성능 자재와 공법 중심의 층간소음 저 감 기술들이 H 사일런틀 랩에서의 검증 과정을 통해 머 지않아 현장에 적용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고성능 자 재의 개발에 안주하지 않고 평면이나 구조를 고려한 연관 기술의 개발도 본격적으로 가속화해야 하는 시점이 되었 다. 이러한 연구 환경의 변화와 사후확인제의 시행에 따 른 사회적 요구에 따라 H 사일런트 랩의 역할과 활용 범 위는 앞으로도 더 확장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콘크리트학회에서는 콘크리트 관련 산업계의 의견을 청취하고 공유하고자 '산업계의 목소리' 원고를 새 롭게 모집하고 있으니 많은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학회 사무국 / chs@kci.or.kr) 강덕신 책임연구원은 연세대학교 건축공학과에서 구 조 건전도 모니터링(Structural Health Monitoring)과 관 련한 연구로 석사학위를 취득하였고, (주)마이다스아이티 의 건축엔지니어링팀을 거쳐, 소음-진동 전문업체인 (주) 브이엠브이테크에서 건축/토목/플랜트 소음, 진동 분야의 구조팀장을 역임하였다. 2021년부터는 현대건설 기술연구 원에서 소음, 진동 및 층간소음 관련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deokshin.kang@hdec.co.kr 담당편집위원 : 김창혁(인하대학교) changhyuk@inha.ac.kr 그림 4. H 사일런트 랩을 활용한 층간소음 해석 및 예측 연구문화 에세이 | ART AND CULTURE 제35권 5호 2023. 09 37 뉴욕현대미술관(MoMA)의 소장품 138,151점의 약 38만 이미지 데이터를 착실히 학습한 인공지능이 혁신적 인 예술 작품을 창조해냈다.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미술관 중 하나인 MoMA의 1층 로비에서는 2023년 8 월 현재, 작품명 Unsupervised ‘비(非)감독’이 전시 중이다. 터키 출신의 AI 아티스트 1세대 레픽 아나돌(Refik Anadol)은 오픈 소스 소프트웨어로 이미 지를 분류하고 공간지도를 생성한 후, 기계 학습 모델 GAN(Generative Adversarial Network, 생성적 대립 신경망)으로 ‘비지도 학습’ 즉, 자율학습을 시켜 현대미술의 과거 와 미래를 그려보게 했다. 꿈을 꾸는 인간의 두뇌처럼 ‘상상’의 작용을 하도록 최대한 간 섭과 감독 자체를 배제한 것이다. 따라서 부 제는 기계의 환각( Machine Hallucination) 이다. 보도에 따르면 그가 사용한 AI 플랫 폼은 엔비디아(NDVIA) 연구소의 DGX 스 테이션 A100 이라고 한다. 이와 함께 아나 돌 작가의 스튜디오가 맞춤형으로 따로 제 작한 Latent Space Browser(잠재 공간 브 라우저)를 사용하였다. 현대미술로서 생성된 Unsupervised는 환상, 환각, 비합리성을 탐 구하여 예술 제작에 대한 대안을 제시한다. 높이 7.3 m, 넓이 5.5 m에 이르는 초대형 디 스플레이를 통한 고해상도 비주얼 아트는 이 제껏 눈으로 볼 수 없었던 역동적이고 기이 한 예술의 세계로 관람객을 끌어들인다. 하 이라이트가 지나면 박수를 받을 만큼 스펙타 클하다. 아나돌 작가는 시시각각으로 변화하 는 환경 조건, 예를 들어 빛의 밝기, 공기의 냄새, 바람의 세기와 같은 날씨 조건, 관람객 의 움직임, 주변의 생활 소음 등을 측정하는 MoMA가 예술로 인정한 AI의 작품 기계는 어떤 꿈을 꿀까? 이 작품은 “현대미술의 역사를 새롭게 구상하고 과거와 미래에 대한 꿈을 꾼다”(It reimagines the history of modern art and dreams about what might have been and what might to be come. MoMA 공식 홈페이지 전시 소개 발췌). 그날 학습하는 데이터와 날씨, 빛, 관람객의 움직임과 소리를 반영하여 이미지를 생성하 는 것이기 때문에 매일 다른 작품이 생성된다. Nex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