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revious국제학술대회 참가기 | INTERNATIONAL CONFERENCE REPORT Magazine of the Korea Concrete Institute 18 일반적으로 fib Symposium의 본행사가 시작하기 전 주말에는 fib의 Technical Council과 National Group 의 General Assembly회의가 있다<그림 3>. 저자는 올해 우리 학회의 delegate로 지명되어 fib General assembly(GA) meeting에 참가하였다. 처음 참가하는 GA meeting을 시작하기 앞서 한국의 대표로 새로 선출 되었다는 사실을 알리면서 가능한 많은 나라의 전문가들과 인사를 나누고 준비했던 명함을 모두 소진하였다. 회의는 현지 시각으로 오전 9시에 시작해서 오후 12시까지 진행 되었는데 GA meeting의 주요 안건은 fib Model Code for Concrete Structures 2020의 final draft의 승인이 었는데 이미 여러 번의 회의를 거치면서 수정이 되어서인 지 별다른 이의 없이 만장일치로 통과하였다. GA meeting이 끝난 이후 이스탄불 공과대학 토목공학 과의 대형 구조 실험동과 재료 실험동을 둘러보았다. 그동 안 이스탄불 공과대학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었는데 올해 가 개교 250주년이 되는 해였고 터키에서 가장 오래된 대 학교이며 그중 토목공학과는 이스탄불 공과대학과 역사를 같이 하고 대학에서 가장 규모가 큰 학과였다. 구조실험시 설과 재료 실험시설도 전 세계 어느 대학 연구 시설에 뒤처 지지 않는 최신의 장비와 시설을 갖추고 있어 인상적이었다 <그림 2>. 그림 3. fib GA(General Assembly) meeting 참석자 기념 사진 그림 2. Structural testing lab 그림 1. keynote lecture. The Beauty of Simplicity and Recyclabilityfib Symposium 2023 Istanbul-Turkey 참가기 fib Symposium 2023, Building for the future: Durable, Sustainable, Resilient 제35권 5호 2023. 09 19 그림 4. Yapi merkezi 엔지니어들의 Eurasia Tunnel과 1915 Çanakkale Bridge 소개 실험시설 견학을 마치고 현지 위원회가 준비한 Eurasia tunnel의 현장 견학을 갔다. Eurasia tunnel의 관리를 맡 고 있는 Avrasya Tuneli의 엔지니어가 Eurasia tunnel 에 대해서 설명하고 터키 현지 업체인 Yapi Merkezi社의 Deputy General Manager인 Ömer GÜZEL이 1915 Çanakkale Bridge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었다<그림 4, 5>. 터키에서 내세우고 있는 메가 프로젝트를 전 세계에서 모인 fib 대표들 앞에서 발표하는 중에 각 프로젝트에 참여 한 한국의 기업들에 대한 소개가 나올 때마다 자부심을 느 낄 수 있었다. 이번 학술대회는 본 저자가 2020년 홍익대학교에 부임 한 이후 코로나 시기를 거치면서 처음으로 해외 학술대회 에 참가하는 자리여서 약간 들뜬 기분으로 참가하였다. 국 제학회가 최근 활발해지면서 다른 나라 참가자들도 많았 었던 자리였다<그림 6, 7>. 또한 개인적으로 뜻깊은 자리 였던 이유는 박사 지도교수였던 Oguzhan Bayrak교수 (University of Texas at Austin)와 지금은 University 그림 5. Eurasia Tunnel 홍보관 그림 6. 사진 왼쪽부터 UPC의 Juan Murcia-Delso, Delft University의 Yuguang Yang과 Mauro Pollotti 그림 7. Červenka Consulting의 Martin Berka와 Jan Červenka국제학술대회 참가기 | INTERNATIONAL CONFERENCE REPORT Magazine of the Korea Concrete Institute 20 of Waterloo로 옮긴 공동 지도교수 Trevor Hrynyk교수 를 만날 수 있었고 또한 박사학위 마지막과 박사후연구 원 시절 많은 도움을 주고받으며 지냈었던 Juan Murcia- Delso교수(UPC)도 3년 만에 만나면서 회포를 풀 수 있었 다. Oguzhan Bayrak교수는 터키 출신 미국인이기 때문 에 터키에 대해서 잘 알고 있어 국제적으로 교량과 관련한 연구를 같이 수행하고 있는 인사들을 저녁 식사에 초대했 는데 그 자리에 저자도 같이 초대되어 국제적인 석학들 및 산업계 인사들과 저녁 식사를 할 수 있었다<그림 8>. 현재 우리 학회에서는 2032년 fib symposium을 대한 민국에 처음으로 유치하기 위하여 fib와 협의 중이다. 9년 뒤에 열릴 이벤트라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있긴 하지만 국 내 콘크리트 전문가들이 매년 개최되는 fib에 좀 더 관심 을 갖고 참여한다면 그 경험을 바탕으로 향후 우리나라에 서 열릴 fib symposium을 성대하게 치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내년 fib symposium 2024는 Christchurch, New Zealand에서 열릴 예정인데 많은 국내 콘크리트 연 구자들이 관심을 갖고 참여하면 좋을 것 같다<그림 9>. 그림 9. fib Symposium 2024 로고 그림 8. CBEI(Concrete Bridge Engineering Institute) 저녁모임 (참가자: 오른쪽부터 반시계방향으로 Oguzhan Bayrak, Gregory Hunsicker, David Fernández-Ordóñez, Reggie Holt, Dan Palermo, Oh-sung Kwon, Evan Bentz, Anca Ferche, Boyan Mihaylov, Frank Vecchio, Stephen Foster, Serhan Guner, Fausto Minelli, Trevor Hrynyk, Glenn Washer, Pamela Bayrak) 담당 편집위원 : 정승용(서울대학교) vkjer2@snu.ac.kr 최종권 교수는 서울대학교에서 학사, 석사 학위를 취득하 고 현대건설 기술연구소에서 건설재료에 관련된 연구와 현장 지 원업무를 다년간 수행하였다. 텍사스 주립대학교(University of Texas at Austin)에서 원전격납구조물의 콘크리트 박리 균열의 원인을 규명하기 위하여 대형 구조실험, 유한요소해석, 그리고 음 향방출과 기계학습 등의 연구를 수행하였고 2018년에 박사학위 를 취득하였다. 졸업 후 동대학 박사후연구원으로 근무하며 프리 스트레스트 콘크리트 거더의 전단거동, 스트럿-타이모델, 섬유 보강 콘크리트의 교량 바닥판 적용 및 평가 등의 연구를 수행하였 다. 이후 2020년 9월 홍익대학교 공과대학 토목공학과의 조교수 로 부임하였다. 주요 관심 연구 분야는 극저온에 노출된 철근콘크 리트 구조물의 거동, 노후 구조물의 보수 보강 기법, 기계학습을 통한 노후 교량의 성능평가, 철근콘크리트 및 프리스트레스트 콘 크리트의 거동 및 설계, 스트럿-타이 모델 등의 분야이다. jongkwon.choi@hongik.ac.kr영(永) 칼럼 | SENIOR COLUMN 제35권 5호 2023. 09 21 칼럼의 취지에 어울리는 주제는 무엇일까를 고심하다가 화두로 선택한 문장이다. 오래전 에 박사학위 디펜스 때 받았던 질문 중의 하나였지만, 어떻게 얼버무렸는지는 잘 기억나 지는 않는다. 하지만 다시 이 질문을 꺼내서 칼럼의 화두로 삼아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 이 들었다. 세월이 지난 지금 같은 질문을 다시 받는다면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까? 화두 로 선택한 물음과 관련한 지난 시간의 내 경력을 배경 설명으로 소개하면서 글을 시작해 보고자 한다. 1990년대 후반 PC 공동주택의 열기가 사라진 후 반도체 공장이라는 특수한 형태의 구 조물에 대한 PC 공법과 함께 주차장 PC 공법에 관한 연구가 이루어지던 시기에 여러 실 험 연구에 참여할 수 있었다. 반도체 공장은 공기단축을 위한 공법의 개발이 중요한 주제 였던 반면에, 주차장의 경우 경제성 있는 공법의 개발이 중요한 주제였다. 그 후 2010년 중 · 후반부터는 물류창고에 관한 관심이 크게 고조되었으며, 최근에는 PC 공동주택에 대한 관심이 다시 커지고 있다. 이러한 시대를 지내면서 다양한 부재 및 공법에 대한 실험 연구에 참여할 수 있었다. 한편 프로그램 개발회사의 기술연구소에서 함께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 졌었다. 당시 밴처기업의 경우 학교와 연구소 동시에 일할 수 있는 여건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초기에는 주로 유한요소해 석을 실무문제와 연결하는 방법에 관한 것이 주요 내용이었으며, 그 과정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그 후 프로그램 개발 관련한 일에 관여하게 된 것은 비선형해석 기능이 추가되면서였다. 당시 이력곡선, 항복이론, 소성힌지의 특성 등 많 은 것들을 생각하고 판단해야 했던 기억이 난다. 그 후 콘크리트 비선형 상세해석 기능을 위하여 당시 해외 유명 회사와 협 력하여 콘크리트 균열 해석기능을 가지는 프로그램을 개발하기도 했다. “어떤 것을 더 신뢰할 수 있을까”는 “어떤 것이 더 불확실할까”로 바꾸어 표현해 봐도 될 것이다. 즉 실험과 해석을 통해서 얻어지는 결과물 중 어떤 것이 더 불확실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으로 바꿔 보았을 때 답을 향한 논점이 더 분명해질 수 있을 것이다. 실험은 복잡한 구조물을 단순 이상화하고 그 중 부분을 추출하여 테스트하는 프로세스이다. 이 때 이상화를 통해 서 만들어진 실험체와 실제 구조체 사이의 연관성에 근거하여 실험을 계획하게 된다. 연구자는 여러 변수를 선정하고, 이 들 변수가 미치게 될 영향을 예측하고, 그러한 예측이 가능하도록 시나리오를 만들어서 실험연구를 진행하게 된다. 그 과 정에서 연구자는 그 시나리오가 실제 대비 얼마만큼의 대표성을 가질까 하는 문제를 끊임없이 고심하게 된다. 그런데 이 상화, 연관성, 시나리오, 대표성 등은 각기 다른 유형과 정도의 불확실성을 내포하고 있으며, 결과물의 신뢰도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문정호 Jeong-Ho Moon 한남대학교 토목건축공학부 교수 실험과 해석 중실험과 해석 중 어떤 것을 더 신뢰해야 할까?어떤 것을 더 신뢰해야 할까? Test or Analysis, Which One Is Better Reliable?영(永) 칼럼 | SENIOR COLUMN Magazine of the Korea Concrete Institute 22 한편 해석은 어떠한가? 신뢰성 평가를 위한 요소만 다를 뿐 해석 역시 여러 유형의 어려움을 가지고 있다. 실험과의 대비 를 위해 비선형해석을 생각해 보자. 비선형해석은 거시적 관점과 미시적 관점으로 구분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거시적 관점 의 대표적인 예가 푸시오버나 동적비선형 해석이 있을 수 있으며, 미시적 관점은 지압이나 균열 해석과 같은 상세해석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비선형해석의 가장 큰 어려움은 매우 제한된 가정에 기반하고 있으며, 그 가정에 적합한 구조물은 거의 없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거시적 해석에서 부재의 비선형 거동은 주로 단부에 집중되는 힌지를 대상으로 하며, 이 역시 선 부재인 보나 기둥에 대해서 단순화(이상화)한 이력을 따라가도록 되어 있다. 하물며 2차원 이상의 요소(벽체, 쉘) 등에 대 해서는 적합한 요소 자체가 없다. 따라서 거시적 관점의 해석은 실험에서 보았던 불확실성의 요소 모두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즉 이상화, 연관성, 시나리오, 대표성 등에서의 불확실성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실험은 기계적 장치를 이용 하고 해석은 컴퓨터로 대표되는 이론적 장치를 사용한다는 점만 다를 뿐 동일한 유형의 불확실성을 가지고 있다. 미시적 관점의 해석 즉 상세해석은 가정성이 더욱 부각되는 과정이다. 균열해석을 예로 들어 보자. 균열이란 콘크리트가 갈라지면 서 불연속이 발생하는 현상이지만 대부분의 상세해석에서는 이를 고려하지 못하며, 해석 결과는 요소의 크기에 큰 영향을 받는다. 나아가서 철근과 콘크리트 사이의 부착 및 정착 거동, 균열진행 등과 같은 문제에 대한 해석 결과는 신뢰도 자체를 의심하게 만든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불행의 이유가 제각기 다르다.” 안나 카레니나 법칙은 성공하기 위해선 여 러 가지 조건들이 모두 충족되어야 하고, 만약 하나의 조건이라도 충족되지 못하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뜻한다. 완 벽한 실험(혹은 해석)을 했다고 할지라도 대표성을 잃으면 무용지물(불행)이 될 것이다. 이처럼 신뢰성의 확보는 매우 중요 한 반면에 신뢰성을 높이는 일은 쉽지 않다. 실험이나 해석을 통해서 얻어진 결과 자체는 맹인이 만져 본 코끼리(맹인모상, 盲人模象)일 수 있다. 맹인이 코끼리 몸의 일부를 만져보는 것이니 부분에서 전체를 추론해야 한다는 관점에서 실험(혹은 해석)에서의 상황과 동일할 것이다. 이때 자칫 코끼리는 밧줄(코끼리 코)과 같다고 한 맹인의 판단과 다르지 않은 잘못된 결과에 이를 수 있다. 해석은 가정에 기반하고 실험은 제한조건에 기반하므로, 장님 앞에 놓인 코끼리일 수 있다. 따라서 피할 수 없는 이상화, 연관성, 시나리오, 대표성, 가정성 등을 어떻게 고려했으며, 결과의 판정 때 그 영향을 어떻게 반영했 는가에 따라서 불확실성의 정도가 달라질 것이다. 해석에서 해당 프로그램이 사용하는 알고리즘을 모른다면 결과에 어떤 불확실성이 포함되어 있을지 알 수 없으므로 역시 장님과 다르지 않을 것이며, 실험에서도 역시 계획과 결과 사이에서의 연관성에 존재하는 불확실성을 판단하기 어렵다면 이 역시 장님의 코끼리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제 화두로 선택한 질문에 대한 답을 생각해 보자. 결국 해석과 실험 모두 비슷한 유형의 불확실성을 내포하고 있으며, 구 체적인 부분에서만 약간 다르다. 즉 이상화, 연관성, 시나리오, 대표성에서의 불확실성은 같다. 실험에서는 동일한 실험이 동일한 결과가 아닌 통계적으로 분산된 결과를 가져다준다는 점이 해석과는 다르고, 해석은 항상 동일한 결과를 내놓지만 사용하는 가정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다준다는 점이 실험과는 다르다. 결국 둘 다 어떤 답을 내놓기는 하지만 많은 면에서 불확실성을 내포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어떤 것이 덜 불확실한가의 문제에 대한 답은 연구자 혹은 엔지니어 자신 에게 있을 것이다. 불확실성에서 ‘불’의 정도를 낮추기 위한 노력을 얼마나 했는가에 따라 신뢰성 정도가 달라진다는 것이 다. 이상화, 연관성, 시나리오, 대표성, 가정성 등은 각각 코끼리 몸의 일부일 수 있으므로, 다양한 각도에서 만져볼 필요가 있다. 불확실성의 존재를 인정하고 각 요소에 대한 3자적 관점의 분석이 필요할 것이다. 나아가서 실험과 해석은 상호 보완적 수단이 될 수 있으며, 서로의 불확실성을 해소하는데 좋은 역할을 해줄 수 있다. 그제35권 5호 2023. 09 23 담당 편집위원 : 이득행(충북대학교) dk@cbnu.ac.kr 문정호 교수는 한양대학교, 미시간주립대(앤아버), 텍사스주립대(오스틴)에서 학위(학사, 석사, 박사)를 취득하였다. 1996년부 터 한남대학교 건축공학전공 교수로 재직했으며, 마이다스아이티(2000 ~ 2017) 등에서 기술개발 및 자문 역할을 하였다. 구조해석 은 비선형 정적/동적 해석과 함께 콘크리트 균열해석 관련 프로그램 개발에 참여하였으며, 구조실험 연구는 프리캐스트 콘크리트 구 조를 적용하는 다양한 공법 개발과 설계 관련 연구에 참여하였다. mnjh@hnu.kr 러나 둘 사이의 거리가 점점 거리가 멀어지고 있기도 하다. 각각의 분야에서 알아야 할 전문지식의 정도가 높기 때문일 수 있으며, 블랙박스 속에 숨겨진 해석 프로그램의 알고리즘을 파악하는 데는 이론 이상의 상당한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우리가 누군가를 베테랑이라 부른다면 그가 해당 분야에서 오랫동안 일을 해서 그 분야의 기 술에 뛰어나거나 관련 정보에 밝은 전문가라고 인정하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엔지니어가 베테랑이 되려면 어때야 하는지 를 생각하면서 서두의 문장을 화두로 선택해 봤다. “어떤 노력을 하는 엔지니어가 베테랑이 될 수 있을까?” 답변을 질문으 로 대체해 보았다. 콘크리트학회지는 격월간으로 발행되어 11,000여 회원을 비롯한 콘크리트 관련 업계, 학계, 유관 기관 및 단체 등에 배포되고 있습니다. 저렴한 가격과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귀사를 홍보할 수 있는 콘크리트학회지 광고에 많은 이용을 부탁드립니다. 1. 광고 게재면 2. 할인 혜택 : 우리 학회의 특별회원사가 게재하는 광고 또는 연간 6회 이상 게재 시 상기 협찬금을 아래와 같이 할 인하여 드립니다. 단, 일시불로 납부하여야 적용 가능합니다(괄호안은 회원사 기준입니다). 1년 계약 : 10 % 할인(15 %) 2년 계약 : 20 % 할인(25 %) 게재면광고 협찬금게재면광고 협찬금 표 2120만원간지 1110만원 표 3120만원간지 2100만원 표 4150만원내지(본문 내)70만원영 칼럼 | YOUNG COLUMN Magazine of the Korea Concrete Institute 24 ‘대학원’. 누군가에겐 선망의 대상일, 누군가에겐 그저 거쳐야 하는 곳일, 또 어떤 이는 대학생이 잘못하면 진학하는 곳이라는 우스갯소리를 진지하게 받아들여 두려워할 만 한 곳. 그런 대학원 생활의 막바지에 이르러 지난 여정을 돌이켜보며 유종의 미를 거두 고 나아가 그 이후의 새로운 도전에 대한 마음가짐을 다지고자 한다. 앞서 말한 대학원에 대한 우스갯소리는 대학원 생활이 그만큼 쉽지 않기 때문에 나온 말인 만큼 대학원 진학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사회 진출과 대학원 진학의 양 갈래 길 앞에 우두커니 서서 ‘나의 길은 어디인가…’ 생각하며 고대 그리스의 이름을 알리지 못 한 어느 철학자가 했을 법한 깊은 고뇌와 같은 장고를 했다. 그러던 중 평소 학과 공지 에 무관심했던 학부 4학년 당시, 맛있는 샌드위치를 제공한다는 친구의 말에 우연치 않 게 세미나에 참석했다. 세미나 주제는 Structural Health Monitoring에 대한 것이었 다. 구조물을 인체처럼 진단한다는 개념이 너무나도 신기하고 재밌다고 느낀 그날의 감정은, 미지의 세계를 발견한 모험심 강한 어린아이의 동심과 같았을까 아니면 망망대해에서 뱃길을 밝혀줄 등대를 발 견한 표류하던 배의 선원과 같았을까… 둘 중 어떤 마음인지는 모르겠지만 굉장히 설레었다. 설렘은 곧 행동으로 발현 되었고 두 가지 질문을 쏟아낸 뒤 곧바로 학부연구생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학부연구생, 모든 것이 새로운 시점이었다. 필자는 SHM이라는 생소한 개념을 연구하기 위해 필요한 컴퓨터 프로그래 밍, 센서 네트워크 등의 기초 기반조차 다져지지 않은 상태였다. 흔히 말하는 맨땅에 헤딩과 같은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막막하기보다 모든 것이 새롭고 즐거웠고, 서서히 기초지식을 터득하며 지반을 다져 나가기 시작했다. 학부연구생의 신 분으로 학회에서 구두발표의 기회가 주어졌을 땐 얼떨떨했지만 인생 첫 발표를 무사히 마치고 난 뒤엔 더욱더 정진해야 겠다는 생각이 우선적으로 들었다. 석사과정, 드디어 시작이었다. 그리고 찬란한 시작이길 바랐다. ‘시작은 미약하지만 끝은 창대하리라’에 기대어 드라 마틱한 성장을 기대하기보다 처음부터 잘 하고 싶었다. 최대한 열심히 하고 스스로를 채찍질하여 성과를 내고자 했 다. 그러면서 한 가지에 몰두하기보다 여러 연구에 가지를 뻗고 알아가고 싶었다. Smart Wireless Sensor와 Image Processing을 병행하며 연구했다. 스마트 무선 센서 기술이 가진 변형률 계측 시의 노이즈를 줄이기 위해 변형률 계 측 회로를 개선하는 연구를 진행했다. 또한, 나날이 발전하는 영상 처리 기술을 접목해 구조물의 변위를 인공타깃을 사 용하지 않고 계측할 수 있는 기술에 대해 연구를 진행했다. 연구는 매우 재미있었고, 한순간이라도 더 열심히 해 성과를 내고 싶은 욕심이 생겼었다. 그렇게 열심히 한 덕에 SCI 급 논문을 석사 1년 차 2학기에 완성할 수 있었고 높은 수준의 저널에 투고하게 되었다. 오랜 기다림 끝에 리뷰를 받았고 설레는 마음으로 성실히 답변을 준비했다. 2번의 리뷰를 거 친 최종 결정은 리젝트(reject), 청천벽력이었다, 첫 논문부터 실패라니! 더구나, 총 3명의 리뷰어 중 2명의 accept 의 원종빈 Jongbin Won 중앙대학교 토목공학과 박사과정 소소한 대학원 일지 A little Record of Graduate Life제35권 5호 2023. 09 25 견에도 불구하고 최종 결정은 상실감을 들게 만들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별일 아니지만, 당시에는 상실감이 생각보다 컸었다. 잘 하겠다는 욕심이 바탕이 된 마음의 이면에 불안감이 싹트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주 2회 정도만 집에 가고 나 머지는 연구실에서 밤을 새우거나 쪽잠을 청하는 생활패턴이 시작됐다. 불안감에서 기인한 무리한 생활패턴은 양날의 검이 되어 건강을 해치기 시작했고 점점 피로감이 쌓여갔다. 석사 3학기를 마치고 여름 방학에 이탈리아 로마에 소재한 Sapienza University에서 개최된 Asian-Pacific-Euro Summer School on Smart Structures Technology(APESS)와 그와 함께 열리는 학회에 참가할 기회가 주어졌다. 첫 해외 학회이자 전 세계에서 Structural Health Monitoring 분야에 관심 있는 학생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였다. 약 20일이라는 기간 동안 해외에서 처음 보는 사람들과 함께 수업을 듣고 팀을 꾸려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기회는 처음에 는 걱정으로 시작됐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많은 것을 깨달을 수 있는 기회가 됐다. 비단, 연구의 다양성을 느낄 수 있었 던 것뿐만 아니라 함께 아름다운 로마의 밤하늘 아래 향긋한 와인이 담긴 술잔을 기울이며 서로의 생각을 교류하고 사 교할 수 있었던 기회였다. 지금도 그때처럼 즐거운 시간이 앞으로도 있을까 생각이 들 정도로 좋은 시간이었다. 특히,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서로의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일희일비하지 말고 그저 할 일을 해 나가면 된다고, 매 사에 무던함을 유지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였다. 이 기회로 당장의 연구성과가 나타난 것은 아니나, 좋은 인간관계를 형성하고 또 스스로 한 단계 더 성장할 수 있었던 특별한 시간이었다. 박사과정, 이제는 스스로 연구를 구상하고 프로젝트를 적극적으로 이끌어 나가야 할 때가 됐다. 석사과정 때보다도 더 많은 프로젝트를 경험하고 더 다양한 연구를 진행한 만큼 시야가 넓어지고 아주 조금은 ‘일머리’라는 것도 생긴 것 같다. 석사과정 때부터 이어오던 smart wireless sensor, image processing에 더해 deep learning, cloud computing, BIM까지 연구 분야를 확장하면서 어떻게 하면 연구의 결과를 더 효율적으로 그리고 더 이롭게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하 면서 생각을 넓히는 시간 되었다. 이렇게 말하니 부끄럽지만, 뭔가 스스로 개척자가 된 느낌으로 연구를 진행하는 느낌 이 기분이 퍽 좋았다. 박사과정 때도 석사과정처럼 해외로 나가 연구교류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영국의 케임 브리지 대학교의 Cambridge Centre for Smart Infrastructure and Construction과 함께 협업을 하기 위해 영국에 약 한 달간 파견을 다녀왔다. 석사과정 때 로마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그저 학회 발표를 위해 정신없이 준비하던 애송 이는 더 이상 없고 영국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는 그들이 어떤 연구를 하고 있고, 내 연구와 어떤 식으로 접점을 찾으 면 좋을지, 앞으로 어떻게 발전시킬 수 있을지에 대해 심각하게 구상하고 있는 ‘덜’ 애송이가 앉아 있었다. 지금은 영국으로 향했던 ‘덜’ 애송이가 그 티를 한 꺼풀 더 벗겨내고 조금은 더 발전했을까? 잘 모르겠다. 재밌는 것은 갈수록 연구의 깊이가 깊어지고 해야 할 일의 절대적인 양이 늘어나 성과가 빨리 나오지 않더라도 심적으로 안정감을 느끼고 무던하다는 점이다. 아직 박사과정 신분으로서 졸업, 그리고 그 후의 생활에 대한 걱정이 많은 시점이다. 미래를 알 수 없기에 막연한 불안감은 평생 떨쳐낼 수 없으리라. 하지만, 잘 해야 한다는 욕심이 불안감으로 점철된 한 대학원 생의 마음 한편에 아주 조금은 평화라는 싹이 뿌리를 내린 것 같다. 담당 편집위원: 박종웅(중앙대학교) jongwoong@cau.ac.kr 원종빈 박사과정생은 중앙대학교 건설환경공학과에서 학사학위를 취득한 후 동대학원에서 딥매칭을 이용한 교량 외관조사망도 작성 방법 개발에 관한 연구로 석사학위를 취득하였다. 현재 동대학원 박사과정 8학기 재학 중으로, 구조물 외관조사 자동화 연구 와 철도교량 상태 평가를 위한 IoT 센서 시스템 개발 연구를 주로 수행하고 있다. jbwon90@gmail.com청파기행 NO.84 | CHUNGPA’S TRAVEL ESSAY #84 Magazine of the Korea Concrete Institute 26 인도의 개요 인도의 공식 국가 명칭은 인도 공화국(Republic of India)이다. 현지인들은 스스로를 바라 트(Bharat) 공화국이라고도 부른다. 인도의 국가 총면적은 328만 km 2에 이르러서, 우리나 라 면적의 33배에 달하며, 이는 유럽대륙의 면적보다도 넓다. 그래서 인도 땅은 인도 아대륙 (India subcontinent)이라고도 불린다. 현재 인도의 인구는 약 14억 명에 육박하고 있는데, 이 숫자는 중국에 이은 세계 두 번째다. 국민 소득은 2021년 기준으로 약 7,300 달러이며, 따라서 국민총생산량은 10조 2천억 달러가 된다. 이는 세계 3위에 해당한다. 정치체제는 영 국의 영향으로 인해 양당제를 택하고 있으며, 연방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현재 총리는 나렌 드라 모디가 맡고 있는데, 그는 2014년 총선을 통해 당선된 후, 연임하고 있다. 인도는 “천의 얼굴”을 가진 나라로 알려져 있다. 그들 은 다양한 인종, 다양한 종교, 다양한 문화를 가지고 있어서 그와 같은 별명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인도와 유럽대륙의 현황을 비교하 면, 어쩌면 이러한 결과는 필연일지도 모른다. 현대의 인도 인도에 손을 뻗은 최초의 국가는 포르투갈이다. 포르투갈은 1510년에는 고아를 점령했고, 이를 근거지로 인도의 향신료를 독점했 다. 그러자 17세기에 들어오면서, 유럽의 각국은 경쟁적으로 인도에 접근했다. 네덜란드, 영국, 프랑스 등은 인도 아대륙의 해안에 동 인도회사를 설립하기 시작하였다. 이중 영국은 무굴제국에는 해군이 없다는 점을 간파한 후, 무굴의 상인들을 보호해 준다는 명분을 내세우는 설득으로, 뭄바이와 콜카타에 동인도회사를 세운 후, 이 도시에는 성을 쌓고, 군대를 상주시켰다. 1657년, 영국은 무굴제 심종성 Jong Sung Sim 한양대학교 건설환경공학과 명예교수 청파기행 NO.84 | CHUNGPA’S TRAVEL ESSAY #84 인도 REPUBLIC OF INDIAIndia 제35권 5호 2023. 09 27 국의 황제였던 샤 자한을 설득하여, 벵골에서의 무역을 허가받 았다. 그들은 갠지스강 유역에 방직공장을 지었다. 영국은 인 도 각 지역에서 노련한 방직 기술자들을 동원하였고, 염색공, 세탁부 등 수만 명의 인도인들을 공장에 투입시켰다. 당시 이 곳에서 생산되는 천은 약 150종류에 이르렀으며, 그들은 대량 수출을 시작했다. 그 후 영국은 1765년에 무굴제국과 또 다 른 조약을 맺어서, 벵골에서의 세금징수권을 획득했다. 이 조 약은 동인도회사가 벵골을 통치할 수 있는 권한을 최초로 부 여받은 것으로 평가된다. 1830년대의 동인도회사의 문서에서 는 이 회사가 섬유 무역에서 땅의 소유자로 방향을 전환했다는 증거를 쉽게 찾을 수 있다고 한다. 영국의 동인도회사는 인도 를 현대적 국가로 변환시키는 일을 시작하였다. 영국은 식민지 착취를 위한 철도 부설을 시작했고, 철도 공사 50년 만에 철도 의 총길이는 6,600 km에 달했다. 철도는 인도의 원자재를 나 르기 시작했고, 영국의 상품을 인도 전역에 날랐다. 당시 영국 의 제도는 “마치 스펀지처럼 갠지스강에서 모든 것을 빨아드린 후, 이를 템즈 강변에서 짜낸다”라는 말이 나돌 정도였다. 인도 인들은 가난과 굶주림에 시달렸으며, 영국인들은 그들의 배를 두드렸다. 또한 영국은 인도에서 아편을 재배하여, 중국으로 밀수출하였고, 그 대금으로 인도에서 차를 구입했다. 당시 런 던에서는 인도의 차, 실론티를 마시는 것이 유행되었다. 시간 이 흐르자, 드디어 인도인들은 이와 같은 식민 착취에 대한 반 발이 시작되었다. 1857년, 델리 인근에서 영국군 장교를 죽이 는 것으로 시작한 세포이 항쟁이 시작되자, 영국은 이를 무력 으로 진압했다. 그러나 영국은 또 다른 항쟁을 두려워하면서, 동인도회사를 폐쇄하고, 영국 정부가 직접 인도를 통치하는 형 태로 변환했다. 1858년, 영국은 “영국령 인도제국”을 탄생시 키면서, 영국의 식민 통치를 시작했다. 그들은 이로 인해 전성 기를 맞이하였고, 인도는 더욱 빈곤해졌다. 영국령 인도제국에서는 빅토리아 여왕이 보낸 총독이 인도 를 다스렸다. 빅토리아 여왕은 영어를 배운 인도인들을 관료 로 채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들의 상관은 언제나 영국인 들이었다. 영국에 대한 저항은 이들 지식인으로부터 시작되었 다. 그들은 인도인의 권리를 보장하는 정치기구를 탄생시켰다. 1885년, 뭄바이에서는 힌두교도 중심의 “인도 국민회의”가 결 성되었다. 영국의 인도인 차별이 계속되자, 국민회의는 민족운 동을 펼칠 것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1905년 영국은 벵골 분할 령을 발표했다. 그 이유는 벵골지역은 동부에는 무슬림이 많 고, 서부에는 힌도교도가 많다는 것이었다. 국민회의는 이를 수용하지 않았으나, 1906년 벵골의 동부지역인 다카에서는 “무슬림 연맹”이라는 정치조직이 출범하였다. 1914년, 세계 1차 대전이 발발하자, 인도는 이를 독립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여겼었다. 그러나 영국은 이 전쟁에 참여 하면, 인도에 자치권을 허락하겠다고 제안하자, 국민의회 지도 자들은 약 100만 명의 인도인들을 이 전쟁에 참전시켰다. 이 전쟁에서 인도인은 약 6만 명이 희생되었으나, 영국은 전후에 도 그들의 약속을 지키지 않자, 비폭력 운동을 내세운 국민회 의의 지도자, 마하트라 간디가 출현하였다. 간디의 불복종 운 동에는 무슬림 연맹도 동조하였었다. 그러나 1930년 12월에 는 무슬림 자립을 위해서는 “스탄”이라는 단어를 만들면서, 자 신들의 독립된 나라를 꿈꾸었다. 무슬림 지도자들의 주장을 요 약하면, 벵골지역에는 파키스탄, 그리고 인도 북서부 지역에서 는 펀자브, 아프간, 카슈미르, 신드 등이 존재하는데, 이는 모 두 독립된 국가이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인도인들의 독립운동 이 점차 심화되자, 영국은 1935년 “인도통치법”을 발표하였 다. 그 핵심 내용은 연방제 헌법을 만들고, 각각의 지방정부를 인도인에게 내준다는 것이었다. 1937년, 이 법에 의한 선거 가 치러졌는데, 전체 11개 선거구에서 국민회의는 7개 지역을 차지하였다. 이때 무슬림 연맹은 연립정부 수립을 제안하였는 데, 국민회의는 이를 거절하였다. 1939년 제 2차 세계대전이 그림 1. 뉴욕 퍼블릭 라이브러리에서 발췌한 세포이 항쟁의 묘사Nex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