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revious국제학술대회 참가기 | INTERNATIONAL CONFERENCE REVIEW Magazine of the Korea Concrete Institute 78 Sensors 엑스포 및 컨퍼런스(Sensors expo & conference) 행사는 첨단 IT 관련 업체 가 밀집해 있는 미국 캘리포니아 실리콘밸리에서 개최되는 행사로, 세계적 규모의 센서 박 람회 및 기술 동향에 관한 강연회, 학술발표가 진행된다. 매년 여름에 개최되고 있지만, 지난 2020년에는 COVID-19의 세계적 대유행에 따라 행사가 취소되었다. 필자는 2019년 6월 25일부터 27일까지 미국 산호세 McEnery Convention Center에서 개최되었던 행사<사 진 1>에 참가하여 센서, 계측 및 신호분석 분야의 첨단기술 동향 및 발전 방향을 살펴볼 수 있 었다. 이 행사의 가장 매력적인 특징은 전 세계에서 모인 센서 관련 산업체, 대학 및 연구기관의 전 문가들과 자유롭게 교류할 수 있고, 기술 동향을 한자리에서 파악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2019 년 Sensors 엑스포 및 컨퍼런스에도 전 세계에서 400여 개가 넘는 센서 개발 및 제조, 측정, 데 이터 분석, 응용기술 개발 및 적용 분야의 산업체, 대학, 연구기관에서 참석하였고, 전체 7,500 명이 넘는 참석자로 성황을 이루었다. 강연 및 학술발표에서는 관련 분야 전문가들이 최신 기술 과 연구 동향을 발표하고 청중들과 자유롭게 토론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행사는 6월 25일부터 27일까지 총 3일간 개최되었다. 필자는 개막식과 환영파티가 개최 Sensors 엑스포 및 컨퍼런스 참가기 Sensors expo & conference 기성훈 Seong-Hoon Kee 동아대학교 ICT융합 해양스마트시티공학과 부교수 사진 1. 2019 Sensors expo & conference 개최 장소(미국, 산호세 McEnery Convention Center)제 33권 4호 2021. 07 79 Sensors 엑스포 및 컨퍼런스 참가기 Sensors expo & conference 되었던 첫 번째 날은 제외하고, 공식적으로 박람회와 컨퍼 런스가 시작되었던 두 번째와 세 번째 날에 참가하였다. 행 사는 박람회와 컨퍼런스가 동시에 개최되도록 구성되었다. 필자가 관심 있는 분야인 IoT 및 무선통신, 스마트시티, 센 서 응용 및 고급 데이터 분석에 관한 강연 주제는 주로 오후 에 예정되어 있어, 오전에는 주로 박람회장을 둘러보았다. 박람회장 내부에는 수많은 전시 부스로 채워져 있었고, 전 세계에서 몰려온 참가자들로 붐비고 있었다<사진 2, 3>. 대 부분의 전시 공간은 미국과 유럽에서 온 업체들의 전시 부 스가 박람회장을 채우고 있었으며, 중간에 많은 중국 업체 들의 참여가 인상적이었다. 전자/전기/통신/로봇/물리/화 학/신소재 등 다양한 분야에 센서 기술을 볼 수 있었다. 센 서 소재 및 부품에서부터, 센서 요소, 포장기술, 측정 장치, 오실로스코프 및 통신장치와 모듈화된 센서, 이를 활용한 각종 센서 응용 기술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었다. 필자는 박 사과정부터 지금까지 15년 가까이 콘크리트 비파괴검사 분 야를 연구하면서 다양한 센서를 접해보고, 연구에 활용한 경험이 있어, 박람회에 출품된 기술을 이해하는데 큰 문제 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다양한 수준의 센서 관련 제품 및 기술을 현장에서 접한 후, 필자의 지식의 한계 를 확인하는 데는 불과 몇 분이 걸리지 않았다. 필자가 갖고 있는 전자, 전기, 통신 분야의 짧은 지식으로는 전시되어 있 는 기술을 모두 이해하기는 불가능하였지만, 제품의 목적 및 작동원리를 이해하고, 향후 응용분야와 연결시킬 수 있 는 부분을 스스로 정리하는 수준에서 만족하면서 박람회를 돌아보았다. 컨퍼런스의 주제는 크게 ‘첨단센서: MEMS, wearable sensor 등’, ‘Energy harvesting 기술’, ‘IoT 기술’, ‘5G 통신’, ‘고급해석기술: 딥러닝 및 인공지능’등으로 구성되 었다. 학회에 참석한 전문가들의 발표<사진 4>에 따르면 지 금까지 첨단센서 분야는 스마트폰의 발전이 시장을 주도하 였지만, 2015년부터 전 세계적으로 스마트폰 시장의 포화 상태에 이르러 센서산업이 다소 침체된 경향을 보였다고 한 다. 하지만 2019년 현재 증강현실 기반 소프트웨어 개발의 증가와 함께 MEMS 기반 센서 수요증가, 자율주행차량, 스 마트시티 기술의 발전과 함께 첨단센서 산업의 규모가 점차 커질 것으로 예측하고 있었다. 특히 IoT 및 5G 통신 기술 발 전과 함께 센서 기술 개발 및 응용 분야에서 산학연 협력이 사진 4. 학술발표회장 모습: Sensor&IoT 사진 2. 2019 Sensors expo & conference 박람회장 내부 모습사진 3. Smart City: 지진감지 시스템 예시Magazine of the Korea Concrete Institute 80 국제학술대회 참가기 | INTERNATIONAL CONFERENCE REVIEW 많아질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센서 관련 다양한 주제의 발표내용을 들으면서, 센싱 및 머싱러닝 및 딥러닝 을 활용한 고급 데이터 분석 분야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핵 심 분야로 MS, Google, 아마존, Apple 등 세계적인 기업 에서 이미 이 분야를 미래 핵심 전략 분야로 선정하고, 새로 운 시장을 탐색하고 선도할 수 있는 표준 기술개발을 위하 여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건축공학 관련 전공자로 주목할 만한 점은 많은 전문가들 이 센서기술의 발전을 견일 할 수 있는 차세대 잠재시장으 로 스마트시티의 발전을 지목했다는 점이었다. 이러한 의견 은 디지털 뉴딜 정책의 일환으로 SOC 디지털화를 통한 안 전하고 편리한 국가기반 시스템 구축을 계획하고 있는 정부 의 정책 및 노후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는 우리나라 도시 의 특성에 따른 스마트 유지관리 기술 증대와 같은 우리나 라의 스마트 건설산업 발전 방향과도 일치한다는 생각이 들 었다. 향후 우리나라에서도 첨단센서 기반 모니터링 및 신 뢰할 수 있는 해석기술 개발에 관한 사회적인 요구가 더욱 커질 것으로 판단된다. 이때 응용 분야의 특성을 갖는 건축 및 토목 분야에서 센싱 기술의 발전을 위하여 전자/전기/통 신/로봇/물리/화학/신소재 등 다학제 간 협력 기회가 늘어 날 것이라고 생각된다. 대학에서 건축공학을 교육하는 입장 에서 생각해 볼 때, 앞으로 건축공학을 비롯한 건설 관련 전 공자들에게도 4차 산업혁명 시대의 ICT 융합 기술에 관한 교육은 필수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Sensor 엑스포 및 컨퍼런스 행사는 매년 여름에 개최되 고 있었지만, 2020년에는 COVID-19의 세계적 대유행 에 따른 여행 및 집단 모임의 제한으로 취소되었고, 2021 년에는 2021년 9월 21에서 23일 산호세에서 대면 및 비 대면 회의가 개최될 예정이다. 이 원고는 필자가 2년 전 COVID-19의 세계적 대유행 이전에 참석한 행사의 기억을 바탕으로 작성되었다. 불과 2년 전과 비교하여 급격히 변한 우리 사회 및 삶의 모습에 다시 한번 COVID-19가 인류에 미친 영향을 실감할 수 있었다. 전 세계적으로 상황이 안정 되어 COVID-19 이전의 안전하고 편안한 삶으로 돌아갈 수 있길 바란다. 담당 편집위원 : 기성훈(동아대학교) shkee@dau.ac.kr 기성훈 교수는 한양대학교 건축공학과에서 학사학위 및 석사학위(2001년, 2005년)를 취득하고, 미국 텍사스 오스틴대학교 토목공학과에서 비접촉 표면파 측정을 활용 한 콘크리트 균열깊이 평가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2011 년)를 취득한 후, 미국 뉴저지주립대학 첨단 사회기반시설 및 교통 연구소에서 포스닥과정(2011년~2014년)을 거 쳐, 현재 동아대학교 ICT융합 해양스마트시티공학과 부교수 (2014년~현재)로 재직 중이다. 주 관심 연구 분야는 다중 물리 센서를 활용한 국가기반시설 상태평가 및 유지관리 시 스템 개발이고, 우리학회 학회지편집위원회와 구조물진단 위원회에서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shkee@dau.ac.kr 사진 5. Sensors expo & conference 행사의 박람회장사진 6. Smart Home & Building 구현 예시Technic al Committ ee’ s Activity 제 33권 4호 2021. 07 81 1. 위원회 개요 레미콘(Ready mixed concrete)은 콘크리트의 사용에 있어서 가장 기본이 되며 널리 사용되는 시스템으로 레미콘품질관리위원회는 이러한 레미콘의 품질을 향상시키고 보다 효율적인 활용이 가 능하도록 하는 위원회이다. 위원회는 레미콘과 관련한 시방 규정이나 기술 공법 등에 대한 검토를 실시하고 레미콘을 생산하는 레미콘 업체와 레미콘을 사용하는 시공사 모두의 의견과 역할을 존중 하여 레미콘 사용에 관한 제반 문제를 고민하고 해결하고자 한다. 위원회는 1997년 청주대학교 한천구 교수를 중심으로 ‘현장 콘크리트 품질관리 소위원회’로 시 작하였으며 그 이후 전문위원회 개편과 함께 2003년에서 2004년까지 ‘현장콘크리트위원회’로 명 전문위원회 소개 KCI 201 레미콘품질관리위원회 한동엽 Dong Yeop Han 경상국립대학교 교수 표 1. 레미콘품질관리위원회 위원명단 구분성명소속구분성명소속 위원장한동엽경상국립대학교 교수 위원 박상준한국폴리텍대학 구미캠퍼스 교수 위원 권석민한국토지주택공사 수석연구원박승진롯데건설(주) 품질팀장 권성준한남대학교 교수박용규아주산업(주) 책임연구원 김광기롯데건설(주) 수석연구원박원준강원대학교 교수 김기철(주)무영씨엄건축사사무소 부장박종호(주)삼표산업 책임연구원 김동원GS건설(주) 수석연구원양승규쌍용양회공업(주) 기술연구소 부장 김봉주공주대학교 교수여권영한국시험연구원 대표이사 김영선롯데건설(주) 기술연구원 책임오성우한국건설생활환경시험연구원 책임연구원 김우재(주)포스코건설 그룹장유재강(주)대우건설기술연구원 책임연구원 김재홍한국과학기술원 교수윤기원아주산업(주) 임원 김정빈(주)삼표산업 부장이동규동남기업(주) 책임연구원 김준형현대건설(주) 차장이용수한국콘크리트시험원 책임연구원 김진철한국도로공사 도로교통연구원 연구위원이의배(주)대우건설 기술연구원 선임연구원 김태상한국건설생활환경시험연구원 센터장이재삼한국골재산업연구원 연구위원 김현우마스터 건축 이사이회근삼성물산(주) 건설부문 수석 나옥빈현대건설(주) 차장정연웅한국건설생활환경시험연구원 선임연구원 남정수충남대학교 교수정용욱계명대학교 교수 노성열한국건설(주) 건축상무조만기(주)우미건설 책임연구원 노홍래쌍용레미콘(주) 팀장최현규(주)삼표산업 과장 문형재롯데건설(주) 차장최형길경북대학교 교수 박민용(주)삼표산업 본부장한민철청주대학교 교수 박병문(주)건축사사무소건원엔지니어링 전무홍제태장형기업 대표이사전문위원회 소개 | TECHNICAL COMMITTEE’S ACTIVITY Magazine of the Korea Concrete Institute 82 칭이 변경되었다. 2005년에는 비로소 레미콘품질관리위원회라는 지금의 명칭을 갖게 되었다. 위원회의 위원장은 1997년부 터 2002년까지 5년간 청주대학교 한천구 교수가 역임하였으며 이후 2003년부터 2004년까지 부산대학교 김영수 교수가 역 임하였다. 2005년에 레미콘품질관리위원회로 명칭이 변경된 이후, 2008년까지 아주산업 기술연구소의 윤기원 소장, 2009 년에서 2010년까지 유진기업의 류득현 상무, 2011년부터 2012년까지 청주대학교 한천구 교수, 2013년부터 2014년까지 청주대학교 김성수 교수, 2015년부터 2016년까지 공주대학교 최재진 교수, 2017년에서 2018년까지 계명대학교 정용욱 교 수, 2019년에서 2020년까지 류진기업의 류득현 상무로 이어져 왔다. 현재 위원으로는 <표 1>에서와 같이 학계, 연구기관, 및 공기업, 그리고 레미콘업계와 건설사, 혼화재료업계 등 레미콘과 관련된 다양한 분야의 전문지식과 경험을 보유한 전문위원들 로 구성되어 있다. 2. 주요 활동 내용 우리 위원회는 레미콘의 효율적인 활용과 더불어 레미콘을 사용하는 콘크리트 구조물의 품질확보를 위해 제반 규정을 정비 하고 레미콘 활용 간에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점을 해결하여 효과적인 레미콘 품질확보가 가능하도록 다양한 활동을 진행한다. 즉, 레미콘 품질관리와 관련된 KS, 시방 규정과 같은 제·규정을 레미콘 제조 및 사용과 관련한 다양한 주체들의 입장에서 현실 화하고, 레미콘 제조 및 사용상 문제가 될 소지가 있는 골재 수급 등과 같은 사회적 문제에 대한 해결방안을 함께 모색한다. 이러 한 결과로 다양한 교육, 학술모임 및 지침서 발간 등의 활동을 진행해 왔다. 3. 향후 활동 계획 우리 위원회의 활동계획은 레미콘 사용과 관련한 제반 사항에 대하여 다양한 환경에서 발생하는 품질저하 요인들을 찾아내 어 해결하는 역할을 수행하고자 한다. 즉, 1) 레미콘 관련 KS 규정 및 시방서 규정을 확인하고 변화하는 건설현장의 상황 및 사 회 조건에 따라 제·규정의 개정 요소를 찾아 반영하고자 한다. 또한 2) 레미콘 제조 및 사용과 관련한 사항들에 대해 레미콘 품 질에 문제가 될 수 있는 요소들을 찾아내어 적절한 해결 방안을 마련한다. 최근 골재 문제는 레미콘 제조 및 품질에 지대한 영향 을 미치는 사회적 변화이다. 골재의 안정적인 수급이 부족하고, 양호한 품질의 골재의 확보가 불가능해지는 사회변화는 레미콘 품질에 영향을 줄 것이 확실하므로 이에 대한 위원회 차원의 대안 마련을 모색하고자 한다. 3) 레미콘 시공과 연관된 콘크리트 성능 개선에 대한 연구 노력을 모색한다. 즉, 레미콘 8·5제 및 시공인력의 고령화·비전문화는 레미콘 시공 및 품질에 영향을 주는 부분이므로 콘크리트 품질 개선 및 시공 방안에 대한 연구적 접근을 통해 해결 방안을 모색한다. 레미콘품질관리위원회의 목적은 가장 널리 사용되는 콘크리트의 품질을 향상시켜 구조물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한 것으로 이 에 대한 다양한 문제점을 해결하는 것이다. 즉, 우리 위원회의 성공적인 활동을 위해서는 학계뿐 아니라 산업계와의 긴밀한 협 조가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다. 그러므로 향후의 우리 위원회는 학계와 산업계가 서로 충분하고 긴밀한 교류를 통해 서로 가 갖는 문제점을 해결해 나갈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담당 편집위원 : 김상희(경기대학교) sanghee0714@kyonggi.ac.kr 한동엽 교수는 2014년 The University of Texas at Austin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2016년 3월부터 경상국립대학교 건축공학 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주 연구 관심 분야는 콘크리트의 굳지 않은 성능 개선이며 특히, 레올로지를 활용한 콘크리트 성능 개선 및 평가 와 관련된 연구들을 수행 중이다. 현재 우리 학회 고성능콘크리트위원회 위원이며 레미콘품질관리위원회의 위원장직을 맡고 있다. donald.dyhan@gnu.ac.kr회원칼럼 - 청파기행 | MEMBER COLUMN - CHUNGPA'S TRAVEL ESSAY 제 33권 4호 2021. 07 83 통영 통영이라는 이름은 조선시대에 경상도, 전라도 및 충청도의 수군을 통괄하는 “삼도 수군 통제사영”을 줄여서 부르던 “통제영” 에서 비롯되었다. 통제영은 1592년 임진왜 란 후, 전시 상황에 따라 한산도, 진남군, 용 남군 등으로 그 장소를 옮겨 다녔다. 그러나 1895년 고종 32년에는 통제영이 폐지되었 다. 일제강점기인 1914년 행정개편 시에는 용남군과 거제군을 합쳐서 통영군으로 통 합되었고, 한국전쟁 시에는 잠시 북한군에 게 점령되는 수난을 겼었다. 1955년 통영 읍은 충무시로 승격되었으나, 1955년 충무 시와 통영군이 재통합되면서 오늘의 통영 시가 탄생되었다. 지역 경제 활성화 목적으 로 2008년에는 통영에 케이블카가 설치되 었고, 2010년에는 부산과 거제도를 이어주 는 거가대교가 개통되면서 통영을 찿는 관 광객의 수가 늘어났다. 2015년에는 유네스 코에서 지정하는 “음악창의도시”로 선정됨 으로써, 최근에는 하루에 약 만 여명의 관광 객이 통영을 찾고 있다는 통계가 있다. 통영 주변에는 한산도를 비롯하여 미륵도, 비진 도, 매물도 등 크고 작은 190여 개의 섬들 이 남해 바다에 떠 있어서, 이 지역은 국내 최초로 “한려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현재 통영은 고성반도, 미륵도, 한산 도 등으로 이루어져서 해산물이 풍부하고, 바다와 연관된 문화가 발전하고 있다. 또한 리아스식 해안을 따라 구성된 해안선의 길 이는 약 600 km에 달하며, 쿠로시오 난류 의 영향을 받아 연중 온화한 해양성 기후를 가지고 있다. 통영시의 행정구역은 1읍, 6 면, 8동으로 구성되며, 인구는 약 6만 세대 에 총 14만 명에 달한다. 한산섬 무술년 새해 첫 달에 통영을 찾아간 이 유 중 하나는 한산섬에 위치한 제승당과 수 루에 올라보기 위해서였다. “한산섬 달 밝 은 밤에, 수루에 홀로 앉아, 큰칼 옆에 차 고, 시름하는 적에, 어디서 일성호가는, 남 의 애를 끊나니”이순신 장군이 한산섬에 서 남긴 시가 그곳에 있었다. 약 16만 명의 왜군이 참전했다는 1592년 임진왜란 당 시 조선 수군의 전라좌수사였던 이순신 함 대는 사천, 당포, 율포 등에서 왜군과의 해 전에서 일방적인 승리를 거두고 있었으나, 육지에서는 조선군이 연일 패전을 거듭하 고 있었다. 따라서 왜군은 거듭되는 해전 에서의 패전을 만회하려고 병력을 증가시 키고 있었다. 한산섬 앞바다에서 병력이 크게 증가된 왜군은 대여섯 척의 조선군 판 옥선을 발견하자 즉각 이를 추격하기 시작 했다. 그러나 이순신이 이끄는 조선 수군 은 “학익전법”의 진을 치고 이들이 화포의 사정거리에 들어오기까지 한산만에서 기 다렸었다. 이때 격침되거나 나포된 일본 왜선의 수는 59척이며, 약 5,000여 명의 왜군 중 상당수가 전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 통영 TONGYEONG 심종성 JongsungShim 한양대학교건설환경공학과 명예교수 우리학회12대회장역임회원칼럼 - 청파기행 | MEMBER COLUMN - CHUNGPA'S TRAVEL ESSAY Magazine of the Korea Concrete Institute 84 다. 이 전투는 조선군이 승리했던 행주대 첩 및 진주대첩과 함께 임진왜란 때의 3대 대첩 중 하나로 불리며, 이순신은 그 공으 로 인해 정현대부로 승서 되었다. 당시 한 산대첩은 왜군의 수군 주력을 거의 격파한 해전으로써, 사기가 떨어진 조선군에게 커 다란 용기를 주었다. 이 해전 이후 일본은 조선 수군과의 전투를 자제하라는 명령을 내렸다고 한다. 통영에서 한산섬으로 떠나는 뱃시간은 매시 정각이었다. “왕복이요”하자, “귀항 편 배표는 한 시간 후로 드릴까요?”라는 매표소 아가씨의 반문에 “두 시간이요”라 고 대답했다. 통상 사람들은 한 시간 후에 돌아오는 배편을 이용한다고 한다. 뱃고 동을 크게 한번 울리고 통영 선착장을 떠 나자 강구안을 통해 세병관이 눈에 들어온 다. 배는 곧 이어서 크고 작은 섬들 사이로 물거품을 내며, 거침없이 미끄러져져 나 갔다. 작은 섬 인근에는 부표를 띄워놓은 양식장들이 눈에 들어왔으며, 햇빛을 받 아 반짝이는 겨울바다 빛은 아름다웠다. 이순신 장군이 크게 승리했던 한산대첩이 있었던 한산만 바닷길을 지나고 있다는 자 부심을 느끼면서 약 삼십분이 지나니, 배 는 거북등대를 돌아 한산섬에 도착한다. 선착장에서 오른편으로 이어지는 제승당 가는 길은 흙이 약간 보이는 콘크리트포장 으로 잘 다듬어져 있었다. 길 왼편은 아직 꽃은 피지 않았지만 잎이 탱탱한 동백나무 들이 가득했고, 오른편은 에메랄드 빛을 뿜어내는 바다가 있다. 모형으로 만들어 놓은 조선군 수군병사가 지키는 제승당에 그림 1. 강구안에서 바라보는 세병관 그림 2. 한산대첩의 현장인 한산만과 거북등대 그림 3. 통영 앞바다의 양식장 그림 5. 한산섬 수루의 전경과 한산도가 그림 4. 조선 수군이 지키는 한산섬 제승당 입구제 33권 4호 2021. 07 85 Tongyeong 는 한산대첩에 관련된 영상물이 방영되고 있었고, 이순신 장군의 영정은 충무사에 있었다. 한산도가를 남겼던 수루에 오르 니, 탁 트인 바다 전망이 기가 막혔다. 한 산정에서는 병사들과 이순신 장군이 바다 건너로 활을 쏘았던 표적이 그대로 남아 있었는데, 표적까지의 거리는 145 m라고 한다. 세병관 세병관은 통영시 한복판에 위치하며, 통제영의 객사로서 1605년에 건립되었 다. 세병이란 “만하세병”에서 따온 말로 서, 은하수를 끌어와 병기를 씻는다는 의 미라고 한다. 정면 9칸, 측면 5칸으로 구 성된 단층 구조이며, 팔작지붕의 형태를 갖추고 있는데, 이는 경복궁의 경회루, 여 수 진남관과 더불어 조선시대 건축물 중 바닥면이 가장 넓은 건물 중 하나다. 장대 석 기단 위에 50여 개의 민흘림기둥을 가 지고 있으며, 벽체나 창호가 없어서 질박 하면서도 웅장한 느낌을 주어 통제영의 기 상을 잘 표현하고 있다고 하겠다. 세병관 이라고 크게 쓰인 현판은 제137대 통제사 인 서유대가 쓴 글씨라고 한다. 초대 통제 사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시며, 임진왜 란이 발발했던 이듬해인 선조 26년에 “삼 도수군통제사”라는 직제를 신설하면서, 당시 전라좌수사인 이순신 장군이 겸하게 하였다고 한다. 통영 시내 한복판에 위치한 세병관을 찾아간 시간은 오후 늦은 시간이었다. 입 구에는 조선 군사들이 사용하였던 군기들 이 양측으로 늘어서서 강구안에서 올라오 는 바닷바람에 휘날리고 있어서, 제법 웅 장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공교롭게도 세 병관은 보수공사 중이어서, 민간인을 통 제하는 담장 너머로 민흘림기둥과 팔작지 붕 만을 관람할 수 있었다. 엄청나게 큰 글 씨로 쓰인 “세병관”이라는 현판을 뒤로하 고, 우리 일행은 세병관 오른쪽 언덕에 위 치한 주전소가 있었던 옛터로 이동했다. 주전소란 조선시대에 동전을 만들던 곳인 데, 수년 전 이 지역에서 상평통보와 함께 화로가 출토되었다고 한다. 지금까지 주 전소가 발견된 곳은 훈련도감, 어영청, 금 위영뿐 이어서 통제영에서도 화폐를 주조 했었다는 새로운 사실이 확인된 것은 화폐 사적으로 상당한 의미가 있다고 한다. 세 병관의 왼편에는 조선시대의 12공방을 모 형을 만들어 재현해 놓은 박물관이 있다. 공방은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의 한산도 진 영에서 처음 만들어졌는데, 군기와 진상 품을 제작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공방 은 조선시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상호 분 업 및 협업의 체제로 바뀌었고, 12공방으 로 변화되었다고 한다. 조선시대의 12공 방 체제는 고종 32년, 즉 1895년에 삼도 수군통제영이 폐쇄될 때까지 지속되었는 데, 그 맥은 오늘날 통영의 전승공예로 계 승되고 있다. 12공방 중 소목방에서는 통 영반을 생산했었는데, 통영소반은 황해도 의 해주소반, 전라도의 나주소반과 함께 조선의 3대 소반으로 명성이 나있다. 또한 통영의 자랑거리인 통영자개는 12공방 중 패부방과 칠방의 협업으로 그 기능이 전수 되고 있다. 나전 칠기에 자개무늬를 넣는 기법은 요즈음도 최고의 걸작으로 많은 사 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예향 고종 32년인 1895년, 통영에서 통제영 이 사라지고 일반 행정구역으로 변화하는 현실에 놀란 통영 사람들은 이러한 변화에 빠르게 적응했다. 서양 선교사가 다른 지 그림 6. 세병관입구에서 관광객을 맞는 조선의 군기행렬그림 7. 통제영의 객사인 세병관회원칼럼 - 청파기행 | MEMBER COLUMN - CHUNGPA'S TRAVEL ESSAY Magazine of the Korea Concrete Institute 86 역보다 빨리 들어와 충무교회를 세웠고, 새로운 서구 문명이 빠르게 전파되었다. 특히 예술 분야에서는 많은 인재가 쏟아졌 다. 시인 유치환, 시조 시인 김상옥, 꽃의 시인 김춘수, 소설가 박경리, 작곡가 윤이 상, 화가 전혁림 등은 모두 통영 출신이다. 그래서 통영은 예향으로도 불린다. 통영에 머무르는 동안 통영 예술가 중 에서는 가장 원로이신 유치환의 청마문학 관을 방문했었다. 문학관 입구에는 “파도 야 어쩌란 말이냐,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로 시작되는 유치환의 명시가 방문객의 눈 길을 끌고 있었다. 청마문학관은 유치환 (1908 ~ 1967)의 문학정신을 보존하고 계승하기 위해 2000년에 시 전시관과 생 가를 복원해서 개관했다. 전시관에는 유 치환의 유품 100여 점이 전시되어 있었 고, 생가는 본채와 아래채가 망일봉 기슭 에 재현되어 있었다. 2014년부터 청마문 학상을 시상하기 시작하였는데, 통영시에 서는 그 다음 해부터 이를 통영시 문학상 으로 이름을 변경하였고, 시상 종류를 청 마문학상, 김춘수 시 문학상, 김상옥 시조 문학상 등으로 확장하여 시상하고 있다고 한다. 통영국제음악제는 2002년부터 해마 다 통영에서 개최되고 있는데, 이는 1995 년 세상을 떠난 윤이상을 기리기 위한 음 악제이다. 무술년 첫 달에 행하였던 이번 여행 중에는 윤이상 관련 음악제는 하나도 없어서 섭섭했었다. 윤이상은 1917년 경 남 산천군에서 태어났으며, 통영에서 유 년시절을 보냈었고, 1935년 일본 오사카 음악대학에서 첼로 및 작곡 이론을 배웠 다. 1941년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 참 전하자, 윤이상은 한국으로 돌아왔으나, 조선의 가곡 악보가 발견되어 옥살이를 하 기도 했다. 1945년 광복 후에는 윤이상, 김춘수, 전혁림 등과 함께 통영문화협회 를 만들었고, 통영의 모든 학교의 교가를 작곡하기도 했다. 이후에는 통영여자고 등학교에서 음악교사로 일하다가 1953 년 휴전과 함께 서울로 올라와서 서울대학 교, 덕성여대 등에서 강의하면서 활발한 작품 활동을 했다. 그러나 한계를 느낀 윤 이상은 1956년 유럽으로 유학을 떠났으 며, 1964년에는 서베를린에 정착했다. 그 러나 윤이상은 북한에 다녀온 것 이 발각 되어 박정희 정권은 그를 간첩으로 몰았 고, 사형선고를 받았다. 이 사건은 1967 년의 "동백림 사건"이라고 불린다. 윤이상 이 감옥살이를 시작하면서, 많은 외국인 들이 구명운동을 벌였으며, 결국 1969년 특사로 풀려났다. 윤이상은 1971년 서독 으로 귀화했다. 그 후 윤이상은 북한을 자 유롭게 오가게 되었고, 북한에서는 1982 년부터 매년 윤이상 음악회를 개최하였 다. 1994년 윤이상은 모든 정치적인 활동 을 중단한다는 발표를 하면서, 우리나라 에서도 윤이상 음악제가 처음 열렸다. 그 러나 윤이상은 다음 해인 1995년 베를린 에서 폐렴으로 사망하였고, 윤이상의 부 인은 윤이상 탄생 90주년을 기념하기 위 해 2007년도에 대한민국에 입국했다. 40 년 만의 귀국이었다. 한 예술가의 슬픈 얘 기다. 그림 8. 건립 100주년을 넘긴 충무교회 그림 9. 통영 르네상스의 주역들제 33권 4호 2021. 07 87 Tongyeong 미륵산 한려해상국립공원에서 가장 큰 섬은 미 륵도다. 하지만 통영에서 미륵도로 가려 면, 배를 타는 것이 아니라, 충무교나 통영 대교를 건너야 한다. 불과 몇 해 전 만해도 해저터널을 이용했었다. 이 해저터널은 국 내 최초의 해저터널이다. 예전에는 “충무 터널”이라고 불리다가 요즈음에는 “통영 해저터널”이라고 부른다. 통영해저터널은 폭 5 m, 높이 3.5 m, 총 길이 483 m 이며, 1927년에 착공하여 1932년에 완공되었 다. 예전에는 고성반도와 미륵도를 이어주 는 중요한 교통수단 역할을 하였지만, 요즈 음에는 충무교와 통영대교가 개통되면서, 차량의 교통수단 기능은 상실되었고 보도 로만 이용되고 있다. 미륵도 북측에는 높이 461 m인 미륵산 이 있다. 정상까지 오르는 등산길은 다양하 지만 요즈음에는 케이블카를 활용하는 관 광객으로 항상 붐빈다. 케이블카의 연장은 1,975 m에 달하여, 아직까지 우리나라에 서는 가장 길다. 우리 일행도 8인승 케이블 카에 몸을 실었다. 미륵산 정상에서는 국 립공원 한려수도라는 말을 실감할 수 있다. 미륵산 정상에서 맞이하는 해돋이가 천하 제일이라고 하는 소리가 있어서 특히 새해 아침에는 많은 인파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고 한다. 섬에서 섬으로 이어지는 바다 백 리 길에 포함되는 한산도, 비진도, 연대도, 연하도, 욕지도, 매몰도 그리고 사량도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우리는 다행하게도 맑은 날씨를 만나 모든 섬들을 육안으로도 확인 할 수 있었으나, 운이 안 닿으면 짙은 해무 때문에 한 폭의 동양화만 감상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미륵산 남측 산기슭에는 소설가 박경리 기념관이 있다. 기념관에서 방영되는 동영 상에 의하면, 대하소설 토지는 무려 26년 간의 집필을 통해 발간된 5부작이며, 전권 은 20권이다. 토지는 동학농민혁명의 불길 이 타올랐을 때부터 해방되기까지인 격동 의 세월을 배경으로 하면서, 그 시절 민초 들의 삶을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소설 토지에 등장하는 인물 수는 무 려 600여 명에 이른다. 수많은 캐릭터들의 생생한 심리 묘사를 위해 작가는 작업실 벽 그림 12. 통영해저터널 방문기념그림 10. 미륵산에서 바라보는 한려수도 그림 11. 미륵산 정상으로 가는 케이블카그림 13. 통영 앞바다의 무술년 해돋이Nex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