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revious인문학 산책 48 자연,터널 그리고 지하공간 교황의 호칭 폰티프(Pontiff)는 다리를 뜻하는 폰스와 만든다는 뜻의 파치오가 합쳐진 말이다. 이를테면 교황을 ‘사람과 신을 잇기 위해 다리를 만드는 사람’으로 본 것이다. 이보안드리치1)의 소설 ‘드리나강의 다리’는 다리 가 세워진 1516년부터 제1차 세계대전으로 다리가 파괴될 때까지 4백년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드리나 강은 발칸반도를 관통하며 흐르는 강이다. 한쪽에는 무슬림인 보스니아인들이, 건너편에는 그리스 정교 회를 믿는 세르비아인들이 산다. 강은 오랜 세월 갈 등관계에 있던 두 민족 사이로 흐르며 두터운 단절 의 벽이 되어 왔지만 다리가 놓이자 많은 변화가 일 어났다. 두 민족의 이질적인 언어와 문화는 서로에 게 영향을 미치며 점차 융화되어 갔다. 다리를 통해 거래가 이루어지면서 삶은 윤택해졌고 서로를 필요로 하게 되었다. 아이들은 서로 친구가 되었다. 다리를 넘어 하루 종 일 놀다가 저물녘에는 아쉬운 걸음을 돌려야 했다. 1) 이보 안드리치(Ivo Andric. 1892~1975). 크로아티아 태생의 작가로 ‘드리나강의 다리’로 1961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이음을 향한 인간의 본능, 다리 드리나강의 다리 김재성 (주)동명기술공단 부사장이음을 향한 인간의 본능, 다리 Vol. 27, No. 2 49 하지만 종교적인 갈등으로 분쟁도 끊임이 없었다. 다리를 배경으로 이보 안드리치가 그려낸 200여 개의 에피소드에 는 종교적인 편견이나 인종 민족의 갈등에도 불구하고 우정과 삶을 이어나가려는 사람의 본성이 따듯하게 그려져 있 다. 4백여 년간 다리를 중심으로 교차해 온 평화와 분쟁의 역사는 마침내 다리가 폭파되면서 막을 내린다. 안드리치는 ‘다리는 인간이 만들어 낸 가장 뛰어난 건축물이다’라고 말한다. 아마도 숱한 갈등에도 불구하고 사랑과 우정을 나누며 상생했던 시간의 소중함을 일깨우려는 뜻에서 그렇게 말하는 게 아닐까 싶다. 언어와 종교가 다르고 생김새 문화 관습 이 다르지만 어쨌든 서로 만나고 화해하기 위해서는 다리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다리는 무엇일까 처음에는 발을 적시지 않고 물을 건너기 위해서였을 듯하다. 그러나 고대부터 지금까지 다리가 변모해 온 과정을 보 면 다리를 간단히 정의하기가 쉽지 않다. 주변을 둘러보라. 보도육교나 고가차도, 머리 위로 지나가는 도시철도 등 물 과는 상관이 없지만 다리라고 부르는 수많은 구조물이 눈에 들어올 것이다. 조금만 상상력을 발휘하면 더 많은 다리를 볼 수 있다. 신과 인간을 잇는 이리스의 무지개다리, 견우직녀가 건너는 은하수의 칠석교, 이승과 부처님의 나라를 잇 는 불국사의 청운교 등...... 그 안에는 오랜 세월 인류와 함께 해 오면서 삶에 스며든 수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다리를 단순하게 정의하기 어려운 것은 이 때문이다. 그곳에 깃들어 있는 상징과 은유를 대체할 만한 말을 어디서 찾을 수 있겠는가. 일반적으로 쓰이는 교량(橋 梁) 은 차도(橋)와 보도(梁)를 합쳐서 이르는 말이었다. 중국의 고서 경주(經 註)2) 에는 마차가 다닐 수 있는 든든한 길을 교(橋), 사람이 걸어 다닐 수 있는 길은 량(梁)이라고 구분해 놓았다. 두 한자 에 모두 나무(木)가 들어있는 것을 보면 당시 만들어진 다리가 대부분 나무다리가 아니었을까 싶다. 다리에 대한 사전적 정의는 별로 신통해 보이지 않는다. ‘물을 건너기 위해 만든 것’이라고 단순하게 설명한 사전이 있는가 하면 가설방법 이나 형태까지 곁들여 장황하게 설명한 사전도 있다. 옥스퍼드 사전은 브리지( Bridge) 는 ‘계곡이나 물 등을 넘어가기 위 해서 만든 구조물’이라고 정의한다. 반면에 신화나 종교 문학작품에서 볼 수 있는 다리 개념은 좀 더 사색적이다. ‘드리나강의 다리’에서 이보 안드리치 는 다리가 두 개로 나뉘어 있던 세계를 하나로 잇는 문명의 가교라고 말한다. 발을 적시지 않기 위해 놓은 징검다리에 서 나뉘어 있는 두 세계를 잇는 것, 문명의 화합까지 어의를 넓혀 온 인류의 생각에 나는 아름다움을 느낀다. 어쩌면 그 생각의 근저에는 차이를 무화시켜 모든 것을 하나로 이으려는 관계의 욕구 또는 융화의 본능이 자리 잡고 있는 게 아닐까. 2) 한(漢) 나라 시대에는 진시황의 분서(焚書)에서 살아남은 유교 경전을 주해하려는 훈고학의 열풍이 불었는데 경주(經註)는 이때 쓰여진 책이다.인문학 산책 50 자연,터널 그리고 지하공간 징검다리 징검다리에서 시작해 보자. 언제부터라고 할 수는 없지만 가장 먼 저 만들어진 다리는 시냇물에 듬성듬성 놓은 징검다리일 듯싶다. 처 음에는 흩어져 있던 돌을 밟고 건너다가 차츰 근처에 있던 큰 돌을 옮겨 가지런히 놓았을 것이다. 아마도 이렇게 놓인 돌을 밟고 물을 건너본 경험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물을 건널 때 짓궂게 물을 튀기 는 아이, 흔들리는 돌을 헛디뎌 발을 적신 기억 등. 도시에서 온 소녀 와 시골소년의 풋풋한 사랑을 그린 ‘소나기’도 돌다리를 건너며 시작 되지 않는가. 징검다리는 아름다운 추억이 깃들어 있긴 하지만 그리 신통한 다 리는 아니다. 조금만 물이 불어도 발을 적시기 십상이고 무거운 짐을 지고 건너다 중심을 잃으면 낭패이니 말이다. 그렇긴 해도 한 여름 큰물이 지나가고 나면 징검다리는 늘 다시 놓여졌다. 평상시는 물높 이나 개울 폭에 큰 차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디딤돌을 놓는 것도 그 리 힘들 게 없었다. 개울가에 흔하게 널려 있는 돌을 옮겨다 평평한 쪽이 위로 오게 하고 적당히 움직이지 않게 괴면 그뿐이었으니 말이다. 돌다리 인류는 선사시대부터 징검다리나 나무다리 돌다 리를 만들어왔다. 돌을 다듬어 연장을 만들거나 조 형을 만드는 기술은 문명의 역사만큼이나 오래 되었 다. 고대의 거석 구조물을 보면 정교한 장비를 갖춘 현대의 석공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구분하기 힘들 정도다. 구지 따지자면 돌을 다듬는 시간이 좀 빨라 졌다는 것뿐이다. 아무튼 이렇게 정교하게 돌을 다 듬을 수 있게 되면서 다리도 점점 든든하고 아름다 운 구조물로 바뀌어 갔다. 돌은 나무에 비해 강도도 크고 썩지도 않는다. 자체의 무게 때문에 웬만한 물 살에는 잘 떠내려가지도 않는다. 나무나 흙다리가 더 많이 만들어지긴 했겠지만 지금 우리가 볼 수 있는 형교(청계천 수표교) 징검다리이음을 향한 인간의 본능, 다리 Vol. 27, No. 2 51 것은 거의 돌다리뿐이다. 돌다리는 기둥을 세우고 보를 얹는 형교와 아치 형태로 돌을 쌓고 그 위에 채움돌과 판석을 까는 홍예교가 있다. 근대 이전에 만들어진 우리나라 다리를 살펴보면 형교의 교각 폭은 길어야 3미터에 불과하다. 그러나 홍예로 놓은 다리는 반원형 양끝이 10미터를 훌쩍 넘기는 것들이 많다. 흥국사의 홍예교는 다리 폭이 11미터에 이른다. 이외에도 선 암사 승선교, 태안사 능파교 등은 아름다운 홍예교로 유명하다. 고대 로마나 유럽에서 볼 수 있는 다리도 하나같이 홍 예교다. 로마를 가로지르는 테베레강의 다리를 비롯하여 런던 템즈강, 프랑스 세느강, 독일 라인강에 놓인 다리는 홍예 의 역사가 얼마나 오래 되었는지 잘 보여준다. 다리의 개념이 바뀌다 고대에 만들어진 다리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오래된 다리는 가르 강의 수로교다. 그런데 이 다리는 사람이 건너 다니기 위해서가 아니라 물을 위해 만든 다리다. 주객이 전도된 것이다. 물은 높은 데서 낮은 데로 흐르며 일정한 경사 가 있어야 한다. 경사가 너무 커도 안 되고 작아도 안 된다. 그래서 물을 긷는 곳에서 쓰는 곳까지 정밀하게 측량한 뒤 높은 곳을 지날 때는 땅을 파내고, 낮은 곳을 지날 때는 다리를 놓아서 평평하게 해야 한다. 가르강의 수로교3)는 석회 암을 3단으로 쌓아올린 홍예교다. 물살을 많이 받는 아래쪽은 넓게 하고 위쪽은 작게 하였다. 수로교가 만들어지자 다 리의 개념은 조금 더 넓어졌다. 수로교는 사람이 아니라 물이 건너기 위한 구조물이며 다리가 놓인 곳도 물위가 아니라 땅위다. 다시 말해 ‘물위든 땅위든 공중에 무언가가 지나갈 수 있게 만든 것’이라는 개념으로 다리가 바뀌게 된 것이다. 이즘의 다리는 주로 ‘빠름’을 위해 만들어진다. 물을 흘려보내기 위해 일정한 구배로 다리를 놓은 것처럼 오르막이 나 내리막이 거의 없는 평탄한 길을 위해 다리를 놓는 것이다. KTX가 시속 400킬로미터로 달릴 수 있는 것은 선로의 평탄성에 있다. 오르막에서는 에너지를 소모하고 속도도 줄어들지만 반대로 내려갈 때는 감속을 위해 브레이크를 밟아 야 한다. 브레이크는 속도를 내는데 써야할 에너지를 열에너지로 날려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오르막이나 내리막이 없 이 평탄하게 길을 만들어주면 거의 모든 에너지를 열차가 달리는데 쓸 수 있고 가속의 효과도 그만큼 좋아진다. 고속철 도에 다리나 터널이 많은 것은 이 때문이다. 높낮이가 심한 지상에서 어느 정도 떨어져 일정한 높이로 달릴 수 있게 함 으로서 에너지와 속도 효율을 동시에 얻게 되는 것이다. 고속철도뿐 아니라 자동차 도로에서도 경사를 줄이고 평탄성 을 얻기 위해 많은 다리가 놓여진다. 도심의 고가차도 역시 빠름을 위해 놓인 다리라는 점에서는 다를 바 없다. 다리는 공중에 만들어진 길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물을 위해서 만든 수로교까지 다리의 개념을 확장해 보면 우리는 이와 유사한 수많은 다리 를 만나게 된다. 다리는 공중에 만들어진 길이며, 길은 일정한 움직임이 반복되는 공간이다. 그러므로 어떤 길이 지표나 3) 가르강 구간의 수로교 규모는 높이 49m, 다리 전체 길이는 275m터다. 홍예의 폭은 20m에서 4.8m로 각기 다르다.인문학 산책 52 자연,터널 그리고 지하공간 지중이 아니라 공중에 있다면 그것은 다리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지금은 사라진 세계무역센타 꼭대 기에서 줄타기를 했던 필립 프티(Philippe Petit) 를 떠올 려 보라. 그는 높이가 541미터나 되는 쌍둥이 건물 사이에 가느다란 줄을 걸어놓고 맨몸으로 건넜다. 사람이 건너기 위해서 공중에 걸쳐놓은 줄은 얼마나 멋진 다리인가. 다리가 아니지만 다리라고 부른다 불국사에는 청운교와 백운교라는 다리가 있다. 아래쪽은 아름다운 홍예가 받치고 있고 양옆에는 난간까지 세워져 있다. 하지만 청운교와 백운교는 다리가 아니다. 바닥에서 위쪽 대웅전으로 올라가는 33개의 계단일 뿐이다. 여기에 다 리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피안과 속세를 연결하는 관념의 다리이기 때문이다. 살펴보면 우리 주변에는 다리가 아니지 만 다리라고 부르는 것들이 많다. 상상이나 신화를 통해 만들어 온 다리도 적지 않다. 한여름 밤 별사이에 늘어선 까마 귀는 은하수를 건너는 다리가 되고, 가을 초입 하늘에 길게 늘어선 철새 들은 객지 생활에 지친 나그네를 고 향으로 이끄는 상념의 다리가 된다. 운이 좋다면 비 온 뒤 먼 산에 놓인 빛의 다리를 볼 수도 있다. 그리스 시대부터 무지개는 땅과 하늘, 인간 과 신의 세계를 잇는 상상의 다리였 다. 풋풋한 동심으로 바라보면 그 위로 분주하게 오가는 이리스(Iris) 여신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하늘과 땅을 잇는 상상의 다리는 무지개뿐만이 아니다. 하늘의 거인 나라로 가는 재크의 콩나무, 선녀와 나무꾼을 하늘로 끌어 올리는 동아줄은 둘로 나뉜 세계 또는 인간과 신의 간극을 잇는 다리다. 성서에서 야곱은 하늘로 이어진 사다리를 꿈꾼다. 광야에서 돌을 베고 잠드는 고단한 삶과 하늘로 이어진 사다리는 오랜 세월 시적인 상상력을 자극해 왔다. 사이먼과 가펑클은 ‘험한 세상의 다리가 되어’ 사람들을 희망의 세계로 이끄는 디딤돌이 되겠다고 노래한다. 사 람과 사람을 잇는 가교, 그 역시 얼마나 멋진 다리인가. 무역센타를 건너는 필립 프티이음을 향한 인간의 본능, 다리 Vol. 27, No. 2 53 다리는 모든 이음이다 교황을 의미하는 폰티프(Pontiff)는 라틴어 폰티펙스 (Pontifex) 에서 유래된 말이다. 다리를 뜻하는 폰스(p ons) 와 만든다는 뜻의 파치오(facio)가 합쳐진 것이다. 이를테면 교황을 ‘사람과 신을 잇기 위해 다리를 만드는 사람’이라고 본 것이다. 지 난 5월 새로 선출된 교황 레오 14세 역시 ‘평화가 함께 하기를’이라는 첫 메시지를 통해 분열된 세계를 하나로 잇는 것 이 자신의 소명임을 보여주었다. 물론 이는 인류의 여러 문명권에서 보편적으로 형성해 온 샤머니즘과도 다르지 않다. 우리나라 무당은 물론이고 인디언 샤먼, 그리스의 무녀 피티아(pyt hia) 나 쿠마에 시빌(Cumaean Si byl) 등이 모두 신과 인간 을 이어주는 다리 아니겠는가. 결국 다리의 가장 근저에 있는 개념은 ‘이음’이 아닐까 싶다. 땅이나 바다 세계를 포함하여 나뉘어 있거나 차이를 가 진 모든 것을 서로 이어주는 것을 그냥 다리라고 부르면 어떨까. 꽤 그럴듯해 보인다. 하지만 이렇게 쓰고 보니 길의 개 념 속으로 다시 되돌아 온 느낌이다. 떨어져 있는 두 곳을 잇는 모든 것이 길이듯이 다리 역시 나뉘어 있는 두 곳을 잇 는 길, 차이를 가진 모든 간극을 메우는 것으로 어의를 넓혀도 좋을 듯하다. 끝.문화예술 산책 54 자연,터널 그리고 지하공간 <그림 1> 『침대에서(In Bed)』, 2005년 작품, mixed media, 162x650x395cm,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 컬렉션 (ⓒ필자 촬영, 2025년) “예술가는 ‘평범’ 속에서 ‘비범’을 찾아내는 사람이다.”라는 문구를 그 어딘가에서 들은 적이 있다. 예술가 론 뮤익 (Ron Mueck, 1958년~)은 일상의 평범한 인물을 대상으로 비범한 예술을 표현한 작가이다. 그의 작품을 마주하고 있으 면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 1877~1962년)가 말한 “가장 아름다운 건 기쁨을 주는 동시에 슬픔과 불안을 준다.” <제5편> 론 뮤익(Ron Mueck) 문지영 <공학박사+조경학석사+예술학학사+외국어고>, 現 글쓰고 그림그리는 작가, 대한토목학회 출판도서위원회 위원장, 한국여성디자이너협회 이사<제5편> 론 뮤익(Ron Mueck) Vol. 27, No. 2 55 라는 어구가 떠오른다. 극한의 사실성(하이퍼 리얼리티; Hyper Reality)을 보여준 그의 작품은 ‘어쩜 이렇게까지나 애를 썼지!’의 감탄사를 내뱉게 하는 힘이 존재한다. 동시에 깊은 여운과 생각거리를 감상자에게 던져주더라. 그는 일상의 평범함을 집요하게 관찰하여 (소리를 내는 게 아닌) 무언(無言)의 울림 형태로 관객에게 특정한 개별 메시지를 전달하 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MMCA Seoul)에서 2025년 4월 11일부터 7월 13일까지 『론 뮤익(Ron Mueck)』 개인전이 열 린다. 전시 운영 시간은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인데, 수요일과 토요일에는 밤 9시까지 야간 운영을 한다. 국립현대미술관 메인 로비에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지하 1층으로 내려가면 5전시실과 6전시실에서 작품을 관람할 수 있다. 6전시실에서는 한층 더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을 따라 사진전과 영상기록물 관람이 가능하다. 입장료는 인 당 5,000원이다. 국립현대미술관 홈페이지에 접속해서 사전에 예약하면 편하다. 예약 완료 후 [나의 페이지 ⇒ 예 매내역확인]으로 들어가면 재확인할 수 있으며, QR코드는 관람 당일에 활성화된다. 참고로 각 전시실 입장 시 QR 코드를 찍어야 한다. 론 뮤익은 1958년 호주 멜버른에서 독일계 부모 아래 태어났다. 현재는 영국에서 활동 중이다. 그의 부모는 인형극 인형 제조를 하던, 작은 장난감을 만드는 사람이었다. 이는 아들, 론 뮤익의 손재주와 환경에 영향을 주었으리라. 과거 에 뮤익은 영화, 광고, 광고 소품 제작, 아동TV 제작감독, 캐릭터디자인, 캐릭터 모형 만들기, 애니매트로닉스 (Animatronics)1) 제작 등의 일을 한 적이 있다. 현재의 작가 활동에 바탕이 된 활동들로 보인다. 조각가로 대중의 주목 을 받은 작품은 <죽은 아버지(Dead Dad)>(1996~1997년)로 런던 왕립미술원에서 열린 《Sensation: Young British Artists from the Saatchi Collection》 전시에서다. 그의 아버지를 시체 느낌 그대로로 표현한 작품으로 작은 크기로 만 들어졌으나 섬세한 디테일만큼은 축소되지 않았다. 높이 5m의, 쭈그려 앉은 초대형 조각 <소년(Boy)>(1999년)이 2001 년 제49회 베니스 비엔날레에 출품되어 세상을 또 한 번 놀라게 하였고, 그 이후로 세계 각국(북미, 유럽, 남미, 극동 지 역 등)에서 개인전이 열렸다. 지금의 전시는 한국에서 여는 그의 첫 번째 개인전이다. 이곳에는 그의 작품 10점이 선보 인다. 고해상도의 작업실 풍경 사진 <론 뮤익의 작업실, 런던, 2005~2013년> 여러 컷(12점), 고화질로 찍은 그의 작업 과정 동영상 <스틸 라이프: 작업하는 론 뮤익>(2013년, HD영화, 48분), <치킨/맨>(2019~2025년, HD영화, 13분)은 잊 지 말고 꼭 챙겨 보길 바란다. 6전시실 지하공간에 마련되어 있다. 작업 진행 과정을 촬영한 영상은 그의 차분한 성격 을 그대로 드러내더라. 조용~하다. 어두운 공간에서 무음에 가까운 영상을 오랫동안 감상하다 보면 정신을 놓기 쉬우 니(=깜빡 잠이 들 수도 있으니) 전시 관람 전날에는 푹 자는 게 현명할 것이다. 사진과 영상은 모두 고티에 드블롱드 (Gautier Deblonde)의 작품이다. 1) 애니매트로닉스(Animatronics)란 영화나 테마파크에서 사용되는 특수 기술의 하나로 애니메이션(Animation)과 일렉트로닉 스(Electronics)의 혼성어(混成語)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촬영용 또는 관람용으로 쓸 정교한 로봇을 만들어서 움직이게 하 는 것을 말한다. (출처: 나무위키)문화예술 산책 56 자연,터널 그리고 지하공간 론 뮤익(Ron Mueck)은 하이퍼리얼리티(Hyperreality, 극사실주의) 작품 창작을 추구하는 조각가다. 그러나 크기만 은 사실주의를 탈피하고 있다. 강하게 어필할 정도로 크거나 자세히 들여다보도록 실재보다는 다소 작거나, 둘 중 하나 를 택한다. 여기엔 작가의 숨은 의도가 담겨 있다. 크기가 작은 작품은 자세히 몰입하여 들여다봄으로써 작품의 ‘내면’ 에 더욱 집중하도록 관람객의 관심을 집중시킨다. 크기가 큰 작품을 통해서는 ‘놀라움, 당혹감, 이질성 등’의 예상하지 못했던 경험을 선사한다. 대형 <그림 2~4> 『마스크 Ⅱ(Mask Ⅱ)』, 2002년 작품, mixed media, 77x118x85cm, 개인소장 (ⓒ필자 촬영, 2025년)<제5편> 론 뮤익(Ron Mueck) Vol. 27, No. 2 57 <마스크 Ⅱ(Mask Ⅱ)>를 꼼꼼하게 자세히 감상해 보라. 잔주름 하나, 털 하나, 땀구멍 하나까지 집요하게 놓치지 않 고 극사실적으로 표현했다. 작가의 세심하고 예민한 성격이 그대로 읽히는 부분이다. 살짝 벌어진 입에서는 숨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곧 침이 흘러내릴 것 같기도 하고. 털 한 올에도 온갖 정성을 다했다. 털의 색상과 결, 털을 심은 방향, 길이, 자연스럽게 가지런함까지 작가의 치밀한 계획 하에 계산된 완벽주의 성격이 드러난다. 계산기를 두드렸다는 의 미의 계산은 아니고, 지극히 감각적인 영역에서의 계산된 시나리오를 지칭한다. 본 작품에는 놀라운 반전이 있으니, 작 품의 좌우로 이동하다 보면 마스크 내부(뒷면)가 텅 비어있는, 말 그대로 얼굴이 아닌 마스크임을 우연인 듯 갑자기 직 시하게 된다. 일정 각도에서 혹은 특정 위치에서 눈에 보이는 게 진실은 아니라는 진리를 직감적으로 깨닫게 된다. ‘껍 데기’. ‘자아 상실’. ‘반전’. ‘또 다른 진실’, <마스크 Ⅱ(Mask Ⅱ)> 작품의 또 다른 제목으로 불려도 될 제2의 작품명들이 라고 생각한다. 론 뮤익의 <마스크 Ⅱ(Mask Ⅱ)> 작 품 뒷면을 보고 느낀 충격을 평면의 그 림으로 나타내보았다(그림 5). 가면. 실 체와 껍데기의 불일치. 필자의 작품에서 는 마스크를 좋은 의미로 해석했다. 관계 개선 혹은 상호 배려와 존중을 위한 하얗고 선한 역할의 가면인 <하얀 거짓말>은 오늘날의 다소 폭력적인 인 간관계망, 소통의 부재, 외로움, 메말라 가는 사회를 조금이라도 개선하는 방법 가운데 하나로 제시한다. 개인적으로는 <침대에서(In Bed)> 작 품(그림 1, 그림 6~8)이 가장 마음에 들 었다. 이 역시 대형 작품이다. 걸리버여행기의 걸리버와 같은 거인 크기의 여인과 침구류에 한 번 놀랐고, 이불의 디테일에 또 한 번 놀랐다. 거위 털이 가득 들어간 따뜻한 침구류일까? 이불의 구김에 가만히 손을 올려 놓아보고 싶은 충동까지 느껴졌다. 베개 역시 탄탄하면서도 푹신해 보인다. 잠이 솔솔 올 것만 같다. 극도의 흰 칼라(색)도 탁월한 선택이다. 완벽한 침구류를 갖춘 그녀는 잠을 자는 게 아닌, 사색에 잠겨 있다. 그녀의 시선은 허공을 맴돈다. ‘무슨 생각을 하나?’ 무념무상(無念無想) 같기도 하고. 골똘히 집중? 멍때리기? 하는 그녀는 지금, 이 순간, 나와 같은 공간과 시간에 있으나 별개의 시공간에 존재하는 것만 같다. 함께 하지만 함께할 수 없는 그녀다. 저 푸근한 침구류 세트는 필자가 집으로 가져가고 싶긴 했고. <그림 5> 『하얀 거짓말』 캔버스에 칼라펜화, 27x22cm (ⓒ문지영 작품)Nex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