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revious문화예술 산책 88 자연,터널 그리고 지하공간 그림과 사진이 빼곡하게 걸린 통로(그림 19)를 지나 실내로 들어가면 과거 방직공장의 흔적이 느껴진다(그림 20). 높은 천장의 삼각 프레임 지붕의 건물 골조, 방직기계가 일렬로 놓였던 작업대 흔적, 천을 짜는 시끄러운 기계음이 24시간 들리며, 잘 짜인 천을 염색하던 그 모든 풍경이 상상 가능한 공간으로 남아있다. 그러나 실재 눈앞에 펼쳐진 모습은 사진으로 보시다시피 상상과는 매우 다르다. 옛 모습 그대로 남겨두고 보존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죽은 공간(폐허) 에 숨을 불어넣는 일, 새로운 쓰임을 고안하고 더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을 찾는 것도 공간을 보존하고 사랑하고 기 억하는 방법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과거의 뼈대 위에 현재라는 옷을 입혔다. 생각보다 잘 어울린다. 어 찌 보면 트랜디(trendy) 해 보이기도 하고. 서로 어색할 것만 같은 잡다한 잡동사니 물품들이 한 공간에 모여 새로운 콘 셉트로 믹스(mix)되어 이색적이면서도 친근한 약간은 몽환적이기도 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비밀이 있었다. ‘정성’. 그 어느 공간 하나도 허투루 버리지 않고, 정성으로 가꾸었더라. 추억의 물품들을 무심한 듯 툭툭 던져 놓았으나, 여기에는 기획자의 세심한 계획(기획)이 있었다. ‘시간’이라는 양념을 듬뿍 가미하여 시간이 가는 줄 모르게 하는 트릭(trick)까지 갖추었으니 놀라웠다. 옛것과 새로운 것과의 조화, 추억에 추억 더하기, 낡고 오래된 정감 있는 것들과의 다정한 조우, 시대의 교차와 세대 의 공감을 동시에 담아낸 성공적인 공간재생(空間再生) 방법을 보여주는 훌륭한 사례로 손꼽을 수 있으리라. <그림 19> 건물 내부로 들어가는 이색적인 통로 그리고 양옆의 빼곡한 옛 그림과 사진들, 2024년 (ⓒ필자 촬영) <그림 20> 예사롭지 않은 건물 내부 중앙의 일렬 작업대 테이블과 의자, 삼각 지붕 골조의 흔적, 2024년 (ⓒ필자 촬영)<제3편> 조양방직: 신문리미술관 since1933 Vol. 26, No. 4 89 <그림 21> 예사롭지 않은 건물 내부 중앙의 일렬 작업대 테이블과 의자, 2024년 (ⓒ필자 촬영) <그림 22> 리사이클링(recycling) 테이블과 의자, 2024년 (ⓒ필자 촬영) <그림 23> 건물 내부 중앙의 일렬 작업대 테이블과 의자가 배치된 공간 맨 안쪽 벽면의 데코(Decoration), 2024년 (ⓒ필자 촬영)문화예술 산책 90 자연,터널 그리고 지하공간 <그림 24, 25> 각종 골동품 그리고 삼각 지붕 골조의 흔적, 2024년 (ⓒ필자 촬영) <그림 26> 화려하고 다양한 조명기구들, 2024년 (ⓒ필자 촬영)<제3편> 조양방직: 신문리미술관 since1933 Vol. 26, No. 4 91 실내 수공간(水空間)에서는 대형 잉어들이 헤엄치고 있다(그림 28). 과거 염색조를 연못으로 리노베이션(Renovation)5)했더라. 연못 한편에서는 돌고 래 진열이 힘차게 출렁이듯 움직일 것만 같이 보이기도 하고(그림 27). 저 장난감 돌고래무리 중 한 마리의 등 위에 올라타고 싶은 충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어른들에게도 동심을 자극하는, 옛 추억의 감성을 톡톡 건드리는 아기 자기한 곳이다. 사진기(핸드폰 카메라)를 들이대는 곳마다 이야깃거리가 가득하다. 그냥인 곳이 단 한 군데도 없어 보인다. 낡은 건 축물과 오래된 물건의 재료 표면에서 나오는 빛바랜 아련한 그리움이 서정성을 불러일으키는 것 같기도 하다. 추억의 물건들이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듯한 착각이 들기도 하더라. 『조양방직: 신문리미술관 since1933』을 ‘빈티지(Vintage)’, ‘레트로(Retro)’ 공간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빈티지 (Vintage)란 최고급의, 최고의 의미로, 국내에서는 원뜻보다 범위가 좁혀져서 ‘고풍스러운 특정 상품의 전성기, 최고의 상태’를 나타낼 때 쓴다. 레트로(Retro)란 ‘추억’이라는 단어 Retrospect의 줄임말인데, 과거의 기억을 그리워하면서 그 시절로 돌아가려는 흐름을 말하기도 한다. 레트로의 핵심 가치는 단순히 과거를 따라서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재해 석’을 통한 ‘재탄생’에 있다. 본 장소는 과거 ‘공장’의 대지(땅, 장소)와 건축구조 프레임(frame)을 남기고 내용물을 이전 과는 전혀 다른, ‘방직’이라는 단어에 국한하지 않고, 새로운 콘셉트로 재창조했다. 시대의 변화에 맞는 용도로 과거의 5) 리노베이션(Renovation)이란? 건물을 구조체의 변경 없이 시설물의 노후화를 억제하고, 기능을 향상하기 위해 외관이나 내부 일부 혹은 전체를 개ㆍ보수하거나 증ㆍ개축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림 27, 28> 염색조의 화려한 변신, 2022년 (ⓒ필자 촬영)문화예술 산책 92 자연,터널 그리고 지하공간 추억과 쉼과 이색적인 볼거리를 아낌없이 제공함으로써 이 세계로 들어오면 2~3시간은 본인도 모르게 훌쩍 지나가는 매직(Magic)을 체험하게 된다. 어르신들은 지금은 사라진 생활 속 물품(전시품) 하나하나를 둘러보며 서로의 소중한 추 억을 이야기한다. 아이와 함께 온 부모들은 “옛날에 엄마가 쓰던~” 혹은 “아빠가 어렸을 적에 있었던~” 이라는 운을 띄우며 추억 소환 에피소드를 들려주기에 바쁘다. 부모 세대의 문화를 설명해 주고 직접 보여주는 교육 효과도 클 것이 다.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구경하며 부모님의 이야기를 듣는 아이들은 눈과 귀, 손과 발이 즐겁게 바쁘다. 필자의 초등 학생 아이는 과거의 책가방과 실내화 주머니 외 전시 공간에서 눈을 떼지 못하더라. 반짝이는 각 잡힌 책가방이 맘에 들었나? 궁금해서 조용히 아이 옆에 가보니, 가방 근처의 벽에 걸린 만화 그림에 깔깔거리며 웃고 있었다. 장시간 구경 에 지치면 전시된 곳 의자 아무 데나 앉아서 쉬면 된다. 카페 내부에서 판매하는 음료와 빵, 케이크를 사 먹으며 주변을 천천히 구경해도 되고. 음식도 먹고, 추억도 먹고. 입으로도 먹고. 눈으로도 촉감으로도 먹고. <그림 29, 30> 구석구석 각종 골동품이 가득, 2022년 (ⓒ필자 촬영)<제3편> 조양방직: 신문리미술관 since1933 Vol. 26, No. 4 93 <그림 31, 32> 특별한 공간으로 탄생한 개별 룸(room) 의자에 앉아 잠시 쉬어도 좋다, 2024년 (ⓒ필자 촬영) 여기는 화장실까지 예술이다(그림 38). 화장실로 들어가는 입구 동선은 물론이거니와 화장실 내부에도 구경거리가 넘쳐서 볼일을 매우 오랫동안 볼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특히 여자 화장실은 볼거리가 가득하니 볼일이 급한 분들은 미리미리 줄을 서시라. 앞선 사용자의 시간 지체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볼 일을 다 보고 나와서도 한참 눈길을 주게 되는 화장실 앞 공간을 기대해도 좋다. 화장실 안에서까지 셀카 사진을 여러 컷 찍게 되는 엽기적인? 본인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림 33~35> 사방으로 각종 골동품이 가득하다, 2022년 & 2024년 (ⓒ필자 촬영)문화예술 산책 94 자연,터널 그리고 지하공간 <그림 36~39> 사방으로 각종 골동품이 가득하다, 2022년 & 2024년 (ⓒ필자 촬영) 대형부지를 활용한 이곳 카페 공간(조양방직: 신문리미술관)은 입구에서부터 300평이 넘는 폐공장의 위엄을 보여준 다. 그러나 막상 입장해서 여기저기 둘러보면 공간이 정원(庭園)처럼 아기자기하게 꾸며있어서 놀라게 된다(그림 40~43). 이곳은 조경(造景)이 참 예쁘다. 정확하게는 점점 더 아름다워지는 중으로 보인다. 2년 전 모습과 2년 후, 사<제3편> 조양방직: 신문리미술관 since1933 Vol. 26, No. 4 95 진으로 비교해 보니 확실히 후자가 더 풍성해졌고 화려해졌다.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그동안) 진화하고 발전했다. 확실 히 관리받는 공간의 느낌이다. 실재로도 관리자의 세심한 손길을 담뿍 받는 중일 것임이 틀림없고. <그림 40~42> 아름다운 조경 공간, 2024년 (ⓒ필자 촬영)문화예술 산책 96 자연,터널 그리고 지하공간 <그림 43> 아름다운 조경 공간, 2024년 (ⓒ필자 촬영) 공간도 사람처럼 살아있는 생물이다. 관심을 가지고 관리하고 애정을 주면 더 아름답고 활발한 모습으로 바뀐다. 『조양방직: 신문리미술관 since1933』 은 시간을 통해, 시간을 갖고, 시간 속에서, 지속적인 발전을 보여주는 공간이었 다. 골동품(전시 물품)의 종류가 늘어났으며 실내 ․ 외 조경 공간이 풍성해졌다. 특히 초화류(草花類)6) 수가 증가했다. 예쁘고 화려한 꽃, 키 작은 나무 식재, 각종 화분이 늘었다. 실내 공간(인테리어) 디자인의 변화도 있더라. 더욱 섬세해 졌다. 2년 전 전시 콘셉트와 2년 후 그것에서도 차이를 감지할 수 있었는데, ’이곳이 꾸준히 관리되고 있고, 새로운 변 화를 추구하고 있구나!’를 알 수 있었다. 살아있는 공간, 성장하고 있는 곳, 주인장의 애정이 엿보이는 관리받는 장소인 이곳 『조양방직: 신문리미술관 since1933』 이 오랫동안 지속되면 좋겠다. 부담 없이 언제든지 찾아와서 커피 한 잔 가 격으로 추억팔이를 할 수 있는 어르신들의 방앗간 겸 산책 공간,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는 살아있는 교육의 장소, 다양 한 체험의 폭을 넓혀주는 박물관으로도 널리 애용되면 바람직할 것 같다는 생각도 해본다. 추억을 만나러, 추억 속으로 들어가 봄은 어떤가? 추억과 접선을 시도하기 위해 이곳에 가보길 권한다. 아련하고 소 중했던 옛 기억을 떠올려주는 미술관, 기억하지 못했던 무의식 속 그리움이나 향수가 행복했던 시절과 순간을 소환시 켜주는 박물관, 그 따뜻했던 기억이 우리를 다시 살아가게 할 지도? 6) 초화류(草花類)란 풀 종류인 화초 또는 그 꽃을 가리키는 것으로 정원에서는 관상 가치가 높은 것을 심는다. <제3편> 조양방직: 신문리미술관 since1933 Vol. 26, No. 4 97 ●● 저자 소개 문지영 박사는 서울대학교 협동과정조경학과에서 <조선시대 교량의 문화경관 해석: 연결, 교감, 상징(2012년)>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유신 구조부에서 2003년부터 2014년까지 장대교량을 중심으로 한 국내 ․ 외 교량경관설계업무를 주로 담당했으며, 대학에서 강의 후 현재는 책과 칼럼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작가로 활동 중이다. 대표 저술서로는 ■내려놓기(2022년, 교보eBook) ■숫자로 보는 대한토목학회 70년(토목 70(1951-2021), 그리고…)(2021년 공저, 페이퍼북+eBook), ■내가 사랑한 디노베이터 (2020년 공저), ■서울대학교 토목공학의 100년 돌아보기(2016년 공저), ■자연과 문명의 조화, 토목공학(2015년 초판, 2018년 개정판 공저, 초판3쇄&2판3쇄, 2016년 대한민국학술원 우수학술도서 자연과학부문 선정, 2018년 개정판 공저), ■미학적으로 교량보기(2014년, 2015년 대한민국학술원 우수학술도서 자연과학부문 선정, 2014년 대한토목학회 저술상 수상), ■상상 그 이 상, 조선시대 교량의 비밀(2012년 초판, 2015년 초판3쇄, 2013년 문화체육관광부 우수학술도서 선정), ■생각을 말해봐(2015년 공저), ■현대 경관을 보는 열두 가지 시선(2006년 공저) 등이 있으며, ■토목기술사의 비밀노트(2024년), ■토목, 인생, 무엇이 궁금해?(2023년, 2023년 대한토목학회 저술상 수상), ■다리 구조 교과서(2017년)는 감수를 했다. ■브릿지(2025년) 외국어서 적 번역본 감수를 준비 중이다. 유튜브 SNU GSES 2022 Alumni Talk 50 - ‘나답게 : 토목과 디자인 그리고 조경의 경계를 넘나 드는 삶’ 영상에서 자세한 저자 소개를 담았다(2022년). 현재 도로교통협회 도로교통저널에 <문화예술 속 교량의 미학>을 연재 (2023년 봄호부터), 대한토목학회 학회지에는 <문화예술 속 토목구조물의 미학>을(2024년 3월호부터), 본 한국터널지하공 간학회 학회지에는 <문화예술 산책>을(2024년 6월호부터) 연재하고 있다. sieyoungmoon@gmail.comNex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