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revious인문학 산책 108 자연,터널 그리고 지하공간 인류가 가장 먼저 사용한 재료는 무엇일까. 아무래도 흙이나 나뭇가지 돌 뼈 조개 껍질과 같이 손으로 주물럭거리 기 편하고 가공하지 않아도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게 아니었을까 싶다. 맹수를 피해 나무 위에서 살아야 했던 호미니스3)는 나뭇가지를 휘두르고 돌멩이를 던지면서 땅으로 내려올 수 있었다. 이렇게 있는 그대로의 재료를 쓰던 인류는 몇 가지 재료를 조합하면 훨씬 근사한 도구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알아냈을 것이다. 이를테면 돌과 나무를 칡넝쿨로 묶어서 돌도끼를 만들거나 나무 끝에 날카로운 돌을 묶어 돌창을 만드는 것이다. 서로 다른 것을 조합하는 능력, 이것은 문명의 시작을 알리는 중요한 경계가 아닐까 싶다. 수만 개의 부품으로 만들어지는 자동차나 우주선도 결국은 서로 다른 재료를 조합하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렇게 만든 도구를 손에 쥐자 늘 맹수에게 쫓겨 다녀야 했던 인류는 오히려 큰 짐승을 쫓아다니는 우월한 입장이 될 수 있었다. 지금까지 발견된 가장 오래된 재료는 약 250만 년 전 올두바이 협곡4)에 살던 사람들이 쓰던 것이다. 지금 은 물론 돌이나 뼈만 남아 있지만 이것을 사용할 당시에는 칡넝쿨이나 꼬은 끈으로 묶은 멋진 손잡이가 달려 있었을 것이다. 신은 입김을, 인간은 불을 흙을 빚어 인간을 만들었다는 신화는 수메르나 히브리 이집트 등 다양한 창조설화에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기독교 의 신은 붉은 흙으로 인간을 빚은 뒤 코끝에 숨을 불어 넣었다고 한다. 인간 역시 흙으로 무엇이든 빚어낸다. 차이가 있다면 신이 흙을 빚고 입김을 분 것과는 달리 인간은 불을 이용한다는 점뿐이다. 인간이 가장 먼저 무언가를 만들었 다면 그것은 돌처럼 단단한 재료가 아니라 이렇게 손으로 주물럭거릴 수 있는 흙이 아니었을까 싶다. 흙으로 빚은 여 인상5)이나 토우를 보면 흙이 얼마나 친근한 재료였는지 이해된다. 물론 청동기나 철기처럼 흙 자체는 선사시대 구분 에 포함되지 않는다. 불에 구운 것도 쉽게 깨져버리는 데 손으로 주물럭거린 유물이 남아있을 턱이 없으니 말이다. 하 지만 강변에서 발견되는 토기를 보면 흙은 인간과 가장 오랜 세월을 함께해 온 재료가 아닐까 여겨진다. 흙으로 가장 많이 만들어진 것은 음식을 담거나 조리하는 토기다. 제작기술이 조금 더 세련되기는 했지만 젖은 흙 을 빚어 불에 굽는다는 점에서 보면 현대와 석기시대는 별다를 게 없다. 처음 만들어진 뒤부터 지금까지 변함없이 사 용되고 있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토기는 약 12,000년 전부터 세계 곳곳에서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빙하기가 물러가고 기후 환경이 바뀌면서 시작된 농업혁명의 여파라고 할 수 있다. 정착이 보편적인 삶의 양식으로 자리 잡으면서 식량 을 저장하거나 물을 나르고 조리에 쓰일 다양한 그릇이 필요했을 것이다. 3) 호미니스(hominis). 인류를 비롯한 원인류의 총칭 4) 올두바이(Olduvai) 협곡. 아프리카 탄자니아에 있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구석기 유적. 이곳에서 살았던 원시 인류는 진잔트로푸스, 호머 하빌리스로, 이들이 남긴 타제석기와 하마 물고기 뼈등이 발견된다. 5) 흙으로 빚은 여신상. 울산 신암리에서 발견된 토우로 크기는 3.6cm에 불과하지만 가슴과 둔부를 강조한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토우는 동북아 다양한 나라에서 발견되며 특히 일본 조몽문화의 대표적 유물이기도 하다.Vol. 25, No. 3 109 재료로 본 문명의 역사 토기를 제작하는 과정은 그렇게 복잡하지 않다. 흙을 반죽하여 형 태를 빚고 서늘한 곳에서 적당히 말린 다음 불에 구우면 된다. 오래 그러다 보니 기술도 늘고 여유가 생겨 이런저런 모양을 내기도 했을 것이다. 아무튼 그 정도의 작업을 거치면 멋진 그릇을 손에 쥘 수 있 었다. 불에 구은 흙은 왜 이렇게 단단해지는 걸까. 얼핏 보기에는 단 순한 과정이지만 여기에는 놀라운 과학이 담겨 있다. 적당한 모양으 로 반죽한 점토에 불을 가하면 화학적인 변화가 시작된다. 온도가 200°C에 이르면 흙 입자 사이의 수분이 서서히 증발하고 500°C 이 상이 되면 흙은 다른 성질로 변하기 시작한다. 점토에 섞여 있던 탄 산염이 분해되고 탄소와 산소가 결합하면서 세라믹이라는 고강도의 물질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변하는 화학적인 과정을 알지는 못했다 해도 그 작업은 인류가 자연에 가한 최초의 화학적인 변화였던 셈 이다. 청동, 자신을 들여다 보다 인류가 가장 먼저 사용한 금속은 구리와 주석 그리고 이를 섞어서 만든 청동이었다. 구리는 이라크 지역에서 기원전 5500년경부터 사 용되었지만 주석합금이 나타난 것은 기원전 3700년경부터다6). 구리 나 주석은 노천에서 어렵지 않게 얻을 수 있고 1천도 정도면 녹아서 다루기 쉬웠지만 구리는 무르고 주석은 잘 부서지는 재료였다. 이 때 문에 순수한 동은 거울이나 핀 단추 같은 간단한 장신구 외에는 별 로 쓰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 둘을 섞어 놓으니 잘 휘지도 않고 깨지 지도 않는 단단한 금속이 되었다. 칼이나 방패 창으로 만드는데 유 용한 재료가 된 것이다. 특히 청동거울을 통해 자신을 비추어봄으로 서 어렴풋하게나마 자아가 싹트게 되지 않았을까 싶다. 고분에서 발 견되는 다뉴세문경7)에는 얼마나 많은 이들의 얼굴이 비추어졌을까. 6) 순수한 구리제품이 처음 발견되는 곳은 이라크 지역으로 BC.5500년경이다. 주석이 합금되기 시작한 것은 BC.3700년경 이집트, BC.2500년경 인더스, BC.2000년경 중국 용산 순이다. 우리나라에서는 BC.15세기경 청동기 유적이 발견된다. 7) 다뉴세문경. 청동기 시대에 제작된 거울로 충남 논산에서 출토되었다. 북방계 청동문화의 대표적인 유물로 중국보다 앞 서 제작되었으며 뒤쪽에 정교한 꼭지무늬가 새겨져 있다. 즐문토기(신석기,한국) 다뉴세문경(고조선)인문학 산책 110 자연,터널 그리고 지하공간 구리와 주석을 섞어서 단단한 청동기를 만들기 시작했다는 것은 재료를 다루는 데 있어서 커다란 진전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광석에서 금속을 추출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쇳물을 부어넣을 거푸집을 만들고 이를 연마하여 도구로 완성하려면 까다로운 절차가 필요하니 말이다. 하지만 일단 합금의 효과를 알아낸 뒤로는 점차 정교하고 성능 이 좋은 물건을 만들어내었다. 페르시아에서 만들어진 청동기 제품에는 구리에 주석을 넣는 것에 그치지 않고 약간의 비소와 아연을 첨가해서 더 단단하고 강한 청동을 만들 수 있었다. 중국의 주례나 고공기와 같은 역사서에는 청동을 이용해서 제례에 쓰일 도구나 무기를 만들 때 합금의 비율과 첨가제에 대한 기록이 자세하게 실려 있다. 철기, 대장장이의 시대 지금도 철강은 그 나라의 기술과 산업화 정도를 평 가하는 기준이 되지만 철이 처음 만들어지던 시기에 는 거의 절대적이었다. 철을 제련하는 기술이 처음 시 작된 것은 기원전 2000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철을 사용하는 부족이 역사에 등장한 것은 기원전 18 세기경 아나톨리아 고원에서 태어난 히타이트제국이 었다. 칼이나 창 화살촉 등 무기는 물론 낫이나 괭이 와 같던 농기구도 철을 사용했던 히타이트는 16세기 부터 세력을 넓혀 바빌론과 이집트까지 휩쓸고 다녔 다. 당시에는 어느 나라도 쇠로 만들어진 히타이트의 이륜전차와 무기를 막을 수 없었다. 수도였던 하투샤의 규모와 신전터를 보면 철기의 막강한 위력이 느껴진다. 철을 다루는 것은 청동기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철광석을 녹여 쇳물을 만들기 위해서는 1000°C 이상의 온도를 오랫동안 가해야 하고 또 거푸집에서 나온 뒤에서 이를 다듬는 작업도 만만치 않다. 쇠를 두들겨 농기구나 무기를 다 루는 집단, 즉 대장장이가 생겨난 것도 이때부터가 아닐까 생각된다. 지금은 쇠를 다루는 기술이 별 게 아닌 게 되었 지만 고대 농경사회에서 대장장이는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이었다. 현대에 들어와서 플라스틱이나 고탄성 신소재 등 재료가 많이 사용되고 있지만 아직도 산업현장에서 가장 많이 사 용되는 재료는 쇠다. 자동차 선박 기계 철도는 물론이고 고층건축물이나 교량 등 도시기반시설이 거의 모두 쇠로 만 들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쇠를 다루는 기술에 있어서도 처음 제련되던 시대와는 현저한 차이가 있다. 철 과 탄소의 합금인 강철은 탄소의 함유량과 망간 크롬 텅스텐 등 첨가제에 따라 성질이 달라지는데 이를 통하여 다양 한 목적의 강철을 생산하게 된다. 강철의 능력은 사장교나 현수교에서 이용되는 강연선Steel wire strand만 보아도 미루어볼 수 있다. 지름 5mm 내외의 강선을 꼬아서 만든 사장교나 현수교는 수많은 자동차가 안전하게 다닐 수 있도 록 해준다. 철·청동검(충주 호암동 유적)Vol. 25, No. 3 111 재료로 본 문명의 역사 섬유, 옷을 입는 동물 추위를 견디기 위해 인류가 모피를 사용한 흔적은 선사시대 유적에서 흔히 발견된다. 뼈나 가시로 만든 바늘도 같이 출토되는 것으로 봐서 모피를 꿰어 옷을 만들어 입지 않았을까 싶다. 몇 차례 빙하기를 건너야 했던 네안데르탈인에게 이 옷은 정말 소중한 물건이었 을 것이다. 유난히 추위에 강한 피부를 가졌다고는 하 지만 모피가 없이는 동굴 밖으로 나갈 수도 없었을 것 이다. 섬유를 실이나 털처럼 가늘고 길면서 잘 휘는 물 질이라고 정의한다면 최초의 섬유 사용자는 데안데르 탈인이었다. 이렇게 바느질해서 옷을 해 입는 것은 동 굴벽화나 조각품 못지않은 창조적인 행위이며 인간을 특징짓는 중요한 차이라고 볼 수 있다. 인간 외에 어떤 동물도 이렇게 옷을 만들어 입지는 않으니 말이다. 인간은 스스로를 다른 동물과 구별하기 위해서 자신의 이름을 호머 파베 르나 호머 사피엔스 등으로 불러왔다. 여기에 ‘옷을 입는 인간’이라는 의미로 호머 베스티우스Homo vestius라는 이름 을 하나 더 붙여주면 어떨까 싶다. 섬유는 자연 상태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재료다. 칡넝쿨 아마 머리카락 동물의 털은 그 자체로도 쓸모가 많은 재 료지만 손으로 비벼서 꼬아주면 아주 질긴 끈이 된다. 나무와 돌을 이어 붙여 창 돌도끼를 만들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렇게 꼰 끈이 있었기 때문이다. 고인돌이나 스톤헨지를 만들기 위해 석재를 옮길 때도 이런 끈을 사용했을 듯하다. 고대 사회에서 끈이 얼마나 소중한 재료였는지는 헤르도토스가 쓴 역사로 미루어볼 수 있다. 페르시아 대군을 이끌고 다르다넬스 해협을 건너려는 크세르크세스 왕은 밧줄로 배를 이어 붙여 다리를 놓는다. 헤르도토스는 이 밧줄이 아마 를 꼬아서 만들었으며 이집트인들의 기술이라고 상세히 기록해 놓았다. 끈이 선사시대부터 사용되어온 것에 비해 섬유로 천을 짜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는다. 길쌈이나 바느질 이야기가 나오는 신화나 고대 서사시를 통해 추정해 볼 수 있을 뿐이다. 그리스의 최고 여신 아테네는 바로 베짜기를 관장하는 신이었다. 이외에도 옷감을 물들이는데 명인이었다는 이드몬, 베짜기로 아테네 여신과 실력을 겨루었다는 아라크네 이야기가 있다. 호메로스가 쓴 오디세이아에서 페넬로페는 자신의 결혼식에 입을 옷을 짜기도 한다. 왕비가 손수 베짜기를 했다는 것은 그 작업이 얼마나 소중한 일이었는지를 반증한다. 기록은 없지만 견우직녀의 전설 역시 베짜기가 일반적이던 시절 이야기임이 분명해 보인다. 처음 옷 만들기에 쓰인 섬유는 목화로 만든 면사와 누에고치에서 뽑은 견사가 있었다. 목화는 고대 인더스 유적에 서도 사용되었다고 하니 물경 5천 년쯤 될듯하다. 그에 비해 비단은 이보다 늦은 기원전 770년경 중국에서 처음 사용 되었다. 한서지리지8)에는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고조선 시대에 양잠과 직조가 시작되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히브리족 면섬유인문학 산책 112 자연,터널 그리고 지하공간 처럼 낙타나 양을 키우며 살던 유목민들은 동물의 털을 깎아서 옷을 해 입 었다. 성서에는 부자가 천국에 가는 건 낙타가 바늘로 들어가기보다 어렵 다는 말이 나온다. 아마도 낙타털로 잣은 실이 양모에 비해 너무 두꺼워서 나온 말이 아닐까 싶다.9) 실을 잣고 베틀로 옷감을 짜는 것은 여러 과정을 거쳐야 하는 복잡한 작업이다. 이렇게 옷을 만들어 입음으로서 몸을 가리 고 신분을 과시할 수 있게 된 것은 인류의 진보를 엿볼 수 있는 중요한 변 화가 아닐까 싶다. 수지, 고분자 화학의 시대 플라스틱, 무엇을 만들 때 수지만큼 다양하게 쓰이는 재료가 또 있을까. 수지resin는 말 그대로 나무의 기름이라는 뜻으로 반고체 상태의 물질을 말한다. 침엽수의 송진과 같은 천연수지와 석유를 통해서 만들어지는 합성 수지plastic가 있다. 천연수지는 끈끈한 수액의 휘발성분이 날아가고 시간 이 흘러 굳어진 것이다. 한 번 굳으면 자연 상태에서는 잘 녹지 않고 물이 나 불에서도 견고하게 형상을 유지한다. 이를 녹이려면 알콜과 같은 유기질 액체에 담아 두어야 한다. 지질시대의 곤 충이 갇혀있어 진귀하게 여겨지는 호박은 이러한 천연수지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과거에는 다양한 용도에 쓰였으나 이즈음은 니스와 같은 도료, 비누나 잉크의 혼화제, 전기절연체 의약품 등에 제한적으로 사용될 뿐이다. 플라스틱10)으로 대표되는 합성수지의 가장 큰 특징은 열과 압력을 가해서 어떤 형태로든 성형 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플라스틱은 열을 가하면 녹는 열가소성수지와 반대로 열을 가하면 단단하 게 굳어지는 열경화성수지로 나뉜다. 열가소성수 지는 일상생활에서 흔하게 접할 수 있는 플라스틱 바가지 컵 의자 패트병 등을 만드는 재료다. 과거 에는 나무나 토기 유리로 만들던 것들이 지금은 8) 한서지리지. 기원전 1c경 후한의 반고가 쓴 역사서. 사기와 더불어 중국사를 대표하는 저서로 고조선의 누에치는 법과 베짜기 8조 법금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9) 낙타털로 잣은 실은 양모에 비해 아주 두꺼워서 바늘에 꿰기가 쉽지 않다. 낙타를 이용해 얻은 고기나 젖 실 등을 ‘낙 타’라고 지칭하던 관습으로 볼 때 이러한 비유가 나왔을 것이다. 10) 플라스틱의 라틴어 어원은 Plasticus로 이는 석회 반죽과 같이 어떤 형태로든 만들 수 있는 상태를 말한다. 비단 의류 고분자 합성수지(SPPS)Vol. 25, No. 3 113 재료로 본 문명의 역사 거의 플라스틱으로 대체되고. 열경화성수지는 좀 더 강하고 내구성이 필요한 파이프 등 산업제품에 주로 이용된다. 최근 개발된 고체상 펩타이드 합성수지SPPS는 산업제품의 촉매나 의료계, 생명과학을 비롯한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 되고 있다. 유리, 다루기 쉬운 보석 유리가 처음 사용된 것은 기원전 15세기경이라고 하는데 실제로는 훨씬 그 이전부터 사용되어오지 않았을까 싶다. 기원전 1세기경부터는 로마를 비롯 지중해 주변의 도시국가에서 유리가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다. 아름다운 색상은 물 론 다양한 형태와 문양을 넣을 수 있는 기법도 개발되어 보석에서 그릇과 같은 생활용품까지 만들어졌다. 5세기경에 는 세계 각지로 로만글라스가 퍼져나갔다. 중국에 로만글라스가 전해진 것도 이때쯤이 아닐까 싶다. 로마상인들이 가 져온 유리제품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찬탄하는 기록이 여기저기 나온다11). 5~6세기경 우리나라 신라 고분12)에서도 로만글라스 기법으로 만들어진 다양한 유리제품이 출토된다. 이것을 보면 당시 로만글라스가 세계적인 무역상품이었 던 것으로 보인다. 중세의 성당을 아름답게 장식한 스테인드글라스 역시 로만글라스의 전통이 이어진 것임에 틀림없 다. 이슬람 사원에는 다양한 색을 가진 유리가 7세기경부터 사용되기 시작했다. 서구는 중세의 어둠을 헤쳐 나오느라 조금 늦었지만 12세기경부터는 성당을 화려하게 장식하기 시작했다. 광선의 굴절효과를 섬세하게 배치한 영국 캔터베 리 대성당, 프랑스 사르트르 대성당은 이무렵 지어진 대표적인 건축물이다. 이렇게 오랜 세월 유리는 보석이나 성당의 장식품으로 이용되어 왔지만 정작 유리의 가장 중요한 특성인 광학재료 로 각광받기 시작한 것은 17세기 이후였다. 덧보기나 갈릴레이 망원경 현미경과 같은 광학재료가 발명된 것이다. 다양 한 판유리도 만들어져 도시의 풍경은 점차 밝고 화려하게 변해 나갔다. 이제 유리는 그릇이나 유 리병 자동차 거울 등 없어서는 안 될 필수재료가 되었다. 건물 전체를 유리로 감싸는 인텔리젼트 빌딩은 말할 것도 없고 다양한 유리 조형물이 도 시를 화려하게 바꾸어나가고 있다. 유리를 제작 하는 기법에 있어서도 놀라운 발전을 이루어 최 근에는 다양한 기법의 고강도 유리가 만들어지고 있다. 예를 들면 총알도 막아낼 수 있는 방탄유 리13), 프리스트레스 기법을 도입한 강화유리14), 11) 중국의 위서 대월지전에는 대진(로마)에서 온 상인이 가져온 유리에 대해 광택과 모양이 매우 뛰어나다는 기록이 나온 다. 유리는 당시 중국에도 있었지만 단색이나 흐릿한 간유리뿐이었다. 12) 로만글라스 기법의 유리제품이 발견되는 신라 고분으로는 서봉총 등이 있다. 유리섬유를 이용한 조명인문학 산책 114 자연,터널 그리고 지하공간 유리를 재가열하여 내열과 강도를 높인 크리스탈 유리, 유리와 세라믹을 접합시켜 만든 베어링 등이 그것이다. 비철금속, 합금의 시대를 열다 금속은 고체 상태에서 전기와 열을 잘 전달하는 단 일원소 물질을 말한다. 자연상태에서 이렇게 존재하는 금속은 거의 100여 종이나 된다. 금속은 연성이 좋아서 얇은 판으로 만들 수도 있고 실처럼 길게 늘어트릴 수 도 있다. 금속은 현대산업에서 가장 높은 비중으로 사 용되는 철 그리고 이를 제외한 비철금속으로 나뉜다. 인류는 선사시대부터 구리, 주석, 쇠를 사용했고 자연에 서 간단한 가공만 거치면 얻을 수 있었던 납 아연 금과 같은 물질을 사용해 왔다. 청동이나 철기를 오래 사용 해 와서인지 우리는 금속은 강하지만 무겁다는 고정관념이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강하면서도 가볍고 가공이 쉬운 다 양한 금속 물질이 만들어지고 있다. 이를테면 알루미늄은 철에 비해 세 배나 가볍고 티타늄은 강도가 쇠보다 강하지 만 무게는 반밖에 안 되서 인공위성이나 우주정거장의 재료로도 쓰인다. 양으로 보면 얼마 안 되지만 최근 전자제품을 만들 때 없어서는 안 될 희토류15) 금속도 매우 중요한 재료다. 화학 적으로 안정된 구조를 가지면서도 전기나 열을 잘 전달하여 LCD와 같은 가전제품이나 모터 광학렌즈 3파장 전구 등 에 사용된다. 특히 석화연료를 대신할 전기배터리를 만드는데 없어서는 안 되는 물질이다. 현대산업사회를 이끌어가 는 중요성에 비해서 희토류는 이름 그대로 자연계에 매우 드물게 존재하기 때문에 각 나라마다 이를 확보하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일례로 중국과 일본이 동중국해 섬의 영유권 분쟁이 일어났을 때 중국이 희토류 수출을 금지하자 일본은 손을 들고 말았다. 세계 희토류의 97%를 생산하고 있는 중국이 세계무역시장에서 큰 목소리를 내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콘크리트, 도시의 틀을 갖추다 건설공학에 있어 가장 중요한 재료는 누가 뭐래도 시멘트를 빼놓을 수 없다. 콘크리트는 시멘트에 모래나 작은 돌 을 섞고 물로 반죽한 것을 말한다. 시멘트는 석회석이나 화산재를 이용해서 쉽게 얻을 수 있기 때문에 고대부터 사용 13) 방탄유리. 플라스틱과 2장 이상의 판유리를 접합하여 만든 유리로 강성과 인성을 고루 갖춘 유리 14) 내부는 인장력을 주고 외부는 압축력을 준 상태로 고결시켜 강도를 증진시킨 유리로 보통 유리에 비해 강도는 5배, 충격흡수는 8배나 높다. 자동차나 항공기의 창유리로 이용된다. 15) 희토류 금속. 원자번호 57에서 71까지의 15개 원소(La, Ce, Pr, Nd, Pm, Sm, Eu, Gd, Tb, Dy, Ho, Er, Tm, Yb, Lu) 차세대 우주선 오리온Vol. 25, No. 3 115 재료로 본 문명의 역사 되었다. 지금까지 남아있는 것 중에 서 최고의 콘크리트 구조물은 단연 판테온 신전이다. 로마의 하드리아 누스 황제가 128년 완공한 이 건축 물은 직경 43m에 이르는 천정 돔을 콘크리트로 만들었다. 당시의 콘크 리트 강도는 지금에 비하면 보잘것 없지만 완성된 지 2000년이 지났음 에도 별 문제없이 버티고 있다. 시 멘트가 관리만 잘하면 거의 영구적 인 재료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현대의 시멘트는 강도와 내구성 에 있어서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재료가 되었다. 강도 면에서만 봐도 판테온에 쓰인 시멘트가 80kg/cm2 정도임에 비해 최근의 콘크리 트는 400kg/cm2 이상의 강도를 자랑한다. 하늘높이 치솟은 현대의 건축물은 이렇게 강해진 콘크리트에 철근이 결합 된 결과다. 콘크리트는 필요에 따라 다양한 형태와 용도로 만들 수 있다. 콘크리트는 제대로 굳으려면 28일 정도가 필요하지만 금속재료를 넣어 3일 만에도 굳힐 수도 있다. 다양한 혼합물을 이용해 불에 잘 견디게 하거나 바닷물 또 는 화학적인 저항을 강하게 할 수도 있지요. 최근에는 알루미나를 넣거나 증기로 굳히는 방법으로 1000kg/cm2에 이 르는 초고강도 콘크리트도 만들어지고 있다. *** 우리가 사는 세계에는 수많은 물질이 있다. 자연 그대로 얻을 수 있는 흙 돌 나무 뼛조각에서 복잡한 제련을 거쳐 서 얻을 수 있는 광물질까지 이루 헤아릴 수 없다. 여기까지 인류를 이끌어 온 것은 바로 그 물질을 다루는 기술이었 다고 해도 좋을 듯하다. 석기 청동기 철기 등 인류가 사용해 온 재료를 보면 그 자체가 바로 문명이었다. 현대 도시문 명을 이끌고 가는 것 역시 재료라고 할 수 있다. 자연에서 볼 수 있는 물질 중 인류가 사용하지 않는 것은 거의 없어 보인다. 하지만 이제 인류는 자연이 주는 것뿐만 아니라 자연 상태에서는 결코 있을 수 없는 물질까지 스스로 만들어 내는 단계에 이르고 있다. 이를테면 물질을 원자 상태까지 추적해 들어가서 특수한 형태로 재구성하는 것이다. 고분 자화학이나 유리섬유 또는 탄소섬유 등 다양한 신소재로 재구성될 미래의 도시는 어떤 모습일까. 재료를 통해 인류의 미래를 그려 본다면 정말 멋진 그림이 되지 않을까 싶다. 판테온 신전(로마)최신 터널 뉴 스 116 자연,터널 그리고 지하공간 편집위원 : 도종남(한국도로공사 도로교통연구원) □ 서울시 지하차도 비개착 ‘일파만파’ 공사비 절감 위해 강관 빼고 지지대 설치 비개착공법의 핵심인 상부횡방향 강관을 빼고 대신에 지지대를 설치하는 방식으로 시공할 경우 누수문제 등 여러가지 문제가 우려되고 있다. 1,000억대에 이르는 서울시 국회대로 비개착 공사 공법 심의 과정에서 실적업체 특혜 의혹 등 끊임없이 잡음이 나 오고 있는 가운데, 지난달 최종 공법 선정된 업체의 공법제안이 비개착공법의 핵심 공정인 상부 횡방향 강관을 통해 상부의 토압을 지지하는 방식이 아닌 지지대를 상부의 지하차도에 연결 이를 지탱하는 방식으로 시공하는 것으로 드 러나 물의를 빚고 있다. 서울시의회의 박강산 의원은 29일 서울시의회 시정질문을 통해 “최종 선정된 특허는 지하대 로 상단에 강관을 압입하고 몰탈을 타설하게 되어 있는데 이번에 해당 업체가 제시한 시공계획을 보면 상단 강관 압 입 과정이 아예 생략되어 있다”고 말했다. 토목구조 전문가 자문에 따르면 “상단 강관 압입 과정이 생략되면 공사비 는 절감되지만, 누수와 내부 구조물 균열 등이 발생할 수 있어 안전성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전문가 추산에 따르면 상단에 강관 압입 과정을 생략 함으로써 약 170억 정도 공사비가 절감되는 것으로 보이며 이것이 지하대로 상단 강관 압입 생략의 주된 이유 중 하나 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최신 터널 뉴 스 Vol. 25, No. 3 117 당초 공법은 상부에 강관압입을 하고 몰탈을 채워 누수 등의 문제에 대비하고 있다. 박 의원은 “전례 없는 대규모 공사임을 감안해 볼 때 특허와 맞지 않는 시공계획을 수립하고 그 시공계획이 안전 상 부실함을 내포하고 있는 점을 짚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를 보도한 MBC 보도에 따르면 상부강관 없는 지지대 방식의 공법 시공 경험이 있냐는 질문에 선정된 업체는 답을 하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으며 서울시 역시 이 부분을 확인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아울러 이 보도에 따르면 심의에 참여했던 공법 선정위원 중 일부도 “평가시간이 30분이라 검증할 틈이 없었다” “업체 측 수치는 서울시가 검증했다는 전제로 평가했다”며 기술평가 심의 과정에서의 미흡함도 지적됐다. 당초 공법과 다른 지지대 방식으로 시공제안서를 제출해 최종 공법 선정되어 물의를 빚고 있다. 한편 서울시는 이런 언론보도와 서울시의회 시정질의에서 드러난 공법 선정 과정에서의 의혹과 우려에 대해 “당 초 특허 공법과 달리 상부강관을 압입하지 않고 상부구조물을 지지대로 받치는 ‘11자’ 방식의 특정 공법 제안서는 완성된 설계도서가 아닌 기술 제안 사항”이라고 발뺌하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비개착 분야에 정통한 P 교수 는 “한마디로 있을 수 없는 주장이고 이는 명백히 비개착공법이 아니다”라고 강하게 일축했다.Nex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