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revious인문학 산책 68 자연,터널 그리고 지하공간 했기 때문일까. 노동력이 넘쳐나고 집 지을 자재가 남아돌아서? 테베레강 그렇지 않다. 짧게 말하면 그것은 오랜 세월 로마가 테베레 강의 범람에 맞서 싸워온 흔적이다. 테베레 강 만곡부 에 자리 잡은 로마는 지리적으로 홍수에 취약한 구조를 안고 있었다. 직선부로 빠르게 흐르다 곡부를 만난 물살은 제 방을 넘어 도시를 침수시켰고 또 지반이 낮아 안에서 차오르는 물을 처리하기도 어려웠다. 홍수가 한 번 지나가면 오 랫동안 물이 빠지지 않아 곤역을 치루어야 했고 이 때문에 늘 전염병과 악취에 시달려야 했다. 그래서 대화재가 있었 던 AD.64년 도시를 재건할 때는 로마의 지반을 전체적으로 2m 이상 높이는 계획을 세웠다. 이러한 과정은 이후에도 계속 반복되었다. 도로 위에 흙이 채워지고 건물 위에 다시 새 건물이 만들어질 때마다 로마의 지표면은 계속 위로 올라갔다. 그 과정이 반복되면서 에트루리아인이 처음 정착했던 BC.9세기부터 현재까지 로마의 지반은 15m 정도 위 로 올라오게 되었으며 3천 년간의 도시 유적이 그대로 지하에 묻히게 된 것이다. 물론 지어질 때부터 지하구조물로 만들어진 시설도 적지 않다. 당시 지하공간은 지상 건축만큼이나 자연스러웠으니 말이다. 지반을 높여 홍수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묻혀버린 것은 도로와 건물만이 아니다. 환경이 바뀌면서 삶의 방식과 종교 문화가 서서히 바뀌고 시대의 주류적인 사고도 많은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아름다운 모자이크로 유명한 산 클레멘타 성당을 보면 고대도시 위에 신도시가 건설되는 과정에서 건축물의 용도와 형식이 어떻게 변하는지 살펴볼 수 있다. 처음 건축될 당시 산 클레멘타 성당은 미트라 신전이었다. 기원전 1세기경 로마에 들어온 미트라교는 황제를 비롯하 여 로마의 많은 귀족들이 믿는 주류 종교였다. 그러나 4세기 로마를 장악한 기독교는 미트라 신전을 묻고 그 위에 산 클레멘타 성당을 지었다. 12세기에는 다시 새로운 성당이 지어졌다. 이렇게 각기 다른 시간대에 만들어진 성당의 층위 를 비교해 보면 건축양식의 변화는 물론 로마의 지반이 서서히 높아지는 과정도 함께 살펴볼 수 있다.Vol. 24, No. 2 69 숨겨진 세계, 로마의 지하공간 미트라신전(지하), 산클레멘타 성당(지상) 팍스 로마나 인류에게 로마는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까. 유럽과 아시아 아프리카에 이르기까지 경계를 정할 수 없는 로 마의 영토, 기원전에 시작되었지만 아직까지 현대문명 에 영향을 주고 있는 정치· 종교 제도, 인문학· 철학· 과학의 기원, 건축한 지 이천년이 넘어서도 아직 사용 되고 있는 유적과 주거지, 인류 문명사에 남겨놓은 로 마의 흔적은 어디에서든 쉽게 발견된다. 흔히 ‘모든 길 은 로마로 통한다’거나 ‘세계를 하나로 만든 제국’으로 로마를 비유하지만 이 또한 그렇게 충분한 표현으로 보 이지 않는다. 아무튼 로물루스 형제에 의해 로마가 창 건된 기원전 750년부터 고트족의 침입으로 멸망한 476년까지 1177년간1) 로마에는 그때까지 인류가 알고 있던 모든 기술과 문화가 모여 있었고 서구 문명의 언어를 비롯한 정치 예술 사회적 제도의 뿌리가 만들어져 있었다. 이렇게 위대한 업적을 남겼지만 로마 역시 모든 문명이 그렇듯이 쇠락의 길을 걸었다. 나는 로마의 쇠락이 아우렐 리아누스 성곽에서 시작된 게 아닐까 생각된다. 그 철옹성 같은 성곽에서는 정복국가로서의 진보적인 성향이 점차 수 구(守舊)적으로 바뀌어가는 모습이 엿보이니 말이다. 기원전 52년 갈리아를 정복한 케사르는 로마를 둘러싸고 있던 1) 로마의 마지막 황제가 퇴위한 476년 이후에도 지배계급만 바뀌었을 뿐 로마의 정치 종교제도는 한동안 유지되었으며, 로마를 계승한 비잔틴 제국(동로마)이 오스만 투르크에 의해 멸망한 1453년까지 977년간 로마는 지속되었다. 여기서는 476년 이전 건축된 터널이나 지하공간 위주로 살펴보았다. 로마 아우렐리아누스 성곽인문학 산책 70 자연,터널 그리고 지하공간 세르비우스 성곽2)을 모두 부숴 버린다. 로마의 경계를 소멸시키고 안과 밖이 없는 로마 즉 세계국가를 선언한 것이 다. 이후 황제가 된 케사르는 유럽과 아시아 아프리카를 잇는 도로망을 확장하고 엄청난 규모의 수로를 건설하였다. 실질적인 팍스 로마나3)는 아마도 이때 시작된 게 아닐까 싶다. 그러나 훈족 게르만족의 침입과 전염병으로 인구가 급감하기 시작한 273년 아우렐리아누스4)는 이민족 침입에 대비해 다시 성을 쌓기 시작 한다. 베네치아 광장을 중심으로 로마 구시가지까지 포함하는 46km의 대성곽이 완성되었을 때 그야말로 로마는 철옹성처럼 보였다. 하지만 성곽의 완성은 로마멸망의 서곡에 불과했다. 정복국가인 로마가 창을 놓고 방패를 들었을 때, 정복의 꿈을 버리고 안위를 원했을 때 로마네스 크의 꿈도 함께 무너져 내린 것이 아닐까. 아무튼 로마가 존속한 기간이 길었던 만큼 이 시기에 만들어진 터널이나 지하공간 역시 규모나 기술 적인 면에서 어떤 문명과도 비교할 수 없다. 처음 로물루스가 고랑을 파 서 로마의 경계를 만들었다는 팔라티노 언덕과 테베레강 주변의 지질은 화산 석회암이 넓게 분포하고 있다. 석회암은 잘게 부수고 화산재를 섞 어 물과 반죽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단단하게 굳어지는데 이러한 기 술 즉 시멘트 제조기법은 도시기반시설을 만드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 다. 시멘트는 돌과 돌을 연결하고 수로에서 물이 새 나가지 않도록 하거나 굴착한 지하공간을 매끄럽게 다듬는데도 요긴하게 쓰일 수 있었다. 건축물의 내부공간을 프레스코화로 아름답게 채색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시멘트가 있었기 때문이다. 로마의 지하공간은 산악을 통과하기 위한 도로터널, 테베레강 유역의 늪지에서 물을 배출하기 위해 만들어 진 배수로, 백만 명을 먹여 살리기 위한 수로터널, 사자를 위한 카타콤베 등을 들 수 있다. 이 외에도 성당이나 신전 등 로마시대의 어떤 건축물이든지 그곳에는 터널이나 지하공간의 역사에서 의미 깊게 살펴볼 유적이 흩어져 있다. 지하공간은 어떻게 만들었을까 로마시대에 도로나 수로 또는 카타콤베를 짓기 위해 지하공간을 만드는 것은 지상 건축물을 짓는 것만큼이나 자연 스러운 일이었다. 지하공간이나 터널이 얼마나 되는지 따로 조사한 자료는 없지만 현재 사용되고 있는 시설만 해도 2) 세르비우스 성곽. BC 4세기 로마 제6대왕 세르비우스가 건설한 성곽으로 테베레강을 중심으로 로마 둘레의 일곱 개의 언덕을 감싸고 있었으나 BC52년 무렵 철거되었다. 3) 팍스 로마나(Pax Romana). 로마에 의한 평화라는 뜻으로 갈리아 정복과 내전이 마무리된 BC27년부터 아우렐리우스 황 제 때까지 약 200년의 기간을 의미한다. 4) 아우렐리아누스(Lucius Domitius Aurelianus. 270년-275년) 군인에 의해 1~2년 주기로 황제가 교체되던 시기(235~283 년)의 황제로 275년 타키투스에 의해 살해되었다. 품베이 도로Vol. 24, No. 2 71 숨겨진 세계, 로마의 지하공간 다 열거하기 어렵다. 당시 로마가 국경이 없는 나라로 일컬어졌으니 유럽 아프리카 소아시아 지역에 만들어진 유적을 로마 유적으로 보는 것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통계수치를 내는 건 어렵겠지만 학자에 따라서는 로마의 지하갱도가 1000km가 넘을 것으로 추산한다. 하긴 유럽 아시아 흩어져 있는 속주는 제외하고 순수한 도성만 해도 로마는 그렇게 작은 도시가 아니었다. 아우렐리아누스 성곽을 펼치면 46km가 넘었고 그 주변까지도 조밀하게 사람이 몰려 살았으니 말이다. 로마의 전성기라 할 수 있는 기원 100년경 로마 도성의 인구는 백만 명이 넘어섰는데 이 정도의 인구집중은 많은 도시문제를 유발했을 것으로 보인다. 아무리 기반시설을 잘 갖추어졌다고 해도 생필품의 수요와 공급을 비롯하 여 급수 배수 위생 환경 등 모든 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로마가 주거나 저장 또는 다양한 용도로 지하 공간을 활용하게 된 것은 이렇게 부족한 공간 때문이었겠지만 이외에도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① 유리한 지반조건. 로마의 지반은 지하공간을 구축하고 활용하는데 매우 유리하다. 화산 석회암지대로 구성되어 있 는 지반은 그렇게 단단하지 않아 굴착하는데 어려움이 없는 반면 일단 굴착하고 난 뒤에는 노출된 면이 공기 중의 물기를 빨아들이면서 굳어지는 수화반응이 일어난다. 따라서 특별한 기술이나 장비 없이 곡괭이나 정 도끼만으로 도 암반을 굴착할 수 있다. ② 충분한 노동력. 전쟁포로와 노예제도를 통해 장기간 대규모 공사를 하기 위한 노동력을 지속적으로 확보할 수 있 었다. 로마시대의 노예는 귀족의 가내작업이나 라티푼디움이라 불리는 농장에서 일하기도 했지만 노예의 가장 큰 역할은 도로나 수로를 비롯하여 로마를 있게 한 도시기반시설물을 만들어내는 것이었다5). ③ 공학기술의 발달. 영토 확장으로 다양한 지역의 건조물 축조기술이 자연스럽게 로마로 집중되었으며 로마가 다시 기술발전의 축으로 기능하게 되었다. 그리이스의 발전된 기하학을 계승함으로서 정밀한 측량과 건설이 가능했던 것도 중요한 이유 중 하나다. 이 당시에는 유클리드가 집대성한 기하학 원론을 응용하여 세련된 건축기술이 보편적 으로 사용되었으며 수학뿐만 아니라 건축 도로 수로 건설에 활용될 수 있는 다양한 공학기술 책자도 발간되었다. ④ 풍부한 재료와 자재. 이탈리아 반도내의 여건으로만 보자면 로마는 양질의 대리석 외에 지하자원이 거의 없는 실 정이다. 그러나 주변지역을 통해 양질의 건축 재료를 충분히 공급받을 수 있었고 이를 로마시내로 운반하기 위한 해운과 육로가 잘 갖추어져 있었다. 또한 시멘트의 재료가 되는 화산 석회암은 로마 인근에 거의 무제한으로 널려 있었다. ⑤ 인프라에 대한 가치관. 로마인은 인프라 사업을 몰레스 네케사리에(moles necessarie)라 하여 사람다운 생활을 위 해 꼭 필요한 사업이며 또한 세금을 받는 국가의 의무로 인식했다. 인프라를 국가의 흥망 조건으로 본 로마인의 생 각은 지금도 현대 도시공학의 근간이 된다. 기술이나 공사를 천시하는 전통이 뿌리 깊게 박혀 있던 우리와는 큰 차 이가 있다. 5) 로마의 건축이나 시설물이 노예노동에 의존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러한 작업을 대단히 명예로운 것으로 여겨 귀족이 공 사를 직접 지휘했고 주요기술적인 임무는 정규병력에 의해 이루어졌다.인문학 산책 72 자연,터널 그리고 지하공간 도로터널 도로는 로마를 상징하는 가장 중요한 시설물이다. 기원전 3세기에 처음 만들어진 이후 단 한 해도 거르 지 않고 로마의 도로는 계속 확장되어 나갔다6). 로마 가 113개나 되는 속주를 효율적으로 통제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렇게 만들어진 도로 때문이다. 도로의 우 선적인 목적은 전투병력의 신속한 이동에 있었다. 따 라서 당시 가장 중요한 무기인 마차가 교행할 수 있는 폭과 잘 다져진 도로면이 필요했다7). 도로는 보통 평 지와 경사가 완만한 지역을 택하여 만들어졌지만 골 짜기나 강을 만나면 다리를 만들었고 산을 만나면 터 널을 뚫었다. 기원전 220년 건설된 플라미니우스 가 도(Via Flaminius)는 험준한 아펜니노 산맥을 넘어가는 구간인데 이곳에는 약 38m의 플루로(Furlo) 터널8)이 포함되 어 있다. 터널의 형태는 아치 형태로 말을 타고 지나가는데 어려움이 없는 규모였다. 지금 이 터널은 차량이 다니는 도로터널로 이용된다. 도로터널에서 가장 어려운 문제는 빛을 확보하는 것과 환기 문제였다. 수로터널과는 달리 사람 이 통행하기 위한 터널은 상시 조명이 필요했고 이럴 경우 탁해진 공기를 환기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플루로 터널과 같이 짧은 경우는 이런 시설이 필요 없지만 터널이 길어지면 환기나 조명 배수 등 많은 문제가 있어 기피하는 시설이 되었다. 지하도시 카타콤베(Catacombe) 소포클레스의 비극 ‘안티고네’는 오이디프스가 비극적인 삶을 마친 뒤 그의 딸이 겪는 이야기다. 안티고네는 아버 지에 이어 왕에 오른 크레온에게 항거하다 ‘죽은 자의 도시(Necropolis)’에 갇히게 된다. 안티고네는 결국 이곳에서 죽음을 택하는데 그녀를 스스로 죽음에 이르게 했던 ‘죽은 자의 도시’란 어떤 곳이었을까. 단순히 보면 그냥 지하묘지 일 뿐이지만 이곳은 역사와 삶의 흔적이 함께 묻혀있는 문화의 보고다. 카타콤베는 기독교의 성인을 비롯한 많은 사 6) BC.3세기에서 고트족 침입이 빈번하던 3세기 초반까지 약 500년간 건설된 포장도로는 372개 노선에 80,000km에 이 른다. 7) 도로의 기준은 12표법에 기록되어 있는데 최소폭은 직선구간 2.45m, 곡선구간 4.9m이며 보통 도로는 마차 폭 1.5m를 기준으로 두 대가 여유있게 교행할 수 있도록 4.0m의 폭으로 건설하였다. 대규모 보병병력의 이동을 위하여 포장도로 양측에 3m 폭으로 인도를 만들었다. 8) 플라미니우스 가도(Via Flaminius)는 BC 220년부터 건설되었지만 플루로 터널은 훨씬 뒤인 AD 76년경 건설되었다. 높 이는 5.47m 폭은 5.95m이다. Furlo 터널Vol. 24, No. 2 73 숨겨진 세계, 로마의 지하공간 람이 매장되어 있다. 발레리아누스(Valerianus) 황제 시에는 박해를 피하기 위해 몰려든 기독교인들로 인 해 삶의 터전이 되기도 했다. 이러한 이유로 카타콤베 는 오랜 세월동안 언더시티(Undercity, 지하도시)라는 별명으로 불리어 왔다. 방사형과 위 아래로 복잡하게 뻗어있는 지하터널과 교회 제의공간을 보면서 카타콤 베를 또 하나의 세계로 생각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 로 보인다. 당시 귀족이나 부유한 계급은 화장을 선호 하였으나 가난한 시민이나 노예는 지하공동묘지를 이 용할 수밖에 없었다. 카타콤베는 기원전 1세기에 만들어지기 시작했지만 현재와 같이 대규모로 확장된 것은 3세기에서 4세기 무렵이다. 로마 후반기 또는 쇠퇴기에 해당하는 이 시 기는 주기적인 전염병으로 인해 일시에 많은 사람들 이 병사하던 때이다. 많은 민족이 모여 살던 로마는 장례에 있어서도 그만큼 다양한 제의와 절차를 가지 고 있었지만 갑작스런 전염병으로 인한 병사에는 화 장이나 카타콤베 외에 별다른 대책이 없었을 것이다. 가뜩이나 도시공간이 협소하여 매장을 위한 토지확보 가 불가능한 상태에서 카타콤베는 불가피한 선택이었 다. 특히 복층 묘지가 가능한 지하공간의 구조는 매우 유리하게 작용했다. 한 층에서 어느 정도 터널이 길어져 불편해 지면 아래쪽에 다시 터널을 뚫어 얼마든지 공간의 확장이 가능했으니 말이다. 로마에 이렇게 많은 카타콤베가 만들어진 것은 토지문제와 종교갈등과 같은 인문적인 이유를 먼저 들 수 있겠지만 또 하나 살펴볼 만한 이유는 이 지역의 토질 특성을 득 수 있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화산석회암은 손쉽게 지하를 굴착할 수 있는 반면 굴착한 이후에는 공기 중의 습기를 빨아들이게 된다. 시멘트와 물이 화학작용을 일으켜 굳어지 는 수화반응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로 인해 지반은 장기간에 걸쳐 지속적으로 굳어지므로 붕괴 염려 없이 지반이 안 정된다. 일반인이 만든 시설과 달리 에트루리아 시대부터 내려온 거대한 카타콤베는 매장 후 수시로 접근해 제의를 치룰 수 있도록 터널식 통로와 내부 지하공간을 갖추고 있다. 카타콤베는 313년 밀라노 칙령으로 기독교가 공인되면 서 점차 줄어들었지만 이후 이 지역을 성소화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접근 터널이나 교회시설이 추가되었다. 잘 알려진 카타콤베로는 초기에 만들어진 세바스티아노, 지하 5층 규모의 도미틸라, 역대 교황이 묻혀있는 칼리스토스 카타콤베 등이 있다. 연극, 안티고네의 한 장면 카타콤베 입구인문학 산책 74 자연,터널 그리고 지하공간 이포제움, 콜로세움의 지하공간 로마의 지하공간에 대해서 빠트릴 수 없는 게 콜로 세움이다. 콜로세움은 관중석과 경기장 규모, 그리고 여기서 벌어진 잔혹한 경기에 대하여는 잘 알 것이다. 그러나 경기장 밑에 만들어진 엄청난 규모의 지하공 간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콜로세움은 크게 3개 영역으로 나뉜다. 객석인 카베아(Cavea), 검투사 가 경기를 벌이는 아레나(Arena), 그리고 경기장 밑의 지하공간 이포제움(hypogeum)이다. 검투사가 대기하 거나 맹수우리가 있던 이포제움은 정교한 공학기술과 설계에 있어 로마 지하공간 축조기술의 전범으로 꼽 을 만하다. 지하 2층으로 만들어진 이포제움에는 다양한 크기의 방이 볼트(bolt)로 이어져 있고 각 층은 다시 승강기 로 지상층과 연결되어 있었다. 사자나 코끼리가 엘리베이터를 통해 경기장에 등장할 때 관객의 함성은 얼마나 컸을까. 검투사 훈련소인 마그누스(Magnus)는 콜로세움에서 떨어진 곳에 있었는데 이 시설 역시 긴 터널로 이포제움에 연결 되어 있었다. 콜로세움의 이포제움최신 터널 뉴 스 Vol. 24, No. 2 75 편집위원 : 도종남(한국도로공사 도로교통연구원) □ 수도권 철도건설 박차...15개 사업 올해 2조 1,300억원 투입 신분당선(강남~신사) 28일 개통 등 수도권 어디든 30분대 주파 국가철도공단이 수도권 철도건설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16일 밝혔다. 1899년 경인선을 시작으로 올해 진접선 개통까지 이어져온 우리나라 철도 교통의 최고(最古) · 최대(最大) 지역인 수 도권은 도심과 주요 거점 연결을 위해 현재 15개 철도건설 사업이 추진 중이며 전체 사업 규모는 약 30조 4,000억원 에 달한다. □ 올해 수도권 철도건설에 약 2조 1,300억 투입 지난 3월 개통한 진접선 복선전철에 이어 이번달 28일에는 신분당선(강남∼용산) 강남∼신사 구간이 개통을 앞두고 있다. 인천발KTX 직결사업, 수원발KTX 직결사업, 수도권고속철도(수서∼평택), 신안산선 복선전철, GTX-A, 대곡∼소 사 복선전철, 인덕원∼동탄 복선전철, 월곶∼판교 복선전철, 삼성∼동탄 광역급행철도, 동두천∼연천 복선전철, 경 원선 철도복원, 수인선 복선전철, GTX-C 등 총 15개 철도건설 사업에 올해 약 2조 1,300억의 사업비를 투입하여 코 로나19로 침체된 지역경제 활성화의 마중물 역할을 해나갈 예정이다. 최신 터널 뉴 스 76 자연,터널 그리고 지하공간 □ 신분당선 강남~신사 구간 28일 개통 등 2개 사업 완료 지난 3월 19일 가장 먼저 개통한 진접선 복선전철은 서울지하철 4호선 당고개역에서 남양주시 별내와 오남, 진접지구 14.9km를 연결하는 사업으로 총사업비 1조 4,000억 원이 투입되었으며 2015년 착공 후 약 7년 만에 완공되었다. 진접선 개통으로 진접역에서 서울 도심(서울역)까지 52분 만에 이동 가능하게 되어 출퇴근 시간이 버스 대비 최대 1 시간 8분 단축되는 등 수도권 동북부지역의 서울 접근성이 크게 개선되었다. 서울 도심과 기존 신분당선(강남∼광교)의 연계 철도망 구축을 위한 신분당선 강남∼용산 노선은 강남∼신사 구간이 오는 28일 우선적으로 개통하며 강남역에서 신논현, 논현을 거쳐 신사역까지 2.5km가 연장된다. 신분당선 강남∼신사 구간이 개통되면 신논현역(9호선), 논현역(7호선), 신사역(3호선)에서 타 지하철 노선과 환승 가능해 수원과 용인, 성남 등 기존 신분당선(강남∼광교) 이용자들의 서울 시내 접근성이 더욱 개선될 전망이다. □ 광역철도 건설로 주요 거점 30분 내 연결 수도권 주요 거점을 30분 내 연결하는 광역철도 건설사업은 3개 사업이 진행 중이며 삼성∼동탄 광역급행철도 사업 은 재정으로, 신안산선과 GTX-A 사업은 민자사업으로 추진된다. 삼성∼동탄 광역급행철도 사업은 수도권 동남부 과밀교통축의 만성적 도로교통난 해소를 위해 서울 강남구 삼성동 과 경기도 성남시, 용인시, 화성시를 연결하며 올해 본선 터널 전 구간 굴착과 궤도와 시스템 분야 착공을 목표로 공 사 진행 중이다. 신안산선 복선전철은 수도권 남서부와 서울 도심부를 직결하는 X자형 광역전철망 구축을 위해 경기도 안산과 시흥 에서 서울 여의도까지 44.9km를 복선으로 건설한다. 송산차량기지 주요 공종이 금년 중 완료되는 등 4월 말 기준 공정율 21%로 정상 추진 중이다. 2024년 개통 시 경부 고속철도 광명역과 환승 가능하며 안산에서 여의도까지 25분소요되어 기존 지하철 대비 1시간 15분 단축된다. GTX-A 사업(경기 파주∼서울 삼성동)은 지난 2019년 GTX-AㆍBㆍC노선 중 가장 빨리 착공하였으며, 본선 굴착 등 2024년 준공 목표로 공사가 본격 추진 중이다. 개통 후 최고 시속 180km로 열차 주행 예정이며 파주 운정∼서울역 20분, 킨텍스∼서울역 16분, 동탄∼삼성 21분 등 기존 이동시간 대비 70∼80% 단축될 것으로 기대된다. 한편, GTX-B(남양주 마석∼인천 송도) 노선은 연말까지 시설사업 기본계획고시와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을 추진하 며, GTX-C(양주 덕정∼수원) 노선은 우선협상대상자와 올해 실시협약 체결을 목표로 협상 중에 있다. □ 고속 및 일반철도 9개 사업 추진 고속 및 일반철도 사업은 인천발KTX 등 9개 사업이 진행 중이며 올해 사업비 약 5,442억 원을 투입한다. 최신 터널 뉴 스 Vol. 24, No. 2 77 인천발KTX 직결사업은 인천과 안산, 화성 등 수도권 서남부지역에 고속철도 서비스 제공을 위해 수인선과 경부고속 선을 연결하며 올해 사업비 620억원이 투입된다. 수원발KTX 직결사업은 수도권 동남부 지역까지 고속철도 수혜지역 확대를 위해 경부선과 수도권고속철도를 연결하 는 사업으로 올해 사업비 325억원이 투입된다. 2개 직결사업 모두 2020년 12월에 착공하여 2024년 완공을 목표로 추진 중이다. 경원선 동두천∼연천 사업은 올해 하반기 전 분야 구조물 공사를 완료하고 종합시험운행에 착수한다. 4월 말 기준 공정 83.0% 진행되었으며 2023년 개통 예정이다. 지난해 일부 구간 착공한 인덕원∼동탄, 월곶∼판교 복선전철 사업은 올해 전 구간 발주 예정이며, 현재 열차 운행 중인 수인선 복선전철과 수도권고속철도 사업은 최종 준공을 앞두고 마무리 공사 시행 중이다. 대곡∼소사 복선전철 은 2023년 개통 목표로 진행 중이며, 경원선 철도복원 사업은 통일부 협의 후 추진 예정이다. 손병두 수도권본부장은 “스마트 안전관리시스템 도입과 현장점검 등 더욱 안전한 건설현장을 조성하고 오랜 시간 축 적한 사업관리 노하우를 바탕으로 예정된 공정을 체계적으로 이행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김한영 이사장은 “교통 혼잡이 심한 수도권은 친환경적이고 에너지 효율적인 철도 중심 교통체계 구축이 필요하다.” 며, “철도로 서울과 수도권 주요 거점을 30분대로 연결하여 수도권 주민들의 보편적 교통복지를 실현하고 탄소중립 사회로의 전환을 선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Nex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