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revious인문학 산책 88 자연,터널 그리고 지하공간 배치하였다. 이곳은 한 사람이 겨우 통과할 수 있도록 좁게 만들었다 아무리 많은 적이 침입해도 일대일로 저항한다 면 해볼 만 했을 테니 말이다. 물론 이들이 수백 년간 계속 땅속에서만 산 것은 아니다. 식량과 생필품을 구하려면 지 상으로 나갈 수밖에 없었을 테니 말이다. 동굴 안에 웬만한 주거기능이 갖추어져 있긴 하지만 적의 위협이 없는 평시 에는 지상으로 나와 일상적인 생활을 유지했다. 근처에서 농사를 짓고 양을 키우면서 지하도시에 식량을 공급한 것이 다. 저장 공간에서 발견된 밀이나 포도주 그리고 교역을 통해 얻은 직물 그릇 제의도구는 지상과 지하생활을 병행하 던 이들의 삶을 어느 정도 추정해 볼 수 있게 해 준다. 어둠을 극복한 사람들 생활공간과 물자를 갖추었다 해도 어떻게 그 긴 세월을 지하에서 버텨냈는지는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침략과 학살 의 공포를 피해 일단 동굴로 들어오긴 했지만 그 곳에서 장기간 버티는 건 더욱 끔찍한 일이었을 테니 말이다. 특 히 어둠과 폐쇄로 인한 공포는 육체적인 공포보다 더 심각 했을 것이다. 연구 자료에는 지하생활을 견디지 못해 정신 병에 걸리는 사람이 아주 많았다는 기록이 나온다. 좀 넓 은 공간에는 중앙에 기둥이 설치되어 있다. 어떤 기둥에는 구멍이 뚫어져 있는데 이것은 밧줄이나 사슬로 정신질환자 를 묶어두기 위한 것이었다. 침략의 광풍이 지나간 뒤 지 상으로 올라온 사람들은 어둡고 좁은 지하생활로 인해 곱 추나 기형이 되었으며 햇빛 때문에 실명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그들의 정신적 육체적 고통이 잘 느껴지는 기록 이다. 기독교에서는 지하도시의 삶을 신을 향한 염원과 신앙의 결정체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이러한 삶이 선택이 아 니라 학살의 공포에서 비롯된 것임은 자명하다. 정복자의 입장에서 피정복자의 종교나 문화는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 으며 노예로 부릴만한 가치가 없으면 무차별 학살하던 시절이었으니 말이다. 하여튼 신앙이 중요한 역할을 하긴 했겠 지만 데린쿠유는 바로 그 고난한 삶을 보여주는 흔적에 다름 아니다. 데린쿠유 내부Vol. 21, No. 4 89 아틀란티스와 지구 구체론 아틀란티스와 지구 구체론 플라톤 아틀란티스 이야기의 유래 머나먼 옛날 크게 번영했으나 하룻밤 사이에 멸망했다는 전설 속의 문명 아 틀란티스. 잊힌 이 문명에 대한 이야기가 고대 그리스 시대에 채록되었다. 놀랍 게도 채록자는 서구 ‘이성철학reasonable philosophy’의 원류인 플라톤(BC 427~347)이다. 서구 문명사에서 그가 끼친 영향력은 매우 크다. 그는 철학의 아버지였고 인간 이성의 대변자였다. 그랬던 그가 신비한 아틀란티스 이야기의 시초였다니 매우 놀라울 따름이다. 플라톤은 그의 말년에 쇠락해가는 아테네를 바라보면서 이를 극복하기 위한 철학을 설파하기 위해 그의 스승이었던 소크라테스가 주재하는 가상의 대화집 3부작 시리즈를 기획했다. <티마이오스Timaeus>, <크리티아스Critias>, 그리고 <헤르모크라테스Hermokrate> 가 바로 그것이었는데, 마지막 저술은 끝내 세상 에 나오지 못했다. 과학혁명 이전까지 서구 지성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티마이오스>는 세계 의 창조와 생성, 천체의 움직임, 인간의 영혼, 4원소설로 보는 세계의 근본 요 소와 운동, 감각적 지각, 인간의 몸과 질병 등을 다루었다. 이는 ‘국가’의 존재가치를 우주론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함이 었는데 여기서 최초로 아틀란티스에 대한 소개가 이루어졌다. <크리티아스>에서는 구체적으로 ‘국가’의 역사적 논거를 제시하는데 바로 그 대표적 모델 중 하나로 꼽은 것이 아틀란티스였다. 맹성렬 우석대학교 교수인문학 산책 90 자연,터널 그리고 지하공간 플라톤의 <티마이오스Timaeus>와 <크리티아스Critias>에 묘사된 내용을 토대로 재구성한 아틀란티스 전경 아틀란티스에 대한 다양한 견해들 오늘날 플라톤 철학을 연구하는 대다수 학자들 의 입장은 ‘아틀란티스’라는 이름이 플라톤의 기록 에 등장하기 전에 호메로스나 헤시오드 같은 문학 가나 헤로도토스와 같은 역사가 등 그 어느 누구 도 언급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은 신화도 역사도 아닌 순전히 플라톤이 자신의 정치 철학을 설파하 기 위해 만들어낸 허구적 산물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일부 학자들은 비록 그 이름이 직접적 으로 거론되지는 않았지만 호메로스나 헤시오드의 문학 작품들에서 아틀란티스와 유사한 모티브를 갖는 문명 이야기 흔적이 존재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또 다른 학자들은 역사적으로도 아틀란티스와 관련된 중요 모티브들이 다루어졌으며 특히 헤로도토스의 기록에서 그런 흔적들을 찾아볼 수 있다고도 말한다. 심지어 플라톤이 기술한 내용에 딱 맞아 떨어지는 아틀란티스 유적을 발 굴했다는 고고학자들의 주장이 학술지나 매스컴에 소개되어 종종 화제가 되기도 한다. 이렇게 관련 학자들은 아틀란티스의 존재에 대해 그것이 완전 허구의 수사적 장치라는 주장부터 다른 고대 그리스 신화들과 맥락을 같이 하는 신화의 하나라는 견해, 그리고 그 배경으로 보아 어느 정도 역사적 실체가 존재하는 것 같다는 의견과 실제로 관련 유적이 존재하니 탐사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의 난상토론을 벌이고 있다. 고대 기록에 대해 관련 학자들 간에 이렇듯 다양하게 의견이 나눠지는 예는 쉽게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다. 아틀란티스 문제에 대한 다양한 견해들이 있지만 지금까지 이 문제에 대해 당시 있었던 세계관의 대전환과 관련지 어 논의가 이루어진 바는 아직 없었다. 플라톤이 아틀란티스 이야기를 끄집어내던 시기는 고대 그리스에서 그동안 믿 어지던 지구 원판론이 지구 구체론으로 바뀌던 커다란 전환기였다. 지구 원판론 초기의 고대 그리스 지식인들 사이에 상식적인 세계관은 지구 원판론이었다. 호메로스는 지구가 물위에 떠있는 편 평한 원판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대륙이 오케아노스Okeanos라는 거대한 강에 둘러싸여있으며, 이 강은 원판을 지탱 하는 아래쪽 물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했다. ‘죽은 이들의 나라Hades’는 원판 아래쪽에 위치했다. 태양과 달, 그리고 다른 천체들은 동쪽의 오케아노스 강에서 떠올라 하늘을 한 바퀴 돈 다음 서쪽의 강 아래 명계로 내려간다. 이 모델 에 의하면 우주는 구 형태로 그 절반을 가르는 것이 지구 원판이며 그 위에는 하늘 그 아래에는 명계가 위치한다. Vol. 21, No. 4 91 아틀란티스와 지구 구체론 고대 그리스 시대에 믿어졌던 원판형태의 세계 모습 헤시오드도 비슷한 묘사를 했는데 지옥인 타르투르스는 지 구 원판 아래 한가운데에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심연the depth 이라고도 불리는 그곳은 후세에 타이탄족을 가두는 지하 감옥, 죽은 이들이 심판 받는 명계, 또는 죄지은 영혼이 갇히는 지옥 등으로 인식되었다. 따라서 당시 사람들은 지브롤타 해협을 벗 어나 멀리 나아가면 지옥에 떨어진다고 믿었다. 그 후 세노파 네스Xenophanes와 같은 엘레아 학파 철학자나 헤로도토스같 은 역사학자도 비록 선대의 지리학자들의 주장에 다소 비판적 이긴 했어도 지구는 유럽, 아시아, 리디아(아프리카)가 중심에 있는 원판이라는 사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그런데, 이런 세계관을 신봉하는 이들은 원판의 가장자리로 부터 멀리 벗어나 지옥에 떨어지기 전에 이미 주변부에만 가도 문제가 생긴다고 믿었다. 주변의 주거 환경이 중심부와 너무 달라서 도저히 사람이 살 곳이 못 된다고 보았던 것이다. 실제 로 헤로도토스의 기록을 살펴보면 이런 세계관이 엿보인다. 그 는 그리스에서 한참 동쪽에 있는 인도는 아침에 해가 뜰 때 해에 너무 가까이 있어 매우 뜨거우며 그와 반대로 저녁 에 해가 서쪽 지평선으로 이동하면 너무 멀리 떨어져 춥다고 기록했다. 헤로도토스는 결코 인도에 간 일이 없으며 이 는 자신의 여행담이 아니라 그가 지구 원판설에 입각한 자신의 생각을 설명한 것으로 보인다. 영국의 고전학자 올리버 톰슨J. Oliver Thomson은 그 어디에서도 헤로도토스가 지구가 편평하지 않을 수도 있다 는 의심을 했다는 정황을 찾아볼 수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헤로도토스가 살던 기원전 5세기의 고대 그리스 대다수 사람들은 지구 원판설을 믿고 있었기에 그 또한 당시의 상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세계관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아틀란티스가 헤로도토스의 역사관이나 지리관 안에서 설명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의 주장은 잘못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비록 헤로도토스가 플라톤이 묘사한 아틀란티스와 유사한 지형이나 건축물들을 묘사했지 만 그의 세계관에 지브롤타 해협 바깥쪽 대륙과 그 거주민이란 존재는 없었던 것이다. 지구 구체론 지구 모양이 원판이 아니라 입체적이라고 보는 견해를 최초로 제시한 것으로 알려진 이는 기원전 6세기 초중반에 활동한 철학자 아낙시만드로스Anaximandros다. 그는 지구가 원통형 드럼column drum 또는 돌기둥stone column처 럼 생겼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온다. 그는 여기서 더 나가 이런 입방체 지구가 물위에 떠있는 것이 아니라 우주 공 간에 홀로 존재한다는 혁명적인 모델을 제시했다.인문학 산책 92 자연,터널 그리고 지하공간 아리스토텔레스의 <하늘에 관하여On the Heavens> 책표지 아낙시만드로스 아낙시만드로스의 제자로 알려진 피타고라 스는 대부분 관련 학자들에 의해 지구가 둥글 다고 주장한 최초의 인물로 지목받고 있다. 역 시 지구가 우주 공간에 홀로 존재한다는 주장 을 했다. 그런데 그보다 약간 늦은 시기에 활 동한 파르메니데스Parmenides도 지구가 둥근 공처럼 생겼다는 기록을 남겼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지구 구체설이 고대 그 리스에서 학자들 사이에 정설로 받아들여진 시 기는 언제일까? 그 시기는 아리스토텔레스가 활동하던 시기에서 플라톤이 죽은 기원전 4세기 중반으로 볼 수 있다. 기원전 5세기에서 4세기에 걸쳐 활동한 플라톤은 고대 그리스에서 대학자로 숭앙받게 되는데 그가 피타고라스 학파 에 의해 다듬어진 지구 구체론을 저술로 소개함으로써 나중에 그것이 정설로 받아들여지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최초로 논증한 아리스토텔레스 여러 가지 분야에 기여한 일들이 많아서 아리스토텔레스가 지리학이 나 지도학에 기여한 부분은 별로 관심을 받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 만 그는 지구 형태와 이를 바탕으로 ‘지구상에 인간이 살 수 있는 지역 oikoumene’에 대해 고민한 지리학자이기도 했다. 플라톤의 수제자였던 그는 최초로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논증했다. 그는 <하늘에 관하여On the Heavens>에서 월식이 달에 드리운 지구 그 림자 때문에 발생한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그림자 형태가 둥근 것은 지 구가 둥글다는 증거로 봐야한다는 것이다. 그는 지구가 구체라는 증거를 몇 가지 다른 천체 현상에서도 찾고 있다. 그리스에서 관찰 가능한 별자 리 중에 이집트 땅에서는 관찰할 수 없는 게 있는데 지구가 편평하다면 일어날 수 없다. 또, 그리스에서는 항상 밤하늘에 머무는 주극성週極星 중에 이집트에서 지평선으로 뜨고 지는 출몰성出沒星인 것들이 있는데 이 역시 지구 원판론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그는 이 모든 천체 현상들 이 지구가 평판이 아니라 구체임을 가리키고 있을 뿐 아니라 그 크기도 별로 크지 않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보았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이 정 도의 작은 위치 이동 때문에 그렇게 큰 변화가 생길 수 없기 때문이다. Vol. 21, No. 4 93 아틀란티스와 지구 구체론 아틀란티스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 반응 앞에서 대다수의 철학자들이나 고전학자들이 아틀란티스 이야기를 순전한 허구로 취급한다고 했다. 영국의 고전학 자 존 V. 루스John V. Luce도 예외가 아니어서 아틀란티스 이야기를 플라톤이 오만과 부패에 빠진 문명의 운명에 대 한 경고를 주기 위해 순전히 시적으로 창안해낸 허구라고 말한다. 비록 플라톤의 수제자이자 라이벌이기도 했던 아리스토텔레스 스스로가 아틀란티스 문제에 대해 직접 기록으로 남 긴 것은 없지만 스트라보에 의하면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신화 속에 등장하는)아카이아 사람들의 벽을 시인(호메로스)이 허물어 버렸듯 아틀란티스 대륙의 창작자가 그것을 사라지게 했다.’ 지금까지 이것이 아리스토텔레 스의 아틀란티스에 대한 유일한 반응으로 전해오고 있다. 정말로 그가 이런 주장을 했는지 다소 의심스럽지만 정말로 그가 이런 내용을 말했다면 그 의미가 무엇일까? 아리스토텔레스가 지브롤타 해협 바깥에 존재하는 대륙들이란 소재 자체를 플라톤이 창작했다고 생각했을까 아니면 그런 대륙을 하룻밤 사이에 바다 속에 가라앉힌 부분을 플라톤의 창 작으로 보고 냉소적으로 반응했던 것일까? 아리스토텔레스의 지구 구체 모델의 문제점 지구 원판설을 믿고 있던 대다수 고대 그리스인들은 자신들이 거주하는 곳에서 멀리 벗어나는 것을 꺼렸는데 아리 스토텔레스는 이와는 다른 자신의 세계관을 알렉산드로스에게 가르쳐 그가 멀리 인도까지(!) 동방원정을 나갈 수 있도 록 독려했다. 그때까지 알려져 있는 대륙들은 유럽이 제일 넓고 아시아나 리디아는 그보다 작았다. 당시 지도에서 보 듯 오늘날 잣대로 어림해볼 때 이 대륙들의 총 직경은 7~8천 킬로미터 남짓밖에 되지 않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모델에 자신의 둥근 지구 모델을 결합시켰다. 그렇다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지구 크기를 어느 정도로 추정했을까? 아리스토텔레스는 어떻게 그런 값을 얻었는지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고 지구 둘레 길이가 40만 스타디아로 약 6~8만 킬로미터 정도 된다고 생각했다. 이처럼 아리스 토텔레스의 지구 모델에 당시 알려진 대륙을 대입하면 대륙은 지구에서 극히 좁은 지역 일부만 차지하는 셈이 된다. 그런데 아리스토텔레스의 지구에서 지브롤타 해협 너머 서쪽으로 먼 항해를 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당시 그리 스 세계관을 그대로 접목할 경우 바다가 끝없이 이어져 있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서쪽으로 끝없이 나아가는 항해자 는 육지나 섬 하나 없는 망망대해를 지루하게 항해해야한다. 그리고 충분한 식량과 물이 준비되고 폭풍을 만나지 않 는 등 운이 아주 아주 좋아야 겨우 다시 그리스 땅으로 살아서 되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 전혀 상상할 수 없는 내용은 아니지만 이건 뭔가 좀 비현실적인 것 같아 보이지 않는가? 이런 상황을 고려해보면 그의 지리학적 관점에서 그는 아 무래도 지브롤타 해협 바깥에 대륙과 대양이 존재한다는 플라톤의 주장에 동조했을 것으로 보인다.인문학 산책 94 자연,터널 그리고 지하공간 플라톤과 대양 저편의 문제 앞에서 아리스토텔레스를 지구상에 인간이 살 수 있는 지역에 대해 고민한 지리학자라고 묘사했는데 사실 원조는 그의 스승 플라톤이었다. 그리고 그런 고민이 반영된 것이 다름 아닌 아틀란티스 이야기다. 플라톤이 이 이야기를 꺼 내기 이전에 그 누구도 지브롤타 바깥에 대륙이 존재하고 거기에도 사람이 살며 그것도 상당 수준의 문명일 수 있다 는 식의 발상을 해본 적이 없었다. 물론 신들의 경우는 예외로 호메로스나 헤시오드는 타이탄 족이 그 곳에 살고 있었다고 묘사한 바 있다. 고대 그리 스인들에게 신들은 인간의 능력과 기준에서 벗어난 존재였기에 그들이 거기에 거주하는 것은 별로 문제가 없었다. 하 지만, 플라톤은 심각한 어조로 고대 그리스인들의 조상과 한바탕 싸운 인간들이 지브롤타 바깥에서 문명을 일구고 있 었다고 기록한 것이다. 앞에서 밝혔듯 고대 그리스인들은 지브롤타 해협 바깥에 인간이 거주할 수 있는 영역이 없다고 보았다. 반신이나 신의 축복을 받은 특별한 존재들이 아니라면 멀리 서쪽으로 나아갔다가는 다시는 살아서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그런 끔찍한 곳으로 각인되어있었기 때문이다. 아틀란티스가 정말 존재했느냐 아니냐는 문제에 집착하기 이전에 먼저 플라톤이 당시 이런 편견을 저술 작업을 통 해 최초로 깨어낸 사람으로 재평가하는 것이 중요하다. 플라톤은 단지 아틀란티스에만 그치지 않고 그보다 더 서쪽에 존재하는 대륙에 대한 이야기와 그 너머의 ‘진정한 대양’까지 언급했다. 고대의 지리학자들은 아틀란티스 이야기에서 이런 대양 저편의 문제trans-Oceanic element에 관심을 가졌다. 이 부분은 사실 플라톤이 전하고자 하는 정치적 메 시지와는 다소 무관하다. 고대의 아테네인들과 아틀란티스인들과의 대결이라는 이야기 구도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것 이다. 현대의 많은 철학자들이나 고전학자들이 주장하듯 플라톤이 이 이야기를 순전히 허구로 창작할 목적이었다면 이런 불필요한 내용까지 붙일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의 이런 측면을 평가하여 독일의 고전학자 폴 프리트렌더Paul Friedländer는 플라톤을 ‘지리학자’라고 불렀다. 자신의 이데올로기를 담아내기 위한 순전히 허구적 소재로 이 이야기 를 구상한 것이 아니라 지리학적 지식이나 통찰력 등을 이런 식으로 담아냈다는 것이다. 폴 프리트렌더는 철학자 칼 포퍼와 과학사학자 조지 사튼처럼 아틀란티스 이야기를 포함한 플라톤의 ‘우주와 지구 의 일반적 특징에 대한 연구cosmography’를 정치적 허구나 유사 과학 정도로 평가 절하하는 이들이 전적으로 잘못 되었다고 지적한다. 그는 <티마이오스>나 <크리티아스>에 담긴 아틀란티스 이야기는 당시 그리스인들에게 알려진 세 상 바깥 모습에 대한 그의 고민을 담고 있다는 사실에 초점을 맞춰야한다고 주장한다. 독일 베를린 소재 프라이에 대 학Freie University의 비교인종학자로 지성학이라는 학문 분야를 개척한 로렌스 크라더Lawrence Krader는 프리트렌 더의 주장에 동조하며 비록 플라톤의 저술에 자연현상을 주관하는 신이나 여신에 대한 신화적 요소가 담겨 있으며 아 틀란티스 이야기도 이런 범주로 분류할 수는 있으나 저 멀리 진정한 대양에 존재하는 현실 세계에 대한 사유는 결코 재앙이나 퇴보가 아니며 ‘아름다운 구상a beautiful architectonic’으로 여겨진다고 평가한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죽을 때까지 자신이 도달한 곳이 아시아라고 굳게 믿었다. 플라톤 이후 서구의 학자들 대부분이 지구가 둥글다는 사Vol. 21, No. 4 95 아틀란티스와 지구 구체론 크라테스가 생각한 지구 모델 https://en.wikipedia.org/wiki/Flat_Earth 실을 인정하게 되었지만 2천년 가까이 유럽·아시아·아프리카가 지구상의 유일한 대륙임이 정설로 받아들여졌다는 사 실은 크라더의 찬양이 의미하는 바를 다시 한 번 돌이켜 생각하게 한다. 아리스토텔레스와 대양 저편의 문제 지구 형태와 크기에 대한 구체적인 논증과 측정치를 확보한 아리 스토텔레스가 플라톤 보다 더 치열하게 지브롤타 해협 바깥 세상 문 제를 고민했을 것이다. 따라서 아리스토텔레스가 플라톤의 아틀란티 스에 대해 했다는 코멘트는 아마도 지브롤터 해협 바깥의 대륙 존재 문제보다 플라톤이 거대한 대륙을 하루아침에 수장시켜버린 부분에 대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합당하다. 그런데 스트라보 이외에 그의 계보를 잇는 다른 학자들의 기록에 는 아리스토텔레스가 플라톤의 아틀란티스 이야기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을 가능성을 읽을 수 있다. 기원후 4세기경에 아테 네에서 플라톤 학당을 이끈 프로클로스Proclus에 의하면 아리스토텔 레스가 아틀란티스 대륙의 존재를 당연시했다는 것이다. 아리스토텔 레스도 지브롤타 해협 서쪽 멀리에 대륙들이 존재할 가능성에 대해선 플라톤과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었던 셈이다.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가 고민했던 문제는 기원전 2세기경 말루스의 크라테스Crates of Mallus에 의해 어느 정도 해결되었다. 그는 지구 구체론에 의거해 지도를 작성했는데 지브롤타 해협 바깥쪽에 여러 대륙들이 자리잡고 있 는 것으로 묘사했다. 그림에서 보듯 그는 구대륙 이외에 다른 세 대륙이 존재한다고 보았는데 그 대륙들의 이름은 페 리오이코이Perioeci, 안티포데스 Antipodes, 그리고 안티에오시 Antioeci이다. 페리오이코이와 안티포데스는 대략 북 미와 남미에 대응하고 안티에오시는 남극대륙에 해당한다.(이런 지리적 구도를 상정한 그를 기리기 위해 남극의 한 지역에 크라테스 만이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96 자연,터널 그리고 지하공간 ▨ 고속도로 제400호선 김포~파주 간 건설공사 제2공구 1. 사업개요 □ 사업명 : 고속도로 제400호선 김포~파주 간 건설공사 제2공구 □ 사업목적 - 인천~김포, 파주~포천 연결을 통한 수도권 제2순환망 구축 - 지역개발 촉진 및 남북 교류협력에 대비한 수도권 접근 도로 망 확충 □ 사업위치 : 경기도 김포시 석탄면(시점)~파주시 연단산동(종점) □ 총사업비 : 5,615억 원(발주금액) □ 사업연장 : 총 연장 6.746km □ 사업일정 : 2026.01년 동시개통(실시설계 진행 중) [김포~파주 사업개요] 국내사업 김명우 _ 현대건설(주) 최창림 _ (주)삼보기술단 김기환 _ (주)삼보기술단 정상준 _ (주)에스코컨설턴트 [위치도]Vol. 21, No. 4 97 국내사업 2. 시설개요 및 구조물 현황 □ 시설 개요 - 수도권 제2순환고속도로의 일부구간으로 현재 1공구와 3~5공구는 입찰을 통해 시공사가 선정되어 공사가 진행 중이며, 2공구는 토공구간과 U-type 구간, 한강터널(Box-Type, 쉴드 TBM)구간, 교량(청룡두천교)구간으로 이 뤄져 있다. [김포~파주 2공구 시설물 계획] 구분공구연 장 (m)비고 시점부 토공구간1,600 U-Type 구간360 ∙ 개방형 U-Type 터널구간 Box-Type 구간60 ∙ 아치형 Box Type 쉴드 터널구간2,780 ∙ 쉴드TBM 굴착(Slurry Type) Box-Type 구간60 ∙ 아치형 Box Type 종점부 U-type 구간400 ∙ 개방형 U-Type 토공구간1,416 교량구간70 ∙ 개량형 합성거더교 소계연장 : 6740m 개방형 U-Type아치형 Box Type 쉴드TBM개량형 합성거더4교 [주요구조물 횡단계획]Nex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