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revious학회 소식 Resources Recycling Vol. 30, No. 1, 2021110 2021 년도 제 1 차 편집위원회 회의록 ( 제 14 대 편집위원회 제 1 차 회의 ) ○ 일 시 : 2021 년 2 월 24 일 ( 수 ) 17 시 -18 시 / 온라인회의 보고 1. 2020 년도 제 6 차 편집위원회 회의록 보고 - 만장 이의없이 승인함 보고 2. 29 권 6 호를 총 15 편 ( 총설 2 편 , 연구논문 11 편 , 기술자료 2 편 ) 으로 발간함 . ≪ 심의안건 ≫ 심의안건 1. 학회지 제 30 권 1 호 발간의 건 - 현재까지 총설 3 편 , 연구논문 7 편 , 기술보문 1 편이 완료되어 있어 총 11 편 게재하기로 함 . -2021 년 제 1 차 확대회장단 및 이사회 회의록 , 제 1 차 편집위원회 회의록 , 2021 년 춘계학술대회 개최안내 , 2020-2021 년 자원리싸이클링 학위논문현황 , 회원동정 , 주암칼럼 등 게재 - 제 14 대 이사 및 편집위원 명단 , 신임회장 취임사 등 게재 심의안건 2. 학회지 논문 심사현황 검토 및 활성화 방안 논의 -2021 년 현재 (2.22.) 까지 총 7 편의 원고가 접수되었고 , 현재 심사 및 저자수정이 진행중인 원고는 총 6 편으로 많이 부 족한 상황임 . - 논문투고가 절실하게 필요한 상황이며 한국연구재단의 등재학술지 재평가 등을 위해 게재율관리 방안에 대해 논의 하고 , 학회 투고규정의 준수 여부도 꼼꼼히 체크하기로 함 . -2021 년부터는 온라인논문투고시스템 : http://submission.j-kirr.or.kr/ 으로 모든 논문을 관리하기에 급행논문 또는 학 술대회 발표원고의 투고 등에 대해서도 체계적인 진행과 관리 필요 - 학술대회 발표원고를 특집호로 제작할 수 있도록 사전에 논문형태로 원고를 받는 방법 검토 - 편집위원 및 위원 소속기관을 중심으로 논문 투고 독려 및 적극적인 홍보 필요 - 공정이 리싸이클링이 아니지만 원소재를 리싸이클링된 재료를 사용하는 논문에 대한 투고를 받을 필요가 있음 . 이를 통해 재료공학 , 신소재공학 전공자들의 논문 투고가 가능토록 할 필요 있음 . 심의안건 3. 2021 년 춘계임시총회 및 제 54 회 학술발표대회 발표신청 독려 - 행사명 : Recycling Korea 2021 Yeosu -2021 년 춘계임시총회 및 제 54 회 학술발표대회 - - 일시 : 2021 년 5 월 13 일 ( 목 ) - 춘계임시총회 / 제 54 회 학술발표대회 - 장소 : 유탑마리나 호텔 & 리조트 , 여수 ( 전남 여수시 오동도로 61-15) - 발표신청 마감일 : 2021 년 4 월 5 일 ( 월 ) 18 시 - 발표논문집 원고접수 마감일 : 2021 년 4 월 19 일 ( 월 ) 18 시 - 편집위원회에서 본 춘계임시총회 및 제 54 회 학술발표대회의 발표신청 독려 및 홍보에 적극적으로 참여 - 기술교류회 , 특별세션 등을 구성할 수 있도록 편집위원이 수행하고 있는 연구과제 발표회 또는 보고회 등을 유치하 여 함께 개최하는 방안 검토 필요 - 코로나 상황이 아직 해결되지 않은 상태로 여전히 다수가 모이는 행사는 꺼려지고 있음 . 상황에 따라 부문에 따라서 는 온라인 병행 개최 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음 .학회 소식 111 자원리싸이클링 제 30 권 제 1 호 , 2021 심의안건 4. 기타토의 (1) 학회지 영문표제명 변경 안내 - 학회지 영문명의 변경에 대해 이사회의 승인을 거쳐 ‘Resources Recycling’ 으로 변경하였으며 , ISSN 번호 변경 되었음 . -pISSN 2765-3439 / eISSN 2765-3447 - 서지정보유통지원시스템 (https://seoji.nl.go.kr) 에서 확인가능 (2) 한국연구재단의 등재학술지 재평가를 위한 편집위원의 실적관리 요청 -2022 년 4- 월경 당 학회의 학회지에 대해 등재학술지 계속평가가 있을 예정이며 , 2019 년부터 2021 년까지 발간된 학회지를 기준으로 평가 예정 . - 편집위원의 실적 ( 논문게재 , 학술대회 발표 , 도서발간 , 수상실적 , 학회활동 등 ) 을 최근 5 년 자료로 제출하도록 되 어 있으며 , 이 부분에 대해 편집위원의 협조와 실적관리를 요청함 . 『2020 리싸이클링 백서』 출판 지난 1년 동안 본 학회에서 심혈을 기울여 준비해 온 “2020 리싸이클링 백서”가 출판 되었습니다. 리싸이클링의 개념을 정립하고 통계와 실상을 파악하며 국내외 정책과 기술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국내 유일의 도서입니다. 비매품으로 발간된 도서로 회원 여러분께서는 하기의 방법으로 ‘학회 홈페이지’에서 본 도서를 다운로드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 http://www.kirr.or.kr → 알림마당 → 학회소식 및 공지사항 제 1 편 총론 제1장재활용 산업 현황 및 정책 동향 제2장국외 재활용 및 폐기물 관련 정책과 법령 조사 제3장폐기물 발생 및 재활용 현황 제4장재활용 기술 제 2 편 공공기관의 리싸이클링 활동 제1장한국환경공단 제2장유용자원재활용기술개발사업단 제3장한국생산기술연구원 자원순환기술지원센터 제4장한국지질자원연구원 제5장자원순환산업인증원 제6장한국전자제품자원순환공제조합 제 3 편 품목ㆍ산업별 재활용 제1장금속자원 재활용 제2장세라믹 자원 재활용 제3장폐플라스틱 재활용 제4장사용 후 제품 재활용 제5장주요 산업별 재활용 * 본 도서의 저작권 및 출판권은 한국자원리싸이클링학회에 있으며, 학회의 승인없이 상업적 목적의 무단 복제, 발췌 전체를 금합니다. 다만, 원작이 적절히 인용될 경우 비상업적 인용 및 복제는 허용 합니다.2020-21 학위 논문 Resources Recycling Vol. 30, No. 1, 2021112 2020-2021 년 자원리싸이클링관련 학위논문 현황 No.학교학과지도교수님졸업생 학위 (석, 박사) 졸업일자연락처(Email) 1 부경대학교금속공학과왕제필 URTNASAN ERDENEBOLD 박사 2020.08.28ebold1111@yahoo.com 논문명 A Study on the Recovery of Foundry Cast Iron and Reutilizing By-Product from Copper Smelting Slag 2 부경대학교금속공학과왕제필김규철석사 2021.02.19keesd11@naver.com 논문명 LAS(Lithium-Aluminosilicate) 순환물질 침출 잔사 내 제올라이트를 이용한 Mg-Zeolite 개질 및 중금속 흡착 제거 연구 3 부경대학교금속공학과왕제필김성호석사 2021.02.19beastlife@naver.com 논문명아연 더스트로부터 건 · 습식 융합 공정을 통한 고순도 산화아연 제조 연구 4 부경대학교금속공학과왕제필이관휘석사 2021.02.19leekhuy@hanmail.net 논문명 Isolation Ring 소재의 역설계로 개발된 원심주조 내열합금소재의 기계적 특성 평가 5 부경대학교금속공학과왕제필조해용석사 2021.02.19hycho78@btp.or.kr 논문명온도보정감속기 시제품 개발을 위한 벤치마킹 및 적용소재 특성 분석 6 부경대학교금속공학과왕제필김도희석사 2020.08.28dohee8241@nate.com 논문명안약의 정량 투여를 위한 적정 용기 소재 개발 7 경북대학교 신소재공학부 금속신소재공학전공 손호상김영준석사 2020.08.21khjkyj00@naver.com 논문명 H 2 분위기 중 TiCl 4 의 Mg- 열환원법에 의한 TiH 2 분말 제조 8 경북대학교 신소재공학부 금속신소재공학전공 손호상홍성민석사 2020.08.21chlrhdi06@naver.com 논문명합성루타일의 염화반응 속도에 미치는 반응조건의 영향 9 전북대학교자원 ∙ 에너지공학과김현중유준혁석사 2020.02.21yjhyou@dansuk.co.kr 논문명 A study on the bioleaching of chalcopyrite concentrates using continuous stirred tank reactor 10 전북대학교자원 ∙ 에너지공학과김현중황국화박사학위 2020.08.28ghhwang0920@jbnu.ac.kr 논문명 Aggregation and Deposition of Colloidal Particles in Aqueous Solution: Importance of Non-DLVO Interaction 11 전북대학교자원 ∙ 에너지공학과김현중알란 고메즈박사학위 2020.08.28allanchito@gmail.com 논문명 Colloid Chemistry and Hydrodynamics in Flotation Modeling ( 부유선별 모델링 : 콜로이드 화학 및 유체 역학 ) 12 조선대학교에너지자원공학과박철현명동형석사 2021.2.25audehdgud757@naver.com 논문명회중석광 고품위화를 위한 컬럼부선 주요변수의 제어 13 한양대학교자원환경공학과김진수고상우석사 2021.2.swgo1230@gmail.com 논문명수소경제 활성화를 위한 정책연구 : REC 를 중심으로 14 한양대학교 재료화학공학과박주현홍선양석사 2020.08sunyang9@kitech.re.kr 논문명역극 수소 플라즈마를 이용한 타이타늄 스크랩 정련 메커니즘 15 한양대학교 재료화학공학과박주현강지연석사 2021.02d7625@naver.com 논문명 Effect of Al and Ti on Second Phase Formation and Mechanical Properties of CoCrFeMnNi High Entropy Alloy 16 한양대학교 재료화학공학과박주현정태수석사 2021.02jts117@naver.com 논문명 Effect of Fluorspar and Industrial wastes on Desulfurization efficiency of Molten steel 17 한국해양대학교에너지자원공학과유경근나현진석사 2021.2.17nhj7202@g.kmou.ac.kr 논문명아연제련공정에서 발생한 세멘테이션 침전물 중 구리의 황산 침출에 대한 산소와 2 가 구리이온의 영향회원 동정 113 자원리싸이클링 제 30 권 제 1 호 , 2021 【 신입회원명단 】 2020 년 12 월 21 일 부터 2021 년 2 월 20 일까지 입회하신 회원입니다 . 성명출신교 ∙ 학위입회일자근 무 처비고 강영조 연세대 ( 학사 ) 도쿄대 ( 석사 ) 스웨덴왕립공과대학 ( 박사 ) 2021. 1. 6. 동아대학교 신소재공학과 부교수 부산시 사하구 낙동대로 550 번길 37, 공대 5 호관 RS514 호 youngjok@dau.ac.kr 종신 222 이현복충북대 ( 박사 )2021. 1. 6.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지오플랫폼연구본부 책임연구원 대전시 유성구 과학로 124, 본관 228 호 hblee@kigam.re.kr 정 1093 김태범 경상대 ( 학사 ) 경상대 ( 석사 ) 오사카대 ( 박사 ) 2021. 1. 7. 한국생산기술연구원 공정지능연구부문 수석연구원 경기도 시흥시 서해안로 113-58 xoqja78@kitech.re.kr 정 1094 정현민포항공과대 ( 학사 , 석사 , 박사 )2021. 1. 7. 금오공과대학교 응용화학과 교수 경북 구미시 대학로 61 hmjung@kumoh.ac.kr 정 1095 고경택 금오공대 ( 학사 ) 금오공대 ( 석사 ) 일본동북대 ( 박사 ) 2021. 1. 9. 한국건설기술연구원 남북한인프라특별위원회 선임연구위원 경기도 고양시 일산서구 고양대로 283 ktgo@kict.re.kr 정 1096 이성주서울대 ( 박사 )2021. 1. 11. 안양대학교 환경에너지공학과 조교수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삼덕로 37 번길 22, 수리관 316 호 reo2046@daum.net 정 1097 한길수 한양대 ( 학사 ) KAIST( 석사 ) Univ. of Utah( 박사 ) 2021. 1. 11. 포항산업과학연구원 산업소재연구그룹 수석연구원 경북 포항시 남구 청암로 67 ghan@rist.re.kr 정 1098 최선미 공주대 ( 학사 , 석사 ) 공주대 ( 박사 ) 2021. 1. 20. 공주대학교 친환경콘크리트연구소 연구교수 충남 천안시 서북구 천안대로 1223-24 smchoi@kongju.ac.kr 정 1099 송시정 목포대 ( 학사 ) 목포대 ( 석사 ) 2021. 2. 2. 목포대학교 신소재시스템공학협동과정 박사과정 전남 무안군 청계면 영산로 1666, 제 5 공학관 606 호 6140r@naver.com 준 204 【 신규 특별회원사 】 • 케이씨 ( 주 ) : 박주정 대표 , (58451) 전남 영암군 삼호읍 산단서부로 85, http://kc.daejookc.com •( 주 ) 더블유피 : 강건민 대표 , (58023) 전남 순천시 해룡면 해룡산단 6 로 84, http://www.wp-pv.com •( 주 ) 원광에스앤티 : 이상헌 대표 , (22845) 인천시 서구 봉수대로 183 번길 12-1, http://www.wksnt.com 【 회원 소식 】 “ 당 학회 전임회장이신 안지환 단장 교육기부 대상 선정 ” 당 학회의 전임회장이신 ( 제 13 대 , 2019.1.1-2020.12.31.) 한국지질자원연구원 탄소광물화사업단 안지환 단장께서 교육부와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시행한 ‘2020 년 제 9 회 대 한민국 교육기부 대상 ( 개인 )’ 에 선정되었습니다 . 이는 2000 년부터 초 · 중 · 고 학생 및 시민을 대상으로 시민교육 등을 수행하였고 , 지속가능한 사회를 구현하기 위해 한국지질자 원연구원이 수행하는 교육기부 프로그램인 “Creative Geo Educamp” 를 통해 ‘ 폐기물을 활용한 CO2 저감기술 ’ 에 대 해 2010 년부터 현재까지 매년 4 차례 총 35 회 1,116 명의 연 수자들에게 과학기술의 교육기부를 실천한 공로를 인정받 아 교육기부 대상으로 선정되었습니다 . UN 청소년환경총회 : 특별위원회 특강 및 체험부스 운영주암칼럼 Resources Recycling Vol. 30, No. 1, 2021114 타이난(台南, 臺灣) 생활의 추억* ― 대만에는 친일파(親日派)라는 말이 없다 ― 1)연세대학교 오재현 명예교수 1. 대만에 공헌하고 대만을 사랑한 일본인 1) 대만 초대 민정장관 고도신뻬이(後藤新平) 대만의 초대 민정장관 (1898 년 ) 고도신뻬이는 “ 전염병의 예방은 상하수도의 설치부터 시작한다 .” 라고 , 하면서 하수도 의 정비를 진행시켰다 . 수도는 담수 강에서 물을 끌어들이고 대규모의 침전지를 건설하였다 . 하수도의 간선에는 타이베이 성벽을 허문 돌을 활용하여 , 파리의 하수도를 본떠 큰 배수로를 시설하였다 . 우수의 처리에 있어서는 , 도로가의 물받이 식 하수구를 통해서 도로가 물에 고이지 않도록 하였다 . 이들의 상하수도는 당시 도쿄보다 훨씬 먼저 완비한 것으로서 대만 사람들은 그것을 자랑으로 하고 있었다 . 대만의 초대 총동 코다마겐타로 ( 兒玉源太郞 ) 시대 (1898-1919) 민정장관인 고도신뻬이는 대담한 도시계획과 정치개혁 을 행하였다 . 신뻬이가 대만의 근대도시건설에 정열을 경주하였다고 한들 , 그것은 식민지주의 프레임 안에서의 공적에 불 과하다는 사실을 역사로부터 지워 없앨 수는 없다 . 그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 조직인의 한사람으로서 신뻬이의 생활 철학에 강한 관심을 느끼게 한다 . 대만의 산업개발 ( 당시는 농업위주이지만 ) 을 위하여 , 삿뽀로농학교 ( 북해도대학 전신 ) 교 수인 니이도베이나죠 ( 新渡戶稻造 ) 를 대만 총독부기사로 초청하였다 . 니이도베는 폐병을 앓고 있으며 몸이 약했다 . 신뻬 이는 니이도베가 매일 한 시간 낮잠을 자도록 총독부 사무실 옆방에 침실을 만들어 주었다 . 니이도베는 후일 사탕수수의 품종개량을 행하여 , 설탕생산이 비약적으로 증가하여 , 대만에 막대한 부를 가져오게 하였다 . 대만은 전술한 바와 같이 어느 도시를 가나 중산로 ( 中山은 孫文의 호 ), 중정로 ( 中正은 장개석의 호 ) 가 있다 . 손문이 주 장한 삼민주의 ( 三民主義 ) 부터 민족 , 민생 , 민권 등의 이름이 붙은 거리도 많다 . 타이베이의 중산북로는 중앙부터 고속 , 가 로수존 , 일반차도 순으로 되어있고 , 약 40m 의 폭을 갖고 있다 . 일년 내내 가로수가 우거져있고 , 항시 차들이 싱싱 달리고 있다 . 이 도로도 , 고토신뻬이 ( 後藤新平 ) 민정장관에 의해서 건설된 것이다 . 타이베이 성벽을 허물고 그 터를 이용해서 폭이 넓 은 삼선도로를 건설한 것이다 . 이와 같은 삼선도로를 당시 4 개 건설하였다 . 현재도 , 이들의 도로는 고목이 된 가로수의 관 록을 과시하면서 , 편도 6 차선급의 넓은 도로로 활용되고 있다 . 2) 가남대천(嘉南大 圳 )의 아버지 핫다요이찌(八田與一) 대만에 관한 어느 책을 읽어 보아도 「 가남대천 ( 嘉南大 圳) 과 핫다요이찌 」 의 기술이 있고 , 대만역사의 키워드처럼 되어 있다 . 심지어 「 대만을 사랑한 일본인 - 가남대천의 아버지 핫다요이찌의 생애 」 라는 단행본도 나와 있다 . 핫다요이찌는 1886 년 가나자와 ( 金澤 ) 에서 태어나 , 도쿄제국대학 토목공학과를 졸업하였다 . 재학시 로마문명의 원천이 교량 , 도로 , 수리구조 등의 토목공사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 “ 만일에 공학이 오직 인생을 번잡하게만 한다면 아무 의미 가 없다 . 공학에 의해 수일을 요하는 곳을 수 시간의 거리로 단축하고 하루의 노역을 한 시간으로 마치고 , 여기서 얻은 시 간을 조용히 인생을 사유 ( 思惟 ) 하고 , 반성하고 , 신으로 돌아가는 여유를 주려하지 않는다면 , 공학에는 그 가치를 발견할 수 없다 .” 라는 철학적인 명치시대의 교수 강의를 들으면서 공부하였다 . 「 기술자는 기술을 통해서 문명의 기초를 만드는 * 본 칼럼은 본인의 저서 ‘ 역사와 수필이 함께한 공과대학 교수의 이야기 ( 비매품 , 2018 년 6 월 )’, ‘ 속 연구와 낙서 ( 비매품 , 1994 년 9 월 )’, ‘ 성공한 리싸이클링 들여다보기 (2015 년 3 월 )’ 에 게재된 일부 내용을 가필한 것임을 밝혀 둠 .주암칼럼 115 자원리싸이클링 제 30 권 제 1 호 , 2021 것만을 생각하라 」 라는 교육을 받았다 . 핫다요이찌는 대학을 졸업하자 그 해 대만총독부 토목과에 봉직하였다 . 그리고 수년 후 남북 92km, 동서 32km 로 뻗어 있는 가남평야의 참상을 알게 되었다 . 당시의 가남평야는 , 5 월부터 9 월까지의 우기에는 집중호우 때 마다 물이 범람하고 , 건기에는 간발 때문에 물이 부족하여 농사를 지을 수 없는 불모의 땅이었다 . 대만의 전 경지면적의 1/6 을 점하는 이 가남평야를 살게 하려면 , 년중 안정한 물을 공급하는 관개용시설이 필요하다고 통감한 핫다는 ‘ 가남평야 개발 계획서 ’ 를 작성하였다 . 그것은 타이난시의 북쪽에 흐르고 있는 관전계 ( 官田溪 ) 의 상류인 오 산두 ( 烏山頭 ) 에서 , 강을 막아 대규모의 댐을 만들어 평야에 급배수로를 설치하는 장대한 계획이었다 . 이 세기의 대사업에 착공한 것은 1920 년 9 월이었다 . 핫다는 설계자로서 현장소장 겸 감독으로 공사전반 지휘를 맡고 있었으며 , 1921 년 4 월에 는 오산두의 숙사에 가족과 같이 상주하였다 . 35 세 되던 해 였다 . 이 설계에는 증문계의 수류도 합쳐야만 했다 . 관전계만으로는 저수량이 부족하였다 . 증문계는 아리산록에서 출발하 여 , 여러 산들을 거쳐 지류를 합쳐 수세가 대단하였다 . 이 관전계를 막아야하는 예정지 오산두와 증문계는 오산령 ( 烏山嶺 ) 이란 산의 반대편을 흐르고 있었다 . 핫다는 이 오산령을 굴착하여 , 물을 댐에 흐르게 하는 설계를 하고 시공하였다 . 굴착된 터널은 3,078m 길이로 , 많은 사망자가 발생하였다 . 핫다 소장은 공사가 중지되지 않을까 걱정하였지만 , 공사를 하고 있는 대만인으로부터 오히려 격려를 받았다 . 그때 오산두의 현장에는 많은 기관차가 움직이고 있었다 . 현장에서 현장으로 이동 하는 사람은 이 기차에 편승하였다 . 모두 당연한 것처럼 기관차에 올라탔지만 , 핫다 기사만은 항상 무계화차의 골재위에 타고 바람을 쐬고 있었다 . 어느 날 핫다의 모자가 바람에 날리었다 . 기관차 운전수는 그 모자가 타이베이에서만 파는 고급 파나마모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기관차를 세우려고 하였다 . 핫다 기사는 “ 괜찮다 ” 고하여 기관차를 못 세우게 하였 다 . 이러한 일화를 다 소개할 수가 없다 . 이 공사는 착공해서 10 년이라는 세월이 소요되고 , 1930 년 5 월에 완성하였다 . 가남평야에 구축된 급배수로는 16,000km 에 달하고 , 만리장성 (2,400km) 의 6 배 이상이 된다 . 이 급배수로와 오산두댐을 총칭해서 ‘ 가남대천 ( 嘉南大 圳)’ 이라고 하 고 , 핫다는 가남사람들부터 ‘ 가남대천의 아버지 ’ 로 승모되었다 . 세계의 토목계부터 ‘ 대만에 핫다있다 ’ 라고 인정받을 무 렵 , 불모의 대지였던 가남평야는 융단을 깔아놓은 것과 같은 초록의 땅으로 바뀌었다 . 그러나 핫다요이찌의 생애는 길지 않았다 . 태평양전쟁이 한창이던 1942 년 , 육군에 징발되어 필리핀으로 향하던 도중 , 승선하고 있던 다이요마루 ( 大洋丸 ) 가 미국잠수함의 공격을 받고 격침되어 사망하였다 . 56 세였다 . 3 년 후 처 도요기 ( 外代 樹 ) 가 뒤를 따랐다 . 그녀는 전쟁말기 타이베이부터 오산두의 숙사로 소개하여 그곳에서 패전을 맞았다 . 그해 9 월 1 일 신변 을 정리하고 , 아들 딸들에게 간결한 유서를 남기고 , 의복을 바꾸어 입고 , 오산두댐의 방수구를 향해서 몸을 던졌다 . 45 세 라는 젊음이었다 . 가남 사람들은 두분의 유덕을 기리기 위하여 동상과 묘를 세우고 참배하고 있다 . 민족을 의식하지 않고 , 사회를 차별하지 않고 ,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인간성이 투철한 일본인의 아름다운 얘기를 짧 게 적었다 . 조선의 흙이 된 일본인 예술가 아사카와 이사오 ( 淺川 巧 ) 도 조선을 조선인을 사랑하는 고귀한 생애를 마감하고 지금 망우리에 묻혀있다 . 그리고 조선인의 존경을 받고 있다 . 같은 식민지배하에서 진심으로 대만을 사랑하고 또는 조선 을 사랑하고 그리고 대만 또는 조선을 위하여 살다간 일본 사람이 오직 이 두 사람뿐이겠는 가만은 , 이 두 사람의 인간성이 유독 돋보인다 . 2. 고현영(辜顯榮)의 친일과 그의 차남 고진보(辜振甫) 2001 년 11 월 22 일부터 12 월 2 일까지 蔡敏行 교수 , 日本 熊本大學의 外川健一 교수와 같이 대만 서해안 길을 따라 리싸 이클링공장을 탐방하였다 . 대만의 서해안은 풍요로운 농지가 펼쳐지는 대평원이기도 하지만 군데군데 공업단지도 개발되고 있다 . 첫 방문한 대만 강련유한공사 (Taiwan Steel Union Co., TSU) 즉 , 전기로 제강 (EAF) 분진의 처리공장이 신항 ( 伸港 ) 과 녹항 ( 鹿港 ) 의 중간 지점인 선서 ( 線西 ) 의 창화현창빈공업구 ( 彰化縣彰濱工業區 ) 에 위치하고 있다 .주암칼럼 Resources Recycling Vol. 30, No. 1, 2021116 다음에는 TSU 와 30 분 거리 북쪽의 대갑수미공업구 ( 大甲水美工業區 ) 에 위치한 혜가전 ( 惠嘉電 ) 실업유한공사를 방문하 였다 . 이 회사는 폐가전의 회수 및 처리를 하고 있다 . 우리나라의 삼성아산가전리싸이클링센터와 유사한 회사이다 . 타이중 ( 台中 ) 시내로 들어와 해밀턴호텔에 가방을 던져두고 셋이서 먹자골목으로 달려갔다 . 저녁을 먹으면서 오늘 지 나온 구 항구도시 녹항 (Lukang, 鹿港 ) 이 화제가 되었다 . 토사가 쌓여 지금은 폐항이 되었지만 , 타이난의 안편 ( 安平 ), 타이 베이의 만화 ( 万華 ) 와 더불어 대만 3 항의 하나이며 , 대만 최고의 항만인 시대가 있었다 . 이 녹항에 , 청조중기부터 중화민국 성립까지의 , 대만의 생활 전반에 걸친 2,000 점의 자료가 전시되어 있는 “ 녹항민속 문물관 ” 이 있다 . 대만 굴지의 부호로 알려져 있는 고현영 ( 辜顯榮 ) 의 르네상스식 3 층 벽돌의 호화건물인 사저를 박물관으 로 개방하고 있다 . 나는 이 민속문물관보다 고현영 (1866-1937) 부자 얘기에 더 관심이 많았다 . 청일강화조약에 의해 1895 년 6 월에 일본 군이 점령 차 대만 북쪽에 상륙하였다 . 이 日本군 상륙이 전해지자 청군의 탈주패잔병이 타이베이의 성내로 쏟아져 , 성내 는 무정부상태가 되었다 . 방화 , 약탈 , 강간이 자행되었다 . 이 때 30 세 가량의 청년인 고현영이가 일본군을 성내로 무사히 안내하여 폭도는 진압되고 , 또 많은 인명의 살상을 면하게 하였다 . 이 공로로 고현영은 대만에서 처음으로 日本의 기족원 의원이 되는 등 많은 특권과 영화를 누렸다 . 한편 대표적인 친일파로 대만민중으로부터 평생 저주를 받았다 . 그의 차남 고진보 ( 辜振甫 ) 는 1917 년 타이베이에서 태어났다 . 타이베이 제국대학 ( 현 대만대학 ) 을 졸업하고 , 도쿄제국대 학에 유학하였다 . 대만 시멘트 및 중국신탁투자 등 화신 ( 和信 ) 그룹 각사의 회장을 겸임하였으며 , 전국 공상협진회 ( 우리나 라 전경련 ) 이사장을 약 30 년간 맡는 등 대만 재계의 중진적 존재이다 . 한때는 국민당 중앙상무위원이었으며 , APEC 비공식수뇌회의에 총통대리로서 3 회 출석하였다 . 1990 년의 발족 시부터 해협교류기금 이사장에 취임 , 1993 년과 98 년 중국대륙의 왕도함 ( 汪道涵 ) 양안관계협회 회장과 정상회담을 하는 등 , 대륙 과의 파이프역을 수행하였다 . 이등휘 총통시대도 , 진수편 총통시대도 총통부의 자정 ( 資政 , 상급고문 ) 으로서 활동 중이다 . (※ 2005 년 1 월 13 일 사망 ) 나는 이 얘기를 듣고 여러 가지 생각에 잠기게 하였다 . 대만사람들의 실리를 추구하고 , 감정에 치우치지 않는 사고 , 이 것이 우리나라의 민족성과 다른 점인지 모르겠다 . 가령 우리나라의 경우 이완용의 아들이 대통령의 고문이 되고 , 국가대 표로서의 활동을 용납할 것인가 . 과거사 청산이라는 사업 아래 일본군 소위부터 친일파로 규정하여 불이익을 주려는 요즘 의 우리나라 정치판국과는 너무 대조적이다 . 3. 대만에는 친일파라는 말이 없다. 대만인은 일본에 대해서 우리가 갖고 있는 감정과는 다른 것 같다 . 물론 대만인 나름대로 일본 통치에 대한 저항은 있었 다 . 그러나 노년기의 사람들은 일제시대에 대한 향수조차 느끼고 있는 것을 엿볼 수 있다 . 첫째 , 대만인은 淸國政府로 부터 많은 착취를 당하고 國民黨政府로부터는 학대를 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 하편 일본은 대만의 경제개발에 , 문명에 기여가 크다고 내심 진심으로 생각하고 있다 . 그렇기 때문에 日本에 대한 거부감이 없다 . 대만의 전 총통 李登輝는 대학생시절 학도병으로 일본군에 참전한 것을 자랑으로 하고 있다 . 말썽이 되었지만 야스쿠니 신사 ( 靖國神社 ) 에도 참배하였다 . 일본의 저명한 월간지 ‘ 문예춘추 ( 文藝春秋 )’ 2020 년 10 월호에 저널리스트 사쿠라이 요 시고 ( 櫻井よしこ ) 는 “ 日本人보다 日本人답게 살아온 97 년 ” 이라는 제목으로 李登輝 전총통에 대한 추도문을 게재하였다 . 대표적인 친일파의 아들인 고진보 ( 辜振甫 ) 는 대만민관기관의 우두머리로 , 또 대만정부 요직으로 활동이 많았다 . 그러니 친일파라는 말이 있을 수 없다 . 대만 국민 전부가 친일파라고 하여도 억지는 아닌것 같다 . 중국사람은 실리를 앞세우고 우리는 감정을 앞세우는 민족임을 잘 알고 있다 . 대만 사람이 모두 친일파라서 , 대만에 불 이익을 가져왔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 대만이나 우리나라나 일본의 식민지정책에 순응해서 사는 것이 일반국 민의 생활이다 . 우리나라 사람이 감정을 앞세우고 모두가 반일을 하고 , 혹은 독립투사가 될 수는 없지 않은가 . 일본의 식민 지정책에 순응했다고 해서 친일파는 아니다 . 또 친일을 했다고 해서 우리나라에 불이익을 안겨주지 않았다면 친일이 나쁠주암칼럼 117 자원리싸이클링 제 30 권 제 1 호 , 2021 것도 없다 . 내가 대선배로 섬기고 존경하는 진학문 ( 秦學文 ) 선생은 만주국 ( 滿洲國 ) 의 고관을 했기때문에 친일파로 낙인이 찍힌 분 이다 . 그러나 만주국 고관시절 100 만 우리동포를 음으로 양으로 도왔다 . 특히 우리 동포가 억울한 일을 당하고 심한 차별 대우를 받았을때 위험을 무릅쓰고 일본인 ( 주로 군인 ) 과 싸워서 시정한 일이 한두번이 아니다 . 만주국 고관이기때문에 학 대받고 천시당한 우리 동포를 위하여 많은 일을 할 수 있었고 , 또 많은 생명을 구출할 수 있었다 . 그 당시 만주에 사는 우리 교포는 진학문 선생이 친일파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 지난 8 월 15 일 광복절에 김원용 광복회 회장은 경축사에서 이승만 전 대통령은 “ 친일파와 결탁했다 .” 애국가를 작곡한 안익태 선생에 대해서는 “ 민족 반역자 ” 라고 했다 . 이러한 현상을 보고 대만사람은 어떻게 생각했을까 . 유치하다고 조소는 안했는지 . (2020 년 11 월 10 일 기 )주암칼럼 Resources Recycling Vol. 30, No. 1, 2021118 삼성노블카운티의 도서실과 도서관(1) ― 일본 작가 이쓰키 히로유키(五木 㴌 之) ― 연세대학교 오재현 명예교수 삼성노블카운티의 A, B 동에는 도서실이 있고 리빙프라자 건물에는 도서관이 있다 . 이 도서실 , 도서관에는 일본책 , 일 본잡지 , 일본신문 ( 도서관에 만 ) 을 구비하고 있다 . 당연한 일이지만 도서실보다는 도서관에 일본책을 포함하여 훨씬 많은 책을 소장하고 있다 . 일본책들이 반가웠다 . 활자가 크고 , 또 한문을 혼용하여 읽기가 수월하다 . 일본책을 구비해 놓았다는 것은 노블카운티 입주회원 중에 일본책을 볼 수 있는 회원이 다수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 B 동 4 층 ( 프리미엄세대 ) 에 계시는 할머니 한분이 일본서 가장 인기가 있는 월간지 문예춘추 ( 文藝春秋 ) 를 들고 보행보조 기를 밀고 다니길래 , ‘ 할머니 연세가 어떻게 되십니까 ’ 하고 물었더니 88 세이고 , 8.15 해방 때 초등학교 6 학년이었다고 한 다 . 그 당시 초등학교 6 학년이면 일본말 회화는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었고 상당한 수준의 일본문장도 이해할 수 있었 다 . 그런데 그 연령층이 해방 후 일본책을 덮고 , 일본말 사용을 안했기 때문에 일본말도 , 일본글도 다 잊어버린 분이 대부 분이다 . 그 할머니는 계속 일본책을 가까이 하신 분 같다 . 그 할머니보다 2, 3 년 연배가 되시는 분은 즉 90 세가 넘으신 분은 일본말은 많이 잊어버려도 일본글은 기억하고 계시지 않나 싶다 . 노블카운티의 입주회원 700 명의 평균연령은 82~86 세라고 한다 . 프리미엄 74 세대의 평균연령은 그보다 높아 92~93 세 이다 . 그래서 일본책을 읽을 수 있는 분이 많아 도서실 , 도서관에 일본책을 비치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고 또 대단히 고맙다 . 나는 8.15 해방때 중학교 3 학년이었으므로 , 초등학교 1 학년부터 9 년 가까이 일본교육을 받았다 . 어릴 때 어학공부는 효 과적이다 . 그래서인가 일본말 , 일본글은 완벽하였다 . 그 후 일본말을 사용하지 않은 세월이 많았지만 , 일본글은 지금까지 손에서 떼어본 일이 없다 . B 동 1 층 로비는 대단히 넓다 . 이 공간의 일부를 도서실이 차지하고 있다 . 도서실 서가에는 ‘ 문예춘추 ’ 가 2, 3 년 전호부 터 최근호까지 나열되어 있고 , 일본소설 , 우리 나라 사람이 일본말로 쓴 자서전 등이 꽂혀있다 . 서가에서 맨 먼저 五木 寛 之 ( 이쓰키 히로유키 ) 저 소설 “ 靑春の門 ” 이 손에 잡혔다 . 그 이유는 후술 에서 알게 된다 . 五木소설가는 1932 년생으로 나 보다 세 살 아래다 . 그리고 와세다대학 문학부 를 다녔다 . “ 靑春の門 , 자립편 상 ∙ 하 ” 는 그 소 설무대가 , 배경이 와세다대학과 도쓰가쪼 ( 戶塚 町 ) 라는 대학동네이다 . 문학부 건물의 지하실에 있는 간이식당 , 매점 등이 , 도쓰가쪼 동네의 좁 은 골목길이 , 마지막집이 , 기원 등 소설에 등장 한 장소가 내 기억과 일치한다 . 그래서 신나게 읽었다 . 작가는 1,2 년쯤 나하고 같은 와세다대 학 학생으로 오꾸마 ( 大 隈) 초대총장의 동상을 지나면서 마주쳤는지도 모른다 . 내가 읽은 것은 소설 ‘靑春의 門’의 무대인 와세다대학의 교정, 중앙에 창립자겸 초대총장인 오꾸마 시게노부(大 隈 重信)의 동상이 보인다.주암칼럼 119 자원리싸이클링 제 30 권 제 1 호 , 2021 상기 상 ∙ 하권과 방랑편 하권으로 3 권에 불과하지만 “ 靑春の門 ” 시 리즈는 20 여권으로 총 2,000 만부가 넘는 스테디셀러라고 한다 . 작년 가을 우연한 인연으로 고베대학 ( 神戶大學 ) 모교수로부터 五木 寛 之 저 “21 世紀 仏 敎への旅 ( 불교에의 여행 ), 朝鮮半島編 ( 조선 반도편 )” 을 기증받았다 . 나는 이 책을 세 번쯤 반복해서 읽었다 . 신 라시대 불도로서 쌍벽을 이룬 의상 ( 義湘 ) 스님과와 원효 ( 元曉 ) 스님 으로부터 시작하여 현대의 법정 ( 法頂 ) 스님까지 우리나라 불교의 역사와 교리를 불교의 문외한이 이해하도록 쉽게 또 재미있게 기술 하고 있다 . 의상은 662 년 37 세때 당 ( 唐 ) 나라에 유학하여 10 년 동안 중국의 화엄경 ( 華嚴經 ) 을 배웠다 . 45 세에 귀국하자 화엄의 가르침을 넓히 기 위하여 10 개의 사찰 ( 寺刹 ) 을 건립하였다 . 경북 영주의 부석사 ( 浮 石寺 ) 도 그 중의 하나다 . 부석사에서 조망되는 태백산맥 끝자락 산 봉우리의 수려함은 일품이다 . 이 부석사에 전승되는 의상의 로맨스 가 있다 . 의상이 당나라에서 화엄경을 공부하고 있을 때 선묘 ( 善妙 ) 라는 아름다운 여성과 만났다 . 선묘는 의상을 열렬하게 사랑하였다 . 의 상이 신라 ( 新羅 ) 로 돌아오자 , 선묘는 너무 슬퍼서 바다에 몸을 던졌 다 . 그리고 용이 되어 의상이 탄 배가 안전하게 항해하도록 하였다 . 의상이 부석사를 창건할 때 기존의 종파 신도들이 부석사 건립을 방해하였다 . 그때 거대한 용이 돌로 변하여 공중에 떠 반대하는 사람들을 억압하였다 . 그럼으로 의상은 절을 무사히 건립 할 수 있었다 . “ 돌이 떠서 생긴 절 ” 이라는 인연으로 부석사 ( 浮石寺 ) 라는 이름이 붙여지고 , 무량수전 뒤편에 부석이라고 새 겨진 큰 돌을 지금도 불 수 있다 . 의상은 화엄경에 관한 많은 저서가 있으며 신라시대 불교계의 중심인물로 존경을 받았다 . 한편 , 의상과 같이 당나라로 가는 도중 “ 一卽多 ∙ 多卽一 ( 모든 것은 하나의 마음부터 시작한다 )” 라는 화엄의 깨침을 얻어 되돌아 온 원효는 파괴승이었 다 . 그는 결혼하여 자식을 두고 술도 마시고 여자집에도 출몰하였다 . 승려임에도 민중과 같은 복장을 하고 , 마을과 마을을 걸어가면서 불교를 알렸다 . 일반 민중 속으로 파고든 원효는 노래도 부르고 , 춤도 추면서 , 글을 읽을 수 없는 사람들에게도 불교의 가르침을 넓혔다 . 한편 , 불교의 연구에 몰두하여 초인간적인 많은 저서를 남겼다 . 그가 저술한 금강삼미경소 ( 金剛 三味經疏 ) 가 중국에 전해지자 그 내용이 너무 훌륭하여 보살이 저술한 것이므로 「 금강삼미경론 」 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게 하였다 . 또 원효는 연중 소를 타고 , 소뿔사이에 벼루를 놓고 저술하였다는 일화도 있다 . 방랑 종교가인 원효의 사상은 화엄 경은 물론 여러 종파의 사상 , 혹은 대립하는 두 사상을 융합하는 화쟁 ( 和諍 ) 의 사상으로 표현할 수 있다 . ‘ 의상 ’ 과 ‘ 원효 ‘ 는 각자 자기 자신의 방법으로 불교를 민중에게 전달 , 정착시키려고 노력한 위대한 불교자였다 . 그리고 한국 불교의 기초를 구축한 걸승 ( 傑僧 ) 이었다 . 법정 ( 法頂 ) 스님과의 대화에서 법정에 의하면 종교는 많은 가지를 가진 하나의 큰 수목이다 . 가지 수는 많아도 둥치 ( 幹 ) 는 하나이다 . 즉 종교는 하나를 이루는 개별적인 길인 것이다 . 종교란 , 인간이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만든 것이다 . 종교 때 문에 사람이 다툰다는 것은 본말전도 ( 本末顚倒 ) 이다 . 사람이 해야 할 일을 소홀히 하고 , 종교만을 절대시한다면 , 사람은 종 교의 노예로 전락한다 . 종교는 인간이 더욱 현명하고 , 자비심을 가지고 살아가기 위해 인간이 만든 하나의 ‘ 길 ’ 이다 . 법정 은 이것이 인간의 본질이라고 말한다 . 五木 㴌 之(이쓰기 히로유키)저 「 21세기 불교에의 여행, 조선반도편 」Nex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