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revious128 자연,터널그리고 지하공간인문학 산책둘러싸인 요새처럼 되어 있다. 그러나 안으로 들어서면 벽면을 따라 114개의 창고가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114는 코란의 경구수로 무슬림이 신성시하는 숫자다. 곳간 지하층에는 올리브유를 지상층에는 식량을 구분하여 저장했다.이 곳간이 가장 최근에 다시 개축된 것은 약 300년 전이다. 그러나 트리폴리의 기후나 주거 흔적으로 볼 때 곳간의 역사는 그 이전으로 한참 거슬러 올라간다. 흙을 재료로 한 구조물의 성격상 주기적으로 허물고 다시 짓기를 반복했을 테니 말이다. 흙벽돌로 쌓은 벽체에는 다시 진흙을 두텁게 발라 태양열이 내부까지 들어오지 않도록 하였다. 비가 많지 않은 아프리카의 기후조건을 고려한 건축물이다. 척박한 땅에서 기후와 외부침략의 혹독한 시련을 견뎌내며 살아온 리비아인의 삶의 의지와 지혜가 돋보인다.푸에블로 인디언 유적푸에블로(Pueblo) 인디언이 미국 그랜드 캐니언에서 살아온 것은 언제부터인지 알 수 없다. 4000년 전의 인디언 유적이 있으니 그 이전부터일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이 유적 중에 깍아지른 절벽에 만든 곳간이 있다. 자연동굴을 이용해 만든 이 곳간에서는 옥수수와 말린 고기의 흔적이 발견된다. 공간의 규모로 보아 마을 전체의 곡식을 저장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랜드 캐니언의 날씨는 예나 지금이나 가뭄이 몇 년씩 지속되었기 때문에 곳간은 없어서는 안 될 시설이었을 것이다. 당시에는 주거지와 연결되는 통로를 갖추고 있었지만 지금은 풍화가 심해 접근하기가 쉽지 않다. 푸에블로 인디언 주거지(좌), 곳간(우)보기에도 까마득한 절벽에 어떻게 주거공간과 곳간을 만들었을까. 아마도 이곳에는 수만 년에 걸친 물의 흐름과 물의 침식과 풍화작용으로 자연동굴이 형성되어있었을 것이다. 그랜드 캐니언의 지반은 퇴적층별로 토질과 강도가 다르다. 그래서 침식이 빨리 진행되는 약한 층은 상대적으로 깊이 파이게 된다. 그래서 그 앞에 흙벽돌을 쌓고 입구를 만들면 이렇게 멋진 창고가 되는 것이다. 이보다 규모가 큰 곳은 주거지로도 활용되었을 것이다. 그랜드 캐니언 일대에는 이렇게 만들어진 곳간과 주거지가 약 2000개소나 있다.Vol. 20, No. 4 129지하공간의 또 다른 쓰임, 땅속의 곳간지구별의 미래, 종자저장고지구는 얼마나 안전할까. 인류가 구축해 온 문명은 얼마나 오래 지속될 수 있을까. 이러한 의문을 한번쯤은 가져보았을 것이다. 실제로 지구의 역사를 보면 페름기 생물의 대멸종이나 쥬라기의 공룡멸종과 같은 일이 주기적으로 벌어진다. 대규모 운석 충돌이나 빙하기의 도래 등 지구가 그렇게 안전한 행성이 아니라는 뜻이다. 자연재해뿐 아니라 이즘은 핵전쟁이나 오존층 파괴 온난화 등 인류가 스스로 만들어 낸 재앙도 충분히 예상된다. 이러한 전 지구적 환경변화에 대비하여 생물의 유전자나 씨앗을 보존하려는 시설이 바로 종자저장고다. 스발바르 종자저장고(좌), 수원 종자저장고 내부(우)스발바르(Svalbard) 종자저장고는 사철 눈이 덮여 있는 노르웨이의 영구동토지역에 있다. 위도로 보면 북위 80°로 북극에 바짝 붙어 있다. 종자를 저장하기 위한 핵심시설은 여기서 다시 지하 120m 아래로 내려가야 한다. 이곳에는 300만종의 씨앗이 -18°C 상태에서 영구 보존된다. 스발바르만큼 거대하지는 않지만 우리나라 수원에도 종자저장고가 있다. 여기에는 18만종의 종자뿐만 아니라 32만점의 생물 유전자와 균류가 보관되어 있다. 종자저장고는 인류의 미래를 담보하기 위해 꼭 필요한 시설이 아닐까 싶다.130 자연,터널그리고 지하공간인문학 산책라플라스의 미터법과 기자 대피라미드 왕의 큐빗덴데라12궁도덴데라 신전 황도12궁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 후에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사람들이 가장 관심을 가졌던 이집트 유적이나 유물은 무엇이었을까? 물론 기자 피라미드군에 대한 선호가 압도적이었지만 이에 못지않은 또 다른 유적이 있었다.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에 따라간 전문가들 중 도미니크 비방 드농D. Vivant Denon이라는 미술가가 있었다.1802년에 그는 《하下이집트 및 상上이집트 여행Voyage dans la Basse et la Haute Égypte》라는 삽화집을 펴냈다. 이 삽화집은 프랑스에서 선풍적 인기를 끌었으며 곧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여기 포함된 그림들 중에서 가장 주목을 많이 받은 것이 덴데라 12궁도였다. 이것은 그리스-로마 시대 이전에 만들어진 가장 완벽한 12궁도였다. 물론 바빌로니아나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 12궁도를 구성하는 동물이나 상징에 대한 요소들이 부분적으로 발견이 되긴 했지만, 이처럼 완벽한 구성체로 발견된 것은 처음이었다.맹성렬우석대학교 교수Vol. 20, No. 4 131라플라스의 미터법과 기자 대피라미드 왕의 큐빗고대 그리스의 12궁도1822년 여름 피에르-시몽 라플라스Pierre-Simon Laplace후작이 당시 프랑스의 수학과 과학을 이끌고 있던 조제프 푸리에Jean Baptiste Joseph Fourier, 장 바티스트 비오Jean-Baptiste Biot 그리고 클로드 베르톨레Claude Louise Berthollet와 같은 학자들을 만찬에 초대했는데 이 자리에서 가장 화제가 되었던 것이 바로 이 12궁도였다. 고대 그리스 역사가들은 고대 이집트인들이 하루를 12시간으로 나누고, 1년을 12개월로 했다고 기록했다. 라플라스의 만찬에 모인 학자들이 판단할 때 최초로 태양이 지나는 길인 황도를 12등분하고 각각에 속한 별자리들로 12궁도를 만든 이들도 고대 이집트인들임에 분명했다. 그들은 기자 대피라미드 뿐 아니라 덴데라 12궁도 또한 고대 이집트의 찬란한 과학 기술적 성과를 담고 있다고 생각했다.프랑스 대혁명과 미터법 제정1789년 7월 파리 시민들이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하면서 프랑스 대혁명이 시작되었다. 앙시앙 레짐Ancien Régime(프랑스 혁명 전의 절대 군주정체를 일컫는 용어)의 폐지에 대한 요구가 넘쳤고, 결국 루이 16세는 단두대에서 목숨을 잃었다. 프랑스 대혁명의 와중에 폐지되어야 할 대표적인 구체제 중 하나가 바로 무질서한 도량형이었다. 프랑스 과학아카데미는 혁명이 일어나자마자 도량형 개편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다. 그 이전에도 지역마다, 도시마다 달랐던 도량형 통일의 필요성은 숱하게 제기됐지만 번번이 무산됐다. 영주들이 농민을 수탈하는데 유리한 제각각의 척도들을 선호했기 때문이었다. 도량형 개편은 혁명 세력에게 기존 질서를 부정하고, 새 세계를 건설한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1790년 새로 구성된 국민공회에서 프랑스 아카데미가 완성한 도량형 개혁안이 통과되었고, 루이 16세는 1792년에 처형되기 전 왕으로써의 마지막 업무로 이 안을 승인했다. 이와 같은 도량형 제정에 앞장 선 대표적인 인물이 수학자 피에르-시몽 라플라스Pierre-Simon Laplace였다. 도량형에서 가장 핵심적인 내용은 지구 크기를 기준으로 한 미터법이었다. 프랑스 과학자들은 파리를 지나는 사분 자오선의 천만분의 일을 그 기본 단위로 할 것을 결정했고, 그 길이를 정밀 측량해내는데 성공하면서 새로운 표준으로 확정지었다. 라플라스는 1798년 미터법의 국제적 승인을 얻기 위한 국제 학술대회를 주관하는 등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1799년 나폴레옹이 쿠테타로 집권하여 10년 임기의 통령이 되었고, 프랑스 전역에 미터법을 실시했다. 그동안 미터법 제정에 주도적 역할을 했던 라플라스는 내무부 장관직을 맡아 미터법이 보급되도록 힘썼다.132 자연,터널그리고 지하공간인문학 산책초고대문명이 존재했다고 믿었던 라플라스라플라스는 아주 오래 전 고대 이집트에 자오선 길이에 대한 정확한 수치가 알려져 있었다고 철썩 같이 믿었다. 푸리에 등 라플라스의 만찬에 참석했던 대부분의 프랑스 과학자들도 이와 같은 생각에 동조했다. 고대 그리스의 천문학자 에라토스테네스는 자오선의 길이를 정확히 측정했다. 그는 알렉산드리아와 이집트의 고도古都 시에네가 동일 자오선 위에 놓여있다고 가정하여 하짓날 정오 때 그림자 길이 측정으로 지구의 자오선 길이를 1% 이내 오차로 매우 정확하게 어림해냈다고 교과서에 쓰여 있다. 이런 측정에는 시에네가 북회귀선 상에 놓여있기 때문에 하짓날 정오에 그림자가 생기지 않는다는 중요한 지구과학적 지식이 동원되었다. 그런데 천문학자 칼 세이건Carl Sagan은 TV 시리즈로 방영된 《코스모스》에서 에라토스테네스가 고급 천문지식을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 소장된 고대 이집트의 문헌을 통해서 알게 되었고 이 지식을 활용해 그가 정밀 측정을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도서관장으로써 그가 이런 지식에 쉽게 접근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가정을 하면, 한 가지 중요한 문제가 발생한다. 비록 과거 한때 시에네가 북회귀선 상에 놓여있어 하짓날 정오 때 그림자가 사라지는 현상이 있었긴 하지만 에라토스테네스 시대엔 더 이상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지 않았다. 지축 기울기가 약 4만년 주기로 변하기 때문이다. 이 현상은 지축의 방향이 바뀌는 세차운동과는 다른 천체현상이다. 따라서 칼 세이건 주장대로 에라토스테네스가 고대 이집트 지식을 이용해 그 자신이 지구 둘레 길이를 직접 측정한 것이 아니라 아예 송두리째 그 지식을 옮긴 것에 불과한 셈이 된다.라플라스는 에라토스테네스가 이집트 고문헌으로부터 시에네가 북회귀선 상에 놓여있다는 지식을 습득했을 뿐 아니라 그가 했다고 하는 지구 자오선 길이 측정이 사실은 아주 오래전 이집트 땅에서 행해진 것이라고 생각했다. 에라토스테네스가 제시한 데이터들이 모두 상당한 오류가 있는데 최종적으로 이런 오류들이 상쇄되어 매우 정확한 자오선 길이가 도출된 것이 아주 인위적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에라토스테네스 보다 한참 전에 누군가가 정밀 측정 방법으로 도출한 지구 크기를 에라토스테네스가 자신이 구한 것처럼 꾸몄다고 생각하고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이 천문학자가 지금은 그 기원을 알 수 없는 아주 뛰어난 기법으로 수행된 고대의 지구 크기 측정을 단지 재현했을 뿐이다. cet astronome n'avait fait que reproduire une ancienne mesure de la terre qui avait été exécutée avec une grande habileté et dont l'origine avait été perdue.”그의 눈에 에라토스테네스는 이런 숨겨진 지식을 자신의 것인 양 가로챈 몰염치한 학자로 비쳤음에 틀림없다. 시에네에 하짓날 그림자가 생기지 않던 가장 가까운 과거는 기원전 3,800년 경이다. 따라서 라플라스의 믿음대로라면 최소한 이 정도 오래 전에 이집트 학자가 그런 측정을 했다는 말이 된다.이처럼 라플라스는 고대 이집트인들이 아주 먼 옛날 이집트인들이 자오선 길이 아주 정확히 알고 있었다고 믿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가 미터법을 사용하듯 고대 이집트인들도 건축을 할 때 지구 자오선과 관련된 길이를 그 척도로 사용하지 않았을까? 아이작 뉴턴처럼 기자 대피라미드에 Vol. 20, No. 4 133라플라스의 미터법과 기자 대피라미드 왕의 큐빗1미터를 반지름으로 하는 원에서 원주길이의 1/12는 0.5236미터다.지구 크기에 대한 정보가 담겨있을 것이라는 기록을 남겨놓지는 않았지만 분명히 라플라스도 뉴턴과 비슷한 생각을 했을 것이다. 1왕의 큐빗 평균값은 0.5236미터... 최근 정밀 측정한 기자 대피라미드의 한 밑변 길이는 230.2363미터다. 한 밑변 길이가 440 왕의 큐빗이므로 1 왕의 큐빗은 소수점 이하 다섯째 자리에서 반올림하면 230.363미터/440=0.5236 미터가 된다.대부분의 이집트학 학자들은 고대 이집트 고왕국 시대에 가장 빈번하게 사용된 왕의 큐빗이 0.5235에서 0.5240미터 사이임을 인정하고 있으며, 이들 중 일부는 그 평균값이 대략 0.5236 미터라는데 의견을 같이한다. 실제로 영국 리즈 대학 석좌 교수인 오스왈드 딜크Oswald A. W. Dilke는 대영 박물관의 시리즈물로 펴낸 《수학과 측정Mathematics and Measurement》에서 다음과 같이 0.5236미터를 대피라미드에 적용된 1 왕의 큐빗의 평균값으로 제시하고 있다.“기자 대피라미드에 적용된 치수와 방향은 매우 용의주도하게 결정되었다. 그것은 여러 고대 이집트 왕조시대의 건축물과 마찬가지로 네 면이 정확히 동서남북을 향하고 있다. 측량은 모두 왕의 큐빗으로 이루어졌는데, 가끔 반올림된 값을 사용하기도 했지만, 그 오차는 매우 작아서 대부분이 0.5230미터에서 0.5250미터 사이에 들었다. 그리고 그 평균값은 0.5236미터이다.”1왕의 큐빗 평균값딜크 등이 주장하는 1왕의 큐빗 평균값 0.5236미터에 6을 곱해보면 놀랍게도 3.1416미터가 얻어진다. 여기서 미터를 빼고 보면 π를 소수점 다섯째 자리에서 반올림한 값이다. 이것을 단지 우연이라고 볼 수 있을까? 그냥 6을 곱해보니 우연히 그런 수치가 나왔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왕의 큐빗과 미터 간의 중요한 상관관계가 숨어있다. 1왕의 큐빗은 1미터를 반지름으로 하는 원의 원주 둘레길이의 1/12의 값에 해당한다. 원의 12 등분을 여러모로 활용했던 고대 이집트인들이 사분자오선의 천만분의 1을 반지름으로 하는 원에서 30도에 해당하는 호의 길이로 1왕의 큐빗을 정했던 것이 아닐까? 이처럼 고대 이집트의 왕의 큐빗이 미터법과 연관이 있다면 이는 그들이 지구 크기를 아주 정확히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가리킨다.134 자연,터널그리고 지하공간인문학 산책대피라미드 왕의 방에 적용된 왕의 큐빗영국의 저명한 고고학자 플린더스 피트리Flinders Petrie는 기자 대피라미드에서 구할 수 있는 가장 대표적인 1왕의 큐빗을 0.5240미터라고 주장했다. 그는 1880년에서 1882년에 걸친 이집트 체류기간 동안 기자 대피라미드의 내부와 외부의 치수를 측정하여 정확한 왕의 큐빗 평균값을 구하려 했다. 왕의 방, 여왕의 방, 대회랑, 입구, 그리고 밑변 등에서 그가 구한 평균 1 왕의 큐빗은 0.5237미터였다. 하지만 그는 왕의 방에서 가장 정확한 왕의 큐빗을 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표 1은 피트리가 왕의 방 벽 상당, 중간, 그리고 하단에서 구한 측정 길이를 정리한 것이다. 왕의 방은 가로 20왕의 큐빗, 세로 10왕의 큐빗으로 설계되었으므로 각 부분에서 도출되는 1왕의 큐빗은 표 2와 같다. 이 표에서 보듯 왕의 방 둘레길이 전체에서 구한 평균값은 0.5237미터다. 그런데, 피트리는 ‘아마도 바닥 쪽이 가장 신경 써서 맞춰졌을 것’이라는 막연한 가정을 통해 하단 길이 평균값으로부터 도출한 0.5240미터를 대피라미드에서 기대할 수 있는 1왕의 큐빗값에 대한 최선의 길이라고 선언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그의 결정은 잘못된 것이다. 왕의 방이 처음 상태 그대로 완벽하게 보존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표 1 표 2측정에 들어간 피트리는 화강암으로 꾸며진 왕의 방이 지진 등 외력의 영향을 어느 정도 받았음을 깨달았다. 이 때문에 2~5 센티미터 정도 뒤틀려있었고 천정 면적이 바닥 면적보다 작아져 있었다. 따라서 설령 피라미드 건설자들이 바닥 둘레Vol. 20, No. 4 135라플라스의 미터법과 기자 대피라미드 왕의 큐빗를 가장 신경 써서 맞추었다고 하더라도 그 후 외력에 의해 변형되었을 것이 틀림없음을 피트리 자신도 잘 알고 있었다. 왕의 방의 크기와 관련해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외력을 받기 전후로 평균 길이는 변화가 없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즉, 외력 받기 전 평균 1왕의 큐빗값도 0.5237미터라고 봐야 한다. 1왕조 이전에 건설된 대피라미드?이런 사실을 충분히 인지했을 피트리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단 길이에서 도출된 수치를 왕의 큐빗값 표준으로 선택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그는1877년에 쓴 그의 책 《귀납적 계측학》에서 자신이 검토한 십여 개의 고대 이집트 측정용 막대들에서 구한 1왕의 큐빗 전체 평균값이 0.5245 미터라고 기록했다. 하지만, 초기 왕조시대로 갈수록 그 길이가 짧아짐을 발견했는데 아주 초기의 건축물들에서 구한 1왕의 큐빗이 0.5237미터이며, 그 이후 조금씩 증가해서 초기 건축물들의 평균값은 0.5240미터였다. 피트리는 맨 처음 1 왕의 큐빗은 0.5237미터였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측정 막대를 반복적으로 복사해 사용하는 과정에서 그 기본 단위 길이가 조금씩 늘어났다고 판단했다. 피트리는 고대 이집트의 초기의 연대를 결정한 것으로 유명한데 그의 분류법대로라면 고왕국 4왕조 쿠푸왕이 건설한 대피라미드는 아주 초기시대가 아닌 중간 초기 시대에 속하니 0.5240미터인 왕의 큐빗을 적용해서 지어졌어야 한다. 마침 하단 둘레 길이가 그 값을 가리키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그는 이 값을 표준으로 정한 것이다. 그렇다면 대피라미드가 쿠푸왕의 시대보다 앞서서 지어졌다는 말인가? 그렇다고 봐야한다. 탄소동위원소법으로 대피라미드 건축에 사용된 모르타르 속의 유기물을 분석한 결과 대피라미드는 고왕국 4왕조 때가 아니라 1왕조 이전에 지어진 것으로 판명된 바 있다.1미터는 정확한 지구크기를 반영한 단위가 아니다!만일 정확한 1 왕의 큐빗이 0.5236미터가 아니라 0.5237미터라면, 반지름이 1미터인 원의 원주길이 1/12에 해당하는 원호 길이가 평균적인 1 왕의 큐빗에 상당히 정확하게 맞아떨어진다는 앞에서의 결론은 좀 과장되었던 것일까? 아니다. 0.5237미터는 보다 정밀한 지구 자오선 길이 측정치와 관련 있다. 이미 19세기에 극과 적도를 잇는 사분 자오선 길이의 천만분의 일이 정확히 1미터가 아니라는 사실이 알려졌다. 그보다 0.2밀리미터 쯤 큰 값이 실제로 지구 크기를 반영한 값이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현재 인공위성 측량에 의해 아주 정확하게 결정된 사분자오선 평균 길이는 10,000,957미터다. 이 값의 천만분의 일은 1.0001미터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왕의 큐빗이 극과 적도를 잇는 자오선 길이의 천만분의 일을 반지름으로 하는 원에서 그 원주길이의 1/12이라면, 그 값은 0.5237미터가 된다.터널 질의 답변136 자연,터널그리고 지하공간○ 현재 공사에서 담당하고 있는 업무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 부탁드립니다.답변 : 국도건설공사 현장으로 선형이 불량한 산악지역의 위험도로구간을 터널 건설을 통해 교통처리 및 주변 계발계획의 교통수요 처리를 목적으로 하는 국도건설 현장입니다. 터널 연장은 3km이며, 전반적인 터널공사의 계획 및 시공관리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 국내 터널 현장에서 가장 개선되어야 할 점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답변 : 터널 시‧종점부 및 단층파쇄대 등 연약지반의 천단 보강 보조공법인 일반천공그라우팅 공법(일반적으로 강관다단그라우팅공법)입니다. 작업순서는 천공작업 → 강관삽입 → 씰재 주입호스 설치 → 주입구 코킹 → 씰재 주입 → 강관내 주입패커 설치 → 다단 그라우팅 주입 순으로 작업이 이루어지는데, 문제는 씰재 양생 시간과 그라우팅 양생 시간입니다. 몇 년 전 국감에서 문제점으로 뉴스에 보도되었는데 씰재 양생시간 23±1시간, 그라우팅 양생시간 18±1시간(현 철도공사 시방서)을 지키지 않고 임의대로 시공하는 문제점이 발생하였습니다. 발주처마다 시방기준이 불분명하거나 기준 자체가 없는 실정입니다. 현장에서는 양생시간(약 2일)을 기다렸다가 후속 작업을 진행하거나 특허받은 혼화제를 씰재와 그라우팅시 혼합하여 양생시간을 단축하여 후속작업을 진행하는 방법을 택하여 공사 진행을 하고 있습니다. 위의 방법 모두 건설회사에서 비용을 감수해야 하는 부분입니다. 따라서 시방기준을 통일시키고 확립하여 장비 대기료 또는 혼화제 자재비를 단가에 반영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터널 기술자 인터뷰이대준금호건설 과장(공사팀장)Vol. 20, No. 4 137○ 현재 있는 현장에서 가장 어려운 점은 어떤 것들이 있나요?답변 : 첫째 여느 현장과 다름없이 본 현장에도 풍화대 및 붕적층이 부정합으로 피복되어 있는 구간이 많아 터널 굴진시 잦은 낙반 등으로 부석정리 작업시간이 늘어나고, 여굴로 인해 숏크리트의 실제 타설량이 증가(설계대비 100~150% 이상)하여 시공 사이클타임이 지연되어 발파 횟수가 감소되는 등 원가 손실이 불가피한 상황이 가장 어려운 점입니다.둘째 터널 갱구부 맞은편 700~2,000m 부근에 마을이 있는데 터널 발파시 진동 및 소음은 허용기준 이내로 문제가 없는데, 발파 폭풍압으로 인한 창문이나 출입문 등이 떨림으로 인해 많은 민원인으로부터 스트레스를 받고 있습니다. 갱구부 앞이 협소하여 2차 방호시설을 설치하지 못하고 마을방향으로 장애물이 없어 폭풍압이 그대로 마을로 전해지는 실정입니다. 갱구부에는 방음문과 내부에는 방음커텐 2중으로 설치했는데도 불구하고 목조 전원주택 및 가설주택 등이 많은 관계로 더 많은 민원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터널 기술자로서 안타까웠던 기억과 보람됐던 기억들이 있다면 어떤 것들이 있었나요?답변 : 이전 현장에서 교량 시,종점을 두고 좌,우로 터널 굴진을 하고 있었습니다. 터널이 마을로부터 1.5km 이격되어 발파로 인한 아무런 피해가 없을 것으로 판단하여 공사 초기에만 수차례 계측을 수행하고, 그 후로는 이를 수행하지 않는 채 공사를 진행하던 중 경찰서로부터 집단민원이 들어왔다며 해결하라고 연락이 왔습니다. 그 이후부터는 발파 시 계측을 시행했는데 발파로 인한 소음 및 진동으로 인한 법적인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마을 주민들은 발파소음에 스트레스를 받아 정신과 치료를 받고, 소가 유산을 하고, 집에 균열이 발생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또한 “계측기를 설치하니 폭약 장약량을 줄였네”, “건설회사에서 꼼수를 부려 진동 및 소음치가 안 나온다”고 얘기들을 했습니다. 이후 경찰서 앞에서 집단시위를 하니 경찰서에서 양수허가 조건인 “공공의 안녕”에 위배된다면서 화약 양수허가를 취소했습니다. 즉 법적기준 이내로 발파작업을 시행했음에도 불구하고 무려 한 달가량 작업이 중단된 적이 있습니다. 그사이 소정의 마을 발전기금을 기부하고 가옥마다 균열게이지를 설치하고 발파시에는 마을회관에서 음악을 틀어 집단민원을 해결하였습니다. 터널 굴착시 주변 상황 및 민원에 대한 대비책을 사전에 충분히 수립하지 못했던 안타까운 기억입니다. 터널 공사 할 때마다 가장 큰 보람은 굴착부 관통 때 느끼는 것 같습니다. 양방향 굴진 후 관통부를 통해 반대편 막장이 보일 때 그동안 아무런 사고 없음에 감사하고 밤잠 설치며 주,야로 힘들게 일해던 순간들이 추억과 보람으로 느껴집니다.○ 마지막으로 터널분야의 미래전망과 후배 터널 기술자들에게 조언 부탁드립니다.답변 : 터널 공사는 지하공간 활용(도로, 철도, 저장시설, 수처리시설, 대피공간 등)으로 경제적 및 환경적으로 매우 유리한 공사로서, 다가오는 미래에는 도심지 교통 혼잡구간의 도심지 터널, 해저에 건설하는 해저터널 등 다양한 지하공간의 활용이 증가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터널 기술자는 사고를 통해 경험을 쌓는 것이 아닌 관찰, 확인 및 분석을 통해 기술력을 향상시켜야 할 것입니다.Nex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