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revious34 불교학연구 제72호 리로부터 [ 발생한 ] 만족 ” 이라는 구절은 욕계에는 삼매 곧 심일경성이 없고 , 4 정려에 심일경성이 있는 이유를 설명하면서 인용하는 초기 경전의 한 문장이 다 . 이 구절은 구사론과 그 복주에도 인용되어 있다 . 구사론에 인용된 “ 원 리로부터 [ 발생한 ] 만족 ” 이라는 구를 포함한 문장을 살펴보자 . 성스러운 제자가 [ 감각적 욕망의 대상과 ] 원리로부터 발생한 만족을 몸 으로 직접 경험하고 도달하여 머물 때 …… 17) < 사마히타지 > 의 인용문과는 달리 구사론에서는 “ 분리로부터 발생한 만 족 ” 이 복합어 형태를 취하고 있지 않다 . 또한 일반적 정려 정형구에서는 제 3 정 려에 나타나는 표현인 “ 몸으로 (kāyena) 직접 경험 ” 한다는 표현이 초정려를 설 명하면서 나타나고 있다 . 하지만 , 이 인용문과 대응하는 한역 및 팔리 니카야 의 문맥을 보면 이 문장은 < 사마히타지 > 가 해석하듯이 초정려의 양상을 설명 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 이와 같이 초정려를 “ 분리로부터 발생한 만족 ” 이라 고 명언하는 것은 초정려의 가장 큰 특징이 “ 분리로부터 발생한 만족이라는 의미의 행복 ” 임을 보여주는 실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 상대적으로 늦게 나타나는 이 두 가지 실례만으로 초기 경전의 정려 정형구 에 나타나는 ‘ 만족 - 행복 ’ 복합어가 원래는 병렬복합어가 아닌 동격한정복합 어였다는 것을 충분히 만족할 정도로 증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 그러나 위에서 보았듯이 , ‘ 심구 ’ 와 ‘ 사찰 ’ 이 함께 쓰였을 때는 원래는 동일한 현상의 강조 내 지는 확장의 용법이었다는 것을 고려해 볼 때 , ‘ 만족 - 행복 ’ 복합어도 원래는 그 러한 의미였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을 것이다 . “ 復次初靜慮中 說離生喜 .” 17)AKBh. 439, 8-9, “yasmin samaye āryaśrāvakaḥ pravivekajāṃ prītiṃ kāyena sākṣātkṛtvopasaṃpadya viharatīty”; AKVy. 674, 6-9, “yasmin samaye āryaśrāvakaḥ pravivekajāṃ prītiṃ kāyena sākṣāt-kṛtvopasampadya viharati”; 구사론 (T1558, 29: 147a16-17), “ 若於爾時 諸聖弟子 於離生喜 身 作證具足住 ”. Pāsādika 1989, 121 이 지적한 대응하는 팔리어 경전인 AN. III. 207, 14-16, “Yasmiṃ bhante samaye ariyasāvako pavivekaṃ pītiṃ upasampajja viharati … ” 에도 동일한 구절이 나타난다 .정려의 구성요소를 둘러싼 여러 학파의 해석 (2) 35 III. ‘ 만족 ’ 의 어근 대체를 통한 의미의 확장 위 < 사마히타지 > 인용문에서 또 한 가지 눈에 띄는 구절은 “ 충만한 행복 (paripūrṇasukha)” 이라는 표현이다 . 이 구절은 4 정려를 낙주라고 하는 직접적 인 이유가 되는 것이다 . 이후 서술되는 세 가지 행복은 충만한 행복의 구체적 인 내용과 종류를 보여준다 . 여기서 4 정려가 낙주인 이유는 거기에 행복이 존 재할 뿐 아니라 , 그 행복의 존재 방식이 부분적이 아닌 “ 충만한 ” 것이기 때문 이다 . 최초기 설일체유부 문헌 중 하나인 법온족론도 현법낙주의 충만성에 관 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 [ 네 삼매수 중 ] 어떤 삼매수 [ 修定 ] 가 닦고 익히고 많이 행하면 현법락주 를 증득하게 하는 [ 삼매수 ] 인가 ? 이른바 “ 어떤 비구가 (A) 자신의 신체를 [ 감각적 욕망의 대상과 ] 분리로부터 발생한 만족과 행복으로 적시고 가 득 적시며 , 채우고 가득 채우며 , 만족하게 하고 매우 만족하게 한다 . 그러 므로 (B) 자기 신체의 어떤 곳도 분리로부터 발생한 만족과 행복으로 채 우지 못한 곳이 없다 ” 하고 설한 것이다 . 이것을 닦고 익히고 많이 행하여 현법락주를 증득하게 하는 삼매수라 한다 . 18) 여기서는 만족과 행복이 온 신체를 가득 적시고 채우며 만족하게 하여서 , 자 신의 신체에 채우지 못한 곳이 없다는 의미에서 현법낙주라고 한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 유부와 유가행파 등 북전 전통에서는 일찍부터 현법낙주를 신 체에 가득 찬 만족과 행복이라는 측면에서 이해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 여기서 우리는 충만과 만족 - 행복 개념의 밀접한 연관성을 엿볼 수 있다 . 나아가 주목할 만한 점은 따옴표로 표시한 구절이다 . 이 정형구는 초기 경전 18) 법온족론 (T1537, 26, 489b7-12), “ 云何修定 若習若修 若多所作 能令證得現法樂住 謂有苾芻 卽於自身 離生喜樂 滋潤遍滋潤 充滿遍充滿 適悅遍適悅 故離生喜樂 於自身中 無有少分而不充滿 是名修定 若習若 修 若多所作 能令證得現法樂住 ”; 김성철 2019a, 72, n.32 참조 .36 불교학연구 제72호 이래 나타나는 5 지정 ( 五支定 , pañcāṅgika-samādhi) 정형구와 거의 동일한 내용 이기 때문이다 . 5 지정 정형구는 앙구타라 니카야「오지경 (Pañcaṅgika-sutta) 」 (AN III, pp.25-29) 에 온전한 형태로 나타난다 . 거기서 5 지정은 4 정려에 관찰상을 더한 다섯 가지 단계로 구성된다 . 그 중 초정려에 대한 설명은 다음과 같다 . 여기에서 비구들이여 , 비구는 감각적 욕망의 대상과 분리되고 ...... 첫 번 째 선정에 도달하여 머문다 . 그는 바로 (A) 이 몸을 [ 감각적 욕망의 대상 과 ] 분리로부터 발생한 만족과 행복으로 ①흠뻑 적시고 , ②가득 적시며 , ③가득 메우고 , ④가득 채운다 . (B) 그의 몸에는 어떤 곳도 분리로부터 발 생한 만족과 행복으로 채워지지 않은 곳이 없다 . 19) 이 인용문의 정형구 (A) 에서는 ① ‘ 흠뻑 적시다 (abhisandeti)’, ② ‘ 가득 적시다 (parisandeti)’, ③ ‘ 가득 메우다 (paripūreti)’, ④ ‘ 가득 채우다 (parippharati)’ 라는 일 련의 표현이 등장한다 . 이 네 단어는 사실상 모두 동의어로서 신체를 만족과 행복으로 가득 채우는 것을 표현하고 있다 . 한편 , 이와 동일한 형식의 5 지정 정형구는 북전 문헌에서도 발견된다 . 대표 적인 것이 바로 이 「오지경」을 인용하여 주석하고 있는 유가사지론 < 사마 히타지 > 이다 .20) 거기서는 「오지경」을 인용하면서 초정려를 < 성문지 > 에서 유 래하는 7 종작의의 관점에서 해석하고 있다 . 19)AN. III.25, 8-12, “Idha bhikkhave bhikkhu vivicceva kāmehi ... pe ... paṭhamaṃ jhānaṃ upasampajja viharati. (A) So imameva kāyaṃ vivekajena pītisukhena abhisandeti parisandeti paripūreti parippharati. (B) Nāssa kiñci sabbāvato kāyassa vivekajena pītisukhena apphuṭaṃ hoti”; 김성철 2019a 65, n.16 20)paripūreti 대신 pariprīṇayati 혹은 priṇāti 를 사용하는 북전 문헌은 < 사마히타지 > 외에도 다수 존재한 다 . 먼저 산스크리트로 현존하여 그 원어를 확인할 수 있는 문헌으로 유가사지론 < 성문지 >, 근본 설일체유부율파승사 , 단편으로 SHT no.990, 결정의경이 있다 . 이중 결정의경은 paripūreti 와 pariprīṇayati 가 함께 등장하기도 한다 . 티베트어역과 한역으로만 남아있지만 그 원어로 pariprīṇayati 임을 확정할 수 있는 문헌은 법온족론집이문론 , 대비바사론 , 유가사지론⟪섭결택분⟫ , 현양성교론이 있다 . 이에 대해서는 김성철 2019a, 73 및 77 참조 .정려의 구성요소를 둘러싼 여러 학파의 해석 (2) 37 다섯 [ 단계 ] 로 구성된 삼매란 무엇인가 ? “ 여기에서 비구여 , 바로 (A) 이 신체를 [ 감각적 욕망의 대상과 ] 분리로부 터 발생한 만족과 행복으로 ” 라고 한 것은 ‘ 초정려 단계 [ 의 만족과 행복 ] 으로 ’ [ 라는 뜻이다 .] 그 중에서 만족으로 ① “ 흠뻑 적시고 ”, 행복으로 ② “ 가득 적신다 .” 가행구경작의에서 ④ “ 가득 채우고 ”, 이전의 작의들에서 ③ ¹“ 매우 만족하게 한다 .” 그 [ 이전 작의들 ] 에서도 만족과 행복이 간헐적 으로 일어나지만 , 지속적이지 않고 가득 차지도 않기 때문이다 . (B) “ 그 의 [ 신체에는 ] 채워지지 않는 곳과 [ 더 ] 채워야할 곳이 없다 ” 고 한 것은 ‘ 가행구경과작의에서 ’ [ 그렇다는 뜻이 ] 다 . 21) 이 인용문은 두 가지 점에서 주목된다 . 첫째는 < 사마히타지 > 가 가득 채운 다는 의미를 가진 일련의 동의어를 채움의 주체와 단계라는 두 부류로 나누는 것이다 . 그중 ①과 ②는 채움의 주체로서 각각 만족과 행복에 해당한다 . ③ ¹ 과 ④는 채움의 단계로서 < 성문지 > 에서 유래하는 7 종작의 단계 중 첫 6 단계로 해석한다 . 이 7 종 작의에 의한 단계적 해석은 팔리 전통에는 나타나지 않는 < 사마히타지 > 의 독자적 해석이다 . 그중 ③ ¹ 은 첫 다섯 단계 곧 요상작의에서 관찰작의 단계까지 , ④는 여섯 번째인 가행구경작의 단계이다 . 이에 따라 ③ ¹ 에는 만족과 행복이 신체를 가득 채운다는 의미는 약해지고 , 간헐성과 비지 속성이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 둘째 , 팔리 니카야 전통에서는 ③에서 ‘ 가득 메 우다 (paripūreti)’ 라는 표현을 사용하는데 반해 , < 사마히타지 > 에서는 ③ ¹ ‘ 매우 만족하게 한다 (pariprīṇayati)’ 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 바로 이 때문 에 ③ ¹ 에서 가득 채운다는 의미 대신 , 오히려 간헐성과 비지속성이 있는 것으 로 설명되는 것이다 .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본래 ‘ 가득 채운다 ’ 는 동의어의 나 열로 이루어진 팔리 전통과는 이질적이다 . 21)SamBh. 198, 10-16, “pañcāṅgikaḥ samādhiḥ katamaḥ? iha bhikṣur imam eva kāyaṃ vivekajena prītisukheneti prathamadhyānabhūmikena. tatra prītyābhiṣyandayati, sukhena pariṣyandayati. parispharati prayoganiṣṭhe manaskāre, pariprīṇayati pūrveṣu manaskāreṣu; teṣv api hi prītisukham antarāntarotpadyate, na tu sthiraṃ bhavati, na paripūrṇam iti. nāsya kiṃcid aparisphuṭaṃ bhavati spharaṇīyam iti prayoganiṣṭhāphale manaskāre.”38 불교학연구 제72호 < 사마히타지 > 가 이와 같은 해석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북전 계통의 오지 정 정형구가 (A)- ③ ¹ 에서 가득 채운다는 의미의 단어인 ‘paripūreti’ 가 아닌 , 기 쁘게 하다는 의미를 가진 단어인 ‘pariprīṇayati’ 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 같 은 논리를 팔리 전통의 오지경 정형구에 적용하면 , 그들은 ‘ 만족 (pīti)’ 의 어근 을 ‘Prī’ 가 아닌 ‘ 차다 ’ 는 의미의 ‘Pṝ’ 로 간주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 한편 , 이 두 전통을 절충하여 두 단어를 나란히 병치하는 문헌도 존재한다 . 경량부와 친연관계가 인정되고 있는 결정의경이다 .22) (A) [ 그는 ] 바로 이 신체를 분리로부터 발생하고 삼매로부터 발생한 만족 과 행복으로 내면에서 ①흠뻑 적시고 ② ¹ 가득 메우며 ③ ¹ 매우 만족하게 하고 ④가득 채운다 . (B) 그의 몸에는 채워지지 않은 곳과 채우지 말아야 할 곳이 없다 . 23) 결정의경에는 < 사마히타지 > 와 마찬가지로 ③ ¹ ‘ 매우 만족하게 한다 (pariprīṇayati)’ 라는 표현이 나타날 뿐 아니라 , 팔리 전통의 ② ‘ 가득 적시다 (parisandeti)’ 위치에 ② ¹‘ 가득 메우다 (paripūreti)’ 도 나타난다 . ‘paripūreti’ 와 ‘pariprīṇayati’ 가 나란히 병치되고 있는 것이다 . 이것은 결정의경이 ‘ 만족 (pīti)’ 의 어근을 ‘Prī’ 와 ‘Pṝ’ 양자 모두로 간주했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24) ‘ 만족 (pīti/prīti, Prī)’ 의 의미에 ‘ 차다 (Pṝ)’ 라는 의미를 부여하려는 남전 전통 의 경향은 청정도론에서 ‘ 만족 ’ 을 다섯 가지로 분류하려는 것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 22)Samtani 2005[1971], 28-30 및 63f; 김성철 2019a, 74, n.34 참조 . 23)AVinS. 25,8-11, “imam eva kāyam adhyātmaṃ vivekajena samādhijena prītisukhenābhiṣyandayati, paripūrayati, pariprīṇayati, parisphurati, tasya nāsti sarvataḥ kāyād asphuṭaṃ bhavaty aspharaṇīyaṃ* yaduta adhyātmajaṃ vivekajena prītisukhena.” *SamBh. 514, n.126 에 따라 asphuraṇīyaṃ 을 aspharaṇīyaṃ 으로 수정하였다 . 김성철 2919a, 75, n.39 참조 . 24) 어근 Pṝ 는 사전적으로는 ‘ 차다 ’ 는 의미를 일차적으로 가지며 , 만족하다는 의미도 함께 가지고 있 다 . 이 경우 Prī 와 마찬가지로 죽은 조상에게 공물을 바쳐 만족시키는 것이다 (pitṝnapārat). MW 및 Apte 의 Pṝ 항목 참조 . Mayrhofer 에 따르면 욕망을 채우다 (kāmam ā pṛṇa) 는 의미에서 만족하다는 의 미도 갖는다 . Mayrhofer piparti 항목 참조 . 정려의 구성요소를 둘러싼 여러 학파의 해석 (2) 39 만족과 행복이란 [ 다음과 같다 .] 이 중에서 만족시키는 주체가 만족이다 . 그것은 사랑을 특징으로 하고 , 신체와 마음을 만족시키는 작용 혹은 가 득 채우는 작용을 가진다 . 고양됨이 드러난 것이다 . 그것은 실로 미약한 만족 , 찰나적인 만족 , 하강하는 만족 , 고양시키는 만족 , 가득 채우는 만족 이라는 다섯 가지다 . …… 또 가득 채우는 만족이 일어날 때 온 몸을 가득 채운다 . …… 그 중에서 가득 채우는 만족은 몰입삼매의 근본이 된 후 , 삼 매와 결합한 상태로 확장된다 . 이 [ 가득 채우는 만족 ] 이 이 [ 초정려 ] 에서 의도된 만족이다 . 25) 붓다고샤는 만족을 다섯 가지로 분류한 후 , 그 작용 (rasā) 을 만족시키는 것 혹은 가득 채우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 그리고 다섯 가지 만족 중 마지막인 가 득 채우는 만족이야말로 초정려의 구성요소인 만족이라고 명시한다 . 이에 대 해 앞의 네 가지 만족은 세속적이거나 종교적인 환희와 기쁨을 가리킨다 . 만족 은 세속적인 단계로부터 종교적인 단계에 이르는 모든 기쁨과 환희를 포함한 다 .26) 하지만 , 선정에 들어가 정화된 상태의 만족은 찰나적으로 환희를 불러일 으키거나 뛸듯이 기뻐하는 고양된 형태의 환희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 그것은 마치 물이 스며들듯이 신체를 가득 채우는 형태의 감정이다 . 만족이라는 용어가 가진 이와 같은 양의성은 이미 초기경전의 오지정 정형 구에서부터 인식되고 있다 . 나아가 만족이 가진 두 의미 중 가득채움 / 충만의 의미는 만족 자신뿐 아니라 이어서 나타나는 ‘ 행복 ’ 의 양상까지 규정하게 되 었다 . 이 때문에 현법낙주를 설명하는 가운데 “[ 몸과 마음을 가득 채우는 ] 충 만한 행복 ” 이라고 표현된 것으로 보인다 . 나아가 , 만족에 가득채움이라는 의미를 추가하려는 배경에는 , 오지정 정형 25)Vism. 143, 14-144, 34, “pītisukhanti ettha pīṇayatīti pīti. sā sampiyāyanalakkhaṇā; kāyacittapīnanarasā, pharaṇarasā vā; odagyapaccupaṭṭhānā. sā pan ’esā khuddikā pīti, khaṇikāpīti, okkantikāpīti, ubbegāpīti, pharaṇāpītīti pañcavidhā hoti. …… pharaṇāpītiyā pana uppannāya sakalasarīraṃ dhamitvā pūritavatthi …… tāsu yā appanāsamādhissa mūlaṃ hutvā vaḍḍhamānā samādhisampayogaṃ gatā pharaṇāpīti, ayaṃ imasmiṃ atthe adhippetā pītīti.” 번역은 Ñāṇamoli 2010[1956], 137-138; Cousins 1973, 120f 참조 . 26)Cousins 1973, 121.40 불교학연구 제72호 구에서도 나타나듯이 , 신념처라는 수행 방식을 통해 경험하는 신체를 가득 채 우는 행복감을 표현하고자 하는 실천적인 요구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 IV. ‘ 분리로부터 발생한 (vivekaja)’ 구절의 수식 대상 다음으로 살펴볼 문제는 일반적으로 정려 정형구에서 ‘ 만족 - 행복 ’ 복합어 를 수식하는 것으로 이해되는 ‘ 분리로부터 발생한 ’ 이라는 구절이다 . 이 문제 를 살펴보기에 앞서 초정려의 만족과 행복의 차이를 비유와 함께 설명하는 붓 다고샤의 언급을 보자 . 만족과 행복이 [ 복합어로 ] 결합해 있을 때 , 원하는 대상을 획득하여 흡족 한 것이 만족이고 , 획득한 대상의 맛을 음미하는 것이 행복이다 . …… 사 막에서 지친 사람이 숲 주변에서 물을 보거나 [ 물이 있다는 것을 ] 들은 것 과 같은 것이 만족이고 , 숲의 그늘로 가서 물을 마시는 것과 같은 것이 행 복이다 . 27) 다음 장에서 살펴보겠지만 , 붓다고샤는 만족을 행온 , 행복을 수온으로 간주 한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붓다고샤는 두 가지 심리현상을 매우 밀접히 연관된 일련의 심리적 과정으로 설명하고 있다 . 곧 사막이나 광야에 버려져 지친 사람 이 물과 나무 그늘을 보았을 때 경험하는 마음의 흡족함 (tuṭṭhi/tuṣṭi) 이 만족이 다 . 그리고 이어서 실제로 그 나무그늘 아래서 물을 마실 때의 느낌이 행복이 다 . 붓다가 어린 시절 나무그늘 아래서 초정려를 경험하는 것과도 겹치는 이 비유는 거침에서 미세함으로 심화되는 만족과 행복의 양상을 생생하게 전달 하고 있다 . 27)Vism. 145, 4-10, “Sati pi ca nesaṃ pītisukhānaṃ katthaci avippayoge, iṭṭhārammaṇapaṭilābhatuṭṭhi pīti, paṭiladdharasānubhavanaṃ sukhaṃ …… kantārakhinnassa vanantodakadassanasavaṇesu viya pīti, vanacchāyappavesanaudakaparibhogesu viya sukhaṃ.” 번역은 Ñāṇamoli 2010[1956], 139 참조 .정려의 구성요소를 둘러싼 여러 학파의 해석 (2) 41 만족을 원하는 대상을 얻었을 때 느끼는 심리현상으로 규정하는 것은 유 가사지론 < 성문지 > 에서도 나타난다 . 원하고 바라던 대상을 획득한 것에 만족하는 것을 오류라고 보지 않기 때문에 , 그리고 광대한 경안 곧 마음과 신체의 적절함에 의해 모든 추중 과 분리되었기 때문에 , [ 각각 ] 만족과 행복이라고 한다 . 28) < 성문지 > 에서 만족의 정의는 원하고 바라던 대상을 획득했을 때 느끼는 만 족감을 오류라고 보지 않는 것이다 . 만족을 원하는 대상의 획득과 관련지어 설 명하는 것은 붓다고샤의 정의와 동일하다 . 남북전 모두 원하는 대상의 획득을 전제로 만족을 정의하고 있는 것이다 . 문제는 이러한 정의가 초정려 정형구에 나타나는 ‘ 분리로부터 발생한 ’ 이라 는 구절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 초정려 정형구에서 ‘ 분리 ’ 는 욕계의 감 각적 욕망의 대상으로부터 분리를 의미한다 . 이것은 원하는 대상의 ‘ 획득 ’ 과 모순된다 . 이 점은 ‘ 분리로부터 발생한 ’ 이라는 구절의 수식 대상이 ‘ 만족 - 행 복 ’ 복합어가 아니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 실제로 붓다고샤는 두 가지 가능 성을 모두 제시한다 . 그러므로 [ 위에서 설명한 것과 같은 바로 ] ①이 만족과 이 행복이 이 정려 에 속해 있거나 혹은 이 정려에 있다 . 그러므로 이 정려가 만족 - 행복을 가 진 것 [ 이고 또한 분리로부터 발생한 것 ] 이라고 한다 . ②혹은 ‘ 만족 - 행복 ’ [ 이라는 복합어 ] 는 ‘ 법 - 율 ’ 등처럼 만족과 행복 [ 이라는 의미의 병렬복합 어 ] 이다 . [ 이 경우는 ] 분리로부터 발생한 만족과 행복이 이 정려에 속해 있거나 혹은 이 정려에 있다 [ 는 의미다 ]. 이와 같이 [ 정려가 아니라 ] 만족 28)DELEANU I 331, 6-8(ŚrBh. 450, 11-14), “īpsitābhilaṣitārthasaṃprāpteḥ prītau cādoṣadarśanāt/ sarvadauṣṭhulyāpagamāc ca vipulapraśrabdhicittakāyakarmaṇyatayā prītisukham/”; 유가사지론 (T1579, 30:467c2-5) ; ŚrBh(T) P Wi 204a6-7; SCHMITHAUSEN 1987, 316, n.300); 김성철 2019, 69 및 n.48 참 조 . 번역은 안성두 2021, 432f 참조 .42 불교학연구 제72호 과 행복이 분리로부터 발생한 것이다 . 이 경우는 ①정려 [ 가 분리로부터 발생한 것 ] 과 마찬가지로 ②만족 - 행복도 분리로부터 발생한 것이고 , 그 [ 분리로부터 발생한 만족 - 행복 ] 이 이 [ 정려 ] 에 속하는 것이다 . 그러므로 ‘ 분리로부터 발생한 만족 - 행복 ’ 이라는 한 구절로만 말해졌다는 것도 합 리적이다 . 29) 위 인용문에서 붓다고샤는 ‘ 분리로부터 발생한 ’ 이라는 구절이 ①정려를 수 식하거나 , ②만족과 행복을 수식하는 것이 모두 가능하다고 설명하고 있다 . 버 크넬도 지적하듯이 많은 학자들은 후자의 해석을 따르고 있지만 , 전자의 해석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수는 없을 것이다 . 30) 전자의 해석대로라면 분리로부터 발 생하는 것은 정려이지 만족과 행복이 아니다 . 만약 만족과 행복이 분리로부터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면 , 무엇을 원인으로 발생하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대답 이 필요할 것이다 . V. 만족의 발생 원인과 이행 / 대체 정려의 만족이 어떤 심리현상을 원인으로 발생하는가 하는 점에 대해서는 , 유가사지론 < 사마히타지 > 의 한 문장이 힌트를 준다 . < 사마히타지 > 는 첫 부 분에서 등인 ( 等引 , samāhita) 단계에 네 가지 , 곧 정려 (dhyāna), 해탈 (vimokṣa), 등 지 ( 等持 , samādhi), 등지 ( 等至 , samāpatti) 등이 있다고 간략하게 열거한다 .31) 이 어서 왜 이것들만이 등인단계에 속하고 , 욕계의 심일경성은 등인 단계에 속하 29)Vism. 145, 11-18, “ ① ayañ ca pīti idañ ca sukhaṃ assa jhānassa, asmiṃ vā jhāne atthī ti idaṃ jhānaṃ pītisukhan ti vuccati. ② Atha vā pīti ca sukhañ ca pītisukhaṃ, dhammavinayādayo viya. Vivekajaṃ pītisukham assa jhānassa, asmiṃ vā jhāne atthī ti evam pi vivekajaṃ pītusukhaṃ. yath’ eva hi jhānaṃ, evaṃ pītusukham p’ ettha vivekajam eva hoti, tañ c’ assa atthi, tasmā ekapaden’ eva vivekajaṃ pītisukhan ti pi vattuṃ yujjati.” 번역은 Ñāṇamoli 2010[1956], 139 참조 . 30)Bucknell 1993, 379, n.8. 31)SamBh. 125, 7-8, “uddeśaḥ katamaḥ? samāsataḥ samāhitā bhūmiś caturvidhā, tadyathā dhyānaṃ vimokṣaḥ samādhiḥ samāpattiś ca.”정려의 구성요소를 둘러싼 여러 학파의 해석 (2) 43 지 않는가 하는 질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 나아가 왜 이 [ 정려 등 ] 만이 등인 단계 [ 에 속하는 것 ] 이고 욕계에 있는 심 일경성은 [ 등인 단계에 속하는 것이 ] 아닌가 ? 이 삼매는 후회없음・환희・ 만족・경안・행복에 의해 산출되는 것이지만 , 욕계에 속하는 [ 삼매 ] 는 그 렇지 않기 때문이다 . 32) < 사마히타지 > 는 정려 등이 후회없음 등에 의해 산출되기 때문에 등인 단계 에 속하는 것이라고 한다 . 욕계에도 심일경성은 있지만 , 그것은 후회없음 등에 의해 산출되지 않기 때문에 등인 단계가 아니라는 것이다 . 여기서 후회없음은 선정을 방해하는 다섯 요소 [ 五蓋 ] 중 하나인 악작 ( 惡作 , kaukṛtya) 의 반대 개념 으로서 ,33) 특히 지계를 통해 후회를 벗어난 마음 상태를 가리킨다 . 이하의 일 련의 개념들은 , < 사마히타지 > 에서는 명확히 언급하지는 않지만 , 후회없음으 로부터 산출되는 일련의 연속적인 심리현상이라는 것은 쉽게 추측할 수 있다 . 우리는 이것을 유가사지론 < 성문지 > 에서 확인할 수 있다 . 여기에서 계를 지닌 사람은 자신의 계의 청정을 관찰하면서 후회없음을 얻는다 . 후회가 없는 자에게는 희열이 있다 . 희열이 있는 마음을 가진 자 에는 만족이 발생한다 . 만족한 마음을 가진 자에게는 신체의 경안이 [ 발 생한다 .] 신체의 경안을 얻은 자는 행복을 경험한다 . 행복한 자의 마음은 선정에 든다 . 34) 32)SamBh. 126, 11-127, 1, “kasmāt punar eṣaiva samāhitā bhūmiḥ, na punar yāpi kāmadhātau cittaikāgratā? yasmād eṣa samādhir avipratisāraprāmodyaprītiprasrabdhisukhābhinirhṛtaḥ, na tu kāmāvacaraḥ.” 번역은 Delhey 2009, 395f 참조 . 33)AKBh 57, 18-19, “kim idaṃ kaukṛtyaṃ nāma / kukṛtasya bhāvaḥ kaukṛtyam / iha tu punaḥ kaukṛtyālambano dharmaḥ kaukṛtyam ucyate cetaso vipratisāraḥ /” 34)ŚrBh[Sh]. 59, 1-60, 4; ŚrBh[T ], “iha śīlavān puruṣapudgalaḥ śīlaviśuddhim ātmanaḥ pratyavekṣamāṇo 'vipratisāraṃ pratilabhate / avipratisāriṇaḥ prāmodyaṃ pramuditacittasya prītir jāyate / prītamanasaḥ kāyaḥ praśrabhyate / sa praśrabdhakāyaḥ sukhaṃ vedayate / sukhitasya cittaṃ samādhīyate /” 번역은 안 성두 2021, 105. 참조 . 밑줄로 표시한 prāmodyam 이하 문장은 일종의 정형구로서 팔리 니카야 (DN I, 73,20ff; MN I, 37, 31ff 등 ) 에서 광범위하게 나타난다 . prāmodya 의 원인으로는 계의 성취 외에 5 개의 제거 , 붓다의 가르침과 그 의미에 대한 통찰 등이 선행한다 .Next >